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49)

이나는 이불을 루엔의 목까지 오도록 잘 덮어 주었다. 균일하게 내뱉는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들렸다.

이곳은 서준이 특별히 준비해 준 헌터 전문 병동의 1인실이었다. 한때 이나도 이용한 적이 있던.

다만 밖에는 루엔을 감시하기 위한 헌터들이 포진해 있었다.

소피아가 죽고 그녀의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조종용 매개체가 밖으로 빠져나와 부수긴 했지만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나가 의식을 잃은 루엔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시현이 그녀의 한쪽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괜찮을 겁니다.”

“……네.”

이나가 그를 올려다보며 살포시 웃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도하가 쳇,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요?”

“잠깐 바람 좀 쐬러.”

이나의 물음에 설렁설렁 대답한 도하가 문 앞에서 뚝 멈춰 섰다.

“……아니다. 조금 있다 가야겠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때마침 리카가 알려 준 덕이었다.

[이나야, 본부장님 왔어!]

리카의 말처럼 도하가 문을 열자 눈을 동그랗게 뜬 서준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서준은 갑자기 열린 문 탓에 놀랐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도하와 이나 쪽을 쳐다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거야 원, S급 헌터들의 감은 못 속이겠군요.”

“당연한 소리를.”

도하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도로 이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어쩐지 기분이 저조한 듯한 모습에 서준이 이나에게 속삭였다.

“혹시 청호 길드장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아까까지만 해도 마르코스를 눌렀다고 신나 했는데.”

이나도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러다 제가 말했던 마르코스가 생각나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마르코스는요?”

“사지를 구속해서 수용소 지하에 구금해 놓았습니다. ……사실 묶을 사지도 얼마 안 남았었지만요.”

서준이 쓰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도하와의 전투 과정에서 마르코스는 남은 한쪽 팔마저 잃었다. 순식간에 양팔을 잃게 된 그는 던전을 빠져나오는 내내 중얼거렸다.

“신께서 나를 이렇게 버리실 리 없어……. 분명 다시 팔을 내려 주실 거야. 분명히……!”

그는 그렇게 한참을 실성한 듯이 중얼거리다 도하의 주먹 한 방에 뻗어 버렸다.

그의 대검은 던전에 버려두고 나왔다. 피를 먹이면 소유자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불길한 물건 따위 없는 편이 나으니까.

이나가 생각에 잠긴 사이 서준이 침대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루엔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제자분의 조종은 풀린 겁니까?”

“아마도요.”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이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루엔을 보는 그녀의 얼굴이 평온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준은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전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못 물어봤었는데, 제자분이 이나 씨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군요.”

“그야 당연하죠. 이쪽과 저쪽은 시간의 흐름부터가 다르니까요. 루엔은 원래 어린아이였어요. 제가 저쪽 세계에서 죽고 15년 정도가 흘렀다고 했으니 성인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죠.”

루엔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이나의 손짓이 애틋했다. 잠시 그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 어렸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

“그러고 보니 넌 저쪽 세계에서 몇 살일 때 죽은 거야?”

도하가 호기심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이나는 손가락을 접어 가며 이제는 잊어버린 전생에서의 생애 나이를 가늠해 보았다.

“어디 보자……. 제국 건국 기념일 300주년 때 딱 서른 살이었으니…… 한 서른두 살 때쯤 죽었네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말입니까?”

시현이 조금 커진 눈으로 물었다.

이나는 피식 웃으며 당시의 일을 설명했다.

“그때도 저는 <일체화> 스킬을 쓰는 게 가능했거든요.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쓰고 또 쓰다 보니……. 뭐, 그렇게 된 거죠.”

시현이 얼굴을 굳혔다. 알지도, 지금도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저쪽 세계의 사람들에게 분노가 일어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반면 <일체화> 스킬을 알지 못하는 서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일체화> 스킬이라니, 그게 뭔가요?”

“있어요. 제 수명 깎아 먹는 스킬.”

“네에?”

이나는 서준에게도 제가 숨겨 놓았던 스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서준의 반응도 청계천 던전 안에서의 시현과 도하의 반응과 별다를 바 없었다.

이나는 위험한 상황이 아닌 한 절대 스킬을 쓰지 않을 거라고 못 박은 뒤에야 서준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하 씨는 왜 그런 얼굴이에요?”

이나가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도하에게 물었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도하가 몸을 움찔 떨더니 쭈뼛거렸다.

“그…… 있잖아.”

“네?”

“……누나라고 불러야 되나?”

도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 변했다.

이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무슨……. 됐어요.”

“그, 그렇지?”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시현과 서준에게도 이름과 반말을 틱틱 내뱉는 도하였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는 누나라고 부를 생각을 한 게 왠지 귀여워서 이나는 픽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이나의 미소는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야. 깜짝 놀랐네. 전생과 이번 생의 나이를 합치면 거의 우리 엄마급…….”

“백도하!”

“청호 길드장님!”

시현과 서준이 당황해서 그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나가 이미 들어 버린 뒤였다.

“아, 네. 뭐…… 그렇죠. 하하…….”

“……있잖아. 방금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은데…….”

“천하의 청호 길드장님께서 말실수라뇨. 사.실.을 말한 것뿐이죠. 하하.”

도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나는 그런 그를 보며 이를 까득 갈았다.

‘나중에 두고 보자고요.’

왠지 그런 말이 도하의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크흠! 잠시 진정하시고…….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서준이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나가 불만 어린 얼굴로 쳐다보자 그가 난감하다는 듯 웃더니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을 하고 싶습니다.”

***

이야기를 마치고 서준은 일이 있다며 먼저 가 버렸다. 병실에 남아 있던 세 사람도 휴식을 위해 그곳을 나왔다.

이나는 루엔이 깨어날 때까지 곁에 있고 싶었지만 그녀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시현과 도하의 말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현과 함께 병원 로비를 걷던 이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도하 씨.”

“어, 어?”

“아까 일은 잊었으니까 떨어져서 걷지 마요. 신경 쓰인다고요.”

이나의 말에 도하는 머쓱해하며 이나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이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걸었다.

[어? 이나야!]

그때 이즈가 맞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나도 마찬가지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들 모여 계셨군요.”

“……무명 길드장님.”

무명 길드장, 한주원이 싱긋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뒤에 자신의 길드원들을 대동한 채로.

이나는 한주원의 뒤에 선 그들에게 잠시 시선을 주다 그를 보며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보고 일주일 만이네요.”

“그러네요.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저야 뭐…….”

“모스크바에서 함께 귀국할 줄 알았는데 일이 있다고 먼저 가셔서 무슨 일 있나 걱정했습니다.”

걱정이 담긴 말에 이나는 머쓱해하며 웃었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한주원은 이나의 머쓱해하는 웃음에 미소로 화답했다. 여전히 그녀에게 호의적인 모습이었다.

이나는 뺨을 긁적이다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네요.”

탄성을 흘린 한주원이 이나의 옆에 서 있는 도하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청호 길드장께 볼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

도하가 눈을 치켜뜨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한주원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호 길드장 백도하 씨.”

한주원이 도하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도하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그가 도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수사관으로서 동작역 A급 던전 몰살 사건의 참고인으로 백도하 씨께 출석을 요구합니다.”

“뭐? 무슨 헛소리야?”

흥분한 도하가 큰 소리를 내자 병원 로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뭐지? 무슨 일이야?”

“3대 길드의 길드장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로 그들을 찍기까지 했다.

이나는 그들을 흘긋 보다가 한주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하 씨가 왜 그런 사건의 참고인으로 가요?”

“그야 청호 길드원이 연루되어 있으니까요.”

“네?”

이나가 되물었지만 한주원은 사나운 얼굴의 도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청호 길드원이 몰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구속되어 있습니다.”

“우리 애가?”

“자세한 것은 가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참고인 출석에 응하시겠습니까?”

도하는 잠시 갈등하는 듯했지만 결국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우리 애들 일인데.”

“좋습니다. 그럼 가시죠.”

도하는 앞장서는 한주원을 따라가다가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는 가서 쉬어. 나만 가면 되니까.”

이나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도하는 그대로 가 버렸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시현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요.”

이나가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당연히 따라가야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