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시현이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누워 있는 병원 침대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로 보아 이곳은 병실인 듯했다.
시현은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분명 그는 칼릭스와 싸우던 중이었다. 그러다 칼릭스에게 붙잡혔는데, 이나가…….
“이나 씨……!”
그제야 기억이 돌아온 시현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윽, 하고 신음을 흘리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복부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피는 멎었지만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모습이 척 봐도 심한 상처였다.
S급 헌터로 각성하면서 그의 회복력은 무척이나 빨라졌다.
그럼에도 이렇다는 것은 꽤 중상이었거나, 칼릭스의 공격이 그의 회복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는 소리였다.
고통이 꽤 심했음에도 시현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오직 이나를 만나겠다는 집념 때문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현만큼의 중상은 아니지만 얼굴과 팔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도하였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온 시현을 보더니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야, 이시현! 너 미쳤어? 그 몸으로 어딜 기어 나와!”
“비켜.”
시현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자 도하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시현의 팔을 덥석 잡았다.
“넌 환자야. 그것도 중환자. 얼른 돌아가.”
“비키라고!”
시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라면 그 소리를 듣고 방방 뛰었을 도하였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시현을 들어 올리더니 침대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 반동으로 시현이 배를 움켜쥐었지만 도하는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나와 싸우기라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내가 환자랑 싸우는 취미는 없어서.”
“젠장…….”
시현이 나지막하게 욕을 읊조렸다. 그답지 않은 언행이었지만 도하는 이해한다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말이 없던 시현이 조금 이성이 돌아온 목소리로 물었다.
“이나 씨는…….”
“……아직 안 돌아왔어.”
도하가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며 대답했다. 그 말에 시현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가 또 나가겠다고 난리를 치기 전에 도하가 말을 이었다.
“지금 최서준 녀석이 던전 안에 헌터들을 풀어서 찾고 있는 중이야.”
“던전……?”
“게이트가 안 사라졌어. 아직 멀쩡하다고.”
시현이 눈을 빛냈다.
임시 던전의 경우 던전 공략에 성공하면 게이트는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생명체가 던전 안에 남아 있을 경우였다.
그것이 몬스터이든 헌터이든.
즉, 이나가 그 던전 안에서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좀 진정하고 넌 회복하는 데 집중해.”
도하가 말했지만 시현은 그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그에게는 그저 던전 안으로 들어가 이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생각을 눈치챈 도하는 시현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곁에 붙어서 내내 그를 감시했다.
***
이나가 던전에서 실종된 지도 어느덧 5일이 지났다.
그 5일 동안 누구도 이나를 찾지 못했다. 하다못해 그녀의 흔적조차도.
서준은 요 일주일 사이 퀭해진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탐사대에는 A급 탐지 헌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나 씨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참…….”
서준의 푸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도하가 입을 열었다.
“필드는 전부 돌아본 거야?”
“네.”
“땅 밑도 다 뒤져 보고?”
“전투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보이는 장소를 기준으로 반경 100m 아래는 전부 파 보았습니다. 없었어요.”
“바보야. 전부 파 봤어야지.”
도하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사이 병실의 문이 열렸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시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준이 그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갈 생각입니까? 아직 몸도 다 안 나았잖아요.”
“갈 겁니다. 아니, 가야 합니다.”
시현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병실에 누워 있는 시간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 시간 동안 당장 게이트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어서 어찌나 미칠 것 같았는지.
그 마음을 서준 또한 알고 있기에 더 이상 그를 말리지 못했다.
“……꼭 이나 씨를 찾아와 주세요.”
서준의 말에 시현과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장 게이트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칼릭스의 공격 탓에 병원 건물이 잔뜩 손상되어 있었다. 인부들이 손상된 건물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게이트가 있었다. 도하의 말대로 사라지지 않고 꼿꼿하게 버티고 선 채로.
시현은 주먹을 꾹 쥐고 그 앞으로 걸어갔다. 그와 도하를 발견한 헌터가 경례 자세를 취했다.
“본부장님께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게이트 안으로 발을 뻗었다.
그때 근처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들여보내 주세요! 제발……!”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시현이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그곳을 보던 헌터가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유이나 헌터의 가족입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자기도 들여보내 달라고 이 앞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참…… 딱하게도.”
그의 말을 듣던 시현이 헌터들이 이한을 막고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시현이 앞에 서자 이한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이한의 눈은 이미 한바탕 눈물을 쏟아 낸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해 보였다.
이한이 시현을 알아보고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시현 헌터.”
털썩-
그러더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깜짝 놀란 시현이 이한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이며 말했다.
“유이한 씨, 어서 일어…….”
“제발 저도 함께 가게 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이한이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했다.
“이나가…… 이나가 저 안에 있어요. 저 안에 있다고요. 제발 만나게 해 주세요. 제발…….”
자존심 따위는 이미 던져 버린 듯 애절한 목소리였다.
이한을 막던 헌터들이 시현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눈을 감고 주먹을 꾹 쥐었던 시현이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 가시죠.”
“하, 하지만 천조 길드장님!”
헌터들이 당혹스러워하는 얼굴로 그가 말을 철회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현은 단호했다.
“저 안에 몬스터는 더 이상 없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안에 다른 헌터들도 있지 않습니까. 여차하면 그분들이 유이한 씨를 지켜 줄 겁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족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겠습니까.”
헌터들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시현에게 설득된 것이었다.
시현은 멍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이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시죠. 이나 씨를 찾으러.”
“아, 네!”
이한은 눈물을 닦아 내며 시현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시현과 도하, 그리고 이한은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의 풍경이 바뀌자 이한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땅은 움푹 패어 있는 곳이 많았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 까맣게 그을린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엔 몬스터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척 봐도 이곳에서 엄청난 전투가 일어났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전투의 중심에 이나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시현은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이한을 지켜보다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유이한 씨.”
“네.”
“저희는 지금부터 흩어져서 이나 씨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시현은 주변에 있는 헌터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유이한 씨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헌터를 대동해야 합니다. 제가 헌터를 붙여 드릴 테니 무조건 함께 움직이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시현은 멈칫하다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는 이한에게 말했던 대로 헌터 몇 명에게 부탁해 이한의 곁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도하와 함께 전투 현장에서 멀리 벗어났다.
전투 현장은 이미 다른 헌터들이 쥐 잡듯이 찾아보았다고 했으니 현장에서 떨어진 곳부터 수색하기 위함이었다.
“우린 저쪽을 찾아볼게. 속도 빠른 내가 멀리서부터 찾아보는 게 나을 테니까.”
도하가 아란의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이시현.”
도하의 부름에 걸음을 옮기려던 시현이 고개를 돌렸다.
도하는 머뭇거리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유이나는 무사할 거야. 분명히.”
시현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도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유이나는 괜찮다. 괜찮아야만 한다.
그렇게 스스로 되뇌며 도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시현은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는 거지?”
“아오! 이게 진짜!”
도하는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그러더니 됐다면서 아란과 함께 달려갔다.
시현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위로……해 준 건가.”
아무래도 도하가 이나의 말대로 철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이나를 만나면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시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동료분이 마음씨가 따뜻하네요.]
그때 뒤쪽에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시현은 흠칫하며 뒤를 홱 돌아보았다.
‘인기척은 없었는데?’
의아해하며 상대방을 눈에 담은 그는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허리춤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엘리아스. 칼릭스와 함께 있던 이나의 정령이 그를 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