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폐병원. 5
어? 내 구세주. 선녀 보살...
그런데... 내 의식은 저만치 아득해져 가고만 있었다.
***
암흑이 짙게 깔린 빈 병실.
그 안에서 나는 혼자 멍하니 앞을 보고 서있었다.
잠시 후.
낡은 무언가가 내는 신음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삐거덕. 삐거덕.
시선을 돌린 그곳에는 놀랍게도 낯익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 중년 남자가 등을 보이고 앉아 가볍게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남자가 등을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를 직감했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 몸은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돌리려 해도 내 고개는 그 남자의 다리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누군가에 힘에 의해 고정된 것처럼.
남자의 그 다리를 강제로 쳐다보게 된 지 10초 정도가 지났을까.
조금씩 그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남자의 다리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힘 없이 너덜너덜 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리는 아주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마치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아주 정교하게.
살이 찢기자 그 살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백색의 지방들이 드러났다.
곧이어 새하얀 뼈를 감싸고 있던 근육이 겨우 뼈에 붙어 너덜너덜 거리기 시작하자.
온몸을 뒤덮을만한 검붉은 핏물이 새하얀 뼈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다리를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참기 힘든 고통에 실성한 듯 반대로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갑자기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홱 돌아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다리를 노리며 다가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나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곳은 사방이 막혀 도망갈 수 없는 곳이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나는 급한 대로 주머니에 있던 천일염을 다짜고짜 남자의 몸에 뿌렸다.
하지만 그 행동은 남자의 얼굴을 더 일그러트렸다.
나에게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다리 없는 몸을 질질 끌며 다가오던 그 순간.
어디선가 정체 모를 여자의 호통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어디 감히 산 사람을! 썩 물러가지 못해 ! ]
날카로운 호통소리에 흉측한 남자의 얼굴은 당황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1분간을 내겐 느껴지지 않는 기싸움 대치 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내 눈앞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나는 그저 얼떨떨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채로 굳어있기 바빴던 나는 그제서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그리고 극적인 순간에 나를 구해준 정체 모를 그 여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여자는 내 앞에 뚜렷하게 보이질 않았다.
하얀 형체인데다 짙은 안개에 가려져있었다.
그제서야 내 온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졌고,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가려는 그때.
나에게 더 이상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
분위기는 한창 불이 붙기 시작한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던 참이었던 것 같다.
공포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는 느낌처럼.
이 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띵동.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님이 44,444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와... 둘리야 오늘 진짜 대박이다!
띵동.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44,444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시발. 미쳤다. 소름 돋는다. 오늘 잠자긴 글렀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정연우 레전드!!!!!!!!!!!!!!!
얼마나 지난 걸까.
서서히 의식이 되살아난다.
나... 살아있는 거 맞지?
꿈과 현실을 구분 짓지 못하고 있는 그때.
내 얼굴 정면에는 본의 아니게 손전등을 얼굴에 치켜든 둘리님이 있었다.
“정신 좀 들어요?”
“헉! 뭐야 시발!!!”
나도 모르게 순간 손바닥으로 둘리님의 얼굴을 밀쳐냈다.
덕분에 둘리님은 내 손바닥을 정면에서 맞고, 머리가 뒤로 휘청거렸다.
“웁.”
ㅡ ㅋㅋ 존나웃기넼ㅋㅋ 무섭다고 갑자기 누워서 꿀잠 쳐자드니 일어나자마자 폭행질이여?
ㅡ 헐. 둘리 오빠 괜찮아요? 아니. 간호해 준 사람을 왜 때려요 오빠!!
ㅡ 맞을만했다. 30분을 넘게 디비 자게 했으니 ㅋㅋㅋㅋㅋ
ㅡ ㅇㅈ. 시청자들이 안 빠지고 남아있는 게 더 신기하닼ㅋㅋ
ㅡ 어? 야! 둘리 코에서 피나는거 같은데ㅋㅋㅋㅋㅋㅋ
놀란 나머지 힘 조절이 안됐다.
자칭 월드클래스의 체력과 힘을 부여받은 내 팔로 맞았으니 저 정도 상해는 당연했다.
둘리님은 검 붉은색의 액체가 줄줄 흐르는 코를 부여잡고 카메라가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마이크에 들어가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아. 씨발놈이.”
아직도 비몽사몽이었던 나는 바닥에 흐르는 둘리님의 피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둘리님에게 급하게 휴지를 꺼내 들며 재빨리 다가갔다.
동시에 둘리님은 얼굴이 금방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창피함과 새빨간 피가 뒤섞인 얼굴로.
둘리님은 내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아 뭐 하는 거예요. 기껏 기절한 거 옆에서 깨워줬더니.”
나는 고개를 연신 푹 숙여댔다.
그리고 두 손까지 모아서 싹싹 빌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그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근데... 저 기절했었어요?”
나는 휴지를 돌돌 말아 둘리님에게 건넸다.
내 행동에 분한지 씩씩대며 묵묵하게 얼굴을 정리하던 둘리님.
갑자기 채팅창을 확인하더니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지 미간을 다시 찌푸렸다.
그리고 채팅창을 향해 얘기했다.
“형들. 잠시만 마이크 좀 끄고 연우 씨랑 얘기 좀 할게요. 아까 그분 때문에.”
뭐야? 내가 다른 큰 잘못이라도 한 게 있는건가?
아니면 설마...
나를 때리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내가 기절했었다니...
나는 분명 깨어 있었던 것 같은데?
ㅡ 그래. 진짜 컨셉 오지게 잡았드라 그 사람. ㅋㅋ 미친 사람인 줄.
ㅡ ㅋㅋㅋㅋㅋ 인정. 분위기 무르익었는데 자꾸 찬물 끼얹어 시발.
ㅡ 주작질 계획하지 말고 적당히 얘기하고 빨리 와라 ㅋㅋ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둘리님의 얼굴과 채팅창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그때.
둘리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아까 그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누구요?”
“선녀 보살.”
응? 그 사람은 갑자기 왜...
나는 찝찝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 제 애청자 분이에요. 근데... 왜요?”
둘리님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정말요? 이런 어쩌지. 방송 방해될 까봐 강퇴시켰는데.”
어?
그제서야 기억이 떠올랐다.
맞다. 내가 아까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구속당했을 때...
선녀 보살의 후원 창 알람이 울리는 걸 들은 것 같은데?
그나저나 그 사람이 정말 무당인지 아닌지는 사실 확인이 안 되었지만, 적어도 이 지옥같은 공간에서 우리한테 도움을 줄 유일한 사람인데...
근데 왜 추방을 당했다는 거야?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미친놈이라니... 왜 갑자기요...?”
“아니. 방 분위기 너무 좋은데 혼자 미친놈처럼 자꾸 멈추라고 난리를 피우더라고요.”
“...”
이해는 간다.
만약 그 사람이 정말 그 무속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강령술에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
당연히 막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추방을요...? 그분 제가 진짜 위험할 때 항상 도움을 주시던 분인데...”
“이런 씨... 그래요?”
갑자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 방송에는 어떻게 찾아온 거야?
아까 방송 켰을 때도 없었고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그 순간.
둘리님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에게 얘기했다.
“하하.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 그 사람 컨셉 제대로 잡았던데요. 꿈에서 연우 씨가 살려달라고 자기를 찾아왔다나? 자꾸 미친놈처럼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그냥 강퇴했죠. 자꾸 물 흐리는 것 같아서.”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차오르고 솜털이 곤두섰다.
설마...
나는 다급하게 둘리님에게 물었다.
“혹시 그 사람이 다른 말은 안 했나요? 뭐 더 하지 말라든지, 어디는 가지 말라든지...”
“네. 딱히 그런 말은 안 하던데요.”
나는 세상이 떠나갈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자 둘리님이 눈치를 보더니 내게 얘기했다.
“아. 일단은 다시 입장 제한은 풀었어요. 아까 저한테 5만 원도 후원해 줬는데 추방은 좀 너무한 것 같아서.”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감사합니다.”
하... 왜 더 말해주지 않은 걸까?
이 폐 병원은 이 다리가 절단된 사연의 영가 말고도 분명 많은 사연을 가진 영가들이 존재할 텐데...
왜 이런 공포스러운 공간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주지 않은 걸까.
시작부터 공포스러운 경험과 기절까지 해버렸는데 나더러 어떻게 버티라고...
그때.
뜬금없이 옆에서 둘리님이 나에게 후원 내역을 슬쩍 보여주었다.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44,444원. ]
[ 네뒤에처녀귀신 44,444원.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30,000원. ]
[ 선녀보살 50,000원. ]
그 외에도 오천 원, 만원 내역이 수두룩하다.
해봐야 한 시간도 안 되는 그 시간에 벌어들인 후원 금액은 284,444원.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우와. 시벌 미쳤다.
둘리님은 나에게 얘기했다.
“이게 한 시간 만에 벌어들인 금액이에요. 연우 씨가 연기해서 잘 도와준 덕분에 오늘 대박 났다니까요.”
“...”
끝까지 주작이라네 이놈은.
하지만 뭔들 어떠랴.
돈만 잘 벌었으면 됐지.
아차. 맞다. 저건 그림의 떡이다.
내 돈이 아니다.
난 오늘 그저 방송을 도우러 왔고, 홍보를 해준다기에 참여했다.
무척이나 아쉽지만, 금방 기분 좋은 얼굴로 축하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금방 마음속에서는 뿌듯한 웃음이 지어졌다.
시벌...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이놈의 둘리님은 전혀 그럴 계획이 없는 것 같다.
“몸 아직 괜찮죠?”
아니. 설마 나를 오늘 아주 온종일 부려먹을 생각인 건 아니겠지?
역시나 그 예상은 한치도 벗어나질 않았다.
둘리님은 나에게 재미있는 계획들을 준비했다며 일일이 다 설명 해대고 있다.
“일단 층별로 영가들 사연 다 모아놨어요. 일단 최대한 오늘 다 돌아보고 안 되면... 뭐 이 분위기 봐서는 내일 또 와도 되겠는데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뭐?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오자고!?
그럼 나보고 앞으로 기절을 몇 번 더 하란 소리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충 갈 곳의 장소를 세봤다.
2층, 3층, 4층, 5층... 아 맞다... 그리고 이 폐 병원에 제일 끔찍한 장소.
영안실까지 하면 6군 데다.
그렇다면 난... 적어도 6번을 더 기절을 해야...
나는 아까 나를 구해줬던 그 여자를 떠올리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오.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신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디 허약한 저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구해주시옵소서. 아멘.’
큰 한숨을 퍽퍽 내쉬는 그때.
둘리님이 나에게 한쪽 입고리를 올리며 큰 제안을 해왔다.
“이 앞으로 받는 후원금액은 7:3 해 드릴게요.”
내 입이 자동적으로 열렸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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