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흉부외과의 신선한(3)
"왜, 후달리냐? 막상 사람 뼈에다가 톱질할 생각 하니까 엄두가 안 나?"
마동섭이 이를 씨익 드러내며 웃었다.
……늘 그렇지만, 대사와 표정이 어우러지니 살벌하기 짝이 없군.
"제가 해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1년 차 때 스터노토미(sternotomy, 흉골절개술) 하는 건 배워야 돼. 아직 1년 차 시작한 건 아니지만 특별히 시켜 줄게! 내가 다 뒤에서 봐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흐흐."
그렇게 말하는 마동섭의 표정은 신나 보였다.
저번에 나에게 흉관 넣는 것을 가르칠 때와 똑같은 표정이다.
내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일이 어지간히 즐거운 모양이다.
"마침 내일 환자는 minimal incision(최소 침습)으로 안 하고 full median sternotomy(전체 정중 흉골 절개술) 해서 진행할 거니까, 좋은 기회잖아!"
마동섭의 말대로다.
내일 첫 수술은 클래식(classic, 기존의 방식)하게 절개를 하는 관상동맥 우회술.
나 같은 초심자가 스터노토미를 배우고 직접 해 보기에 좋은 케이스다.
그동안 마동섭은 나를 수술실로 데려가 몇 번 스터노토미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 준 적 있었다.
"뭐, 쫄리면 관두든가. 하기 싫은 거 굳이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내 적극적인 대답에 마동섭은 씨익 웃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배움은 빠를수록 좋다.
만약 마동섭 선생님이 제안하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시켜 달라고 졸랐을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니까.’
이제 나는 <인턴 신선한>을 벗어나 <흉부외과 신선한>이 되어야 한다.
나는 마동섭이 제안하는 고속 트레이닝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그런데 내일 수술받을 환자는 어떤 환자 말씀하시는 거죠?"
"차트 같이 볼까?"
딸깍―
마동섭은 모니터 위에 차트를 띄웠다.
곧 우리 두 사람의 눈길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김덕상
M/49
DM (+)
Stable angina with LM, 3VD
Current smoker, 30PY
아버지 MI 과거력
"아, 이 환자분…… 세진병원에서 전원 오신 환자죠? 아까 제가 처방 냈었는데."
나는 환자의 병명을 바로 알아보았다.
미숙했던 인턴 초기와는 달리, 나도 이제 환자 차트를 보는 게 익숙해졌다.
"Stable angina with LM, 3VD…… 협심증…… 코로너리 아터리(coronary artery, 관상동맥) 주요분지들이 좁아져 있다는 얘기죠?"
"그래. 앞으로 여기 코로너리 파트에서 이런 환자들은 수도 없이 많이 볼 거다."
마동섭은 환자의 CAG(coronary angiography, 관상동맥 조영술) 영상을 옆 모니터에 띄워 놓고, 나에게 이것저것 묻고 설명해 주었다.
코로너리 아터리.
즉 <관상동맥>.
이름의 유래가 퍽 재미있다.
혈관의 모양이, 거꾸로 뒤집어 놓은 임금님의 관 모양이라서 관상(冠狀)동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언뜻 보면 사슴의 뿔 모양 같기도 하고…….’
여러 갈래로 뻗어진 혈관들이 심장을 감싸고 있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크게 좌측 / 우측 관상동맥으로 구분되는 이 혈관은, 심장근육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약 이 관상동맥이 좁아지고 딱딱해진다면?
큰 문제가 생긴다.
심장에 가는 혈류가 줄어들면 마치 옥죄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협심증>이라고 한다.
이 상태가 심해져, 심장근육 일부가 손상되어 괴사되면?
빠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질환, 바로 <심근경색>이다.
대한민국의 사망 원인 2등이 심장질환인 만큼, <협심증>은 매우 중요한 질환이다.
"왜 환자가 이 지경이 돼서 응급실에 오게 됐는지, 위험인자가 보이지?"
나는 모니터 화면 속 차트를 찬찬히 살피며 대답했다.
"환자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나오네요. 가족력도 있고, 게다가……."
장기적인 흡연.
30 pack―year는 하루 한 갑을 기준으로 30년이라는 뜻이다.
계산하면 219,000개비.
즉, 거의 평생에 걸쳐 줄담배를 피운 경우다.
"흡연도 상당히 오랫동안 많이 하셨네요."
"맞아. 그리고 아까 얘기 들어 보니까, 병원에 처음 데리고 온 게 채권추심업체 직원이라더라."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동섭은 턱을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 빚 받으러 온 사람이 환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는 거야. 아마 채무에 시달리는 환자인가 봐."
흡연.
유전.
스트레스.
동맥 경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들이다.
안타깝게도, 이 환자는 3박자를 고루 갖추었다.
게다가 환자는 당뇨를 가지고 있었으니 더욱 혈관이 망가지기 쉬운 상태였다.
"그럼 여기서 문제."
마동섭은 갑자기 두꺼운 팔뚝으로 팔짱을 끼더니 퀴즈를 냈다.
"왜 이 사람은 스텐트 시술을 받지 않고 곧바로 수술을 받기로 했을까?"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다고 모두 수술을 받는 것은 아니다.
수술보다 간단한 PCI 시술을 통해서 해결되는 환자들도 많다.
하지만, 이 환자는…….
"레프트 메인(LM, left main, 좌측 주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고, 세 혈관을 모두 침범해 있어서 아닌가요? 여기, 여기, 여기가 좁아진 것 같은데."
나는 관상동맥 조영술 영상에서 좁아져 보이는 부위를 하나씩 짚었다.
꿈틀, 마동섭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틀렸나?
그런데 그 입 모양이 곧 미소로 바뀌었다.
워낙 얼굴이 험악해서 웃는 것과 찡그리는 게 구분이 안 간다.
"오~ 캐비지(CABG, 관상동맥우회술) 인디케이션(indication, 수술적응증)도 바로 맞히고, CAG도 어느 정도 볼 줄 알고, 아주 좋아! 솔직히 이건 대답 못 할 줄 알았는데."
"코로너리 파트니까, 미리 좀 찾아봤습니다."
마동섭은 기분이 좋은 듯 내 팔을 툭 치더니 말했다.
"아무튼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는 환자니까 잘 봐야 된다. NTG(Nitroglycerin, 관상동맥 확장제)랑 헤파린(heparin, 혈액응고 방지제) 걸어 두고! 아이씨유 자리 없어서 병동으로 올라오는 거야."
"네, 수술은 그럼……?"
"내일 아침 첫 수술. 밤사이에 페인(pain, 가슴 통증) 걸리면 응급 수술 해야 될 수도 있으니까 잘 봐야 된다. 페인 걸리면 바로 아이씨유 당직한테 연락하고!"
"네."
"이제 1년 차니까 이런 환자 볼 수 있어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직 1년 차 생활은 시작도 안 했지만…….
마동섭은 이미 나를 레지던트처럼 대했고, 나 또한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잘 따라와라! 흉부외과 치프로서 하드 트레이닝 시켜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으니, 마치 스파르타 정예병이 되어 믿음직스러운 조교에게 훈련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김덕상 환자는 보호자인 노모와 함께 있었다.
"어미가 뭐랬냐. 진작 담배 끊으랬지."
"알았어……."
"호강시켜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자꾸 어미한테 걱정만 끼치고 그래."
"미안해요……."
"그나마 내 말대로 보험 안 깬 게 어디냐. 어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했냐, 안 했냐. 사업이 망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 했지."
"알았다니까……."
"주식인지 뭔지 핸드폰 좀 그만 보고."
마치 아이처럼 혼나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수술 후 중환자실 입실 동의서를 받기 위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 우리 애 혼 좀 내 주세요."
<우리 애>.
할머니는 50에 가까운 김덕상 환자를 그렇게 불렀다.
부모님들에게 자식은 몇 살이 되어도 ‘애’일 수밖에 없다고 그랬던가.
"우리 애 아빠도 심장마비로 그렇게 세상 떠났는데……."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김덕상 환자에게 말했다.
"수술 잘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환자분도 안정을 취하고 계세요."
"예……."
"어머니 말씀대로 지금부터 담배 끊으시고요."
나는 동의서를 받은 뒤 병실에서 물러났다.
왜일까?
이 환자에게는 유독 신경이 쓰인다.
내일 내 손으로 직접 흉골을 절개할 사람이라 그런지…….
그게 아니면, 일종의 ‘촉’이라고 해야 할지.
‘……그러고 보니 미래가 안 보인 지도 꽤 되었네.’
미래가 보일 때에는 항상 사고가 일어났기에, 나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이 환자도 아무 일 없이 퇴원할 수 있기를 빌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니, 웬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히스테릭한 표정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아아아~ 멘탈 나갈 것 같아!"
인턴 동기, 신상미.
나와 같은 픽스(fix)턴이기에, 수술방에 몇 번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을 한 채 병동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왜 그래?"
"와, TS(흉부외과)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며칠 전에 알게 되었지만, 신상미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리고, 성격이 꽤나 직설적인 편이었다.
처음에는 좀 적응이 안 됐지만, 의외로 대화하기 나쁜 상대는 아니었다.
내가 말수가 적은 데 반해, 신상미는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타입이었다.
"흉부외과 지원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한 거 아니었어?"
"그동안 서저리(surgery, 외과) 몇 번 돌아봤어서 좀 만만하게 봤었거든? 그런데……."
신상미의 목소리가 갑자기 다시 히스테릭해졌다.
"흉부외과 수술방은 뭐가 달라도 좀 많이 다르더라고! 이렇게 헬일 줄 알았으면 안 왔지! 안 그래?"
나는 픽 웃었다.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서저리 과에 비해서 흉부외과 심장 파트에서는 피도 유난히 많이 보게 되고, 수술시간도 평균적으로 길다.
"어제는 밸브(valve, 판막) 수술을 들어갔었어. 그런데 갑자기 Aorta(대동맥)에서 피가 튀는데, 하늘까지 분수처럼 튀었다니까! 너 무영등 피범벅 되는 거 본 적 있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우리 몸속의 혈액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인체의 혈관을 모두 펼쳐 놓으면 96,000km로, 지구 두 바퀴가 넘는 길이.
혈액이 그 혈관을 도는 데는 단 1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루의 심장 운동량을 계산하자면, 30톤의 무게를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올려 보내는 만큼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수술 도중 우리 몸에서 혈압이 가장 높은 대동맥(aorta)에서 피가 튄다면…….
<파악―!>
……그렇게 천장까지 피가 튀는 일도 가능하겠지.
신상미는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내가 여기서 4년을 버티고, 전문의를 딸 수 있을까? 나는 수틀리면 다음 달에 바로 흉부외과 런(run)할지도 몰라. 적성에 안 맞으면 빨리 튀는 게 낫지 않겠어?"
런이라…….
쉽게 말해 그만둔다는 소리다.
이미 합격한 과가 있는데도, 도망치는 것이 가능하냐고?
당연히 가능하다. 실제로도 가끔 이루어지는 일이니까.
인턴점수 C턴을 받은 뒤, 인턴점수 리셋을 위해서 중간에 그만둔 동기까지 있었다.
"지금 그만두면 1년 동안 뭐 하려고?"
"몰라, 해외여행이나 실컷 다니지 뭐~"
그렇게 말하며 깔깔 웃는다.
역시 신상미.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성격이었다.
신상미는 자신의 미래와 커리어에 대한 불안함이 전혀 없는 듯했다.
"마음대로 해. 나는 적성에 잘 맞거든."
"피가 천장까지 튀고, 12시간짜리 수술이어도?"
"그래서 더 재밌는 거지."
"와아아…… 너 역시 소문대로네…… 얼굴만 보고 한번 꼬셔 보려고 했는데 무섭다, 야."
신상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별로 자기 말에 무게를 두지 않고 내뱉는 타입이었고, 나도 그 농담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나는 시계를 슬쩍 본 뒤 의자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수술실."
"이 시간에?"
"내일 아침 수술에 스터노토미 하기로 했거든. 따로 부탁해서 스터넘 쏘(saw, 톱) 좀 만져 볼 수 있을까 해서."
"와, 열정 무엇? 너 진짜 수술 좋아하나 보네."
당연하지.
나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병동을 나섰다.
신상미와는 달리, 나에게 흉부외과 심장 파트의 모든 일들은 새롭고 즐거웠다.
‘이 일을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지?’
나는 오히려 신상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심장 수술에 정식으로 참여하는 잊지 못할 경험을 위해 수술장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