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49)

이나 일행을 마주할 때의 사근사근한 미소가 지금은 무감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정재원은 자신이 손에 든 것을 스윽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단검이었다. 그는 이제 이것으로 쌍둥이의 목숨을 앗아 갈 예정이었다.

그것이 ‘그분’의 뜻이니까.

정재원이 쌍둥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가 단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푹-

그리고 끔찍한 소리가 퍼졌다.

***

“그 자식들은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한 거야?”

도하가 투덜거리며 언월도를 빙빙 돌렸다.

그들이 들어와 있는 곳은 청계천의 S급 던전이었다. 하천 근처에 생긴 던전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 던전은 물과 연관되어 있었다.

촤아아- 철썩-

다름 아닌 바다였다.

도하가 불만인 것도 이해는 되었다. 발이 푹푹 꺼지는 모래사장에서 전투를 치르기는 꽤 귀찮을 터였다.

게다가 바다의 몬스터라도 튀어나오면 더 귀찮아지고 말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 정령들이 도와줄 거예요. 바닷가니까 특히 이즈가 잘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나만 믿어!]

이즈가 어깨를 쫙 펴며 말하자 도하가 픽 웃었다.

“나 혼자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지만, 도움을 준다면 사양하진 않을게.”

도하다운 대답이었다.

이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는 사이 시현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나 씨.”

“아.”

그가 가리킨 곳을 본 이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하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쟤 뭐 하냐?”

이 던전은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을 좀 벗어나면 숲과 이어졌다.

소피아는 그 경계에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이 S급 던전에서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꽤 본격적인 것이, 티 테이블 위에 디저트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우아하게 차를 마시던 소피아가 자신에게 다가온 이나 일행을 보며 싱긋 웃었다.

“어서 와요. 오는 데 힘들진 않았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보면 몰라요? 티타임을 즐기고 있잖아요.”

소피아가 들고 있던 찻잔을 살짝 내밀며 말했다. 그에 이나 일행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소피아는 그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디저트를 좀 드릴까요? 차는 어떤 게 좋아요?”

“필요 없어. 당신과 노닥거리려고 온 게 아니니까.”

소피아의 눈이 이나 일행을 지그시 담았다. 그러다 작은 한숨 소리가 그녀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쌍둥이를 데려오지 않았다는 건, 제 거래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겠죠?”

“잘 알고 있네.”

“그래요.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어요. 하지만 씁쓸하네요.”

소피아가 옆에 시종처럼 서 있는 루엔의 팔을 잡았다. 혹시라도 무슨 짓을 할까 봐 이나가 경계하자 소피아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기어코 제자와 싸우다 제자의 손에 의해 그분께 넘겨지겠군요.”

“아니. 난 루엔과 싸우지도 않을 거고, 칼릭스에게 나를 넘기지도 않을 거야.”

“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

소피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이나를 바라보았다. 이나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노려봐 주었다.

그때 숲 안에서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시현과 도하가 무기를 꺼내 경계하는 순간, 숲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쿵!

“……너?”

도하가 멍한 얼굴로 숲에서 나타난 사내를 쳐다보았다. 시현도, 그리고 이나도 눈을 치켜뜬 채 중얼거렸다.

“어떻게……?”

“아. 그러고 보니 여러분과는 이미 구면이겠네요.”

소피아도 갑자기 등장한 사내와 그리 친하진 않은지 귀찮다는 얼굴로 물었다.

“굳이 인사는 필요 없겠죠, 마르코스?”

“그래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히죽 웃은 마르코스가 이나 일행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특히 너희 둘.”

마르코스가 자신과 싸웠던 이나와 도하를 정확히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질을 받은 두 사람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아, 별거 아니야. 너희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땅을 파헤치고 올라와 던전을 빠져나왔을 뿐이지.”

마르코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잘라 냈던 그의 오른팔이 지금은 멀쩡히 붙어 있었다.

정상적인 형태는 아니었지만.

마치 모형을 가져다 붙인 듯 온통 새까만 오른팔을 보며 이나가 눈을 찡그렸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마르코스가 설명해 주었다.

“아, 이거? 살아 돌아온 나에게 신께서 주신 선물이다.”

“……칼릭스가?”

“이것 봐. 내 의지대로 잘 움직이고…….”

마르코스가 근처에 있는 나무로 걸어가 오른쪽 주먹을 뻗었다.

퍽! 쩌억- 쿵!

주먹을 받아 낸 나무가 두 동강 나 위쪽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 주었음에도 마르코스는 그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고?”

“하여간에 무식하긴.”

소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나는 이 순간만큼은 소피아의 말에 동감했다.

“그래서, 오늘 드디어 복수할 수 있는 건가?”

마르코스가 눈에 광기를 빛내며 물었다. 그에 시현과 도하가 잔뜩 경계했다.

소피아만 있진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래서 미리 여러 상황으로 시뮬레이션도 돌려 보았다.

하지만 마르코스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마르코스의 업그레이드된 힘까지.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었다.

이나 일행이 경계하는 사이 본격적으로 해 보려는 듯 마르코스가 인벤토리에서 자신의 대검을 꺼냈다.

소피아가 그런 그에게 말했다.

“마르코스, 유이나는 내 거예요. 건드리지 마요.”

“누가 네 거라는 거야?”

이나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마르코스는 이나를 상대하고 싶었지만 소피아의 성질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시현과 도하, 저 두 사람이 자신을 즐겁게 해 줄 테니까.

그의 팔을 베어 냈던 도하는 더더욱.

마르코스가 대검을 세우고 달려왔다. 시현과 도하는 전처럼 방어 태세를 취하고, 이나는 마르코스의 힘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그를 방해하려 했다.

그때 이나를 향해 비수가 날아왔다. 바람을 이용해 그것을 쳐 내고 비수가 날아온 방향을 보자 소피아가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말했을 텐데요. 당신은 제 것이라고.”

“……젠장.”

낮게 욕을 내뱉은 이나는 근처에서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홱 돌렸다.

도하가 마르코스의 공격을 받아 내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시현이 마르코스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마르코스가 무시무시한 힘으로 도하를 날려 버리고 몸을 트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나가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피아와 루엔이 함께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네움, 볼트, 가서 두 사람을 도와줘.”

[알겠네!]

대신 이나는 네움과 볼트를 두 사람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동안 자신의 곁에서 많이 싸워 봤으니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잘 알 터였다.

‘조금만 기다려 줘요.’

이나는 시현과 도하에게 무운을 빌어 준 뒤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네 능력은 뭐야?”

“후후. 궁금해요?”

“글쎄. 딱히 궁금해하고 싶지 않지만 싸우려면 알아야 하니까.”

“재밌네요. 그분께서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칼릭스 이야기가 나오자 이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사이 소피아는 손가락으로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뒤로 모래사장이 움찔움찔 올라왔다. 뿐만 아니라 숲에서도, 바다에서도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작됐군.”

마르코스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그를 상대하고 있던 시현이 이나와 소피아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주위에 몬스터가 가득 포진해 있었다. 정확히는 소피아를 중심으로.

마치 몬스터들이 소피아를 숭배하는 듯한 모습에 이나는 눈을 찡그렸다.

“몬스터가 왜 너를……?”

“제 소개를 다시 할게요. 저는 소피아 무어. K의 멤버이자…….”

소피아가 옆으로 다가오는 몬스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특성은 키메라 제작자랍니다.”

“키메라?”

“음.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데, 쉽게 말하자면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나 할까요?”

“그럼 이 몬스터들이 설마…….”

“네. 전부 제가 만들어 낸 몬스터들이랍니다. 아주 귀엽죠?”

소피아는 얼굴을 붉히며 제 옆의 키메라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껴안았다.

그 광경이 무척이나 이질적이라 이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긴,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다 쓸어 버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때 한 키메라가 그녀를 향해 거대한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이나는 허공에 바람의 창을 만들어 그 키메라를 꿰뚫어 버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키메라들도 그녀를 공격했다.

“크와아앙!”

“일단 두 놈! 세 놈!”

이나는 키메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가며 특성을 파악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놈들은 지금껏 겪었던 S급 몬스터들처럼 마법을 쓰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저 몸으로 달려드는 전투 방식이 아주 단순해 처리하기는 쉬웠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겨우 이 키메라들과 마르코스를 믿고 소피아가 그녀의 일행을 이곳에 불러들였을 리 없었다. 분명 무언가가 더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는 모양이네요.”

소피아가 낮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씨익 웃음을 비쳤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그녀가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땅이 쿵쿵 울리며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나가 소리가 들려오는 숲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거대한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어깻죽지에 박쥐의 것 같은 검은 날개가 달려 있었고, 꼬리에는 악어의 꼬리처럼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그 해괴한 모습에 이나가 눈살을 찌푸리자 소피아가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멋지죠?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키메라예요.”

“취향 참…….”

“그리고 여기서 끝내면 심심하잖아요?”

촤아아-

이번엔 바다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 S급 던전의 주인, 수룡 아라베우스였다.

이나가 수룡을 보고 굳어 있는 사이 소피아가 눈웃음을 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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