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첫 폐건물. 4
어? 어...?
ㅡ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ㅡ 헐. 대박 소름 돋아. 뭐야 저거?
조심스럽게 지하실 입구를 손전등으로 비추자 거대한 몸집의 그림자가 벽에 비추어졌다.
벽의 반을 잡아 먹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귀는 뾰족하게 서있었고 발톱은 아주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다.
해괴망측하게 생긴 그 정체는 네 발로 걸어서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발짝... 또 한발짝... 문을 넘어서자 비로소 그 정체가 드러났다.
하아아악!
길 고양이.
그나저나 새끼 고양이같은데 한참을 못 먹었는지 삐쩍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나는 정체가 고양이란걸 알아챈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바닥에 풀썩 앉아버렸다.
“어휴... 이젠 고양이까지 나를 놀래키네.”
ㅡ 난 애초에 고양이 인줄 알고 있었는데.
ㅡ 이게 공포영화의 흔한 피해사례임. 네발로 다니는 귀신이 세상에 어딨냐?ㅋㅋ
ㅡ 근데 저 고양이 아까 죽은 고양이들 친구 같지 않음?
채팅창을 확인하고 고개를 다시 돌려보자 하악질 하던 고양이는 금새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 고양이 사체가 있었던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손전등으로 비추자 싸늘하게 죽어버린 사체들 옆에 누워 열심히 그 몸을 핥아대고 있었다.
‘쟤가 어미인가...’
자세히 쳐다보니 죽은 고양이들이 하나같이 삐쩍 말라있다.
아마 어미와 새끼들은 밥을 한참동안 먹지 못해 죽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 이유 말고도 길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쓰레기를 주로 먹다보니 오래 못 산다고 듣긴했다.
오래 살아봐야 7년이라나.
애기수준의 약한 소화기관으로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섭취하니 몸이 버틸 리가 있나...
나는 혹시 몰라 남은 포의 포장지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이 포는 염분을 제외한 깨끗한 식품이라고 쓰여있다.
포를 잘게 찢어 먹기 좋게 던져줬고, 고양이가 관심을 갖는다.
던져주는 그 와중에도 털을 바짝 세우고 하악질을 해댔지만, 이내 배가 많이 고팠는지 그 포를 열심히 주워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채팅창의 알람이 계속 울려댔다.
ㅡ 유튜버 양반. 고운 마음씨에 반해서 구독 박습니다.
ㅡ 나도요. 근데, 우리 집도 고양이 키우는데 쟤는 새끼라 밖에서 혼자 못 살지 않을까?
ㅡ 저 고양이는 누가 키우다 버린 것 같은데?
어? 이제와서 보니 털, 발톱상태도 그렇고 사람의 손을 많이 탄 흔적들이 있다.
그럼 애완용으로 길러지다 야생에 버려졌다는 건가?
ㅡ 안되겠네. 운명이다. 유튜버 양반이 키워야 할 듯.
ㅡ 냥집사가 된 걸 축하드립니다.
미쳤냐? 나는 고양이를 키울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하루 세끼 먹는것도 버거운 현실인데, 고양이까지 들인다면 엄마의 등골이 점점 더 휠 것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고양이를 키울수 있는 형편이 안돼요. 형님들.”
그때.
그렇게 하악질 하던 녀석이 어느샌가 내 옆으로 다가와 부비부비를 시작했다.
시바... 뭔가 잘못되가는 느낌이다.
ㅡ 이미 간택당함.
ㅡ 잘 보셈. 저 고양이 유튜버 양반 집에 갈 때 무조건 쫓아감.
“형님들. 그럼... 키우는 건 안 되고, 제가 이 고양이 가족들 잘 묻어주고, 밥을 좀 챙겨...”
그때.
띵동.
[ 선녀보살 님이 100, 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키우세요. 고양이는 강한 퇴마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헉! 뭐야. 공이 몇 개야 이거?
일, 십, 백, 천, 만... 십 만원!?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 사람 정체가 뭐지!?
뭐하는 사람인데 다짜고짜 와서는 십 만원이라는 거금까지 주고, 키우라고 강요하는거야?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선녀보살에게 얘기했다.
“헉! 감사합니다 형님. 당연히 제가 키워야지요. 제가 사실 고양이 체질이거든요.”
ㅡ 그런 체질도 있나요?
ㅡ 유튜버 양반. 태세 전환이 우디르 급일세.
ㅡ 그럼 집사 확정이니 이름이나 예쁜걸로 좀 지어주세요.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녀보살님 혹시 무당이세요?”
라는 말에 선녀보살은 알수 없는 눈웃음으로 채팅에 답했다.
ㅡ ^^
뭔가 이상하고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핸드폰에 찍힌 후원금을 확인하고,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진짜 무당일까.
아니면 컨셉 확실하게 잡았네.
띵동.
[ 선녀보살 님이 1,000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고양이 가족들좀 잘 묻어주세요. 그리고 뒤에 조심.
“?”
그 말에 아무생각없이 뒤를 천천히 돌아보는데...
철컥.
쿵.
탁!
“와악!”
시청자 선녀보살의 알람창에 마치 반응이라도 해주듯 이상한 현상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나는 기겁하며 1층 로비로 도망쳐나왔다.
“휴...”
그리고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데...
내 눈앞에 고양이 다섯 마리를 담을 큰 박스가 떡하니 놓여져있다.
마치 누가 가져다 놓은것처럼 아주 가지런하게.
“누가 이런 걸... 그나저나 흙을 파낼 삽도 없는데...”
하지만 그 삽 역시 고개를 조금 돌리니 로비 문 옆에 떡하니 기대고 있었다.
“와씨. 어떤 변태놈이 다 가져다 놓고 cctv로 지켜보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지하실에 다시 얼른 들어갔다.
그리고 초 스피드하게 고양이 가족들의 사체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렇게 다섯 마리까지.
남은 새끼 고양이는 무슨 이유인지 옆에서 계속 서럽게 울어댔다.
하지만, 다행히 공격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내 진심을 알아주는듯이 말이다.
이거 뭔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그저 신기함의 연속이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아주 좋은 자리에 열심히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다른 동물이 해꼬지하지 않을정도로 깊게.
한참 고양이 가족들을 묻어주고 있을 그때.
저 멀리서 두꺼운 철문을 건드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 누구에요?”
흙을 파내는 삽 소리가 들렸는지, 나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내게 큰소리로 물어왔다.
그 사람은 고개를 쭉 내밀어 나를 유심히 보더니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어? 이자식 이거. 너 여기 왜 또 온거야 인마!”
김형사님이다.
나는 잽싸게 방송을 종료했다.
김형사님은 금새 내게 다가와 내 볼을 세게 꼬집었다.
어찌나 세게 꼬집었는지 볼이 새빨개질정도로 열이 달아올랐다.
“아아... 형사님 잠깐만요.”
김형사님은 내 손에 들려진 삽과 비닐봉지, 그리고 움푹 파인 땅까지 유심히 보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금새 내 손을 봉쇄하고 소리치며 물어댔다.
“너 뭐야 이 새꺄. 여기 뭐 묻고 있었어?”
나는 겨우 고개를 틀어 고양이들의 사체를 가리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고양이에요.”
그때.
내 옆에서 따라나온 새끼 고양이가 어느새 내 편이 되어 김형사에게 공격태세를 갖췄다.
하아아악.
“어우. 깜짝이야. 얜 또 뭐야?”
“어... 지하실에서 만난 고양이인데요... 괜찮아. 쥐포. 그만해. 떽!”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별명이었다.
고양이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놀랍게도 안정을 되찾았고, 얌전히 앉아있기까지 했다.
김형사님이 얘기했다.
“방금 만났다더니 이름까지 있어? 쥐포? 대구포랑 육포는 어딨는데. 내가 지금 너랑 말장난 할 군번으로 보이냐?”
“아니에요. 진짜예요. 방금 지었어요.”
0.1초 만이지만.
김형사님은 나를 무섭게 째려보더니 잡았던 손을 슬슬 놓아주며 얘기했다.
“얼른 집에 돌아가. 다신 오지마. 다음에 만나면 그땐 처넣는다.”
나라고 여기가 좋아서 왔겠어.
솔직히 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냈으니 다신 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직 묻어주지 못한 두 마리를 쳐다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그럼 이 나머지 두 마리만 마저 묻어주고 가면 안될까요?”
김형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니. 이 새끼가, 어른이 한 번 말하면...”
하지만, 어미고양이와 나를 쳐다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얘기했다.
“어휴... 얼른해 그럼.”
그렇게 눈으로 보아도 고운 흙과 나무들, 그리고 정면에서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까지.
나는 고양이들을 다 묻어준 고운 흙을 꾹꾹 밟으며 새끼 고양이에게 얘기했다.
“쥐포야. 네 가족들 좋은데 갔을거야. 이제 너는 맘 놓고 행복하게 살아.”
쥐포는 그새 내게 다가와 머리를 부볐다.
마치 고맙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처럼.
잠시 후. 나는 김형사님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형사님. 여긴 왜 오셨어요?”
“왜 오긴 인마. 조사 마무리 하러 왔지.”
“아... 그럼 범인은 잡힌건가요?”
“범인은 무슨. 자살인데 범인이 어딨어? 그나저나 쪼꼬만게 자꾸 뭘 물어. 묻어줬으니까 얼른 집에나 가. 이녀석아.”
김형사님은 무방비의 상태인 나에게 갑자기 꿀밤을 쥐어박았다.
하지만, 그 꿀밤은 그저 허공을 가를뿐이었다.
어찌나 세게 때리려했는지 옷에 스쳐 바람소리까지 들려왔다.
휘익.
“아쭈? 피했어?”
김형사는 순간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도 움찔했다.
어. 어떻게 피했지?
그때. 다시 한 번 벌떡 일어서 저 멀리 떨어졌다.
김형사님의 다음 동작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난 급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형사님. 그럼 화이팅하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급하게 인사를 건네고 후다닥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가 힐끗힐끗 뒤돌아보는 모습에는 허리춤에 양 손을 얹고 어이없는 표정을 한 김형사님이 동료형사와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
집에 가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피했지. 마치 운동선수 같은 움직임이었다.
사실 내가 피하려고 했던건 아니었다.
그럴만한 신체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사람의 좌우 시야는 180도~ 최대200도까지 범위를 식별할수 있다지만, 코 앞에서 휘두르는 주먹질도 피하지 못했던 나였다.
굼벵이. 나무늘보. 이 단어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별명이었으니까.
순간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나는 핸드폰에 있는 스톱워치를 켰고,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를 몇 번했다.
정면 내 시야에 들어오는 저 가로등까지 약 100m.
스톱워치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는 그 거리를 있는 힘껏 질주하기 시작했다.
주둥이의 화려한 이펙트음과 함께 바닥에 깔린 흙이 사방에 흝어지고 먼지를 일으켰다.
그럼 과연 몇 초 걸렸을까?
나는 핸드폰에 있는 초 시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10. 91초!?
이런 시부랄.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
나는 입을 틀어막고 등을 타고 오르는 소름을 만끽했다.
한참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주먹을 하늘 높이 어퍼컷을 날리고 있는 그때.
내 옆에 그림자가 조용히 드리워졌다.
“너 언제 따라온거야?”
쥐포. 정말 따라와버렸다.
나는 한참을 쥐포를 바라보며 벙쪄있었다.
“이런 경우가 있는거냐. 뭐야 도대체 오늘?”
고양이가 그것도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이렇게까지 가까워질수 있는 동물이였던가?
“너 가족들 묻어준거 고마워서 그러는거야? 그러지 않아도 돼. 당연한 거니까.”
나는 손짓으로 이제 그만 가보라고 훠이훠이 소리까지 내며 손을 휘저어보지만, 이녀석 갈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 자리에 그대로 얌전히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한발짝 움질일때마다 같이 움직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나는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고 저 멀리 보이는 집까지 대충 거리를 계산했다.
“100m... 200m... 300m... 대충 한 450m?"
원래대로의 내 신체능력이라면 이 거리를 걸어서 가는데만 걸리는 시간은 걸어서 10분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나는 쥐포를 바라보면서 씩 웃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쥐포. 너 우리집까지 따라오면 진짜 가족이다!”
그렇게 쥐포와 나의 450m 장거리 달리기는 시작됐다.
쥐포는 역시나 고양잇과 답게 낼수 있는 최대 속도 48km를 자랑하며 내 뒤를 따랐다.
마치 강아지처럼.
그리고 마침내 도착하여 결과를 들여다 봤을땐 함박웃음이 터져나왔다.
“와. 씨!”
무려 41.44초라는 인생기록.
게다가 숨도 그리 헐떡이지 않고 있는 내 몸을 확인하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운동쪽으로 가야되나? 육상? 아... 조금만 일찍 이 능력을 부여받았으면 학교생활도 아주 편했을건데...’
학교...?
문득 학교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나는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얼굴에는 심하게 그늘이 지기 시작했고 기분까지 축 늘어지기까지 했다.
그렇다.
내일은 학교 가는 날.
지옥마귀같은 그녀석들의 얼굴을 봐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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