소설리스트

99화 (99/149)

그의 물음에 이나는 멋쩍어하는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아까 마르코스에게 팔을 베였을 때, 이나는 생각했다.

‘놈을 방해할 만한 변칙이 더 필요해.’

이곳은 사막. 너무 덥고 건조해서 물과 얼음의 능력을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불과 전기도 도하까지 휘말릴 수 있어 사용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바람과 땅뿐이었다. 주위에 모래가 많으니 이왕이면 땅의 능력을 이용하는 게 효율이 좋을 듯했다.

‘모래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공격이라…….’

그 순간 이나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암석 지대 던전에서 앤드류를 상대하다 얻은 바위 골렘의 핵.

‘같은 땅의 속성이라면…….’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마르코스가 도하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으니까.

이나는 인벤토리에서 바위 골렘의 핵을 꺼냈다. 그리고 마력을 불어넣어 활성화시킨 뒤 그것을 모래 위로 던졌다.

사실 반쯤은 도박이었다. 앤드류가 자신의 마력으로 골렘을 조종하는 걸 보고 떠올린 도박.

다행히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핵은 순식간에 모래를 집어삼켜 골렘을 만들어 냈다. 골렘은 이나의 의지에 따라 마르코스를 공격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도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저게 왜 네 말을 들어?”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 마력을 삼켜서 그런 건 아닐지……. 이판사판이긴 했지만 아무튼 잘됐죠? 하하.”

이나가 애써 태연하게 웃었다. 도하의 낯이 황당하다는 듯이 변했지만 이나는 그를 깔끔히 무시하고 골렘을 상대하는 마르코스를 쳐다보았다.

“그보다 지금은 저놈을 해치워야죠.”

“그렇지.”

표정을 바꾼 도하가 언월도를 꾹 쥐었다. 그의 눈빛이 비장하게 빛났다.

마르코스는 골렘을 상대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이놈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정말 방해되네!”

“누가 할 소리를.”

이나가 중얼거리며 모래로 그의 양발을 붙잡았다. 그사이 도하가 마르코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마르코스는 발을 빼낼 시간도 없이 도하의 공격을 막아 내야 했다. 거기까진 좋았지만, 그다음엔 골렘의 공격이 있었다.

골렘의 발이 마르코스를 짓밟았다. 마르코스는 대검을 가로로 들어 막으며 버텼다.

하지만 S급 던전에 있던 골렘의 핵이었다. 힘이 상당했다.

그 탓에 마르코스는 처음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이나가 도하와 눈을 맞추었다.

도하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는 마르코스에게 모래바람을 날려 시야를 방해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그 순간 골렘이 발을 들어 올렸다. 초조함에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마르코스는 대검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켜서 모래바람을 날려 버렸다.

그것이 실책인 줄도 모르고.

촤악-

모래바람에 섞여 마르코스에게 달려갔던 도하가 그가 검을 휘두른 틈을 타 그의 팔을 베었다.

대검을 쥔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르코스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제 팔이 있던 자리를 보다 비명을 내질렀다.

“으, 으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사막을 울렸다. 이나는 그대로 그를 끝내 버리려 했다.

그런데 그때 마르코스가 고개를 들었다. 회까닥 돌아간 눈동자가 정확히 이나를 노려보았다.

“흐……흐흐……. 내가 이대로 죽을 줄 알고?”

마르코스가 남은 팔로 땅에 떨어진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걸로 이나를 공격할 줄 알았는데, 마르코스는 엉뚱한 사람을 노렸다.

“갈 땐 가더라도.”

마르코스가 대검을 쥐는 법을 바꾸었다. 마치 창을 쥐듯 대검을 쥔 마르코스가 그것으로 정확히 지은을 노렸다.

“한 놈은 죽이고 가겠다!”

“어?”

지은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대검을 발견하고 얼굴이 희게 질렸다.

검기가 둘러져 있지 않은 검이었기에 이나는 바람으로 쉽게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은이 당황한 탓에 바타르를 견제하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이었다.

공간 마법이 사라진 덕에 바타르는 정확히 시현을 조준할 수 있었다. 시현도 망설임 없이 바타르에게 검을 휘둘렀다.

탕! 서걱-

총소리와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바타르는 방금까지 제 오른쪽 어깨에 달려 있던 팔이 모래 위를 나뒹구는 것을 보며 몸을 벌벌 떨었다.

“으아……아아……! 내 팔이……! 컥!”

그 순간 바타르의 목을 무언가가 꿰뚫었다.

바타르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제 위에 올라탄 이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죽어서 네놈들의 신을 만난다면 전해라.”

시현은 서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를 건드린 이상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와 몸을 뒤덮는 고통에 바타르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떨림은 곧 멈추었다.

시현은 움직임을 멈춘 그를 지켜보다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시현 씨!”

“야, 이시현!”

이나와 도하가 서둘러 시현에게 달려왔다.

그는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한쪽 손으로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었다. 왼쪽 복부를 관통당한 그는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그 와중에도 시현은 이나를 보며 물었다.

“마르코스는……?”

“걱정 마세요. 땅에 파묻어 버렸으니까. 그보다 지금 남 걱정할 때예요?”

이나가 피를 흘리는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제가 아픈 양.

그때 뒤에서 굳어 있던 지은이 안절부절못하며 다가왔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양지은 헌터 때문이 아니에요.”

이나는 여전히 시현의 상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은에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지은을 탓하는 마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시현도 도하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하얗게 질려 있던 지은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그때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이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 의아해하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이나가 말했다.

“던전 공략하고 올게요. 시현 씨를 위해서라도 빨리 나가야 할 것 같으니까.”

“내가 할게. 넌 여기 있어.”

도하가 따라서 일어났지만 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할게요.”

어쩐지 비장한 기운이 담긴 목소리에 도하는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일행에게서 멀리 떨어지자 이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생각했다.

‘나 때문이야.’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아니었다면 K 때문에 시현이 다칠 일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K와 칼릭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나는 자신이 미웠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더욱 강해져야 해.’

이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모두와 함께 싸우면서 모두를 지켜 내야 해.’

그러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나는 눈을 떴다. 어느새 주변에 몬스터가 포진해 있었다.

정령들과 함께 놈들을 상대하며 이나가 말했다.

“얘들아.”

[응?]

“감응도를 올리자.”

<일체화> 스킬을 쓰는 데 필요한 감응도. 그것이 필요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정령들을 이나가 비장하게 바라보았다.

“일체화 스킬, 그걸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해.”

***

이나가 손쉽게 던전을 공략한 뒤 일행은 시현을 부축하며 밖으로 나왔다.

바타르의 시신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나 지난번처럼 시신의 기억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마르코스의 시신은 땅속 깊은 어딘가에 묻혀 찾는 데 오래 걸릴 거라고 네움이 말했다. 시현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급했기에 어쩔 수 없이 두고 나와야 했다.

하지만 그 중상을 입고 살아남기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그는 그냥 던전에 내버려 두기로 했다.

시현이 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뒤, 그들은 그의 병실에서 다시 한번 모였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죽었다고요?”

이나가 멍한 얼굴로 서준에게 물었다. 시현과 도하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서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헌터 협회 전남 지부를 방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수일 헌터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대체…….”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에 이나는 머리를 꾹 눌렀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현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것도 K의 소행이겠죠.”

그 말에 침묵이 네 사람을 감싸 안았다. 특히 이나는 더 괴로운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도하가 그녀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 탓 아니야. 그런 얼굴 하지 마.”

“……그렇다고 완전히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죠.”

도하의 사나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가 났다기보단 이나가 죄책감을 가지는 것에 괴로워하는 느낌이었다.

서준도 뭐라고 말을 더 얹으려고 했지만 그랬다간 역효과만 일어날 것 같았다. 그는 조용히 한숨만 살짝 내쉬었다.

“아무튼 그래서 바타르의 기억은 읽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됐어. 그런 거 없어도 우리끼리 잘 상대할 수 있어.”

도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얌전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나가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세 사람은 병실을 나가는 이나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나 씨, 어디 가요?”

“훈련이요.”

“훈련?”

서준이 되물었지만 이나는 더 대답해 주지 않고 문을 닫았다.

그녀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서준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나 씨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럴 필요 전혀 없다니까.”

도하가 그녀가 나간 문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시현은 어두운 얼굴로 제 주먹 쥔 손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병원 관계자는 아니었다.

시현과 서준이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사이 도하가 그에게 물었다.

“뭐야, 김 비서? 여긴 왜 왔어?”

“길드장님, 초대장이 왔습니다.”

“초대장?”

김 비서가 도하에게 초대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도하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거.”

“초대장이라니. 그게 뭡니까?”

서준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도하의 손에 들린 초대장을 보며 물었다. 도하가 그것을 서준의 앞에서 팔랑거리며 말했다.

“너도 들어 본 적 있을걸.”

“무엇을요?”

“S급 연회.”

그의 대답에 서준이 멈칫했다. 도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푸념했다.

“그 노인네가 이번에도 할 모양인가 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