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149)

“아니, 그러니까!”

쾅!

도하가 책상을 쾅 내려쳤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는 그의 길드원이 몸을 흠칫 떨었다.

반면 그의 맞은편에 앉은 취조관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엄숙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에 도하가 답답해서 외쳤다.

“우리 애가 그랬을 리 없다니까? 함께 던전에 들어간 헌터들을 몰살이라니.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잖아!”

“동기는 없어도, 현재로서 유일한 용의자인 것은 변함없습니다.”

취조관이 서류 몇 장을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도하가 그것을 홱 가로채서 읽더니 눈살을 찡그렸다.

그를 지그시 보며 취조관이 말을 이었다.

“강일우 헌터의 진술과 사건 현장의 상황이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일우 헌터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취조관의 말이 이어질수록 문제의 청호 길드원, 강일우의 안색은 희게 질려만 갔다.

도하가 그런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란 말이야!”

“저, 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강일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하듯이 말했다.

“공략대와 공략을 마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강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요! 그 몬스터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우고, 저와 타 길드의 헌터만 남았는데…….”

“그런데?”

“그, 그 헌터가 자기가 어떻게든 막아 볼 테니 나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게이트석을 줬어요! 그래서 그걸 이용해 밖으로 나왔는데…… 그랬는데…….”

도하가 얼굴을 구겼다. 취조관이 말하는 바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석은 게이트가 닫힌 던전에서 무조건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아이템으로, 무척 낮은 확률로 보상으로 주어졌다.

그래서 보통 새 S급 던전에 탐사대를 보낼 때나 헌터들이 들고 들어가곤 했다.

A급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간 헌터가 쥐고 있을 리는 없는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그 헌터가 어쩌다 아이템을 얻어 몰래 숨기고 있었다고 해도, 강일우의 진술은 말이 안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헌터들이 달려갔을 때 던전은 이미 공략이 완료된 상태였으니까.

강일우의 말대로라면 진작 공략에 실패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거나, 그가 말한 타 길드의 헌터가 공략에 성공해서 빠져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헌터는 발견되지 않았다.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강일우의 진술에는 허점이 많았다.

“이제 얌전히 협조할 생각이 드십니까?”

취조관의 물음에 도하가 그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도로 앉았다.

이나와 시현은 취조실과 커다란 창으로 연결된 방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안 좋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이나가 눈살을 찡그리며 시현의 말에 동조했다. 그녀의 시선은 도하의 옆에 앉은 강일우에게 닿아 있었다.

그는 지난번 청호 길드의 훈련장에서 만났던 헌터였다. 그 쾌활했던 사람이 저렇게 주눅 든 모습을 보니 조금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를 열심히 변호하는 도하도.

이나가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고 있는데 마침 이나가 있는 방의 문이 열리며 김 비서가 들어왔다.

이나는 다크서클이 깊게 물들어 있는 김 비서를 보며 물었다.

“김 비서님,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하아. 그게…….”

김 비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길드장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저희 길드와 타 중소 길드, 그러니까 진사 길드가 협업해서 동작역 A급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었습니다.”

이나와 시현은 추임새 없이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자 김 비서가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강일우 헌터를 포함해 A급 헌터가 양 길드에 한 명씩 있기도 하고, 무사히 공략만 하고 나오면 되는 일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던전은 정말로 공략이 완료된 상태였어요?”

잠자코 있던 이나가 묻자 김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던전 브레이크 반응도 없었고, 강일우 헌터의 도움 요청을 받은 다른 헌터들이 도착했을 땐 그랬다고 합니다.”

“강일우 헌터가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은요?”

이나가 냉정하게 물었다.

그녀에게 강일우는 그저 잘 알지 못하는 도하의 길드원일 뿐이었다. 그가 도하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김 비서도 같은 생각인지 표정을 굳히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럴 확률은 적습니다. 강일우 헌터는 진사 길드의 헌터들과 어떠한 접점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붙임성이 좋아 청호 길드 내에서도 모두와 잘 지냈고요.”

즉, 강일우가 단순한 원한으로 타 길드의 길드원들은 물론 자신의 길드의 길드원들까지 몰살했을 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던전에서 엄청 좋은 아이템이 나와 그것을 독차지하기 위해 저질렀을 수도 있는 일.

실제로 그런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데.’

강일우는 무언가에 겁먹은 사람처럼 내내 얼굴이 희게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 그것이 연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헌터들에게 도움을 청해 다시 던전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단지 아이템이 목적이었다면 보고만 하고 말지 굳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의심을 살 만한 짓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석연치 않은 기분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이나는 때마침 들어온 한주원에게 부탁했다.

“무명 길드장님, A급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들 명단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한주원은 생각보다 순순히 그녀에게 명단을 내밀었다. 마치 준비하고 있던 사람처럼.

이나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냉큼 명단을 받아 훑은 뒤 다시 그에게 물었다.

“강일우 헌터가 말했던, 마지막까지 던전에 남아 있던 헌터가 누구인가요?”

“이 명단에는 없습니다.”

“없다고요?”

“네.”

한주원이 창 너머의 강일우를 지그시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강일우 헌터를 의심하는 겁니다. 강일우 헌터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공략 명단에 없으니까요.”

“없을 리가 없어요!”

마침 취조실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강일우가 벌떡 일어나 취조관을 보며 외쳤다.

“제가 분명히 그 사람을 보고, 대화도 했다고요! 최현호라는 이름이고, 쌍검술을 사용하는 남자였어요. 갈색 머리에 유하게 생겼고 저보다 키가 좀 더 작은……!”

“그러니까, 진사 길드에서도 그런 헌터는 모른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 그럴 리가…….”

강일우가 멍한 얼굴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옆에 있는 도하가 이를 까득 갈았다.

상황이 불리하다는 걸 그도 느낀 것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나가 걸음을 옮겼다. 시현이 그녀의 뒤에 대고 물었다.

“이나 씨? 어디 가십니까?”

“진사 길드요.”

“네?”

이나가 뒤를 홱 돌아보며 시현에게 말했다.

“도하 씨는 참고인으로 여기 있어야 하니까, 우리가 대신 가 보죠.”

“하지만…….”

“억울하다잖아요. 끝까지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럼 확인을 한 번 더 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시현이 말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가겠습니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이나가 씩 웃자 시현도 따라서 웃었다. 흡사 악동들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번엔 한주원이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그에 이나가 고개를 치켜들고 살짝 날카로워진 눈으로 말했다.

“막으셔도 소용없어요.”

“사건 담당 수사관이 아닌 한 진사 길드로 가셔도 그쪽에서 협조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대로 보고만 있으라고요?”

이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젓더니 빙긋 웃었다.

“저를 이용하시죠.”

“네?”

“저는 이 사건을 맡은 수사관이니까요. 데려가시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이나 씨.”

시현이 그녀를 불렀다.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한주원과 시선을 마주하던 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같이 가시죠.”

***

이나는 양옆에 시현과 한주원을 끼고 진사 길드로 향했다.

입구에 서 있는 헌터에게 방문한 목적을 알리자 그는 곧바로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여기도 되게 어수선하네요.”

동작역 A급 던전을 공략하러 갔던 길드원들이 몰살되는 사건이 벌어져서 그런지 이곳 분위기도 침잠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나가 씁쓸한 마음을 담아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시현이 그들 중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길드장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혹시 어떻게 오셨는지……?”

“동작역 A급 던전 사건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는 시현 뒤쪽에 서 있는 한주원을 힐끗 보더니 길드장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나섰다. 확실히 한주원을 데려온 보람이 있었다.

순조롭게 길드장실로 온 세 사람은 길드원이 문에 노크하기를 기다렸다.

똑, 똑.

“길드장님, 손님이 오셨…….”

“바쁘니까 다음에 오라 그래.”

그런데 길드원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안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초조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나는 시현과 눈을 마주했다. 그도 이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마침 한주원이 나서서 문에 대고 말했다.

“진사 길드장님, 동작역 A급 던전 사건 수사를 위해 나왔습니다.”

그러자 길드장실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들추는 듯한 소리도.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진사 길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를 위해 나오셨다고요?”

“네.”

한주원이 짧게 대답했다. 진사 길드장의 시선이 뒤에 서 있는 이나와 시현에게도 닿았다.

두 사람을 본 진사 길드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조 길드장과 유이나 헌터는 왜…….”

“이 사건을 같이 수사하고 있습니다.”

한주원의 입에서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하지만 옳은 선택이었다. 다른 대답을 했다간 진사 길드장이 두 사람은 들여보내지 않을지도 몰랐으니까.

의심스러워하는 시선이 시현과 이나에게 닿았지만 그는 결국 세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일단 들어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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