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
“이거 어디서 온 문자야?”
“스팸인가?”
재난 문자인 줄 알고 문자를 확인한 사람들이 단체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느낀 루엔이 이나에게 물었다.
“스승님? 무슨 일 생겼나요?”
“그게…….”
이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답해 줘야 할지 몰라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문자만으로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확신이 안 선 탓이었다.
슬쩍 시현의 표정을 살피니 그도 혼란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문자의 내용대로 전광판을 보는 건데…….”
하지만 놀이동산에 전광판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나는 미간을 좁히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Hello.]
놀이동산 풍경 너머로 우뚝 서 있는 타워의 벽면 위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쏠렸다. 이나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타워 벽면에 띄워진 얼굴은 시선이 모일 때까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반갑습니다, 한국인 여러분. 저는 비밀 단체 K의 멤버 중 하나인 사무엘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저 하나 남은 거나 마찬가지지만요.]
이나와 시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반면 K의 존재를 모르는 시민들은 의아해하는 얼굴로 수군거렸다.
“K? 새로운 길드야?”
“외국 길드인가……?”
사무엘은 마치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싱긋 웃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비밀 단체라면서 왜 모습을 드러냈느냐. 그것은 화면 속 저를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입니다.]
“경고?”
[저는 지금부터 서울에 테러를 일으킬 겁니다.]
그 말에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약 3초간의 침묵 후 사람들에게서 경악과 같은 외침이 쏟아져 나왔다.
“테러라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주변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지만 이나와 시현은 사무엘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무엘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테러를 일으킬 곳은 총 다섯 군데입니다. 잠실, 강남, 홍대, 명동, 그리고 혜화. 제가 말한 순서대로 폭탄을 터뜨릴 예정입니다.]
“사람 많은 곳만 노렸네.”
이나가 이를 으득 갈며 중얼거렸다.
아마 사무엘이 말한 폭탄은 그냥 폭탄이 아닐 것이었다. 분명 던전을 만들어 내는 그 폭탄일 터.
손가락을 모두 접은 사무엘이 화면 너머를 응시하며 말했다.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이 화면을 보고 있을 저희의 목표가 서울 어딘가에 있는 저를 찾아오면 되는 일입니다.]
사무엘의 시선이 마치 이나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나는 더욱 서늘해진 얼굴로 타워 벽면을 노려보았다.
사무엘은 씨익 웃더니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뭐, 선택은 당신이 하는 거지만요. 그럼 한국인 여러분, 행운을 빌겠습니다. Good luck.]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워 벽면에서 사무엘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혼비백산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뿐이었다.
“잠실이면 여기부터 터지는 거야?”
“얼른 도망가야……!”
퍼엉!
그때 호수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에서 이나와 시현은 폭발이 일어난 호수 한가운데를 쳐다보았다.
호수에서 폭발이 일어난 탓에 하늘로 솟아오른 호수 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맞으며 이나와 시현은 호수 쪽이 보이는 놀이공원 외곽으로 달려갔다.
“몬스터는요?”
“저기를 보세요.”
시현이 손가락으로 호수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호수 아래에서부터 게이트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것은 빛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도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호수 외곽을 향해 헤엄쳐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시민들이 있었다.
이나는 서둘러 이즈에게 명령했다.
“이즈!”
[알았어!]
이즈는 호수의 물을 이용해 호수 가장자리에 높이 물의 벽을 쌓았다. 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위를 막아 버렸다.
물로 이루어진 돔이 거대한 호수를 에워쌌다.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물로 이루어진 돔을 공격했지만 돔은 출렁이기만 할 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시현은 그 광경을 보며 이나에게 물었다.
“이나 씨, 유지가 얼마나 가능하시겠습니까?”
“마나양은 충분해요.”
동문서답이었지만 시현은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바로 읽어 냈다.
시민들이 대피하고 다른 헌터들이 올 때까지 돔을 유지할 정도의 마나와 능력이 그녀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저는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 두고 얼른 다녀와요.”
이나의 자신감 어린 말에 시현도 그녀를 믿고 잠시 자리를 떠났다.
혼비백산한 채 달리던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벗은 시현을 알아보고 곧 그의 지시에 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엔이 머뭇거리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승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없을까요?”
이나는 루엔을 힐끗 보았다. 예전처럼 다정하면서 단단한 눈빛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이나는 피식 웃으며 시현을 가리켰다.
“시현 씨 혼자서 이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긴 힘들 거야. 저 사람을 도와줘.”
“네!”
힘차게 대답한 루엔이 시현에게 달려갔다. 잠시 말을 맞추던 두 사람은 이내 구역을 나누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이나는 루엔을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호수로 시선을 돌리며 제게 다가오는 사람을 맞이했다.
“역시 왔네.”
“마치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한 말투네.”
“당연하지. 네가 어디에 있을 줄 알고 내가 찾아가? 분명히 접근해 올 거라 생각했지.”
그 말에 사무엘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이는 가짜일 게 분명했기에 이나는 성급하게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머지 폭탄이 있는 위치가 정확히 어디야.”
“이럴 땐 폭발을 막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뭐냐고 묻는 게 보통 아닌가?”
“뭐. 네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됐거든?”
이나의 퉁명스러운 말에 사무엘이 웃음을 흘렸다.
“듣던 대로 재밌네. 너의 머릿속을 연구하고 싶어지는걸.”
“묻는 말에나 답해.”
“폭탄의 위치는 말해 줄 수 없어. 내 위치는 말해 줄 수 있지만.”
“그럼 네 위치는 어디야.”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그곳으로 와. 그럼 폭탄이 있는 곳을 알려 줄게. 물론 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는 전제하에.”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이나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머리를 굴리면서도 입으론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네가 하라는 대로 안 한다니까.”
“그럼 폭탄은 어떻게 막게?”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서걱-
사무엘의 몸이 두 동강 났다.
피는 흩뿌려지지 않았다. 대신 지직, 하고 스파크가 튈 뿐이었다.
빛이 사라지는 눈동자를 보며 이나가 서늘하게 말했다.
“너는 목 닦고 기다려.”
“하…… 하하. 기대하고…… 있을게.”
그 말을 끝으로 로봇에서는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로봇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이나는 서둘러 정령들에게 명령했다.
“이제부터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있어.”
***
사무엘의 선전 포고가 있고 나서 헌터 협회는 곧장 사무엘이 말했던 지역의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특히 잠실 다음으로 터질 강남 일대는 그야말로 혼잡하기 짝이 없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대피소는 이쪽입니다!”
“거기! 마음이 급한 건 알지만 앞사람이 다치지 않게 조심히 이동해 주세요!”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협회 소속 헌터는 대피소 반대 방향에 있는 전광판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인지…….”
불과 몇 시간 전, 저 전광판을 통해 누군가가 서울에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 경고했다.
목적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경고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미 잠실이 터졌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곳에 S급 헌터인 이나와 시현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잠실은 빠르게 대처가 가능했다.
‘문제는 여기지.’
잠실 다음으로 터질 강남. 그 망할 테러리스트가 언제 폭탄을 터뜨릴지 몰랐다.
게다가 사람들도 많아서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두 대피시키기는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디 있을지 모를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야!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해!”
“죄, 죄송합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걱정을 털어 버리고는 다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데 집중했다.
지금은 협회 소속 헌터로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게 중요했다.
“줄 흐트러뜨리지 말고 차분하게 이동을…… 켈록!”
여러 소리가 뒤섞인 곳에서 큰 소리로 외쳐야 했기에 목이 빨리 쉬었다.
그가 잠시 목을 가다듬고 다시 소리를 지르려는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줄 흐트러뜨리지 않게 앞사람을 봐 가며, 차분히 이동 부탁드립니다!”
“누구신지……?”
그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보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상대방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헌터 협회 던전 관리 팀 소속 유이한이라고 합니다. 근처에 일이 있어 왔다가 상황 전해 듣고 도우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