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9화 (19/225)

귀목산의 무덤. 9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다급한 나머지 그 짧은 순간에 열 번은 더 중얼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전등까지 꺼버렸다.

아무도 없는 이 고요한 뒷산에서 누군가의 얼굴이라도 마주한다면 무조건 기절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려 새벽 3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다.

몸도 지칠 만큼 지쳤고, 험한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체력도 많이 빼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한번 구덩이 같은 곳에 빠진다면 나올 자신이 없었다.

그때.

하아아악.

다가오는 그 발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쥐포가 성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쥐포를 진정시키기 위해 쓰다듬었다.

그리고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하지 마. 하지 마. 제발.”

사람을 좋아하는 개냥이라 불리는 우리 쥐포였다.

학교를 갈 때도, 동네 슈퍼를 갈 때도 나를 졸졸 쫓아다녔지만, 어떠한 사람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아. 단, 나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하지만, 저 앞에 있는 정체 모를 저것은 나한테 해를 가하지는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포가 이렇게 털을 바짝 세운다는 것은...

순간.

나는 내 머릿속으로 앞에 보이는 저것의 정체를 거의 확정 짓다시피 했다.

“시발... 저건 사람이 아니라 귀... 귀신이다.”

솜털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이마에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눈앞의 저것이 귀신이라고 확정을 지은 데에는 한 가지 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지금은 새벽 3시가 다 돼가는 시간.

시청자들도 분명 나와 함께 산을 올라왔기 때문에 보았을 것이다.

이 등산 길은 건장한 성인 남자도 오르기가 굉장히 벅찬 길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시간에 ‘손전등’ 하나 비추지 않고 여길 오다니고 있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것만으로도 그 정체가 귀신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거침없이 소리가 커지더니... 결국.

그 정체는 내 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워졌다.

그런데... 귀신이 아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 여기서 뭐 하세요?”

손전등으로 비춘 그곳엔 아까 시청자가 말했던 정말 그 옷차림의 남자가 서있었다.

흰 반팔 티에 청바지의 남자.

나도 모르게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추자 눈이 부시는지 손바닥으로 가리기까지 했다.

어. 정말... 사람이 맞는데...?

한참을 멍하니 그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자 상대방 쪽에서 대답을 해왔다.

“아. 운동 중이라서요...”

운동 중이라고?

이 새벽 3시에...? 불빛 하나 없는 이 야산에서?

머리가 복잡하다.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이지? 운동이라니 저건 또 무슨 개소리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채팅창이 또 움직이기 시작했다.

ㅡ 내 말이 맞잖아요. 흰 반팔 티에 청바지. ㅅㅂ

ㅡ 대박이넼ㅋㅋㅋ 잠깐 잠들었는데 레전드 찍고 있었네 ㅋㅋㅋ

ㅡ 근데 저거 진짜 사람 맞아? 아니 이 새벽에? 미친놈 아냐 저거?

ㅡ 비제이님. 혹시 저 사람한테 술 냄새 나나 한 번 맡아봐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도저히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 밤중에 손전등 하나 없이 여길 오겠는가.

가뜩이나 여긴 운동기구 하나 없는 야산이다.

무슨 운동을 하러 왔다는 말인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다리가 개다리춤을 추듯 요동쳤지만, 이를 꽉 깨물고 용기를 냈다.

킁킁.

하지만, 술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술 드셨나요?”

눈부셔하는 남자를 위해 얼굴만 식별이 가능할 만큼 옷에 맞춰 손전등을 비추고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남자.

왠지 모르게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다.

아니. 감정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나는 남자의 눈을 자세히 관찰했다.

“...”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남자의 눈은 마치 누군가에게 홀린 듯 혼이 빠져나가있는 듯한 같은 느낌을 하고 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이 남자...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얼굴을 가리고, 눈동자만 치켜올려 내 뒤에 있는 느티나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눈 깜빡임 없이 말이다.

남자는 뜸을 한참 들이고서 내게 대답했다.

“아니요...”

남자에 대한 이상한 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대답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서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의 남자는 가만히 서서 축 늘어진 몸을 억지로 버티고 있는 듯했다.

ㅡ 눈 돌아간 거 봐라. 저 새끼 약 빤 거 같은데?

ㅡ 헐... ㅇㅈ 무슨 죽은 생선 눈깔 같네. 시발 소름 돋아.

ㅡ 아니. 무슨 사람이 사람 눈을 보고 대화를 해야지. 엉뚱한 데를 쳐보고 있노...

ㅡ 저러다가 갑자기 칼이라도 꺼내는 거 아니냐? 비제이. 도망가라. 괜히 뭔 일 날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공포감에 사로잡혀 굳어버렸다.

도저히 도망칠 여유가 없었다.

혹시나 저 사람이 그런 마음을 먹고 왔다면 내가 움직이는 즉시 반응을 보일 것 아닌가.

그래서, 오히려 주먹을 꽉 쥐고 온몸에 힘을 잔뜩 불어넣은 채로 있었다.

혹시나 나를 위협하거나 압박하려 든다면 더 빠른 반응 사격으로 남자를 구속하기 위해서였다.

쫄보같은 소녀 마음은 몰라도 체력과 전투능력은 자칭 월드클래스니까.

그때.

갑자기 남자가 몸을 움직였다.

순간 흠칫 놀라 뒷 발로 몸을 지탱하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남자는 나에게 허리가 반이 접히도록 고개를 푹 숙였다.

뭐랄까.

어깨는 그대로인데 목만 풀썩 떨어진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갈게요...”

뭐야? 그냥 가는 거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몸에 힘이 풀린다.

“후...”

정말 희한한 건 그런 상황이 돼버리니, 오히려 내가 청개구리 같은 짓을 하게 된다.

이 새벽에 불빛 하나 없이 혼자 내려가는 저 남자가 신경 쓰인 것이다.

여기는 길이 워낙 험한 야산이 아니던가.

혹시나 손전등 없이 이 가파른 길을 내려가다 사고라도 난다면 저 사람의 운명은.

그리고 남은 가족들은 얼마나 슬픈 삶을 짊어질까 하는 오지랖이었다.

나는 잽싸게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그러자 남자가 천천히 뒤를 돌아 나를 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아닌 느티나무를 쳐다봤다.

찜찜하긴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물었다.

“손전등도 없이 내려가시는 거예요? 하나 남은 거 있는데 드릴게요.”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내게 답했다.

“괜찮아요...”

그 대답을 남기고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났다.

마치 이곳을 밥 먹듯이 드나들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나는 차마 그 남자를 두 번 잡지 못했다.

그 남자의 행동과 지금 이 상황의 현실을 되짚어봤을 때 자꾸 생기는 의문점과 그로 인해 생기는 심각한 공포감 때문이었다.

ㅡ 야 이 미친 비제이 놈. 그걸 왜 잡아. 너도 귀신 홀리고 싶냐?

ㅡ 근데. 저 사람 진짜 손전등 하나도 없이 그냥 내려가는 거냐? ㄹㅇ 상남자네 ㅅㅂ

ㅡ 조심해라. 진짜 저 앞에서 숨어서 너 기다리고 있음 어떡하냐 ㅋㅋㅋ

ㅡ 경찰 불러줄까? ㅅㅂ 내가 더 무섭네

나는 남자가 내려가기 시작한 후로. 정확히 10분.

그 10분을 더 기다렸다.

사람이라는 게 확실하게 밝혀졌지만, 혹시나 모르는 거니까.

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으로.

3시 14분.

그 시간이 딱 되고 나서야 나는 다시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단번에 뛰어내려가지는 못했다.

혹여나 그 남자가 어디선가에서 숨어있다 튀어나올까 하는 이놈의 새가슴 때문이었다.

ㅡ 야. ㅋㅋ 그냥 농담한 건데 왜 이렇게 쫄보가 돼있어? ㅋㅋㅋ

ㅡ 어휴. 답답해서 못 보것네. 농담한거여! 그냥 빨리 내려 가 인마!

ㅡ 너 같으면 그 절벽 가까운 돌무더기에서 매달려서 숨어있을 수 있겠냐?ㅋㅋ

ㅡ 무슨 스파이더맨도 아니곸ㅋㅋㅋ

ㅡ 그나저나 그 남자는 진짜 손전등 없이 이 길을 내려갔넼ㅋㅋㅋ 존나 미스테리네

내려가는 길 족족 사방을 경계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 험하디 험한 길에서도 그 남자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40분간을 또 걸어서 나는 드디어 내가 사랑하는 엄마가 자고 있는 집을 등지고 섰다.

해봐야 10명도 안되는 시청자들이지만, 이 시청자들조차 없었다면 더욱더 큰 공포감에 휩싸여 이 무덤과의 추억이 아주 더럽게 엮였을 것이다.

하... 이제 여기도 끝이다.

나는 다시 한번 폴더처럼 허리를 접어가며 카메라에 대고 인사했다.

“휴... 진짜 기나긴 여정이었슴다. 남아있는 형님들.”

그리고 두 손까지 모아 남은 시청자들을 확인하고 하나씩 호명하며 인사했다.

“귀신빤스 형님, 씨발라먹는수박 형님, 귀신목격전문가 형님...”

그러다 문득 남은 한 시청자의 닉네임을 읽다가 나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공포흉가비제이...? 둘리형님!?”

그는 항상 시청자 300명 이상을 유지하는 흉가 비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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