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49)

“뭐…….”

칼릭스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의 마력을 잔뜩 들여 만든 드래곤이었다. 저렇게 쉽게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몸이 반으로 나뉜 드래곤은 울음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드래곤을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이나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무덤덤한 얼굴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4분.’

그녀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4분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버티지 못할지도 몰랐다. 여섯 정령과 동시에 <일체화>를 쓰는 것이 생각보다 마나 소모량이 심한 탓이었다.

‘서둘러야 해.’

이나는 시선을 칼릭스에게 고정한 채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나선으로 회전하는 바람의 날이 나타나 칼릭스에게로 날아갔다.

바람의 날은 칼릭스에게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공기를 삼켜 더욱 거대해졌다.

칼릭스는 제 마력을 담은 검은 구를 만들어 내 그것을 파쇄하려 했다.

“이까짓 거……!”

하지만 검은 구가 날에 닿은 순간 갑자기 바람이 흩뿌려지더니 칼릭스의 뺨과 몸 곳곳에 상처를 냈다.

동시에 몸이 뒤로 밀려난 칼릭스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 스킬을 쓰고도 겨우 이 정도야?”

칼릭스는 이나를 비웃고는 길고 큰 대검을 만들어 내 손에 쥐었다.

그는 그 위에 검게 타오르는 흑염을 덧씌우더니 이나를 향해 휘둘렀다.

이나는 제게 날아오는 검은 날을 보며 작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이나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순간 이나의 눈동자가 시린 푸른빛을 띠는 듯했다.

칼릭스가 이질감을 느껴 빠르게 검을 휘둘렀지만 그의 공격은 가로막혔다.

콰가각-

이나의 뒤에서 나타난 빙룡이 그의 검을 물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크윽……!”

칼릭스는 검을 포기하고 불꽃을 감싼 주먹으로 빙룡을 세게 쳤다. 그러자 빙룡은 산산조각이 났다.

칼릭스는 이어서 이나의 목을 쥐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이나에게서 바람이 불어왔다.

휘오오오-

바람은 칼릭스를 밀어내더니 이내 점점 거대해졌다. 칼릭스는 바람을 뚫고 이나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럴수록 손의 피부만 벗겨질 뿐이었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잠시 뒤로 물러났다. 이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쏴아아아-

“……비?”

이나의 기운을 느끼고 방어하려던 칼릭스는 멈칫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나를 돌아보며 코웃음 쳤다.

“이깟 비를 내려서 뭐 하게?”

“이러려고.”

이나의 눈동자에 순간 노란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하늘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르르릉-

“……! 이런.”

칼릭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회색 하늘 사이로 언뜻언뜻 하얀 빛이 보였다.

그는 얼굴을 굳히고 검은 벽을 만들어 내 하늘을 가렸다.

그러자 거대한 벼락이 그 벽을 세게 내리쳤다.

콰과아앙!

칼릭스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벼락의 위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벽이 깨지고 저 벼락이 그를 노릴 터였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칼릭스가 벼락을 막는 데만 급급해하는 그때 이나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비를 왜 내렸을 것 같아?”

“뭐?”

“이러려고.”

이나의 말과 동시에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비의 방향이 대각선으로 꺾이며 칼릭스의 몸에 닿았다.

“큭……!”

칼릭스는 그제야 이나가 왜 비를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빗물에 담긴 전기가 그의 몸에 퍼지고 있었다. 칼릭스의 몸이 감전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렸다.

그 탓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그가 유지하고 있던 벽에 금이 갔다.

결국 벽은 벼락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 버렸고.

콰과아앙!

칼릭스가 다시 벽을 만들 틈도 없이 벼락이 그를 향해 내리쳤다.

“아아아악!”

연속되는 벼락 공격에 칼릭스의 몸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이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공격은 그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칼릭스는 비틀거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웃고 있었다.

“흐……흐흐……. 하하하!”

이나는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좁혔다. 뭐가 더 올 거란 직감 때문이었다.

‘앞으로 2분.’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나는 얼음으로 만든 창을 손에 쥐고 칼릭스에게 날아갔다.

‘이걸로 끝내야 돼.’

하지만 창이 그에게 닿기도 전에 이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게?”

이나는 눈을 치켜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이 온통 새카맸다. 칼릭스도, 땅에 흐트러져 있던 몬스터의 시체도, 하늘도, 그리고 그녀의 몸마저도,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칼릭스가 자신의 눈에 무슨 짓을 한 건가 이나가 생각한 그때,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때? 내 작품이.”

“뭘 한 거야.”

“별거 아냐. 던전에 어둠을 내렸을 뿐.”

“뭐?”

이나가 멈칫했다.

그러니까, 내 눈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라 이 공간 자체를 어둡게 만든 거라고?

이나는 질리는 기분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표정이 보이는 듯 칼릭스가 낄낄 웃었다.

“난 어디 있을까? 한번 찾아봐, 셀리나.”

이나는 칼릭스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서 불을 폭파시켰다. 하지만 칼릭스도 폭파시킨 불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전한 어둠이었다.

“서둘러 찾아야 할 거야. 안 그럼 내가 먼저 널 잡고 말 테니까.”

칼릭스의 목소리를 듣다가 이나는 결국 손에 휘감고 있던 불의 힘을 거두었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것을 본 칼릭스가 의아해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뭐야? 포기라도 한 거야?”

“…….”

이나는 대답 없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처럼.

칼릭스는 그런 이나를 비웃었다.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내가 먼저 다가갈 수밖에.”

이나의 뒤에서 새카맣게 탄 칼릭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나는 그가 나타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칼릭스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그녀의 목덜미에 검을 겨누었다.

“잡았다.”

“아니.”

그때 이나가 눈을 떴다.

“잡은 건 나야.”

“뭐?”

푹-

칼릭스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비수가 그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붉은 선혈이 얼음을 타고 뚝 흘러내렸다.

“쿨럭……!”

칼릭스는 피를 잔뜩 토해 냈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사라지며 주변이 다시 밝아졌다.

이나는 아까와 똑같은 던전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칼릭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있는 곳을 알았냐고? 별거 아냐.”

이나는 제 안에서 떠드는 정령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픽 웃었다.

“자연이 알려 줬어.”

그 순간 칼릭스가 땅으로 추락했다.

털썩-

땅 위에 대자로 쓰러진 칼릭스를 내려다보다가 이나도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

“하아…….”

이나는 땅에 내려오자마자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일체화> 스킬을 너무 오래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한계였다.

이나가 슬슬 스킬을 해제하려고 하는데, 아직 죽지 않았는지 칼릭스가 웃음을 흘렸다.

“흐……. 셀리나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죽게 생겼네.”

“난 네가 죽길 바랐던 적이 없어.”

이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칼릭스가 눈을 크게 뜨다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뭔데?”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네가 나에게 집착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이나가 씁쓸하게 뒷말을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칼릭스는 돌연 허망한 웃음을 흘렸다.

“아니.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일찍 죽었을 거야. 셀리나 너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거지.”

이나는 그 말에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칼릭스가 말을 이었다.

“기억나? 너와 내가 처음 만난 날. 너는 그저 지나가다가 우연히 나를 구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날 너로 인해 온통 흑백이던 세상에서 처음으로 빛을 보았어.”

“…….”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너를 만난 것이 과연 축복이었는지, 아니면 독이었는지 이젠 구분도 못 하겠어. 그만큼 너는 나에게 있어 눈부신 존재였지만, 정작 나는 그 빛을 손에 쥐지 못했으니까.”

“욕심이 과하면 되레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 넌 그걸 일찍이 깨달았어야 했어.”

“셀리나다운 말이네.”

칼릭스는 피식 웃다가 연신 기침을 토했다. 이제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을 느낀 칼릭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억울해. 너는 나의 빛이었는데, 정작 나는 그 빛을 한 번도 받지 못했어. 죽는 지금까지도.”

“…….”

“그러니 셀리나, 나는 억울해서라도 내 빛을 꺼뜨릴 거야.”

“뭐?”

이나가 눈을 치켜떴다.

칼릭스는 씩 웃으며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내 마지막 반항을, 잘 받아 주길 바랄게.”

딱-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그 손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쿠우우우-

이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급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거대한 운석이 땅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이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읊조렸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얼른 이곳에서 나가야 돼.”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게이트를 향한 순간 이나는 굳어 버리고 말았다.

게이트가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칼릭스가 죽었는데도.

혹시나 싶어서 게이트 밖으로 발을 내디뎌 봤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던전 안에 있었다.

“젠장! 이 자식은 죽어서까지……!”

이나는 이를 으득 갈고 운석이 내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나야, 이제 어떡해?]

“어떡하긴. 저거 막아야지.”

안 그러면 저 거대한 운석이 던전에 떨어지면서 던전과 함께 소멸해 버리고 말 테니까.

이나가 운석 앞을 가로막자 볼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제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네! 이대로면 분명 몸에 무리가……!]

“저걸 막지 않으면 그냥 죽어.”

이나가 운석을 향해 양팔을 뻗었다.

“지금은 할 수밖에 없어.”

이나는 아직 하늘 높이 있는 운석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운석이 구름을 통과하자 얼른 비를 내렸다.

쏴아아아-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장대비였다.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물을 틀어 놓은 듯했다.

그 덕에 운석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불길이 약해지며 운석이 물에 젖었다.

“쿨럭!”

그때 이나가 기침을 토했다. 피가 입가를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마나가 바닥났는데도 계속 스킬을 써서 몸에 무리가 온 것이었다.

그것을 느낀 정령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나야!]

“스킬 해제하지 마! 집중해!”

이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눈에 힘을 주며 운석을 응시했다.

이나는 이번엔 윈티의 얼음의 힘을 빌려 운석을 통째로 얼려 버렸다. 그러자 무게를 더한 운석이 더욱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이나는 지난번 동작역 A급 던전에서 몬스터의 바위를 깨뜨렸을 때처럼 물이 얼 때 생기는 팽창력을 이용해 운석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석은 너무 거대해서 쉽게 갈라지지 않았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이나는 벼락을 내려쳐 얼어 있는 운석을 그대로 박살 내려 했다.

그렇게 이나가 힘을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어……?”

이나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나의 눈앞에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정령들이 보였다.

몸이 버티지 못해 <일체화> 스킬이 강제로 풀려 버린 것이었다.

[이나야!]

[이나 님!]

이나는 정령들 너머로 저를 향해 떨어지는 운석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망했네…….”

이나의 입가에 쓴 미소가 걸렸다.

진짜로 망해 버렸다. 이한에게 절대 죽지 않겠다고 그랬는데.

그리고 시현에게도…… 바깥에서 보자고 그랬는데.

“미안하게시리…….”

[정신 차리게, 계약자!]

[이나야!]

정령들이 다급하게 그녀를 깨우려 했다.

하지만 이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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