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149)

“거긴 어때?”

“없어. 네가 간 쪽은?”

“여기도.”

이벤트가 시작된 지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S급 아이템을 찾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탐지 능력이 없는 헌터들은 국가별로, 혹은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꾸리기도 했다.

시현은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같이 하자고 제안해 오는 사람들도 없었지만, 그 스스로도 S급 아이템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요한 아이템은 이미 길드에 많고.’

천조 길드가 괜히 한국의 3대 길드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S급 헌터로서 그가 얻은 S급 아이템들이 길드에 보관 중이었다. 그리고 필요한 아이템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살 정도의 돈도 충분했다.

S급 아이템을 준다면 물론 감사히 받겠지만 욕심낼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가 욕심내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이나 씨는 어디로 갔지?’

어쩌다 보니 이나와 아예 떨어지게 된 시현이 그녀를 찾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었는데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서로 멀어지게 된 모양이었다.

시현은 이나와 헤어졌던 장소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그곳에도 이나는 없었다.

대신 익숙한 그녀의 정령이 보였다.

“이즈.”

[어? 시현 씨다!]

분수대 근처를 날아다니고 있던 이즈가 시현을 발견하고 쪼르르 날아왔다.

정령들은 이나가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따라 부르곤 했다.

어린아이 같은 말투로 자신을 ‘시현 씨’라고 부르는 것이 왠지 어색하고도 귀여워서 시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그렸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이나 씨는요?”

[우리도 보물찾기 하려고! 이나는 다른 곳을 찾아본댔어!]

“그렇습니까. 뭘 좀 찾았나요?”

[으음. 보물인지는 모르겠는데.]

이즈가 분수대의 맨 위를 힐끗 쳐다보았다.

시현도 이즈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아기 천사를 본뜬 석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뭔가 있습니까?”

[응! 저기, 천사가 든 물병에서 물이 나오고 있잖아.]

이즈가 그쪽으로 날아갔다. 물병에서 나오는 물에 손을 내민 이즈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 물 가짜야.]

“네?”

[이거 그거 같아. 마법!]

시현이 눈을 치켜뜨고는 분수대 안으로 들어갔다. 분수대 안을 채운 물은 진짜였다.

하지만 이즈처럼 물병 앞으로 손을 내밀자 쏟아지는 물은 그의 손을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환상 마법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시현은 석상에 올라가 물병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서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시현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꺼냈다. 겉보기엔 평범한 나팔이었지만.

“아이템 정보.”

띠링!

⌜개안의 나팔(S)

내용: 나팔 소리를 들은 이는 평온을 되찾게 됩니다. 마음을 뒤흔드는 악으로부터 스스로와 대상자를 보호하고 진실을 바라보세요.

효과: S급 이하의 정신 계열 디버프 해제 / 30분 동안 S급 이하의 정신 계열 디버프로부터 보호

조건: 마력 30 이상⌟

“찾았다.”

시현이 미소 짓는 얼굴로 이즈를 바라보았다. 이즈도 눈을 빛내며 그에게 물었다.

[이게 그 보물이야?]

“그렇습니다. 이즈가 찾아냈군요.”

[와아! 내가 찾았다!]

이즈는 신이 나는 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날았다. 그사이 시현은 분수대에서 내려와 땅에 착지했다.

“오오. 찾아내셨군요.”

때마침 데이비드가 박수를 치며 그에게 다가왔다. 몇몇 S급 헌터들도 허탈해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시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벤트에 관심이 없던 자신이 아이템을 찾아낸 것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데이비드가 허허 웃었다.

“이벤트도 끝났겠다, 연회장으로 돌아가서 이벤트의 우승자를 발표한 뒤 슬슬 연회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알겠습니다.”

데이비드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시현의 눈은 계속 이나를 찾았다. 그러다 그는 결국 이즈에게 물었다.

“이즈, 이나 씨가 어디 있는지 느껴지십니까?”

[응? 음……. 응! 저쪽에서 느껴져! 찾아 올까?]

이즈의 물음에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이즈가 이나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어? 네움!]

이즈가 날아가는 걸 멈추더니 시현 쪽을 보며 외쳤다.

어느새 땅에서 나타난 네움이 시현의 옷을 붙들고 있었다.

시현은 몸을 낮춰 네움과 눈을 맞췄다. 네움이 입을 달싹이다 다급하게 말했다.

[……이나가 위험해.]

“네?”

[네움? 그게 무슨 말이야?]

시현과 이즈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네움은 더 말하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이시현 씨?”

“……급하게 다녀올 곳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네? 무슨……. 아니, 이시현 씨?”

데이비드가 그를 불렀지만 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네움을 따라 달렸다.

네움은 저택 밖으로 그를 이끌었다. 중간에 저택의 담벼락이 그를 막았지만 시현은 가뿐하게 점프해 담을 넘어갔다.

‘대체 어디까지…….’

네움이 멈춰 선 곳은 어느 한 공원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바깥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시현이 혼란스러워하는 얼굴로 가만히 있자 뛰쳐나가던 한 시민이 그에게 말했다.

“도망가세요! 공원에 있는 게이트 색이 이상해요!”

통역 아이템 덕분에 시현은 그의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시현은 눈을 치켜뜬 채 그에게 물었다.

“게이트 색이 이상하다뇨? 혹시 붉은색으로 변한 겁니까?”

“아뇨! 검은색이에요!”

“검은색……?”

시현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는 딱 한 번, 검은색 게이트를 본 적이 있었다.

한국 랭킹전이 열렸던 정선에서.

그리고 그때의 이나는…….

“젠장……!”

“이봐요!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시민이 말렸지만 시현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 시민이 말했던 검은색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쪽으로 향하는 이나까지도.

“이나 씨!”

시현이 다급히 외쳤지만 이나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결국 시현은 더욱 속도를 높여 이나를 따라잡아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런데 몸을 돌린 이나의 눈빛이 이상했다.

“이나 씨? 제 말 들리십니까?”

이나의 눈빛이 탁하게 흐려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시현이 그녀의 몸을 흔드는데, 근처에서 어린애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들켜 버렸네.”

“너흰 누구지?”

시현이 갑자기 나타난 쌍둥이를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하지만 쌍둥이는 전혀 겁먹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보스가 그 누나를 원하시거든.”

“그래서 보스께 데려가려고 했는데, 오빠가 방해하러 왔네.”

쌍둥이의 말을 듣던 시현이 경계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K인가?”

“정답!”

쌍둥이가 경쾌하게 외치자 시현의 미간은 더욱 좁아졌다. 그의 눈이 빠르게 쌍둥이와 게이트를 번갈아 훑었다.

‘전투계는 아냐.’

이나를 이렇게 만든 걸 보면 정신계 마법사일 확률이 높았다.

시현은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개안의 나팔’을 떠올렸다. 그것으로 이나를 깨울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가 인벤토리에 손을 넣기도 전에 쌍둥이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형아에게도 스킬을 쓸까?”

“그럴까? 저 오빠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뭘까?”

“형아는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역시 누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럼 지금 언니에게 보여 주고 있는 걸 그대로 보여 주면 되겠지?”

시현은 멈칫했다. 무언가를 눈치챈 그가 쌍둥이에게 물었다.

“대체 이나 씨에게 뭘 보여 주고 있는 거지?”

“별거 아냐. 누나가 내내 외면하고 있던 것을 보여 주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시현답지 않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에 쌍둥이가 빙긋 웃었다.

“궁금하면.”

“직접 봐.”

쌍둥이의 푸른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시현은 그 눈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결심했다.

‘아이템을 쓰자.’

시현이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읏…….”

“이나 씨!”

이나의 입에서 괴로운 듯한 신음이 흘러나오며 그녀가 무너져 내렸다. 시현은 저도 모르게 인벤토리에서 손을 빼고 그녀를 부축했다.

“빈틈!”

그러자 쌍둥이가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내밀었다.

쌍둥이와 눈을 마주하게 된 시현은 자신의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런…….’

그렇게 그의 정신은 이나의 정신세계로 들어갔다.

***

“됐나?”

“된 것 같은데?”

쌍둥이는 나란히 누워 있는 이나와 시현을 보며 숙덕거렸다.

그들이 자신들의 스킬에 완전히 당한 것을 확인한 동생, 유리가 누나인 니나를 보며 물었다.

“이 상태로 누나만 보스에게 데려갈까?”

“그러는 게 좋겠지?”

니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결정이 나자 쌍둥이가 이나만 일으켜 세워 데려가려고 하는데.

“멈춰, 꼬맹이들.”

쌍둥이가 동시에 멈칫했다. 뒤를 돌아보자 백호 한 마리와 함께 무기를 들고 서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누군가와 싸우기라도 한 듯 남자의 옷은 곳곳이 상해 있었다.

도하는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는 이나와 시현을 보며 혀를 쯧 찼다.

“하여간에 이시현, 쓸모없는 놈. 역시 내가 있어야 한다니까.”

“뭐야, 아저씨는.”

니나가 볼멘소리로 물었다. 아저씨라는 단어에 도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야! 나 아저씨 아니거든?”

“아저씨 같은데.”

“아저씨네.”

니나와 유리가 차례로 타격을 주자 도하는 크윽, 소리를 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저 망할 꼬맹이들이……!”

“니나, 저 아저씨에게도 스킬 쓸까?”

“응. 엄청 무서운 걸 보여 주자.”

쌍둥이의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도하에게도 정신계 마법을 쓰기 위함이었다.

도하는 쌍둥이의 눈이 빛나는 걸 보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저 눈에 당한 거구만. 난 안 넘어간다.”

“눈을 감고 싸우려고?”

“확실히 눈을 감으면 우리 스킬은 통하지 않지만, 그 상태로 우리와 싸울 수 있겠어?”

쌍둥이가 도하를 비웃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각자 단검을 꺼내 들었다.

원거리에서 사용해야 하는 총기류보다는 단검을 사용해 가까이에서 상대하는 편이 정신계 마법을 쓰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고 눈을 감고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 정도로도 시야를 잃은 도하를 상대하기는 충분했다.

그런데 도하는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그것도 여유로운 미소를.

“내 감을 무시하지 않는 편이 좋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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