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49)

“아, 그러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여긴 제가 맡을 테니 헌터님은 줄의 끝 쪽을 확인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혼잡한 줄의 중간보다는 끝 쪽이 비교적 큰 소리를 낼 일이 적었다.

이한은 헌터가 쉰 목을 가다듬는 것을 보고 그를 그쪽으로 보내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한의 생각을 눈치챈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이한은 문득 커다란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이나는 괜찮을까.’

오면서 전해 듣기로 그의 동생 이나가 잠실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사실 이한은 이곳이 아니라 잠실로 바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다행히 이나가 대처를 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이한은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이곳으로 올 수 있었다.

“절대 죽지 않을게. 그러니 나에게 오빠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줘.”

지금은 이나가 했던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무사해야 해, 이나야.’

속으로 이나가 무사하기를 빌며 이한은 다시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앞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차분히 이동…….”

퍼엉!

그때 어디선가 폭발 소리가 들렸다.

이한은 바로 알아챘다. 그놈이 기어코 폭탄을 터뜨렸구나.

“꺄아아악!”

“도망쳐!”

그 탓에 안 그래도 불안해하던 사람들의 공포 스위치가 켜졌다.

불안해하긴 해도 일정하게 줄을 지켜 대피소로 향하던 시민들이 이젠 그런 거 없이 무작정 폭발이 일어난 곳의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한과 다른 협회 사람들은 당황해서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모두 진정하세요! 진정하고 저희 지시대로……!”

“비켜!”

다급하게 달려가던 시민 중 한 명이 이한의 어깨를 퍽 치고 지나갔다.

털썩-

얼떨결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게 된 이한이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그의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이한은 그를 도와주기 위해 사람이 온 것이라 생각하고 입을 먼저 움직였다.

“괜찮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

“키익?”

사람의 것이 아닌 울음소리에 이한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그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움직여 그의 앞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사마귀의 모습과 닮은 괴물, 몬스터였다.

‘설마 던전 브레이크가……? 하지만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그럴 기미가 보였다면 협회에서 먼저 알려 주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한은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한이 혼란과 공포에 빠진 사이 시민들도 몬스터를 발견하고 외쳤다.

“모, 몬스터다!”

“다들 도망가요!”

시민들의 뜀박질이 더욱 빨라지고, 몬스터를 발견한 헌터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한이 구조되기엔 이미 늦었다.

‘젠장!’

사마귀가 낫으로 된 팔을 들어 올리자 이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펑!

그때 맞은편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한은 눈을 번쩍 뜨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폭발에 휘말린 것처럼 사마귀 몬스터의 한쪽 몸이 뽑혀 녹색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이한은 제 발치에 쓰러진 몬스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몬스터의 피가 묻은 제 옷 위를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나…… 무사한 건가?”

“다행히 그런 것 같군요.”

숨차하는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한은 고개를 홱 돌려 제 곁으로 온 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부장님?”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유이한 씨.”

다급히 뛰어왔는지 서준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가 손을 내밀자 이한은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한은 서준과 죽은 몬스터를 번갈아 보다가 그에게 물었다.

“설마 본부장님의 작품인가요?”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달까요.”

“네?”

“제가 이쪽으로 데려온 것은 맞지만 죽인 것은 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가 말을 할수록 이한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서준이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한 것은 유이한 씨를 구해 준 이에게서 들으시죠.”

“절 구해 준 사람이 누구…….”

[오빠!]

익숙한 호칭이 들리자 이한은 순간 이나가 이곳에 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나가 아니었다.

“파인?”

도마뱀 모습을 한 불의 정령 파인이 서준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한은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파인에게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이나는?”

[이나가 나를 여기로 보냈어!]

“이나가?”

이한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을 담은 눈빛으로 서준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빙긋 웃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서준은 K가 폭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잠실에 있는 이나를 찾아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이나는 물의 돔을 만들어 호수의 몬스터를 막고 있었다. 그 경이로운 광경에 서준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는 사이 이나가 그에게 말했다.

“서준 씨, 제 정령들을 데리고 가세요.”

“이나 씨의 정령들을요?”

“네. 제 정령들을 폭발이 일어날 지역에 데리고 가서 몬스터들을 막으세요. 분명 폭발과 동시에 임시 던전이 생겨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나 씨는요?”

이나에게 정령은 곧 그녀의 전력이었다.

그렇다면 전력을 잃은 이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서준은 문득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걱정 마! 이나의 곁에는 우리가 있을게!]

이즈와 리카가 이나의 곁에 남겠다고 했다. 한시름 던 서준은 이나의 뜻대로 나머지 정령들을 협회 헌터들을 통해 각 지역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파인은 그가 직접 데리고 강남으로 왔는데, 마침 이한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서준에게서 자초지종을 듣던 이한은 파인에게로 고개를 내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이나는? 이나는 무사한 거지?”

[응. 이나는 무사해. 걱정 마, 오빠.]

“하아.”

이한은 그제야 한시름 던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이 그런 이한을 묘하게 보더니 대뜸 말했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건 이한 씨 남매의 특징인가요?”

“그야 상대가 이나니까 그렇죠. 다른 사람 따위 알 게 뭐람.”

헌터 협회 직원치고는 다소 신랄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은 사람들의 대피를 도우러 온 이한이었다. 그 사실을 서준도 알고 있기에 그는 즐겁다는 미소를 지었다.

“흐음.”

“뭡니까, 그 웃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요.”

이한이 불퉁하게 대꾸했다. 그 얼굴에서 이나의 모습이 비쳐서 서준은 괜히 더 즐거워졌다.

‘가만 보면 남매가 닮았다니까.’

후후 웃던 서준은 멀리 우뚝 서 있는 타워를 보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잠실에 있을 누군가를 떠올린 그는 슬슬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이나 씨는 괜찮으려나.’

***

“시민들 모두 대피 완료했습니다. 이제 호수의 돔을 해제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유이나 헌터님.”

“알겠어요.”

지원을 온 헌터의 말에 따라 이나는 호수에 펼쳤던 물의 돔을 천천히 해제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에 해제하진 않았다. 몬스터들을 한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한쪽 면만 해제했을 뿐이었다.

몬스터들이 그것을 눈치채고 곧바로 열린 벽을 통해 호수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키에엑!”

미리 호수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몬스터들을 해치운 덕분이었다.

헌터들이 몬스터들을 해치우는 동안 이나는 돔을 계속 유지했다.

아무리 S급 헌터라지만 이런 커다란 돔을 유지하려면 마력 소모가 어마어마하게 클 터였다.

그럼에도 태연한 얼굴로 돔을 유지하는 이나를 보며 다른 헌터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저게…… 가능한 건가?”

“대단한걸.”

곁에서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다 듣고 있던 루엔은 뿌듯한 마음에 어깨를 쫘악 폈다.

저런 엄청난 분이 저의 스승이라니. 저쪽 세계에서나 이쪽 세계에서나 그의 스승은 너무 대단했다.

‘저쪽 세계에 있었을 때보다 더 강해지신 느낌이야.’

루엔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 이나는 리카를 헌터들에게 보냈다. 좀 더 빠르게 몬스터들을 해치우기 위함이었다.

리카와 헌터들의 활약 덕에 호수의 몬스터들은 빠르게 진압되었다.

이제 남은 몬스터가 없는 것을 확인한 이나는 호수에 펼친 돔을 완전히 거두었다.

“우와…….”

돔을 이루고 있던 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다시 호수로 돌아가는 모습은 굉장히 신비로웠다.

루엔과 헌터들이 감탄을 터뜨렸지만 정작 이나는 무덤덤하게 그들을 보며 말했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뒷수습은 맡겨도 되죠?”

“아, 네! 물론입니다.”

한 헌터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엔 루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루엔, 너도 이분들과 같이 있어.”

“네? 저도요?”

루엔이 그녀와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나는 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난 지금부터 그놈을 찾으러 갈 거야.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여기 있어.”

루엔은 그제야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하는 ‘그놈’이란 이 모든 일을 벌인 테러리스트 사무엘을 뜻했다. 그를 찾으러 가는 거라면 각성자가 아닌 루엔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루엔이 시무룩해하자 이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루엔.”

“제가요?”

“위험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용기 있게 사람들을 대피시켰잖아.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루엔은 눈을 끔뻑거리다 결국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비장하게 고개를 들어 말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스승님.”

“당연하지.”

이나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나 씨.”

그 순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나가 고개를 돌리자 다른 헌터들과 함께 몬스터들을 해치우러 갔던 시현이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그가 비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이나도 같은 눈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알고 있어요.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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