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사무엘은 그곳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나는 물의 돔을 유지하면서 그곳이 어딜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곳은 한 곳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나는 제가 생각한 곳으로 시현을 데려갔다.
“이곳에 그놈이 있다는 말입니까?”
시현이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확실치 않았기에 이나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요. 그놈이 그랬어요.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있다고. 보통 그런 곳은 이런 높은 건물 아니겠어요?”
이나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건물은 그들과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까.
잠실 타워.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시현 씨의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겠네요. 타워 꼭대기 층까지 오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해했잖아요.”
이나가 장난스레 말하자 시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맞받아쳤다.
“……확실히 서둘러서 오르긴 해야겠군요. 사무엘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걸어 오르는 건 나중에 하고.”
이나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시현이 흠칫 몸을 떨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리카의 힘을 빌렸다.
“지금은 급하니까 단번에 올라가자고요.”
그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시현은 주위 풍경이 빠르게 밑으로 내려가는 걸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바람 탓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드디어 타워 옥상에 발을 내디뎠다.
“……1분도 안 지났군요.”
“다음에 타워 오를 일 있으면 그냥 벽 타고 올라가요.”
이나가 진심을 반, 장난을 반 담아 말했다. 시현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나는 휑한 타워 옥상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아니었나?”
“아뇨. 이나 씨 예상은 적중한 것 같습니다.”
시현이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틈에 끼워진 쪽지를 빼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나는 쪽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K. 그 한 알파벳이 쪽지 겉면에 새겨져 있었다.
“하!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도망을 가?”
이나는 이를 까득 갈았다. 그러다 그녀는 곧 흥분을 가라앉히고 쪽지를 펼쳤다. 지금은 사무엘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너도 그렇고 협회도 그렇고 생각보다 대처를 잘하던걸? 기대 이상이야. 하지만 이러면 내가 좀 곤란해서 말이야.
올림픽 공원에서 담판을 짓자고.^^]
마지막 눈웃음 이모티콘을 보자마자 이나는 쪽지를 구겨 버렸다.
“이 망할 놈이 진짜……!”
“이나 씨, 올림픽 공원이라면 설마…….”
시현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는 쪽지를 좍좍 찢어 공중에 흩뿌리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그 설마가 정답인 것 같네요.”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올림픽 공원은 사람들이 기피하던 곳이었다.
과거에 그곳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서 공원이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무려 S급 던전 브레이크가 말이다.
사무엘이 하필 골라도 그런 곳을 골랐다는 점에서 이나와 시현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얼른 그쪽으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백도하도 그곳으로 부르겠습니다.”
시현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도하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가 도하와 통화하는 사이 이나는 올림픽 공원이 있는 쪽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
이나와 시현이 올림픽 공원에 도착했을 때 도하는 이미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하 씨!”
“어. 왔냐.”
다른 곳에서 전투를 하다 왔는지 도하의 눈빛이 어쩐지 날카로웠다.
옆에 있는 아란의 털에는 몬스터의 것으로 보이는 끈적한 피가 묻어 있었다.
이나와 시현이 다가오자 그는 언월도 끝으로 공원 안쪽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K가 저 안에 있다고?”
“네.”
“좋아. 바로 가자.”
도하가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이나와 시현도 그의 뒤를 따랐다.
미리 공원의 안내 방송을 통해 대피를 지시한 덕에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시현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헌터들만이 간혹 있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사무엘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S급 던전과 서서히 가까워졌다. 그때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처, 천조 길드장님!”
“무슨 일입니까?”
다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시현이 곧바로 물었다. 그러자 헌터가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더듬었다.
“빠, 빨리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테러리스트가 협박을 하고 있어요!”
“협박이요?”
“가까이 다가오면 게이트를 터뜨리겠다고…….”
딱딱하게 굳은 이나 일행은 곧바로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이나는 그 틈으로 보이는 낯설지 않은 얼굴을 보며 외쳤다.
“사무엘!”
“아, 왔네.”
사무엘이 이나를 보며 웃었다. 그의 옆에는 S급 던전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너, 그거 뭐야?”
“이거? 폭탄.”
그의 손에는 폭탄이 들려 있었다.
높은 확률로 던전을 만들어 내는 폭탄일 그것이.
이나가 사무엘을 노려보는 사이 시현은 주변 헌터들을 뒤로 물렸다. 이어질 이야기를 그들이 들어 봤자 좋을 게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었다.
대화할 분위기가 마련되자 사무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놀랐어. 설마 자신의 전력을 서울 곳곳으로 보낼 줄은 몰랐거든. 정령이라는 존재는 계약자와 떨어져 있어도 힘을 쓸 수 있나 보지? 역시 연구하고 싶단 말이야.”
그의 말대로 정령은 계약자와 떨어져 있어도 계약자의 마나를 가져가는 것이 가능했다. 영혼으로 묶인 계약은 현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니까.
물론 가까이 있는 편이 효율이 더 좋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크게 무리는 없었다.
이나는 이 사실을 굳이 사무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사무엘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게 너의 패배 요인이 될 거야.”
“무슨 헛소리야?”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이대로 이 던전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그 순간 게이트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나는 저 색을 알고 있었다. 칼릭스가 이 세계에 개입할 때 나타나는 색.
이나가 얼굴을 찌푸리자 사무엘이 손에 든 폭탄을 빙글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게 둘 것인지.”
“너…….”
“솔직히 말해서 난 네가 후자를 선택하길 바라.”
이나가 눈을 치켜떴다.
저게 지금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눈빛으로 그 생각이 전해졌는지 사무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궁금했거든. 게이트나 던전 안에서 던전을 만들어 내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과연 어떻게 될지.”
“미친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딴 짓을 한다고? 그러다 큰일이라도 벌어지면 어쩌려고!”
“그치만 궁금하잖아.”
이나의 신랄한 욕에도 사무엘은 그저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빛낼 뿐이었다.
“자, 어떻게 할래?”
“난 세 번째 선택지를 선택할 거야.”
“그런 건 없는데.”
“있어. 널 막고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그 순간 사무엘은 무언가를 눈치챘다.
지금 이나의 옆에 있어야 할 정령은 둘. 그런데 하나가 없었다.
촤악-
“……어?”
사무엘은 폭탄을 들고 있던 제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분명 제 어깨에 붙어 있던 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떨어지는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그의 눈에 담겼다.
그 너머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새 정령이 눈에 들어왔다.
툭-
잘려 나간 팔이 게이트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팔이 쥐고 있던 폭탄도.
둘 다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지만 그 사실은 이어진 비명 소리에 묻혀 버렸다.
“아아아악!”
“잘했어, 리카.”
이나가 사무엘을 공격하고 돌아온 리카에게 말했다.
사무엘이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는 사이 시현과 도하가 그에게 달려갔다.
시현은 한쪽 남은 팔을 뒤로 당겨 사무엘을 제압했고, 도하는 땅에 엎드린 그의 목에 언월도의 날을 겨누었다.
겉보기엔 완벽히 제압한 것처럼 보였다.
“흐……하하…….”
“……이놈이 미쳤나?”
난데없이 웃음을 흘리는 사무엘을 보며 도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반면 이나는 무언가 불안한 기분이 들어 사무엘에게 물었다.
“너, 뭘 한 거야?”
“말했잖아. 궁금했다고. 게이트나 던전 안에서 던전을 만들어 내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
그 순간 이나는 쎄한 기분을 느꼈다.
“너 설마…….”
“애초에 너에겐 선택지 따위 없었어. 폭탄은 이미 가동되고 있었으니까.”
사무엘의 말을 들은 세 사람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이나가 뒤늦게 폭탄의 위치를 확인했지만 폭탄은 이미 게이트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폭탄이 가동되고 있었다면, 던전 안에서 폭탄이 이미 터졌거나 터져 버릴 터였다.
“이런 미친……!”
도하도 그 사실을 깨닫고 욕설을 흘렸다.
그때였다.
쿠구구구-
“……! 다들 피해요!”
이나의 외침에 다들 게이트에서 훌쩍 멀어졌다.
사무엘만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현이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한발 늦어 버렸다.
푹-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갈고리 형태의 뿔이 사무엘의 가슴을 꿰뚫었다.
시현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적어도 이런 식으로 놈의 죄를 묻고 싶진 않았는데.
하지만 사무엘은 환희에 찬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쿨럭! 그렇……구나. 이렇게 되는 거였어. 하하…….”
해답을 얻어 낸 듯한 그 말과 함께 사무엘이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헌터들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경고! 차원의 틈이 벌어져 던전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S급 던전 ‘지하의 파수꾼’의 하드 모드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