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모드라고?”
“S급 던전의 하드 모드라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시스템 창을 본 헌터들이 패닉에 빠졌다.
이나 일행도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확인했지만 침착하게 그들에게 외쳤다.
“모두 긴장 풀지 마!”
“맞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S급 헌터인 저희들이 앞에서 몬스터들을 막겠습니다. 여러분은 뒤에서 서포트를 해 주십시오.”
각각 한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도하와 시현이 진두지휘에 나섰다.
두 사람의 지시가 내려지자 헌터들도 조금은 안정을 찾아 가는 분위기였다.
[이나야!]
리카가 심각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개를 끄덕인 이나가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오고 있어요! 다들 대비하세요!”
그 자리에 있는 헌터들 모두 전투태세를 취했다.
모두가 검은색 게이트만을 바라보는 순간.
쿵-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한 땅의 울림과 함께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어어어…….”
시멘트처럼 회색빛이 도는 피부를 가진 거인 몬스터였다.
몬스터는 탁한 빛이 도는 눈동자를 굴려 제 앞에 있는 헌터들을 내려다보았다. 헌터들이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그때,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도하였다.
“하드 모드고 나발이고 간에.”
언월도를 빙글 돌리며 도하가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짜증 난다고!”
촤악-
단단해 보였던 몬스터의 피부가 단숨에 잘려 나갔다. 몬스터는 검은 피를 흘리며 도하에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쾅!
하지만 도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공격을 가볍게 피해 이번엔 몬스터의 팔을 잘라 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몬스터가 주춤하는 틈을 타 몬스터의 목을 베었다.
툭-
몬스터의 잘린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헌터들은 입을 벙긋거리다 이내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 청호 길드장님! 멋지십니다!”
“청호 길드장 백도하 최고!”
예전 같았으면 도하는 그 칭찬에 우쭐해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의 도하는 그런 것 따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한주원이랑 칼릭스라는 그 자식, 잡히기만 해 봐. 아주 작살을 내 주겠어.”
그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옆에 있는 이나뿐이었다.
이나는 나지막한 한숨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또다시 게이트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보며 도하에게 말했다.
“또 와요.”
“알아.”
도하가 다음 사냥감을 해치우기 위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나도 다른 몬스터를 상대했다.
앞선 도하의 활약을 보고 사기를 충전했는지 이번엔 다른 헌터들도 자발적으로 나섰다.
물론 시현이 곁에 붙어서 그들을 지키는 동시에 서포트를 받았다.
‘아직까지는 수월해.’
이나는 몬스터들을 차례로 없애며 생각했다.
하드 모드가 시작됨과 동시에 대처하기도 했고, 이쪽에는 S급 헌터만 둘에 L급 헌터가 하나였다.
게다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녀의 정령들을 통해 사무엘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 참이었다. 그렇다면 곧 다른 헌터들도 S급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이곳으로 지원을 올 터.
‘조금만 더 버티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이나가 바람으로 몬스터의 목을 베어 버릴 때였다.
“어? 저기……! 또 나옵니다!”
한 헌터가 게이트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의 말대로 새로운 몬스터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상대하고 있던 몬스터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린 도하가 곧바로 게이트 근처로 달려갔다.
그는 무기가 길다는 장점을 이용해 언월도를 넓게 휘둘렀다. 그렇게 그는 하반신이 뱀의 꼬리로 이루어진 몬스터들에게 광역으로 피해를 입혔다.
그 탓에 근처에 있던 다른 몬스터들이 주춤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겁을 집어먹었다는 사실이 못내 분했는지 몬스터들은 다시 도하를 공격하려 했다.
도하는 가볍게 점프해서 키가 4m 정도 되는 거인 몬스터의 다리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대로 몬스터의 어깻죽지를 언월도로 꿰뚫었다.
거의 동시에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인간의 형태를 띤 몬스터가 도하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그었다.
하지만 도하는 여전히 거인 몬스터의 몸에 올라타 있었다.
도하가 놈의 몸을 발판 삼아 높이 점프하자 목표물을 놓친 발톱은 제 동료를 베어 버렸다. 그리고 도하는 언월도를 밑으로 향한 채 그대로 뱀 몬스터를 꿰뚫어 버렸다.
“대단해…….”
한 헌터가 도하에게 시선을 빼앗긴 채 중얼거렸다.
사람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도하는 펄펄 날아다녔다. 그의 주변으로 몬스터의 시체가 착실히 쌓여 갔다.
그 경이로운 광경에 시선이 팔려 그는 제게 다가오는 몬스터를 보지 못했다.
촤악-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깜짝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다.
새하얀 오러가 덧씌워진 검이 제 옆의 몬스터를 베어 내고 있었다.
가볍게 몬스터를 처치한 시현이 엄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여긴 전장입니다. 방심하지 마십시오.”
“죄, 죄송합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시현은 그 근처에서 착실하게 몬스터들을 토벌하며 게이트 쪽을 힐끗 보았다.
‘또 나오는군.’
이 와중에도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쉬울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미간을 찡그리며 몬스터를 베었다. 그 타이밍에 맞춰 다른 몬스터가 그를 공격했지만 막을 필요가 없었다.
촤아악-
때마침 베여 나가는 몬스터를 보다가 시현이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이나 씨.”
“인사는 됐으니까 전투에 집중해요.”
무심하게 시현을 도와준 이나가 정령들과 함께 다른 몬스터를 처치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시현은 조금 안도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에겐 이나 씨가 있다는 점인가.’
L급인 이나 덕분에 그들은 S급 몬스터가 나와도 수월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데다가 낮은 등급의 헌터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 구멍이 생길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가령 지금처럼.
“으아아악!”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에 시현이 고개를 홱 돌렸다.
다른 헌터들과 힘을 합쳐 싸우던 한 헌터가 몬스터의 발톱에 당해 복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내가 갈게!”
비교적 가까이 있던 도하가 아란을 타고 그쪽으로 향했다.
몬스터가 다시 한번 헌터들을 공격하려는 찰나, 도하가 아란의 등에서 점프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는 몬스터를 향해 언월도를 내리그었다.
촤악-
썩은 내가 진동하던 짐승의 가죽도, 그 사이로 보이는 뼈도 언월도에 의해 힘없이 갈라졌다.
그 위에 달려 있던 짐승의 두개골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도하는 언월도를 세로로 세워 두개골을 부수려 했다.
그때, 두개골의 눈 위치에서 붉은 빛이 번쩍 빛났다. 그것을 본 도하는 불길한 느낌에 곧바로 두개골을 박살 냈다.
퍽-
꿰뚫린 두개골은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 도하는 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뭐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헌터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다 찝찝한 마음이 드는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
챙-
도하가 언월도를 손에서 놓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헌터들이 어리둥절해하는데 한 헌터가 부릅뜬 눈으로 도하의 뒤를 가리켰다.
“청호 길드장님! 뒤!”
도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기를 놓친 도하를 향해 몬스터가 공격을 해 오고 있었다.
무기를 줍기엔 늦었다. 그는 이를 뿌득 갈며 일단 공격을 피하려 했다.
챙!
그때 눈부신 오러가 도하의 눈에 들어왔다. 시현이었다.
시현은 검으로 몬스터의 발톱을 밀어내며 도하에게 외쳤다.
“뒤로 물러나!”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다.”
작게 중얼거린 도하가 시현의 말대로 몸을 피했다.
그가 피한 것을 확인한 시현이 몬스터의 발목을 잘라 내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몬스터의 가슴에 그의 검이 닿았다.
푹-
몬스터의 심장에 검이 꽂혔다.
몬스터가 마지막 발악으로 다른 발톱을 이용해 그를 꿰뚫으려 했으나 시현이 검을 횡으로 긋자 그 또한 잘려 나갔다.
얼굴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닦아 내며 시현이 도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 달리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저주에 당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도하가 제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돌처럼 굳은 느낌이었다. 그 탓에 그는 현재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시현이 심각하게 바라보았지만 도하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왼팔로도 싸울 순 있어. 효율은 떨어지지만.”
“하지만 S급 몬스터를 상대하기엔 위험해.”
“그럼 이 상황에서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라고?”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근처에서 몬스터에게 당한 동료를 치료하던 헌터들이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그들을 구원한 것은 때마침 나타난 이나였다.
“지금 우리끼리 말싸움할 때예요?”
이나가 엄하게 말하자 시현과 도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도하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끄떡없어. 싸울 수는 있다고.”
“하지만 시현 씨 말대로 그 팔로 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위험해요.”
“유이나 너까지……!”
도하가 답답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나는 단호했다.
“도하 씨는 다른 헌터분들과 함께 보조 역할만 해 주세요. 그리고 시현 씨.”
이나의 시선이 시현에게 닿았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혼자서 이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겠어요?”
“왜 그런 걸 물으시는지…….”
“대답부터 해 줘요.”
시현은 당황스러웠지만 이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저 안으로 들어가려고요.”
“네?”
이나는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서, 균열을 막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