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장실 안으로 들어온 이나와 시현은 재빨리 주변부터 훑었다.
문이 열리기 전 진사 길드장이 왜 그리 바쁘게 움직였는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문밖에서 들렸던 부산스러운 소리와는 달리 길드장실은 깔끔했다.
이나는 애써 의아함을 감추고 진사 길드장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세 사람 다 차는 거부하자 그도 자리에 앉더니 본론부터 꺼냈다.
“또 찾아오셔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달라질 게 없습니다.”
진사 길드장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한주원을 바라보았다.
“강일우라고 했던가요. 그 망할 헌터가 저희 길드원들을 몰살시켰고, 그로 인해 저희 길드가 입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 헌터를 얼른 구속시키고 청호 길드에서 저희에게 일말의 보상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나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애써 참아 냈다.
그녀의 입장에선 도하가 안타까웠지만 진사 길드장의 입장도 이해는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나와 시현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한주원이 나서서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확인차 당시에 있었던 일이나 아는 것을 다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 참…….”
진사 길드장은 조금 귀찮아하는 기색이었지만 한주원의 요청을 거부하진 못했다.
“청호 길드와 협업하여 동작역 A급 던전을 공략하기로 결정 난 뒤, 저는 그에 맞는 길드원들을 차출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 없었어요. 그런데 돌아온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게 끝입니다. 더 이상은 저도 몰라요.”
진사 길드장의 표정이 침울해지자 이나 일행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나에게는 그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이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강일우 헌터가 말한 최현호라는 사람은 모르세요? 갈색 머리에 쌍검술을 사용하는 남자라던데요.”
이나의 물음에 진사 길드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더니 그가 대뜸 외쳤다.
“전에도 무명 길드장님께 말씀드렸지만 그런 사람은 모릅니다!”
강한 부정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나는 그가 의심스러웠다.
이나의 눈이 가늘어지자 진사 길드장은 초조해하며 몸을 일으키더니 이나 일행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만 돌아가 주시죠. 안 그래도 죽은 길드원들의 일로 바쁜데 그만 심란하게 하시고요.”
이나 일행은 머뭇거리다 결국 몸을 일으켰다.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데 더 이상 그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현과 한주원이 먼저 길드장실을 나서고, 이나도 그 뒤를 따를 때였다.
[어? 이게 뭐지?]
이나와 떨어져 길드장실 안을 누비던 리카가 책장에 마구잡이로 꽂혀 있는 무언가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는 괜히 사고 치지 말고 얼른 오라고 리카에게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리카를 발견한 진사 길드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그건 안 돼!”
진사 길드장이 헐레벌떡 그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나의 정령들이 사고뭉치라는 점이었다.
진사 길드장이 다가오자 리카가 술래를 피하듯 빠르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반동으로 바람이 일어나자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던 종이도 팔랑 날아올랐다.
진사 길드장이 그것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종이는 정령들의 장난감이 되어 버린 뒤였다.
[뭐야, 뭐야. 풍선 놀이야?]
[떨어뜨리는 정령이 지는 거야!]
“당장 내려놓지 못해!”
진사 길드장이 화를 내며 종이를 향해 폴짝폴짝 뛰었다.
하지만 계약자도 아닌 자의 말을 들을 정령들이 아니었다.
결국 이나가 나서서 그 종이를 잡아챘다.
“어휴. 이 사고뭉치들아.”
[데헷?]
정령들은 그제야 풍선 놀이(?)를 그만두었다.
이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것을 진사 길드장에게 건네려 했다.
그런데 어째 그녀를 보는 그의 얼굴이 희게 질려 있었다.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하는데, 옆에 있던 시현이 종이의 내용을 훑고는 이나를 불렀다.
“이나 씨.”
이나가 고개를 돌리자 시현이 말없이 종이를 가리켰다. 그제야 이나도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오호라.”
이나의 감탄사에 진사 길드장이 몸을 움찔 떨었다.
이나는 싸해진 눈빛으로 그를 향해 종이를 팔랑거렸다.
“이게 뭐죠, 진사 길드장님?”
“그, 그건…… 그러니까…….”
“분명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종이는 동작역 던전 공략 후 보상을 누군가와 일정 비율로 나누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그리고 계약 대상자 이름은 최현호.
강일우가 말했던 그 헌터였다.
“자, 이제 설명해 보시죠.”
이나가 팔짱을 낀 채 얼굴이 희게 질린 진사 길드장을 노려보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
진사 길드의 동작역 A급 던전 공략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청호 길드라는 든든한 협업 동료, 믿음직한 길드원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길드원 한 명이 누군가를 데리고 오기 전까진.
“길드장님, 부탁 좀 드릴게요.”
길드원의 부탁에 진사 길드장은 곤란해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미 협회에 명단도 제출했고, 우리 길드도 아닌 헌터를 어떻게 같이 들여보내.”
“우리 길드원인 척하고 몰래 들여보내면 되잖아요. 청호 길드도 있으니 공략이 어렵지도 않을 거고. 딱 한 번만요. 네? 진짜 어려운 친구라서 그래요.”
진사 길드장은 갈등하는 눈으로 제 길드원을 보다가 그의 친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제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정수리가 보였다.
“부탁드립니다.”
“……하아.”
진사 길드장은 결국 정에 져 버렸다.
“이번 한 번만이다.”
“야호! 감사합니다!”
길드원은 폴짝 뛰며 제 친구를 부둥켜안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사 길드장도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머저리같이. 원칙을 따랐어야 했는데.’
사건이 일어나고 길드원들이 몰살되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청호 길드의 강일우는 진사 길드장이 들여보냈던 길드원의 친구를 찾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던전 공략 명단에 없는 데다 현재 행방불명 상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감지한 진사 길드장은 서둘러 최현호에 대한 기록과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그와의 계약서였다.
헌터계에서 쓰는 계약서에는 던전 부산물로 만든 특별한 종이를 썼다. 웬만해서는 젖지도, 찢기지도, 타지도 않는 재질이었다.
그래서 계약서를 없애 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이나 일행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던 이나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아니, 다그쳤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지금 그쪽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요?”
쾅!
이나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세게 내려치자 진사 길드장이 몸을 움찔 떨었다.
“이건 명단을 위조한 거나 다름없다고요. 게다가 증거 훼손에 거짓 진술까지. 그쪽 때문에 지금 애먼 사람이 붙잡혀 있는 걸 수도 있어요!”
“하, 하지만 나도 억울하다고요! 좋은 마음으로 해 준 것뿐인데 상황이 이렇게 돼 버리니까……!”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요?”
할 말이 없는 듯 진사 길드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씩씩거리던 이나는 시현이 말려 겨우 진정했다.
시현이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작게 말했다.
“그래도 이걸로 강일우 헌터의 진술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뇨. 아직 이상한 점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한주원이 끼어들자 이나와 시현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던전에서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 공략대를 몰살했다는 점 말입니다.”
“마, 맞습니다! 그 던전은 저희 길드원들과 청호 길드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었어요! 그 강일우 헌터만 살아남았다는 것도 이상한……!”
“쓰읍! 그쪽은 조용히 해요.”
이나가 경고하자 진사 길드장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어 한주원의 말을 곱씹던 이나가 말했다.
“확실히, 그것도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하지만 어떻게 말입니까? 던전은 공략이 완료되어 리셋되었습니다. 몬스터나 공략대원들의 시신들도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시현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나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주원을 흘긋 보았다.
“무명 길드장님께서 수사를 담당하고 계시니, 길드장님이 보는 앞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면 증거는 충분하겠죠?”
“그렇죠?”
한주원이 무슨 수가 있냐는 듯한 눈빛으로 이나를 쳐다보았다. 시현도 같은 표정이었다.
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일단 자신의 생각을 숨겼다.
“확실하진 않지만, 짐작 가는 게 있거든요. 그걸 확신으로 바꾸려면 그 사건이 일어난 A급 던전으로 가야 해요.”
“즉, 같이 던전에 가 달라는 말씀이군요.”
한주원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나는 찝찝하긴 했지만 긍정했다.
“네. 부탁할게요.”
“무고한 이의 죄를 덜기 위함인데 당연히 같이 가야죠. 그 전에.”
한주원의 시선이 진사 길드장에게 닿았다. 그의 눈길을 받은 진사 길드장이 숨을 훅 들이켰다.
한주원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 여기 일부터 처리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현과 뒤로 물러섰다.
한주원과 진사 길드장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던 시현이 이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나 씨, 짐작이 간다는 게 뭡니까?”
“하드 모드.”
“네?”
이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에게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하드 모드란 게 있어요. 던전의 등급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런 게 있다고요?”
시현의 얼굴이 굳었다. 이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녀가 당산역 B급 던전에서 겪었던 하드 모드. 그걸 강일우와 탐사대가 건드렸다면 강일우의 진술도 말이 되었다.
그러니.
“우린 지금부터 그 던전의 하드 모드를 열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