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AI는 30분 회귀권을 사용해 사람을 살리고, 사업을 성공시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며 아이템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다만, 나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왜?
왜 나만 안 되는 건데?
AI가 다시 답을 해 주었다.
[시스템에 설정된 유저의 타임라인은 황궁에 복귀한 스무 살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 타임라인은 외전을 위해 AI 권한으로 부여된 특별 보상입니다.]
나의 본편은 20세부터 시작되고, 어린 시절 서사는 일종의 특별 외전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20살 이전의 미래는 바뀔 수 없었다.
#육아물 여주처럼 어린 시절부터 서사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20세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외전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때문에.
그러니 나는 부모님을 구할 수 없었다.
내 본편은 부모님이 없는 상태로 시작이 되니까.
그것이 내 설정이었고 타임라인 배분의 한계였다.
‘시스템’이 정한 설정이 ‘AI’의 타임라인 편집보다 우선인 것이다.
나는 되물었다.
정말 방법이 없냐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울며 부탁했다.
AI는 침묵으로 긍정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두 분을 살리다 보면 오류가 나지 않을까?
그런 거 있잖아. 신이 감동해서 기적적으로 주인공을 도와주는 거. 어차피 이거 다 가짜고 가상현실이라며. 그런데 안 될 게 뭐 있어?
현실을 부정하며 계속 과거로 돌아갔다.
나는 회귀에 중독되었다.
부모님의 죽음을 마주하고, 그 비극을 막으려 과거를 바꾸는 짓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손에 쥔 모래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처럼, 희망은 잡으려 노력해도 끊임없이 사라져 갔다.
점점 정신이 마모되고 미쳐 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멈추지 못했다.
나중엔 죽음을 막을 방법도 모르면서 회귀했다.
그저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제발 죽지 말아 달라고 울며 애원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3백 번이 넘어갔을 땐 숫자를 세는 것도 잊었다.
[30분 회귀권 사용이 종료됩니다.]
그날도 회귀를 했다.
노트북 앞에서 눈을 뜬 나는 몸을 내려다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여전히 상복을 입고 있었다.
“누님. 문 좀 열어 주세요.”
“대답 없으시면 뜯고 들어갈 겁니다!”
장지문을 막아 놓은 검이 두 동생의 두드림에 요란히 움직였다.
공허한 시선이 문가로 흘러갔다.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착한 동생들은 억지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믿고 있었다.
곧 정신을 차릴 거라고.
하지만 그들이 짐작하는 고통과 내가 겪은 고통은 깊이가 달랐다.
내게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에게는 고작 하루 정도 지났을 뿐이니.
나는 바닥에 쓰러지듯 옆으로 누웠다.
따스히 달궈진 바닥으로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머리칼을 타고 올라온 온기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짙은 피로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나는 결국 받아들였다.
‘살릴 수 없다.’
악착같이 부정해 오던 것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파스스 무너졌다.
무언가 망가졌지만, 어디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변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실의에 빠진 거라 여겼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 죽음을 300번도 넘게 지켜봤다는 것을 빼면 사실이니.
지옥 같던 그 시간은 오직 나만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인 이후 나는 입을 닫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지냈다.
매일 쌍둥이가 와서 내게 억지로 밥을 먹이고, 궁인을 나무라 씻게 했다.
그 덕에 폐인 같은 몰골은 피할 수 있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며칠 간격으로 나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구나.”
1황자인 이복 오라버니는 내 나이가 어리니 충격을 벗어나 잠시 쉴 필요가 있다고 다독였다.
하나, 과거에 그가 아버지와 내 어머니를 독살한 것을 봤기 때문에 그 위로가 같잖았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그가 쏟아 내는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아카데미에 가서 수학이라도 하고 오는 게 어떻겠느냐.”
이 대화의 끝은 늘 출궁이었다.
계속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그가 지겨워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그가 발걸음을 끊었다.
***
이후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다.
나는 침상에 누운 채 둥근 창으로 들어온 햇빛을 바라봤다.
바닥에 그려진 빛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가 손 안 가득 들이찼다.
시간이었다.
손안 가득 찬 따뜻한 햇살은 달빛으로 바뀌다 여명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햇볕으로 타올랐다.
파도의 밀물처럼 아침 햇살이 다시 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내 손을 간질였다.
손가락을 굽혀 바닥을 긁자 손톱 아래로 뜨거운 열기가 고였다.
그 감각이 적린에 긁힌 화약처럼 불을 피웠다.
끝을 결심하는 건 생각보다 충동적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보던 눈동자를 들어 창을 바라보았다.
늘어진 버드나무 잎사귀가 살랑거리며 태양을 가렸다 드러내길 반복했다.
나는 눈을 감고 AI를 불렀다.
‘로그아웃 해 줘.’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로그아웃 해 달라고.’
다시 생각하자 그제야 상태창이 켜졌다.
[정말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응.’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에는 유저를 위한 최적화 남주와 다양한 서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관없어.’
[이대로 플레이를 종료하면 조기 완결로 20억 정산이 취소됩니다. 정말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AI는 당황했는지 계속 알람을 발동했다.
[유저가 로그아웃 하면 타 유저의 타임라인이 꼬일 수 있습니다.]
왜 저렇게 내 로그아웃을 말리나 싶었더니, 후궁으로 들어올 예정이라던 다른 유저들 때문인 듯했다.
죄책감을 심어 주는 AI의 심보가 고약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나는 그 말에 흔들렸다.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내게 ‘30분 회귀권’을 주었던 유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비싼 아이템을 주며 내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에이,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밝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서로 도와야 한다 말하던 유저의 도움을 받았으면서, 정작 나는 남의 타임라인을 망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망설이는 걸 눈치챈 AI가 유혹하듯 이벤트 안내를 시작했다.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에피소드 설계가 어렵다면 시스템이 준비한 이벤트를 이용해 보세요.]
[시스템은 이벤트를 통해 특별 보상을 지급합니다! 봄국 무도회에 열리는 ‘신데렐라 이벤트’, 여름국 연등 축제에 열리는 ‘소원을 말해 봐 이벤트’, 가을국 신년제에 열리는 ‘검투 경기 이벤트’입니다.]
경품에 대한 AI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봄국은 아이템을 주고, 여름국은 유저의 전개를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 주고, 가을국은 거액의 캐시를 준다고 했다.
전개를 바꿀 수 있다는 말에 잠시 흔들렸다.
그 변화를 눈치챈 AI가 여름국 이벤트 설명을 이어 갔다.
[여름국 ‘소원을 말해 봐 이벤트’는 풍등에 소원을 적어 올리면 랜덤으로 당첨자를 선정해 시스템이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이벤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잖아. 난 스무 살 이전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며.’
AI가 칼같이 답했다.
[시스템의 이벤트 보상은 개연성 오류를 감당합니다.]
AI가 조금 더 쉽게 설명했다.
[시스템 이벤트 경품은 설정붕괴가 일어나도, 개연성을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스템이 유저를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한다면, 유저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여전히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살릴 수 있다는 거야?’
[네. 시스템의 선택을 받는다면, 가능합니다!]
AI는 긍정의 의미로 답했으나, 나는 힘이 빠졌다.
시스템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구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수백 번의 좌절을 경험한 뒤라 더 이상 가능성은 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다면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또 희망을 가졌다가 실패한다면 그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AI가 제안한 이벤트를 무시하지도 못했다.
나는 망설이다 눈을 감았다.
언젠가 커뮤니티에서 들었던 대로 연등 축제 날로 타임워프를 했다.
***
“풍등을 날리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무작정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남자는 이상한 사람 보듯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제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는 허리에 달린 주머니를 움켜쥐어 확인하더니, 그제야 웃으며 답해 주었다.
“저쪽 다리로 가 보시오. 풍등도 저기서 사면 되오.”
남자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어두운 강변 위로 홀로 빛나는 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에는 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얽힌 꽃가지는 지붕을 만들어, 아래로 제 꽃을 늘어뜨렸다.
그 등나무 가지 사이로 연등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연등 빛에 물든 등나무 꽃은 은은한 붉은빛을 발했다.
나는 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화려한 다리는 꼭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처럼 느껴졌다.
망설임에 발끝이 곱아든다.
“거, 사람도 많은데 빨리빨리 갑시다.”
툭, 누군가 나를 밀치며 지나쳤다.
축제를 즐기러 온 인파가 엄청났다. 마차 4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만큼 넓고 긴 다리인데도 사람으로 북적였다.
나는 그 인파에 밀려 다리 위를 걸었다.
사람들은 붓을 들고 풍등에 글귀를 적거나, 불붙인 풍등을 하늘로 날릴 준비를 했다.
한참을 걸으니 풍등 가판대가 나타났다.
나는 풍등을 손에 쥐고, 주인에게 동화를 건네 값을 치렀다.
“저 난간에 벼루와 붓이 있으니, 소원을 쓰시려면 가서 쓰시오.”
상인은 가판대 앞을 가로막을까 걱정이 되는지, 쫒아내듯 난간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난간에는 싸구려 붓이 여러 필 놓여 있었다.
붓을 들자 알람이 울렸다.
[이벤트 ‘소원을 말해 봐’를 시작합니다! 풍등에 원하는 소원을 적어 주세요.]
밝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며 이벤트를 안내했다.
[추첨을 통해 소원을 이루어 드립니다. 추첨 결과는 밤 12시에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