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엔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놀이동산은 아름답고 로맨틱한 곳은 맞았다. 하나의 왕국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 놓은 것이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저, 저런 걸 타면서 즐긴다고요?”
루엔은 경악한 얼굴로 놀이 기구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이 타고 온 지하철보다 더 빠른 차 모양의 놀이 기구, 그리고 잔상이 보일 것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컵 모양의 놀이 기구까지!
‘이곳 사람들은 고통을 즐기나?’
루엔은 멍한 얼굴로 메가스윙이라는 놀이 기구를 응시했다. 회전과 함께 높이 날아오르는 놀이 기구를 보며 루엔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반면 이나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놀이동산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네요. 그땐 놀이동산이 엄청 커 보였는데 지금 와 보니 생각보다 작네.”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놀기엔 좋을 것 같습니다.”
시현이 이나의 말을 받아 말했다. 그러면서 이나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그들을 힐끗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현 씨?”
“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얼굴이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시현이 머쓱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다른 곳에선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던 그가 이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놀이동산에 온 것이 퍽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이나는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그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이나 씨?”
“사람들의 시선이 정 신경 쓰이면.”
이나는 진열대의 상품들을 가만히 훑다가 그중 하나를 집어 시현의 얼굴에 씌웠다.
“이거라도 쓰고 있어요.”
시현은 거대한 별 모양의 보라색 선글라스를 쓴 채 멍하니 이나를 응시했다.
그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워서 이나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
“잘 어울리는데요?”
“……그렇습니까.”
“어? 스승님, 저도요! 전 이거요!”
놀이 기구의 공포에 질려 있느라 뒤늦게 그들을 발견한 루엔이 그들을 따라와서 다른 상품을 집었다.
그가 집은 것은 짙은 남색에 별 패턴이 그려진 마법사 모자였다.
그렇게 되자 이나만 안 고를 수도 없었다. 그녀는 루엔의 추천에 따라 검은색의 고양이 귀 머리띠를 착용했다.
그렇게 가게를 나오자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가끔 날아오는 시선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대개 시현이 아닌 이나를 향하는 것이었다.
이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천조의 길드장과 달리 그녀는 단독으로 활동하는 헌터로서 딱히 관리해야 할 이미지랄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헌터는 뭐 놀이동산 오면 안 되나.’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이나는 루엔을 쳐다보았다.
“뭐 타 보고 싶은 거 있어?”
“타 보고 싶은 거라…….”
루엔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아직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않고 있었다.
놀이동산이란 곳이 궁금했던 것도 있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이나와 시현을 이어 주는 것!
그러려면 두 사람이 같이 앉을 수 있고 엄청 무서운 놀이 기구를 타야 했다.
무서운 놀이 기구일수록 두 사람의 스킨십이 진해질 테니까.
“시현 씨, 무서워요.”
“괜찮습니다. 제가 있잖습니까.”
……하는 상상이 루엔의 머릿속에 잠시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러려면 나도 같이 타야 하겠지만,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루엔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장한 표정을 짓던 그의 눈동자에 한 놀이 기구가 비쳤다.
“그럼 먼저 저거요!”
이나와 시현은 루엔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 끝에 있는 것은 둘이 나란히 앉을 수 있고 놀이동산의 꽃이기도 한.
“꺄아아아악!”
롤러코스터였다.
***
평일임에도 롤러코스터는 대기 줄이 길어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약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그들은 드디어 놀이 기구를 탈 수 있었다.
“두 분이 앉으세요! 저는 혼자 타도 돼요.”
당연하게도 루엔은 이나와 시현을 같이 앉혔다. 그리고 그는 뒤에서 두 사람이 꽁냥거리는 모습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시현 님이 스승님의 손을 잡아 주시겠지?’
루엔은 두 사람 몰래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안전벨트를 체크하러 온 직원이 흠칫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출발할 때가 되었다.
‘자, 그럼 어디 구경을…… 우왁!’
갑자기 뒤로 쏠리는 몸 탓에 루엔은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밖에서 봤을 때도 빠르다고 느끼긴 했지만 설마 처음부터 이렇게 빠르게 출발할 줄은 몰랐다.
루엔은 당황한 마음을 삼키고 어떻게든 바람 속에서 눈을 뜨려 노력했다.
하지만.
“끼아아악!”
그는 롤러코스터의 공포에 삼켜져 비명만 질러 댈 뿐이었다.
결국 로맨스의 ‘로’ 자도 보지 못한 채 롤러코스터 체험은 끝이 났다.
비틀거리는 채로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면서 루엔은 생각했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얼굴이 희게 질린 루엔을 보며 이나가 걱정 어린 얼굴로 다가왔다.
“루엔, 괜찮아?”
“네? 아, 네! 괜찮아요!”
루엔은 부러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무서워하면 이나가 그냥 돌아가자고 할까 봐 걱정된 탓이었다.
‘안 되겠다. 다음 놀이 기구!’
루엔은 그 뒤로도 무서운 놀이 기구를 선택했다.
먼저 바이킹.
“내, 내장이 올라온다! 우욱……!”
호기롭게 이나와 시현 둘을 맞은편에 둔 채 혼자 다른 자리에 올라탔지만 멀미 때문에 실패.
그리고 메가스윙.
“끄아아악! 시야가 돌아간다!”
역시나 비명을 지르기 바빠서 실패.
심지어는.
“3…… 2…… 1……. 흐아아악!”
웬만한 빌딩 높이에서 훅 떨어지는 메가드롭에선 짧게 기절까지 했다.
그렇게 놀이동산의 인기 있는 놀이 기구는 모두 정복했을 때쯤.
“으으…….”
루엔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벤치에 늘어지게 되었다.
이나가 식은땀에 젖은 루엔의 앞머리를 넘겨 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네에……. 으으…….”
괜찮다고 말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이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루엔을 위한 음료를 사러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시현이 돌아왔다.
“일어나서 이것 좀 마시세요. 시원한 게 들어가면 조금 나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루엔은 비척비척 일어나 시현이 건네는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단 음료를 한 모금 쭈욱 들이켜자 루엔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기운도 같이 돌아왔는지 루엔의 시선이 그제야 이나와 시현에게 닿았다.
“근데 두 분은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세요?”
“음. 그야 우린 헌터로 활동하면서 더한 상황도 많이 겪었으니까.”
이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리카의 능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싸우던 이나였다. 새삼스럽게 놀이 기구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시현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근접계 헌터인 그에게는 매 순간이 위험한 순간이었다. 거대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몸에 올라타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담력은 일개 놀이 기구 따위에 질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루엔은 입을 헤 벌리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얌전한 것만 타는 건데…….”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엔은 고개를 젓고는 시현이 사 준 음료수를 쭈욱 마셨다. 그래도 이렇게 쉬고 있으니 기운이 많이 돌아온 상태였다.
‘그래도 아쉬운걸.’
이나와 시현은 아무래도 데이트보다는 루엔의 서울 구경을 목적으로 잡은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로맨틱한 분위기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어디 뭐가 없을까…….’
루엔은 주변을 주욱 둘러보았다.
그때 으스스한 분위기의 건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루엔은 괜히 섬뜩해져서 이나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 폐가 같은 곳은 뭐예요?”
“아, 저거?”
이나는 루엔이 가리킨 곳을 보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귀신의 집.”
“네에? 설마 진짜 귀신이……!”
“그런 거 아니야. 직원들이 귀신으로 분장해서 들어오는 사람들 놀래는 거야. 일종의 체험이랄까.”
루엔은 안도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저곳이라면……?’
메가드롭처럼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진짜 귀신도 아니니 그가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 두 사람만 두고 슬쩍 나온다면?
“루엔?”
“스승님!”
루엔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가시죠, 귀신의 집!”
***
호기롭게 귀신의 집에 들어가자고 외친 루엔은 막상 안으로 들어오자 이나의 뒤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깨를 타고 전해지는 루엔의 공포심에 이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사실 이나는 루엔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 자꾸 자신을 시현과 붙여 놓으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루엔의 마음이 기특했지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시현이 앞서가는 사이 이나는 뒤에 있는 루엔을 힐끗 보았다.
“있잖아, 루엔.”
“스, 스승님! 저 앞에……!”
“응?”
루엔이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맞은편을 가리키자 이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 놓인 관이 마치 뱀파이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루엔은 그곳에서 뭔가 튀어나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지 이나의 뒤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에 이나가 픽 웃었다.
“제가 먼저 지나가 보겠습니다.”
시현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그곳을 지나갔다.
뭔가 튀어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가 앞에서 알짱거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장식인가 보네요. 아무것도 안 나오나 봐, 루엔.”
“다, 다행이에요.”
이나와 루엔도 그곳을 지나갔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루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다음 방으로…….”
툭, 툭.
그때 루엔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해골로 변장한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마주쳤다.
“까꿍.”
“……흐아아악!”
“루엔!”
루엔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이나가 붙잡을 수도 없는 빠른 속도로.
“…….”
“…….”
이나와 시현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쩌다 보니 루엔이 원하는 대로 되어 버린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