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149)

그 사실은 이나에게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아스는 그녀의 첫 계약 정령이자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했던 정령이었다.

계약은 계약자가 죽거나 소멸하는 순간 자동으로 해지된다. 셀리나가 죽으면서 엘리아스와의 계약도 해지가 되었을 터.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엘리아스가 다음 계약자로 고른 사람이 칼릭스라는 사실이 이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엘리아스…….”

큰 실망감과 배신감에 몸을 떨던 이나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칼릭스는 정령사가 될 수 없었다. 그의 몸에는 정령의 힘이 전혀 없으니까.

그런 칼릭스가 엘리아스와 계약을 한다? 말이 전혀 안 되었다.

게다가 엘리아스의 저 공허한 얼굴.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루엔, 그녀의 제자가 소피아에게 조종당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나의 눈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엘리아스의 부축을 받는 칼릭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칼릭스 너…… 엘리아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벌써 들켰나?”

칼릭스는 쿡쿡 웃더니 엘리아스를 힐끗 보며 말했다.

“별거 아냐. 내 힘으로 엘리아스의 의식을 누르고 있는 것뿐이지.”

“뭐?”

“쉽게 말하면 내 힘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야.”

칼릭스는 손에 검은 연기를 가볍게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눈치챘겠지만 내 힘은 아주 특별해. 속성을 따지지도 않고, 거의 모든 마법이 가능하지. 차원을 건드려 너를 찾아갔을 정도니까.”

그러면서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고서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지.”

“고서?”

“기억나? 고대에 존재했다는 마족의 힘이 담긴 그 고서 말이야. 내가 그 고서를 연구하면서 이 힘을 얻게 된 거거든.”

“미친 자식.”

“맞아. 난 미쳤어. 미친놈이 미친 힘을 얻은 거지. 그런데도 엘리아스는 상대하기 꽤 까다로웠어. 그 셀리나의 정령으로서 함께 활동했을 만해.”

이나가 이를 으득 갈았다. 칼릭스는 신경 쓰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꽤 고생했어. 너와의 계약이 해지된 후 소멸을 기다리고 있던 엘리아스를 찾아 누르는 건 꽤 힘들었거든. 어찌나 반항을 하던지, 애먹었다니까.”

그 순간 이나의 이성이 툭 끊겼다.

엘리아스는 오래 산 정령인 만큼 이나와의 계약이 해지되면 소멸하기 전까지 어린 정령들을 돌보며 안식을 취할 거라 말했었다.

그런데 감히, 그런 엘리아스를 건드려?

“이 개자식……!”

이나는 석창을 가득 만들어 칼릭스에게 쏘려고 했다.

그런데 엘리아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 엘리아스!”

[…….]

이나의 애원 어린 외침에도 엘리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나는 공격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칼릭스는 그런 이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셀리나, 너의 그 정이 네가 원하는 바를 망칠 거야.”

“윽……!”

이나가 공격하기를 망설이는 사이 엘리아스가 그녀를 향해 옆에 있던 바위를 날렸다.

이나는 바위를 피했지만 마치 그걸 노렸다는 듯 때마침 이나가 피하는 방향으로 얼음 송곳이 날아왔다.

엘리아스는 근본은 물의 정령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속성의 자연을 조금씩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정령 중에서도 가장 신비롭고, 가장 강한 정령으로 손꼽혔다.

그러니 이나로서는 엘리아스를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칼릭스의 옆에 딱 붙어 마나까지 가져가고 있으니.

“젠장……!”

이나는 주변을 불로 감싸 날아오는 얼음 송곳을 녹여 버렸다.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엘리아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땅에 지진을 일으켰다.

이나는 곧바로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하.”

일정 높이에 다다른 순간 이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엘리아스가 하늘에 바람의 장막을 펼친 탓이었다.

이나는 얼음조각을 하나 만들어내 하늘로 던져 보았다. 그러자 장막에 닿은 얼음이 파슷, 하고 산산조각 났다.

장막 위로 여전히 싸우고 있는 드래곤과 용을 응시하던 이나가 정면에 있는 칼릭스를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봐? 끝을 보자고 했던 건 셀리나, 너잖아?”

칼릭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에 이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그래. 그랬지.”

“네 말대로 오늘 끝을 보자고. 내가 이기든, 네가 이기든 말이야.”

그때 엘리아스가 땅을 뾰족하게 일으켰다. 바람의 장막에 닿을 정도의 높이로.

이나는 그것을 요리조리 피하며 칼릭스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엘리아스가 만들어낸 기둥에 모습이 가려지는 순간을 노려 칼릭스에게 윈티를 보냈다.

윈티는 칼릭스의 뒤편에 서서 몰래 능력을 쓸 준비를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윈티는 엘리아스와 눈이 마주쳤다.

엘리아스가 손을 뒤로 뻗어 윈티를 공격했다. 얼음의 정령인 윈티와는 상극인 불의 구를 날리며.

[꺄악……!]

“윈티!”

이나는 빠르게 날아가 공격을 맞고 날아가는 윈티를 받아 냈다.

꽤 아팠는지 윈티가 훌쩍거렸다.

“괜찮아?”

[괘, 괜찮아요…….]

걱정스럽게 윈티를 바라보던 이나가 칼릭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를 노려보는 이나의 눈빛을 보며 칼릭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이런 걸 바란 거 아냐?”

이나는 대답 없이 이즈가 만들어 낸 물방울을 쥐어 칼릭스에게 던졌다. 공격이라기보단 울분 섞인 화풀이에 가까웠다.

물론 엘리아스는 그조차도 칼릭스에게 닿지 못하도록 증발시켜 버렸다. 그것이 분하고도 안타까워서 이나는 엘리아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엘리아스! 정신 좀 차려 봐!”

“소용없어. 나를 죽이지 않는 한 엘리아스는 풀려나지 못할 거야.”

대답은 칼릭스에게서 들려왔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이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때 칼릭스가 이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손님이 왔나 보네.”

“손님?”

이나가 의문을 표했지만 칼릭스는 대답해 주지 않고 씨익 웃었다. 이나는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되었다.

“엘리아스, 손님을 맞이해 줘.”

칼릭스가 엘리아스에게 말했다. 엘리아스가 어딘가를 보더니 손을 뻗었다.

거대한 물의 기운이 엘리아스의 손에 응집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나가 칼릭스의 시선이 닿았던 곳을 쳐다보았다.

“……! 이 인간들이 진짜!”

이나는 경악에 찬 외침을 내뱉더니 서둘러 땅으로 내려갔다.

엘리아스의 공격이 향하는 곳엔 시현과 도하가 있었다.

***

“현재 헌터들이 빠르게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는 중입니다! 모두 안심하세요!”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시고,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은 이쪽으로 와 주세요!”

헌터들이 병원에서 대피한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급하게 대피소로 온 탓에 시민들은 아직도 현실감 없는 얼굴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나가 칼릭스를 끌고 던전 안으로 들어간 뒤 헌터 협회와 근처 길드에서 헌터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졌다. 한 팀은 시현과 도하를 도와 던전 밖으로 빠져나온 몬스터들을 해치웠고, 다른 한 팀은 시민들을 빠르게 대피시켰다.

그 결과 현장은 빠르게 수습될 수 있었지만.

“유이나는?”

칼릭스와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간 이나는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도하의 질문에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은 도하가 이제껏 본 굳은 얼굴들보다도 더 어두웠다.

그에 도하의 구겨진 얼굴도 펴질 줄을 몰랐다.

“젠장. 하필 거기서 한주원이 나타날 줄이야.”

멀리서 그를 보기만 한 도하는 한주원의 몸 안에 칼릭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반면 시현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한주원이 맞을까?”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한주원에게서 보지 못한 능력이었어.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그림자를 다루는 정도였잖아. 하지만 그 스킬은…….”

“그럼 뭐야. 한주원도 그 칼릭스라는 놈에게서 힘을 빌리기라도 했다는 소리야?”

도하가 눈을 치켜뜬 채 물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나가 위험했다.

두 사람이 허공에서 시선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 천조 길드장님, 청호 길드장님, 여긴 어떻게…….”

시현과 도하가 함께 아란을 타고 달려오자 게이트 앞을 지키고 있던 헌터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도하가 아란의 등에서 내려오며 그에게 물었다.

“몬스터는?”

“간혹 튀어나오긴 하는데, 다행히 지금은 멈췄습니다. 근데 좀 이상해요.”

“뭐가?”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이 어째 공포에 질린 것도 같고, 다 어디를 다쳐서 나오더라고요. 뭐, 덕분에 저희야 처치하기 편하긴 합니다만.”

그 말에 시현과 도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나가 아직 안에서 싸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너, 우리가 나올 때까지 여기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네? 그게 무슨……. 자, 잠깐만요! 길드장님들!”

시현과 도하는 헌터가 말릴 틈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몸이 던전 안으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두 사람이 던전 안으로 들어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용?”

벌겋게 타오르는 붉은 용과 검은 드래곤이 공중에서 싸우는 광경이었다.

그 엄청난 광경에 시현과 도하는 거대한 위압감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마치 재앙과 재앙의 대결 같았다.

두 사람이 하늘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아란이 도하의 옷을 물어서 잡아당겼다.

아란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던 도하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야, 이시현! 뒤!”

시현은 도하가 가리킨 곳을 홱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다가오는 것은 거대한 파도였다. 그냥 파도가 아니라, 일전에 청계천 던전에서 보았던 것만큼 거대한 쓰나미. 이곳은 바다나 호수가 아닌데도.

땅에서 솟아난 쓰나미가 닿은 곳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도하가 아란의 등에 올라타며 시현에게 외쳤다.

“얼른 타!”

시현이 등에 올라타자 아란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쓰나미는 점점 가까워졌다. 아란의 속도가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휘말린다.

그 생각에 시현이 입술을 짓이기고 있을 때였다.

촤아악-

그들을 집어삼킬 것 같던 쓰나미가 돌연 반으로 분리되었다.

횡으로 그어진 바람 때문에.

“미친…….”

그 경이로운 광경에 도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물론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랫부분은 갑자기 솟아난 땅에 가로막혔지만, 잘려 나간 파도의 윗부분이 그들을 향해 내려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두 사람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촤악, 촤악, 촤아악-

파도가 허공에서 바람에 갈기갈기 찢겼다. 그 덕에 잘게 나눠진 파도가 마치 비처럼 쏟아졌다.

쏴아아아-

머리를 때리는 듯 무거운 비였지만 쓰나미를 그대로 맞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한참 그것을 맞고 있던 두 사람은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진짜 못 말린다니까. 설마 따라 들어올 줄이야.”

이나가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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