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35화 (35/225)

다 부서진 여 기숙사. 1

나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급하게 없앴다.

내가 방송을 잊고 있었던 그동안.

카메라는 어딜 찍고 있었는지, 혹시 말실수 한건 없는지.

채팅창의 대화들을 되짚어보기 위해서였다.

ㅡ 하... 돈미새새끼. 카메라 일부러 내려놓고 안 본 거네.

ㅡ 후원 창 뜨니까 카메라 쳐다보는데 정말 0.1초도 안 걸렸다. 이거 인정?

ㅡ ㅇㅈ. 게다가 잠깐 잇몸 만개 한 표정 봄? 레알 후원금 소리에 잔뜩 입 찢어짐.

ㅡ 야. 근데 아까 진짜 주작한거  아니냐?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그 사실을 부정했다.

“형님들. 저는 주작 같은 거 모른다니깐요. 그리고 쟤랑 주작을 한다는 게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아요. 정말입니다 형님들.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내가 그런 녀석과 협력을?

나는 말없이 고개만 세차게 내저었다.

ㅡ 그래? 근데 아까는 무슨 한 20년 같이 산 사람처럼 호흡이 척척 맞던데?

ㅡ 맞어. 하나는 문 부수고 하나는 오토바이 미리 시동 걸고. 나는 액션 영화의 한 장면 보는 줄 알았다.

ㅡ 서로 얼굴 보고 소리 지를 때 도요. ㅋㅋㅋ 데칼코마니인 줄

ㅡ 아니, 근데. 쟤 일진 맞어? 근데 왜 저렇게 곰팡이같이 생겼냐?

내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이놈. 잘 들어갔으려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청자 목록을 찾아봤다.

없다.

그나저나 그런 녀석을 흉가에 같이 데려가라니...

아마 귀신보다 더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도 귀신보다는 사람인 박필준이 옆에 있는 게 조금 더 나으려나?

요즘,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박필준 때문에 내 머릿속도 약간의 혼동이 생긴다.

개과천선.

뜻은 충분히 응원하지만 내게 남아 있는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정말 좋은 모습들을 보인다면 내 생각도 좀 바뀔 것 같긴 한데...

뭐. 그건 정말 나중 일이겠지.

ㅡ 얌마. 근데 너 그 우럭같이 생긴 놈 데려올 수 있겠냐? 일진이라며 ㅋㅋㅋ

ㅡ 우럭 ㅅㅂ ㅋㅋㅋ 따지고 보면 가자미에 더 가깝지 않나? ㅋㅋㅋ

ㅡ ㅋㅋㅋㅋㅋㅋ 입은 우럭. 눈은 가자미 짬뽕임.

그나저나 진짜, 얘를 어떻게 꼬셔서 데려가지?

아까 영안실에서의 상황만 봐도 근처에 다시는 얼씬도 안 할 분위기 같았는데...

나는 미간을 잠시 찌푸리고는 핸드폰을 보며 얘기했다.

“일단 형님들. 이제 방송을 좀 끄겠습니다. 배터리가 딱 5프로 남아서요.”

ㅡ ㅇㅇ 주작 방송 즐거웠다. 다음엔 더 실감 나게 부탁한다.

ㅡ 바바이! 아까 걔처럼 딴짓하지 말고 자빠져자라!

ㅡ ㅇㅋ. 고생했다. 다음엔 더 센 곳으로 가자.

ㅡ 그래! 학교에서 젤 센 일진 놈 하나 데려가니까 제일 빡센 데로 함 가즈아!!!

더 센 곳이라...

이미 나에겐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레전드다.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잦은 기절을 해가며 현실과 지옥을 수없이 왔다 갔다 했으니까.

나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이마에 붙였다 뗐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소리쳤다.

“그럼 형님들. 뿅!”

***

다음 날.

화창한 날씨의 주말이었지만 나는 그 날씨가 저물도록 방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제 긴장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근육의 피로가 말도 안 되게 쌓여버렸다.

그 때문에 무려 12시간을 넘게 자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것도 겨우 엄마가 깨워서.

“아들! 오늘 왜 이렇게 곰마냥 늘어져서 잠만 잔대? 밥 안 먹을 거야?”

천사 같은 우리 엄마가 내 궁둥짝을 찰싹 때리며 깨운다.

나는 게슴츠레 한 눈을 하고 엄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물었다.

“으응... 밥...? 지금 몇 신데...?”

“5시.”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벌써?”

나는 서둘러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오늘 유일한 친구(?), 그 녀석과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시간.

4킬로나 떨어져 있는 그곳을 얼른 뛰어가야 한다.

나는 급한 데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엄마. 나 오늘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좀 늦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그리고 그 녀석을 만날 시내까지 뛰기 시작했다.

“헉... 헉헉... 커헉! 헉...”

나는 마치 마라톤 경주대회라도 하는 듯이 열심히 뛰었다.

오늘 만날 그 녀석에게 최대한 잘 보여야 한다.

그러니까 약속 늦어 마이너스 점수를 따면 안 된다.

역시나 남다른 체력 덕분일까.

1시간이나 걸릴 거리를 40분 만에 도착했다.

그곳은 내가 인정한 맛집.

삼겹살을 파는 순돈이라는 집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약속 장소에서 먼저 모든 세팅을 끝내놓고 친구를 기다렸다.

잠시 후.

저 멀리서 불테리어를 닮은 얼굴 하나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드르륵.

그리고 두리번거리는 녀석을 보고 내가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어. 박필준! 여기야. 여기.”

박필준 녀석이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반긴다.

상황이 참 어색하다.

언제나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은 채로 일방적으로 육두문자와 폭력을 행사하는 녀석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오늘은... 굳이 따지자면 비제이를 구해준 시청자와의 감사 팬미팅 자리랄까.

나는 박필준이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맛집인데, 삼겹살 괜찮아?”

“없어서 못 먹지.”

“다행이다.”

“근데 너 일찍 왔네?”

그 순간.

치이이이익-

나는 미리 달궈놓은 불판 위에 삼겹살 한 덩어리를 올리며 동시에 얘기했다.

“나 원래 부지런하잖아.”

“아... 그랬나...?”

박필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판 위에 삼겹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뜨거운 불판 위에 삼겹살이 올려지며 구수하게 퍼지는 이 삼겹살 향.

맛스럽게 익어가는 저 비주얼과 소리가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와...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내가 얘기했다.

“때깔이 기가 막히지?”

“와... 미쳤네.”

“이 제주 흑돼지. 무항생제로 키운 토종 흑돼지야.”

“와 진짜? 그거 뭐 보약 같은 거냐?”

이곳에 딱 한 번 와봤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랑.

가난했던 나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나는 잠시 그 광경을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듯 지켜봤다.

그리고 아주 전문적인 설명까지 덧붙여가며 맛스럽게 구운 삼겹살 한 점을 박필준의 접시에다 직접 가져다줬다.

“일단 얼른 한 점 먹어봐.”

“어. 쌩큐.”

박필준은 배고팠는지 우걱우걱 입에 삼겹살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와... 십탱...”

그 순간. 나는 그 녀석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스읍... 저 녀석 저거. 어떻게 꼬셔서 자연스럽게 데려가지?

오늘 밤 방송시간은 지금부터 무려 대 여섯 시간 남았는데...

나는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삼겹살에 전투적으로 임했다.

30분 뒤.

남은 고기와 밥, 그리고 콩나물과 김치, 김 가루 등을 비빈 눈물의 볶음밥까지 먹고 나서야 나는 박필준을 쳐다봤다.

“저기. 필준아.”

“어. 말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우리 친구 맞냐?”

“당연하지. 내 프렌이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라고 대답하는 박필준때문에 지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려졌지만.

아차 하고 다시 웃었다.

“그럼 친구 부탁도 들어줄 수 있겠네?”

“아이씨. 물론이지. 무슨 일이든 얘기만 해. 무조건 들어 줄 테니까.”

“음...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일은 개교기념일이니까...

시청자도 많이 는 김에 오늘 저녁 다시 신나게 달려봐야겠다.

쉬어서 뭐 하냐. 바람 불 때 연 날려야지.

마침 어제 자기 전, 아주 좋은 장소의 폐 기숙사도 찾아낸 참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저 녀석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줄까?

“오늘은 내가 다 살 테니까 마음껏 먹어. 다른 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박필준의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내게 얘기했다.

“어제 나한테 감동받았나 보네. 그럼 이거 먹고 나 백흐킨라빈스도 먹어도 되냐?”

“아. 그...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아이스크림 파는 곳?”

박필준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나는 먹어보진 못했다.

아니. 그나저나 엄마가 왜 외계인이야? 한결같은 천사인데.

나는 얘기했다.

“그래. 그럼 지금 갈까?”

***

현재 시각. 7시 반.

그렇게 2차전은 벡흐킨라빈스에서 이루어졌다.

“와... 십탱. 진짜 미쳤어. 이거 왜 이렇게 맛있냐?”

“쩔긴하네... 우워... 시부럴...”

감탄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입에 넣자마자 달달한 아이스크림들이 눈 녹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뭐 이런 신세계가 다 있지?

그 와중에 박필준은 제법 많이 먹어 본 듯한데도 리액션이 좋았다.

우린 이미 삼겹살을 4인분이나 먹고 온몸이었지만, 사이좋게 그 자리에서 아이스크림 반 통을 다 배에 집어넣었다.

배가 남산만 해졌고 포만감 때문에 나른해질 때쯤.

내가 박필준에게 물었다.

“근데 이제 너 뭐 할 거야?”

하늘은 어느새 새카만 암흑으로 덮여 가고 있었다.

박필준은 시계를 한번 쳐다보더니 내게 얘기했다.

“나? 할거 없지. 배부르니까 집에 가기도 귀찮다.”

옳다구나!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얘기했다.

“오. 잘 됐다. 그럼 이거 먹고 좀 있다가 내 아는 누나네 놀러 갈래?”

박필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녀석은 연상이라면 환장 한다는 것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뭐! 시발? 누나? 그거 고민할 가치가 있는 거냐?”

“거기 되게 시원하고, 분위기도 겁나 좋아.”

박필준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좋아. 십탱. 그럼 바로 달려야지이이!!!”

“OK. 가자!”

박필준은 재빠르게 자신의 애마 오토바이를 가져와 시동을 걸었다.

그곳은 여기서 1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곳이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굉장히 오가는 게 불편했을 건데...

오늘은 정말 이 녀석이 나를 도와주는 느낌이다.

그렇게 우린 곧장 그곳을 떠나 출발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5킬로쯤 달렸을까.

박필준이 물었다.

“야. 근데 그 누나들 예쁘냐?”

“모르지 나야.”

“뭐? 너 아까 아는 누나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알긴 알지. 일할 때 자주 보니까.”

“무슨 말이야?”

“이따 얘기해줄게. 앞에 봐 앞. 운전에 집중해야지.”

“야. 내가 베스트 드라이버... %@&$”

20분 뒤.

시끌벅적한 시내를 벗어나 갑자기 우리 집과 같은 시골 환경에 들어섰다.

2차선 도로였던 곳도 1차선.

그리고 그 1차선마저도 비포장길이 되어 변했다.

점점 더 열악해지는 환경에 박필준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 아는 누나들 원래 이렇게 외진 곳에 사냐...?”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환경이 중요하진 않잖아.”

박필준은 내 앞에서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계속 까닥거렸다.

그렇게 잠시 후.

나는 쳐다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웅장한 한 폐 기숙사 앞에 박필준을 멈추게 했다.

“여기야. 세워 봐.”

그리고 재빨리 내려 방송을 켰다.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며 들어오는 시청자들.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 하였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 하였습니다. ]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 하였습니다. ]

[ 귀신과의동거 님이 입장 하였습니다. ]

[ 흉가체험삶의현장 님이 입장 하였습니다. ]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는 박필준을 뒤로한 나는, 방송에 들어온 시청자 목록을 확인했다.

그 순간.

[ 바른생활사나이 님이 입장 하였습니다. ]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에 대고 상체를 폴더처럼 접었다.

그리고 다 무너져 내려가는 폐 기숙사와 박필준이 서있는 모습을 한 컷에 담았다.

그와 동시에 나를 등지고 서 있는 박필준은 폐 기숙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데에 누나가 살 것 같지는 않...”

띵동.

[ 바른생활사나이 님이 2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ㅇㅋ 잘했다 일진 새끼 오늘 내가 지옥의 참교육 맛을 보여줄게.

“아이고오오!!! 바른생활사나이 형니이이임!!! 소중한 20만 원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새 폐 기숙사에서 몸을 돌린 박필준이, 나를 멍하게 바라보며 입을 연다.

“너 갑자기 방송을 왜...”

눈만 껌벅거리며 중얼거리던 박필준이 이윽고 정신을 차렸는지 황당하게 말을 뱉었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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