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31화 (31/225)

사연 있는 폐병원. 10

“형님... 자... 잠시만요.”

나의 기대를 끝까지 져버리지 않는 우리 큰손 형님.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기회를 내게 선사해 주시는 걸까?

그 많은 냉장고 중에 무연고자가 있었던 냉장고라니 왠지 더 기괴스러운 공포감을 전달해 준다.

왜일까?

그야 무연고자 장례라면 고아 또는 법적 가족이 모두 사망한 경우.

그리고 시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고인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

또 법적인 가족이 있으나,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까 말이다.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을 달고 사는 이들에게는 좀 더 슬픈 원한이 깃들어 있을 것 같다는 또 다른 느낌도 든다.

하... 저 냉장고 앞에 붙어있는 저 표식만 없었더라도 그나마 덜 무서웠을 텐데.

아니야. 그래도 무서운 건 매한가지였으려나.

잠시 후.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표식으로 인해 내 상상이 부풀어 오르고 공포심 또한 배가 되었다고!

결국.

차라리 없었으면 좀 덜했을 거야라고 내 마음속에서 결론지었다.

그나저나 왜 시작을 하기도전에 시각적인 공포심을 미리 심어주는지 야속하기만 하다.

나는 다시 한번 표식을 제대로 살펴봤다.

차라리 ‘이름이’ 무연고자이었으면 하는 억지스러움으로.

아니면 뭐... 단어 중간을 갈라놓고 무연... 고자라든지.

인연이 없는 고자...?

하. 시벌. 이럴 때가 아니다.

그나저나 저길 어떻게 들어가냐고 도대체!

아예 열어보지도 못하겠다니까!

ㅡ 와... ㅋㅋ연우 큰손 형님 완전 스파르타 시네.. 비제이를 강하게 키우심 ㅋㅋ

ㅡ ㅋㅋ 이 형님 보통이 아님. 무서워서 폐가 뛰쳐나간 비제이 돈 주면서 강제로 들여보냄.

ㅡ 그게 끝이 아님. 혹시나 다음 날 다른 데로 내뺄까 봐 선입금까지 해주시는 악착같은 분임

ㅡ 며칠 전에는 뒷산 파헤쳐 진 무덤 속에 후원해 주고 생매장 시도함 ㅋㅋㅋㅋㅋㅋㅋ

ㅡ ㅋㅋㅋㅋ 레알 대단하신 분이넼ㅋㅋㅋ

이렇게 큰손 형님의 환상적인 일화를 펼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조용하다.

대화에 가세를 안 할뿐더러,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다.

이 형님 이거 변태 아니야?

그것도 변태 중에 제일 상 변태.

“그럼 형님... 위험할지 모르니 조금만 천천히 살펴보고 들어갈게요. 그건 되죠?”

ㅡ ㅇㅇ

그런 관음증 변태가 내게 대답해 주었다.

단답형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랴.

나는 흔쾌히 허락을 받고 냉장고 문 손잡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세로로 만들어진 쇠 손잡이를 살며시 잡아당겼는데...

순간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우억! 왜 이렇게 차가워? 이거 전기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형님들?”

정말이었다.

마치 전력이 공급되고 있는 냉장고처럼 시원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했다.

ㅡ 에라이 이 새끼 또 시작이네.ㅋㅋㅋ

ㅡ 왜 그 리액션이 안 나오나 했다 ㅋㅋㅋ

ㅡ 그치그치. 이런 게 없으면 연우 방송은 앙금 없는 찐빵이지. ㅋㅋㅋ

ㅡ 고럼 고럼. 스님 없는 절임.

ㅡ 붕어 없는 붕어빵임.

ㅡ 빨리 좀 열어보셈

“아니에요. 형님들. 진짠데. 한 번 보실래요?”

나는 냉장고에 내 손을 가져다 대고 30초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떼서 화면에 비추었다.

화면에 비친 내 손바닥은 정말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떠올라있는 상태였다.

차가운 것에 대고 있으면 혈관이 수축되어 혈액순환이 안 되는 이유처럼 말이다.

“이거 보세요. 형님들. 왜 제 말을 안 믿으시고...”

ㅡ 야. 네 손 아까부터 그랬잖아. 추워서 ㅋㅋㅋㅋ

ㅡ ㅋㅋ 그거 원래 그래. 긴장을 너무 하니까 근육 수축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돼서 그러는 거야

ㅡ 하이고... 우리 연우 쯧쯧... 성인 되기도 전에 벌써 혈액순환이 이래서야... ㅠㅠ

ㅡ 저희가 힘을 합쳐 우리 연우 생마늘좀 먹입시다.

ㅡ ㅇㅋ. 많이 먹으면 사람도 되고 일석이조네

허탈함이 섞인 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시청자들은 똘똘 뭉쳐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핑곗거리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냉큼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에라이!

철컥.

탁!

냉장고 문을 아주 살며시 열어 손전등으로 안을 천천히 훔쳐보았다.

그때.

띵동.

[ 귀신과의동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와아아아아아악!!!

때마침. 언제 만들었는지 기가 막힌 영상 클립 하나가 재생되었다.

클립에는 내가 놀라자빠지는 리액션과 건물이 떠나갈 듯 질러대는 나의 괴성이 섞여 터져 흘렀다.

내 팔이 자동으로 온 사방을 헤집으며 두 다리는 영안실을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시바아아아알!!! 시발. 시발. 시발. 시발!!!”

ㅡ 아우 깜짝. 나도 시발이다. 와!!! 진짜 내가 더 놀랐네 클립 뭔뎈ㅋㅋㅋㅋㅋ

ㅡ ㅋㅋㅋㅋㅋㅋㅋㅋ대박이네. 연우 팬클럽 1호 클립 등장 스펙타클하넼ㅋㅋㅋ

ㅡ ㅋㅋㅋ 저 새끼 저거 내가 보기엔 방금 진짜 오줌 지렸다 인정?

ㅡ ㅇㅈ. 근데 시발놈아 깜빡이는 키고 들어와. 나도 지렸자나 ㅠㅠ

ㅡ 토닥토닥. 다 추억임. 울지 마셈.

ㅡ 네. 근데 님. 어딜 토닥토닥하는 거임.

“커헉... 헉... 후읍... 헉...”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3km나 되는 등교를 뜀박질로 해도 이렇게 숨을 껄덕이지 않은 나였다.

하지만 한참을 내뱉어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나는 두 무릎에 손바닥을 짚으며 내가 나온 컴컴한 병원 정문을 주시했다.

그렇게 그대로 멈춰 서서 5분간을 숨을 내뱉었을까.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옘병... 아니. 형님들... 저거 뭐예요?”

ㅡ ㅋㅋ 이 새끼 이거... 클립 땜에 놀라서 도망 나와놓고 아닌 척 또 연기한다.

ㅡ ㅋㅋㅋㅋㅋㅋㅋㅋ겁나웃기넼ㅋㅋㅋ 도대체 이 컨셉 뭔데? ㅋㅋㅋ

ㅡ 이 비제이의 처세와 임기응변을 말할 것 같으면 손자병법, 사서삼경, 삼국지, 초한지 최소 10회 이상 정독하고 학습, 예습, 복습까지 마스터한 느낌입니다.

ㅡ 헐... 그것보다 님 비유가 더 놀라운데요? ㅋㅋㅋㅋ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문을 가리켰다.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아래. 지하 영안실을.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머... 머리카락이... 아... 안에...”

ㅡ 지랄을 한다 아주...

ㅡ 아니... 지랄을 넘어서서 개꼴깝 발광을 하네요 아주...

ㅡ 사람이 있다는 얘기여? 거기 사람이 왜 있을까나?

ㅡ 날씨 더워서 뭐 개인 에어컨이라도 쐬려고 잠시 들어갔나 부지 뭐.

ㅡ 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뭐 찜질방 개인 수면 방 느낌처럼요?

ㅡ ㅇㅇ 가봄? ㅋㅋ

ㅡ 자주 감. 개 좋음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가 심하게 흔들려 어지러울 정도로.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완강하게 부인했다.

“와씨... 후...”

그나마 안정되었던 호흡이 다시 빨라지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보였던 그것 때문이었다.

그건 분명, 곱게 덮여져 있는 새하얀 천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혀... 형님들. 제가 시... 시체를 본 것 같아요.”

ㅡ 아이. 뭔 개소리야?

ㅡ 이런 스발럼이 자꾸 헛소리 할 텨? 여기 혹시 시체 본 사람?

ㅡ ㄴㄴ 당연히 못 봤지. 저넘이 카메라를 비추기도 전에 놀라서 뛰쳐나왔자너 ㅅㅂ

ㅡ 그쳐? ㅋㅋ 나만 못 봤나 했네 ㅋㅋㅋㅋ 에라이 이 개 공갈범 자식아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 인마? 쫄보. 자꾸 튀어나올래? 빨리 안 들어가? 시간제한 준다. 앞으로 10분.

아 옘병... 돌겄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형님. 진짜 사람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니까요... 하얀 천 밖으로 튀어나온 머리카... 응?”

잠깐만.

문득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 그러고 보니 말이 안 되는데?

이미 죽은 시신이 그곳에 방치돼있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건 분명 윤기가 좔좔 흐르는듯한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시청자 말대로라면 제아무리 냉장고라고는 하지만, 부패가 진행되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있는다는 것.

그게 지금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인가?

그럼 뭐야... 귀신이었다는 거야?

ㅡ 에라이 인마! 거기에 사람이 있으면 내가 어? 성별을 바꾼다. 부랄을 떼겠단 말이다!

ㅡ 님. 그것말고도 하나 더 떼야 덜 흉측할 것 같은데요...

ㅡ 아. 그런가요? ㅈㅅ

ㅡ 아니. 무슨 소리야. 네가 비췄을 때 그냥 하얀 천은 봤는데 머리카락은 못 본 것 같은데

ㅡ ㅇㅇ 나도. 혹시 잘못 본거 아니야? 다시 가보자.

하... 진짜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닌데... 정말 아닌데...

잠시 후. 나는 입술을 오므렸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형님들... 그럼 진짜 이번에는 제가 혹시나 기절하게 되면 절대 그대로 두지 마세요. 꼭 경찰 먼저 불러주셔야 합니다. 아셨죠? 아니. 지금 경찰에 미리 신고해야 하나...”

ㅡ 설레발치지 말고 빨리 들어가라고

ㅡ 경찰 부른다고? 방송 폭망소리 들리네 ㅋㅋ

ㅡ 잘못 본 걸 수도 있잖아?

ㅡ 일단 제대로 확인하고 신고해도 늦지 않음

ㅡ 인정. 빨리 다시 출동!

ㅡ ㅇㅇ 레알 거기 어딘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책임진다.

ㅡ 나한테 맡겨. 너 기절해서 어디 있어도 다 찾아낸다. 내가 갈마동 개코여

ㅡ 이런 개새끼

ㅡ ?

ㅡ 이러다 미션 다신 안 들어오면 어쩔?

하 시벌놈들...

아까 눈으로 확인한 그 광경 때문인지 가기가 더 껄끄러웠지만, 몸은 이미 병원 정문을 지나 영안실 출입구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래 시발 가자.

가자 정연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으니 한결... 시발 한결은 무슨 무섭다.

그래도 내 발은 계속 움직였다.

후원금의 위력인가.

하지만, 출입구를 열고 내가 놀라 닫아버린 영안실의 냉장고를 보고는 다시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아우... 진짠데... 진짜라고요. 형님들 왜 내 말을 안 믿으시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그 끔찍한 냉장고 앞에 서서 쇠 손잡이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철컥.

탁!

끼이. 끼익.

냉장고는 소름 끼치는 그 신음을 토해내며 다시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까 내가 그토록 완강하게 부인했던 냉장고 안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나는 칠흑 같은 그 어두운 그 냉장고 안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비추었다.

그리고.

다시 다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으으아... 아아악!!! 시... 시발!!! 맞잖아 형님들! 내 말이 맞잖아!”

ㅡ 어 씨발. 진짜네. 뭐야 저거? 레알 개소름이다

ㅡ 아니. 잠깐 비추고 뒤로 빠지면 어떡해? 나 제대로 못 봤어. 진짜예요 저거?

ㅡ 와........... 진짜 맞는 것 같은데요? 근데 어떻게 시체가 여기 있어?

ㅡ 그러게? 아니 시발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내 눈은 정확했다.

정말 그곳엔 부패가 하나도 진행되지 않은 시체가 싸늘하게 누워있었다.

그때.

지상에서 내 정신을 잡아먹을 듯한 미친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 께에엑! 께에엑! 께에엑! 께에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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