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149)

“야, 유이나! 괜찮은 거야?”

도하가 얼른 물어 왔다. 호통치듯 큰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서는 걱정이 느껴졌다.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는 꼴을 보니 이나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요. 두 사람은요?”

“우리도 뭐, 덕분에.”

도하가 살았다는 듯 나지막한 한숨 소리와 함께 대답했다.

이나는 두 사람의 몸에 남아 있는 수분을 날려 버린 뒤 시현의 앞으로 다가갔다.

“시현 씨.”

“이나 씨.”

던전 밖에서 어색했던 건 잊었는지 시현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자 이나가 손으로 시현을 막았다.

“잠깐. 그러려고 부른 거 아니에요.”

“그럼……?”

“혹시 마나 포션 가진 거 있어요?”

그 물음에 시현이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마나가 모자랍니까?”

“아뇨. 모자란 건 아니지만 칼릭스를 상대하기엔 부족할 것 같아서요.”

“칼릭스……?”

“저놈.”

이나가 엘리아스와 함께 있는 한주원, 아니, 칼릭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주원 안에 칼릭스가 있어요.”

“그게 사실이야?”

도하가 얼굴을 사납게 구겼다. 당장에라도 칼릭스를 썰어 버릴 듯한 표정이었다.

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현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마나 포션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가 가진 포션을 모두 마신 뒤 이나는 다시 한번 마나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이걸로 60% 정도는 찼나.’

과연 이 마나로 칼릭스를 상대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빠르고 확실한 방법. 사실 <일체화> 스킬을 쓰면 되겠지만…….

이나는 힐끗 시현을 보았다. 그가 했던 말이 그녀를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그 스킬을 써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남은 사람들 심정이 어떨 것 같습니까?”

“저는……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이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때 칼릭스가 내려와 붉은 눈으로 그들을 주욱 훑었다.

“셀리나가 너희를 참 아끼는 모양이야. 마음에 안 들어.”

“나도 너 마음에 안 든다, 이 자식아!”

도하가 언월도를 치켜세우고 칼릭스에게 달려들었다.

칼릭스는 어둠으로 검을 만들어 내 도하의 공격을 막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가볍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도하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그 순간 엘리아스가 도하에게 물 폭탄을 날렸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도하는 물 폭탄을 맞고 뒤로 날아갔다.

이나가 그의 뒤에 푹신한 물 쿠션을 만들어 내 도하를 받아 냈다.

“도하 씨, 괜찮아요?”

“쿨럭! 젠장…….”

도하는 대답 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칼릭스와 엘리아스를 노려보았다.

“저 녀석은 또 뭐야?”

“제 정령이에요.”

“뭐?”

“정확히는 과거에 제 정령이었죠.”

이나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했는지 도하는 입을 다물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시현이 검을 꺼냈다.

“최대한 상처를 내지 않도록 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하지만 무리하진 마요.”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아스에게 상처를 낸다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칼릭스가 코웃음을 쳤다.

“엘리아스는 셀리나가 일생을 함께했던 정령이야. 최강의 정령이라고. 엘리아스에게 상처를 내기 전에 네가 먼저 죽을 텐데?”

“너에게 최강의 정령이 있다면, 이쪽엔 최강의 정령사가 있어서.”

시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가 말한 최강의 정령사가 자신이라는 것을 눈치챈 이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현 씨 말이 맞아.”

이나는 허공에 얼음 송곳을 가득 만들어 냈다. 그것을 모두 칼릭스에게 겨누며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전생에 내가 최강의 정령사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엘리아스 때문만이 아니라고.”

그 말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얼음 송곳들이 일제히 칼릭스를 향해 날아갔다.

검으로 얼음 송곳들을 막던 칼릭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뒤로 훌쩍 점프했다. 그 틈을 노려 시현이 앞으로 훅 달려갔다.

챙-

시현의 검과 칼릭스의 검이 맞부딪쳤다.

챙챙 소리를 내며 한참 서로 치고받고 있는데 위에서 도하의 외침이 들렸다.

“비켜!”

그 외침을 들은 시현이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아란의 푸른 불꽃이 휘감긴 언월도가 칼릭스를 향해 내리꽂혔다.

칼릭스는 검을 양손으로 붙잡고 언월도의 날을 막아 냈다. 찰나의 틈이 생기자 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빈틈!’

시현이 검날에 오러를 휘감고 칼릭스의 옆구리에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다른 쪽에선 이나가 얼음으로 이루어진 날을 날렸다.

두 날카로운 공격이 칼릭스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엘리아스!”

칼릭스의 외침에 엘리아스가 움직였다.

엘리아스는 칼릭스의 주변을 바람으로 에워쌌다. 작은 보호막이었지만 그 위력은 태풍만큼이나 강력했다.

그 탓에 이나의 공격은 물론 시현과 도하마저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바람에 날아간 시현이 낙법으로 간신히 땅에 착지했을 때였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날이 초승달 모양으로 그에게 날아왔다.

시현은 검에 오러를 실어 그것들을 쳐 냈다. 마지막 공격까지 모두 쳐 냈을 때, 칼릭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채앵-

“큭……!”

시현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지금도 엘리아스의 바람이 계속해서 그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시현은 그 바람을 버텨 내야 했지만, 반대편에 선 칼릭스는 반대로 그 바람을 기동력 삼아 시현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시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대로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엘리아스가 그를 보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나 씨는……?’

이나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시현은 잠시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때 이나의 외침이 그의 고막을 강타했다.

“한눈팔지 말고 집중해요!”

시현은 멈칫하고는 다시 칼릭스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때 그의 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파지직-

그것은 마치 스파크가 튀는 듯한 소리였다.

잠시 후.

퍼엉!

엘리아스가 시현에게 날리려 준비하고 있던 물의 구가 터져 버렸다.

다름 아닌 이나가 그녀의 물에 흘려보낸 전기 탓에.

전기를 지닌 물이 몸에 닿으며 엘리아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와중에 이나가 막아준 덕에 밑에 있는 시현에게 그것이 닿는 일은 없었다.

잠시 빈틈이 생겼을 때 이나는 얼음을 이용해 엘리아스를 포박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날아가 외쳤다.

“엘리아스! 정신 차려!”

[…….]

하지만 엘리아스는 이나를 지그시 노려보기만 할 뿐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분노도 분노였지만, 무엇보다 괴로워서였다.

이대로라면 엘리아스를 그녀의 손으로 소멸시켜야 할 테니까.

“지금 엘리아스가 문제가 아닐 텐데, 셀리나?”

“유이나!”

이나가 멈칫하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도하가 초조해하는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언월도가 향하는 곳엔 시현이 칼릭스에게 붙잡혀 있었다.

“시현 씨!”

“워워. 힘 집어넣어, 셀리나.”

이나가 금방이라도 그를 공격할 듯 굴자 칼릭스가 시현의 목에 검날을 드리웠다.

이나는 멈칫하며 얌전히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마음에 든다는 듯 칼릭스가 씨익 웃었다.

“이 녀석, 저쪽에서 죽은 그 녀석이랑 어쩐지 느낌이 비슷하단 말이지. 셀리나는 이런 얼굴을 좋아하나 봐?”

“…….”

“과연 이 녀석도 그 녀석처럼 나한테 죽을 운명일까?”

“그만둬.”

이나가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이 일과 상관없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풀어 줘.”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지.”

칼릭스가 씩 웃더니 냉정하게 명령했다.

“내 앞으로 가까이 와.”

이나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걸어갔다. 그러자 곁에 있던 도하가 그녀를 막았다.

“안 돼. 위험해.”

“…….”

이나는 도하를 가만히 보다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나는 괜찮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도하는 괜히 가슴이 아려 왔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더 이상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나는 도하를 지나쳐 칼릭스의 앞에 당도했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칼릭스는 그녀에게 두 번째 명령을 내렸다.

“엘리아스를 풀어 줘.”

“윈티.”

이나가 윈티를 올려다보았다. 윈티는 망설이다가 결국 엘리아스를 포박하고 있던 얼음을 깨뜨렸다.

챙-

포박에서 벗어난 엘리아스가 칼릭스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이나는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시현은 이나와 제 목에 드리워진 검날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칼릭스가 즐겁다는 듯 미소를 띠며 그런 시현의 목에 드리운 검날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자, 이제 어쩔까? 이대로 죽여? 아니면…….”

칼릭스가 비어 있는 한 손을 움직여 이나의 앞에 내밀었다.

“살려?”

이나는 내밀어진 손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이윽고 그녀의 손이 칼릭스의 손에 닿으려는 찰나, 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나 씨.”

이나는 멈칫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현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현 씨.”

“저 하나 때문에 이나 씨를 희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필요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그때 시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리더니 칼릭스의 검을 맨손으로 잡아 밀어냈다.

그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이나가 경악했다.

“시현 씨! 그만하세요!”

“어쭈. 죽으려고 발악을 하네.”

칼릭스가 코웃음을 치더니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럴수록 시현의 손의 자상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이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칼릭스를 공격했다. 엘리아스의 방어에 가로막히고 말았지만.

하지만 칼릭스의 시선을 잠시 붙잡아 둔 걸로도 충분하다고 시현은 생각했다.

“크윽……!”

시현은 칼릭스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검을 밀어내고 이나를 향해 달렸다. 이나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뒤편을.

“시현 씨!”

경악한 외침이 이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푹-

시현은 타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불길한 검은색 검날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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