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유이나 너 미쳤어?”
도하가 흥분해서 눈을 부릅떴다. 이나는 그에게 토닥이듯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안에서 최대한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할 테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도하가 답답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버럭 외쳤다.
“몬스터는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어. 저 안에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하다는 뜻이라고! 네가 위험하단 말이야!”
“그 많은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바로 던전에 생긴 균열 때문이에요.”
이나는 침착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도하 씨도 시스템 창 봤잖아요. 차원의 틈이 벌어져 던전에 균열이 생겼다고.”
“그게 뭐 어쨌다는…….”
“던전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연결하는 방 역할을 해요. 그런데 던전 브레이크에, 던전에 균열까지 일어나면서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그냥 넘어오는 중이라고요!”
“…….”
“누군가는 가서 던전의 균열을 막아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던전을 공략할 수 없어요.”
도하는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렸지만 이나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도하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이나는 부드럽게 그를 어르고 달랬다.
“괜찮아요. 제겐 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해요. 무사히 돌아올게요.”
“……하아.”
도하가 뒷머리를 박박 문지르더니 짓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버겁다 싶으면 바깥은 신경 쓰지 말고 몬스터 내보내.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곧 지원군도 올 테고.”
“든든하네요. 알겠어요.”
이나는 살포시 웃고는 비장하게 표정을 바꾸며 게이트로 걸어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녀의 발을 붙잡았다.
“시현 씨?”
손목을 붙잡혀 이나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현의 괴로워 보이는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시현은 천천히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시현 씨.”
“……라고 하면 이나 씨는 들어주지 않으시겠죠.”
“잘 알고 있네요.”
시현이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이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대로 갔다간 시현에게 상처를 남길 거라 생각한 탓이었다.
이나는 부드러운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시현 씨, 전 괜찮아요. 무사히 돌아올 자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그런 얼굴이에요.”
“이나 씨는 모르실 겁니다. 소중한 사람을 위험한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이나가 멈칫했다. 시현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같이 가지 못하는 저에게 화가 나고, 또 벌써부터 이나 씨가 걱정되어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는 건 아니에요.”
“네?”
고개를 든 시현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나가 그의 품 안으로 들어온 탓이었다.
시현이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사이 이나가 그의 등을 제게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
“저도 시현 씨가 저 대신 저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불안하고 미쳐 버릴 것 같아요. 오죽하면 제가 대신 들어가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까요.”
“…….”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시현을 올려다보았다.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녀가 해사하게 웃었다.
“무조건 무사히 돌아와야겠다. 시현 씨를 위해서라도.”
시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나는 그를 밀어내지 않고 그가 속삭이는 말을 가만히 머릿속에 새겼다.
“무사히 돌아와야 합니다. 반드시요.”
“물론이죠.”
이나가 시현의 등을 한차례 토닥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도하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기에 다른 헌터가 그에게 물었다.
“청호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몰라.”
뒷머리를 벅벅 문지르던 도하가 시현에게서 떨어지는 이나에게 외쳤다.
“야, 유이나! 어디 다쳐서 돌아오면 죽을 줄 알아!”
“와, 청호 길드장 인성.”
부러 장난스럽게 중얼거린 이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이제 그녀를 붙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나는 마음이 가볍진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진 듯했다. 그녀가 무사히 귀환하길 바라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 무게감이 나쁘진 않았다.
“그어어!”
“비켜!”
이나는 때마침 끼어드는 몬스터를 바람으로 베어 버린 뒤 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번쩍-
게이트가 빛나고, 그녀는 던전 안으로 이동했다.
이나는 던전으로 들어오자마자 저를 쳐다보는 수많은 시선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미쳤네.”
정말 미쳤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 안에는 몬스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멀리서 보면 여기가 개미굴인지 던전인지 모를 정도로.
이제야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끝도 없이 흘러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던전 안이 이 꼴이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안도감마저 들었다.
“들어오길 잘했네.”
잘못했다간 떼라고 불러도 좋을 이 몬스터 무리들을 전부 상대할 뻔했다.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상상은 제쳐 두고 이나는 멀리 공중에 보이는 균열을 바라보았다.
“저건가.”
하늘에 금이 가 있는 것처럼 틈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틈에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이나는 심각한 상황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한 몬스터가 그녀에게 달려왔다.
“우워어어!”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를 연상케 하는 소의 머리를 가진 이족 보행 몬스터였다.
이나는 거대한 몽둥이를 내리찍는 몬스터를 피하다가 멈칫했다.
“게이트가…….”
던전 브레이크 탓에 게이트가 열린 상태였다. 자칫하면 눈앞의 몬스터가 게이트를 타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나는 몽둥이를 피하는 대신 땅을 일으켜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리고 번개를 내려쳐 몬스터를 통째로 태워버렸다.
쿵-
이나는 쓰러진 몬스터를 보며 고민하다가 이즈에게 말했다.
“이즈, 호수에 펼쳤던 돔 기억하지? 넌 여기 남아서 그걸로 게이트 앞을 지켜.”
[나 혼자?]
이즈의 걱정 어린 물음에 이나는 믿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가 게이트 바깥으로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으음……! 알았어! 여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무사히 갔다 와야 해, 이나야!]
이놈의 무사해야 한다는 말만 몇 번을 듣는지.
이나는 피식 웃으며 이즈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원래도 무사히 돌아올 생각이긴 했지만, 자꾸 듣다 보니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즈가 게이트 앞에 물의 장막을 펼치는 것을 보고 이나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빠르게 하늘의 균열을 향해 날아갔다.
간혹 하늘을 날 수 있는 몬스터가 공격하거나 땅에 있는 몬스터가 무기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리카가 공기의 흐름을 통해 눈치채고 알아서 다 막아 주었다.
덕분에 균열에 접근하는 것까진 쉬웠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자, 그럼.”
이나는 균열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이걸 어쩐다…….”
균열이 생긴 원인은 따지고 보면 차원이 일그러졌기 때문이었다. 자연을 다루는 일개 정령사가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양지은 헌터라도 데려왔어야 했나.’
공간을 다루는 마법사인 그녀가 왔다면 좀 달랐을까?
이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공간을 다루는 그녀라도 A급 마법사가 차원급의 공간을 건드릴 수는 없을 터.
‘그럼 어떻게 해야…….’
이나가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도움이 필요해?”
이나는 흠칫 놀라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바람으로 이루어진 비수를 날렸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상대는 공격을 피해 그녀의 앞에 당도했다.
“너무하네, 셀리나. 모처럼 만났는데.”
“……칼릭스.”
이나는 이를 까득 갈며 상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칼릭스는 서운한 티를 벗어던지고는 빙긋 웃었다.
“이렇게 대화하는 건 오랜만이네. 그렇지?”
“그러게 말이야. 이런 일은 영영 없었으면 했는데.”
“너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이나가 단호하게 말했지만 칼릭스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는 균열 쪽을 힐끗 보며 물었다.
“막고 싶지 않아? 저거 말이야.”
내내 그를 노려보던 이나의 얼굴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막을 수 있다고?”
“그럼. 막을 수 있지. 너와 내 힘을 합친다면 말이야.”
칼릭스가 그녀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이나가 그의 손을 탁 쳐 냈지만 칼릭스는 연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 때문에 이미 차원을 한 번 건드려 봤어. 두 번이라고 어려울 것 같아?”
“…….”
“물론 쉽진 않겠지. 차원을 한 번 건드린 대가로 내 힘이 모조리 날아갔었으니까. 사실 난 아직 차원을 건드릴 만큼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어.”
“그런 주제에 나한테 저걸 막을 수 있다고 한 거야?”
이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칼릭스는 당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막을 수 있어. 말했잖아. 너와 내가 힘을 합친다면 가능하다고. 물론 그러려면.”
칼릭스가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네가 나와 하나가 되어야겠지만 말이야, 셀리나.”
그렇게 말하는 칼릭스의 눈에서 잔잔한 광기가 느껴졌다.
이나는 한숨과 함께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친다고…….”
“그래.”
칼릭스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그는 가슴에 들어찬 환희를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칼릭스는 지금까지 이나가 그를 만나러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 왔다. 그녀의 제자인 루엔을 인질로 삼고, 지금처럼 사무엘을 이용해 던전 브레이크를 만들면서.
그리고 칼릭스는 확신했다. 이번에야말로 이나가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거라고.
하지만 이나의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그는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때려치워. 네 힘 따위 필요 없어.”
“뭐?”
칼릭스는 싸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그녀에게 물었다.
“미쳤어? 내 힘이 없으면 넌 저 균열을 막을 수 없어. 이대로 몬스터가 바깥으로 나가게 둘 거야?”
“아니. 그럴 순 없지.”
“그럼 뭘 어떻게 하겠다는……!”
“꼭 균열을 막으라는 법은 없잖아?”
“뭐?”
잠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칼릭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이나는 제게 다가오는 이들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나야!]
[우리가 왔다네!]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정령들이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나는 그중에서도 파인을 유심히 보며 말을 이었다.
“막을 수 없다면 모조리 파괴해 버리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