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는 허허 웃으며 허망하게 말했다.
“……루엔이 저렇게 빠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간혹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들었습니다.”
나름 장난을 던지기 위해 한 말 같았지만 시현이 말하니 그저 진지하게만 들렸다.
이나는 삐질 웃고는 루엔이 달려간 방향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루엔이 기다릴 테니 저희도 어서 나갈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둘러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의외의 말에 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잇는 시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입구에서 직원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제한 시간 안에 이곳에 숨겨진 보물인 손거울을 찾아 나온다면 상품을 준다고.”
“그렇긴 한데…….”
“이나 씨도 겁이 없으시니, 천천히 둘러보면서 가면 상품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루엔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미안, 루엔. 네 본래 계획 좀 이용할게.’
못난 스승을 용서하렴.
물론 루엔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했을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이나는 시현과 함께 걸으며 손거울을 찾는 척 그를 힐끗 살폈다.
여전히 보라색 선글라스를 쓴 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퍽 진지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 더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풋……!”
“이나 씨?”
“아, 죄송해요. 지금 시현 씨 모습이 정말 유쾌해서요.”
“……제가 말입니까?”
“이것 때문에요.”
이나는 시현이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가리키며 킥킥 웃었다.
“이 어두운 곳에서까지 쓰고 있으면 안 불편해요?”
“안 불편합니다. 이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움직여야 했던 일도 많았던 터라. 그리고 이건 얼굴을 숨기려고 일부러 쓴 것이지 않습니까.”
시현이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나는 결국 참다못해 하하 웃으며 시현의 팔을 두드렸다.
“미안해요. 평범한 걸 골라 줬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평범한 게 없었으니까요.”
“그것도 그러네요. 여긴 놀이동산이니까요. 그래도 저도 골랐다고요.”
이나는 시현의 앞에 서서 제가 쓴 고양이 귀 머리띠를 가리켰다.
“이거 봐요. 저도 이상하죠?”
“그건 이상하다기보다…….”
귀여운데.
시현은 뒷말을 꾹 삼키고 현재 이나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마음 같아서는 사진이라도 찍어서 핸드폰에 저장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간 이나가 기겁할 테니 말이다.
시현이 갑자기 아무 말 않자 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귀신의 집에서 내뿜는 이 핑크빛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 이나 씨.”
이나의 뒤에 숨어 있던 귀신이 그녀의 등 뒤로 가까이 다가왔다.
시현이 등 뒤를 가리키자 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피부를 하얗게 칠한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내 다리…… 내 다리 내놔…….”
그가 목소리를 착 깔고 음산하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겁을 먹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눈이 마주친 이나는 난감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 안녕하세요.”
누가 봐도 무섭진 않은데 그렇다고 반응을 안 할 수도 없어서 인사라도 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다음 방으로 향하는 문을 가리켰다.
“……다음 코스는 저기로 가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나는 혹여나 그가 민망해할까 봐 서둘러 시현을 데리고 다음 방으로 후다닥 사라졌다.
***
“대체 저런 사람들이 귀신의 집엔 왜 들어온 거야……!”
CCTV로 귀신의 집 상황을 보고 있던 직원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그가 보고 있는 화면엔 이나와 시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귀신이 나타날 때마다 두 사람은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다.
“와, 와아…….”
“이번 분은 그래도 분장을 꽤 잘하셨는데요?”
“오…….”
귀신의 집에 어울리지 않는 미적지근한 반응들.
그 탓에 귀신의 집 아르바이트생들의 사기가 많이 저하되었다.
‘이러다 귀신의 집 사라지는 거 아냐?’
손톱을 물어뜯던 그는 행동을 멈추고 두 사람이 들어가는 방을 유심히 보았다.
“그래도 저기라면 좀 무서워하겠지.”
그도 그럴 것이, 저 방엔 귀신의 집 마니아인 그가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으니까.
그가 씨익 웃었다. 후후 웃는 모습이 의미심장하면서도 사악했다.
***
“꽤 온 것 같은데 손거울은 보이지가 않네요.”
이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들어온 방은 꽤 넓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았던 공간처럼 침대나 서랍장 같은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방 중앙에는 사람 형태의 무언가가 앉아 있었다. 처음엔 사람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인형이었다.
“왠지 손거울이 여기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시현이 그렇게 말하며 서랍장을 한 칸씩 열어 보았다.
이나는 정령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도 흩어져서 찾아봐.”
[응!]
[알았어!]
정령들이 침대나 다른 가구로 날아갔다. 편법이긴 했지만 뭐, 지금은 헌터 세상이니까 반칙은 아니겠지.
이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인형이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백골 형태의 인형은 마치 진짜처럼 보여 섬뜩했다. 이나는 신기해하며 인형을 바라보다 인형이 걸고 있는 목걸이에 시선이 닿았다.
“어? 이건…….”
“찾으셨습니까?”
이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시현이 정령들과 함께 다가왔다.
이나는 인형의 목에서 목걸이를 빼내며 말했다.
“그게…… 찾긴 찾았는데요.”
이나는 그에게 자신이 찾은 손거울을 보여 주었다. 그것을 본 시현이 눈을 깜빡였다.
“반쪽만 있군요.”
“그러게요.”
원형의 손거울은 반으로 쪼개져 반달 모양이 되어 있었다.
나머지 반쪽을 더 찾아야 되는 건가 싶어 두 사람이 시선을 맞추고 있을 때였다.
“우매한 인간들!”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치는 목소리에 이나는 귀신의 집에 들어와 처음으로 놀랐다.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백골 인형의 눈에 불이 들어오며 기계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히 내 집에 침범을 하다니! 너희에게 귀신들의 저주를 내리겠다!”
“저주?”
이나와 시현이 의아해하는 눈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때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시현은 얼굴을 굳히며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설마 던전 브레이크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나가 무기를 꺼내려는 그를 말리며 진정시켰다. 하여간에 던전을 오래 겪었다 보니 이런 작은 진동에도 예민해지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진동의 원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벽이……?”
방의 벽 한쪽이 올라가며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으어어…….”
“인간…… 인간이다……!”
벽 뒤에 있던 귀신으로 분장한 아르바이트생들이 비척거리며 열심히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떼거지로 나오니 조금 섬뜩하기는 했다.
이나가 감탄하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시현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나 씨, 저기.”
그가 가리킨 곳엔 백골 인형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에는 손거울의 나머지 반쪽이 걸려 있었다.
“저거군요.”
“그런 모양입니다.”
“여기 귀신의 집 잘 만들었네요. 귀신에게 직접 가야 하는 시스템이라니. 겁이 많은 사람 같으면 무섭긴 하겠어요.”
이나는 피식 웃으며 손거울을 목에 걸고 있는 이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주세요, 손거울.”
“우, 우매한 인간들! 이것은 우리 가문의 보물. 이것을 가지고 있는 한 너희는 영원히 귀신의 저주에 시달릴지니!”
방금 말 더듬었는데.
아무래도 그는 그녀가 아무렇지 않아 하자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나는 조금 미안해하는 얼굴로 그가 건네는 나머지 손거울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그가 다음 대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것을 받고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그리고 매일매일을 저주에 시달려라!”
“허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이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다행히 이것이 마지막 관문이었는지 귀신들이 일제히 출구로 향하는 길을 터 주었다.
어서 나가 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해 이나는 민망해하는 얼굴로 시현을 돌아보았다.
“시현 씨, 가시죠.”
“네.”
지켜보고 있던 시현이 얼른 이나에게 다가왔다.
이나는 귀신들이 터 준 길을 따라 걷다가 시현과 둘만 남게 되자 입을 열었다.
“그래도 기술력이 엄청 좋아졌네요. 설마 벽이 열릴 줄은 몰랐어요.”
“그렇군요.”
시현도 무심한 얼굴로 동조했다.
맞은편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가 보였다. 드디어 귀신의 집의 종착지였다.
이나가 곧바로 문을 열려는 찰나였다.
[이나야!]
“왜…… 우왁!”
이나는 어디서 귀신 가면을 들고 온 이즈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섭게 생긴 가면을 갑자기 코앞에 들이민 탓이었다.
이나는 저도 모르게 한두 발짝 뒷걸음질을 치다 시현의 몸에 등을 부딪쳤다. 이나가 고개를 젖히자 시현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많이 놀라셨습니까?”
놀라긴 놀랐다. 그와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이나가 눈을 깜빡이며 저를 올려다보기만 하자 시현도 그제야 이나의 얼굴이 무척 가깝다는 걸 인지하고 표정을 살짝 굳혔다. 긴장한 것이었다.
순간 이나의 어깨를 잡은 시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나는 그것을 느끼고 속으로 웃었다.
그러다 루엔이 만들어 준 이 순간을 조금 즐길까 싶어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즈 때문에 깜짝 놀랐네요.”
“……그렇습니까.”
시현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냥 듣기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심장 소리 다 들리네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이나의 귀에는 다 들렸다. 쿵쿵 뛰고 있는 그의 심장 소리가.
‘뭐, 나쁘진 않네.’
***
귀신의 집을 나와 손거울을 가지고 나온 보상으로 상품까지 받고 나서야 두 사람은 루엔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귀신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벤치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후유증이 제대로 온 모양이었다.
이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제자는 참 심약하기도 하지.”
“노, 놀리지 마세요, 스승님…….”
루엔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울먹이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나는 즐거울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현이 시간을 확인하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이나가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확히는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핸드폰이 모두.
이렇게 단체로 알림을 받는 경우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였다.
이나는 시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도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파티가 시작됩니다. 모두 근처에 있는 전광판을 바라봐 주세요.]
문자는 헌터 협회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