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49)

문제의 그 동작역 A급 던전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리셋되어 버려서 사건에 관해 건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주원을 통해 공략권은 미리 받아 두었다. 그래서 이나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빛이 파앗 흩뿌려지며 몸이 던전 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은 주변에 검은색 바위가 가득한 화산암 지대였다.

멀리 우뚝 솟아 있는 화산을 보며 이나가 중얼거렸다.

“설마 터지진 않겠지……?”

“이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화산이 터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녀를 따라 들어온 시현이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뒤이어 한주원도 게이트를 타고 나타났다.

잠시 후 빛이 사그라들며 게이트가 닫혀 버렸다. 이제 던전을 공략해야만 이곳을 나갈 수 있었다.

이나는 그 점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던전을 공략할 자신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문제는 하드 모드를 발생시킬 매개체가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꽤 까다로운 곳에 있을 텐데.’

당산역 B급 던전인 ‘설원 속에서 태어난 괴물’만 해도 얼음으로 된 벽을 통째로 녹여야만 하드 모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곳도 분명 비슷한 방식일 터.

‘설마 저 화산을 올라야 하나?’

이나가 찌푸린 눈으로 멀리 떨어진 화산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에게 날아오는 돌을 시현이 검으로 쳐 냈다.

“몬스터입니다.”

고개를 돌리자 화산암을 등껍질로 쓰고 있는 게 모습의 몬스터들이 몰려와 있었다.

세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 주변에 가득하던 화산암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전부 몬스터인 모양이었다.

이나는 크고 날카로운 몬스터의 집게를 보며 말했다.

“일단 여기 몬스터부터 처리해야겠네요.”

이나는 땅을 뾰족하게 일으켜 그대로 몬스터들을 꿰뚫었다. B급의 몬스터들은 이나의 공격을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꼬치가 되어 축 늘어졌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시현과 한주원도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나는 특히 한주원의 전투 방식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어둠을 다루는 마법사 겸 검사답게 자신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발밑 그림자가 일어나 그대로 몬스터를 꿰뚫었다. 한주원은 그에 그치지 않고 검도 사용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속도만 보면 검기를 사용하는 시현보다도 훨씬 빨랐다.

이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이내 이즈의 능력을 이용해 그들이 있는 곳에 비를 내렸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시현과 한주원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나 씨?”

“몬스터들이 집처럼 사용하는 바위 때문에 부수기 귀찮잖아요.”

이나가 가볍게 말하며 윈티를 쳐다보았다.

윈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몬스터들의 바위 집 속에 스며든 빗물을 그대로 얼려 버렸다.

쩌적- 툭-

“키잇?”

물이 얼음으로 변하며 팽창함에 따라 바위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순식간에 제집을 잃어 방어 수단이 사라진 게 몬스터들을 보며 이나가 씨익 웃었다.

“편하게 가자고요, 편하게.”

“확실히 상대하기 편하군요.”

한주원이 검으로 몬스터를 푹 찌르며 중얼거렸다. 평범한 찌르기임에도 몬스터는 그대로 급소를 뚫려 숨을 거두었다.

시현도 마찬가지였다. 바위 집을 없애기 위해 검에 검기를 씌울 필요가 없어지니 마력도 절약되고 전투가 수월했다.

다가올 하드 모드를 위해서라도 힘은 절약해 두는 편이 좋았다.

몬스터의 수가 어느 정도 줄어들자 이나는 잠시 전투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슬슬 찾아볼까.’

하드 모드의 입구, 혹은 매개체.

그녀의 직감이 이 필드 어딘가에 그것이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리카.”

[응?]

이나가 부르자 리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나는 손가락으로 화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화산 분출구에 가서 특이하거나 이상한 게 없는지 살펴보고 와. 그 주변도 살펴보고.”

[알았어!]

명령을 받은 리카가 화산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리카가 화산에 갔다 오는 사이 이나는 이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파인만 남고 너희도 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 봐.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 보고하러 오고.”

[알았어!]

[네……!]

[맡겨 두시게!]

다른 정령들도 흩어졌다. 방어 수단을 위해 파인만 그녀의 곁에 남게 되었다.

이나는 파인을 어깨 위에 얹은 채 수상해 보이는 곳을 들추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 틈을 살펴보거나, 땅 밑을 파 보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이나 씨, 뭔가 찾으셨습니까?”

때마침 사냥을 끝낸 시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짧게 대답했다.

“전혀요.”

“이나 씨가 겪었다는 그 하드 모드는 어떻게 열린 겁니까?”

“얼음으로 된 벽을 통째로 녹였더니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어요. 그곳에 있던 아이템을 건드렸더니 던전 등급에 맞지 않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면서 하드 모드가 시작되었고요.”

“그럼 꽤 찾기 까다로운 곳에 있겠군요.”

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 발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주원이 다가와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그 하드 모드라는 것을 찾으면 되는 건가요?”

어차피 알게 될 내용인 만큼 한주원에게도 미리 하드 모드의 존재에 대해 일러둔 상태였다.

이나가 긍정하자 한주원은 흐음, 소리를 내며 턱을 쓸어내렸다.

“……수상한 곳이라면 한 군데 알긴 하는데 말이죠.”

“그런 곳이 있습니까?”

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많은 던전을 공략해 온 만큼 시현은 그들이 들어와 있는 이 던전도 몇 번 공략을 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현실의 사건에 몰두하느라 시현보다 던전 공략 횟수가 적을 한주원이건만, 그는 태연하게 그들을 자신이 말한 곳으로 이끌었다.

“이곳입니다.”

“……여기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나가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녀가 말한 대로 그곳은 휑했다. 돌이나 바위가 가득한 다른 곳들에 비하면 황무지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한주원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수상하다는 겁니다. 왜 이곳만 이렇게 휑할까요?”

“그건…….”

그렇게 말하니 또 수상한 것 같기도.

이나는 일단 이곳도 살펴보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익숙한 존재들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너희 거기서 뭐 해?”

[아, 이나야!]

뿔뿔이 흩어졌던 정령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것도 한주원이 안내한 곳에.

이곳에 뭔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이나는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뽀르르 날아온 정령들이 땅을 가리켰다.

[네움이 여기 뭔가 있대!]

“뭐가?”

이나가 네움을 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네움이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이 밑.]

짧은 대답이었지만 이나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이 밑에 뭐가 있다고?”

이나의 물음에 네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다가온 시현이 이나가 네움에게 하는 말을 듣고는 물었다.

“그럼 네움의 힘으로 땅 밑에 있는 걸 끄집어낼 수도 있는 겁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네움, 가능해?”

이나는 당연히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확신을 담아 물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네움이 고개를 저으며 머뭇거리다 말했다.

[……마력이 깃든 땅이야.]

그 말에 이나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네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시현이 그녀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말입니까?”

“정령들이라고 모든 자연을 자기 뜻대로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마력이 깃든 자연은 정령들의 뜻을 벗어난 거라서 함부로 다룰 수 없어요.”

“다시 말해, 네움의 힘으로도 땅 밑에 있는 걸 끄집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군요.”

이나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땅 밑에 있는 걸 끄집어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설마 땅이라도 파야 하나.’

거기까지 생각하던 이나는 그 방법은 아닐 거라고 단정했다.

던전을 공략하러 온 공략대가 느긋하게 땅이나 파고 있었을 리는 없으니까.

그것도 있는지도 모를 하드 모드를 위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이렇게 꼭꼭 숨겨져 있는 하드 모드를 대체 누가 찾아내서 어떻게 열리게 한 걸까?

게다가 다른 이들이 달려갔을 땐 공략이 완료된 상태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던전 안에 홀로 남아 있던 최현호가 하드 모드 던전을 공략했을 터였다.

그럼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리고 왜 사라진 걸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최현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모습을 감추면 강일우가 곤란해지리라는 것을 짐작은 했을 터.

‘마치 강일우 헌터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것처럼…….’

이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따로 다른 곳을 살피던 한주원이 이나와 시현을 불렀다.

“두 분, 잠시만 이쪽으로 와 주세요!”

이나는 의아해하며 시현과 시선을 맞춘 뒤 순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한주원이 보고 있던 것을 가리켰다.

“이거, 꼭 무언가를 끼워 넣는 홈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한주원이 가리킨 자리엔 그의 말대로 인위적인 홈이 파여 있었다.

그것을 본 이나가 한주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발견한 거예요?”

“이 휑한 곳에 바위 하나가 덜렁 놓여 있길래 들춰 봤더니 이런 게 있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한주원의 말투에는 머쓱함이 깔려 있었다.

그를 빤히 보던 이나가 다시 땅의 홈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뭔가를 올려놓는 것처럼 보이는데…….”

“키이이잇!”

그때 땅이 쿵, 울림과 동시에 울음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아까 해치운 몬스터들의 어미뻘처럼 보이는 거대한 몬스터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나는 몬스터의 외관을 훑다 어딘가에 시선을 집중했다.

“저거……!”

몬스터가 짊어지고 있는 작은 건물 크기의 바위 한가운데에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정령들 때문에 한때 엄청 모았던 것인지라 이나는 그것이 마정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홈의 모양과 딱 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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