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게 변해버린 저수지. 2
“으으...”
손전등을 들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렸다.
그것의 정체는 잔뜩 웅크린 채로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옆에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웠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뒤집고 다시 물러서서 지켜봤다.
“우웁.”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해대며 그것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힘 없이 축 늘어진 몸뚱어리.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 아니 털.
게다가 심하게 부패되어 건드리는 족족 찢어지는 그것은...
그건 분명 피부였다.
“혀... 형님들. 애... 애기예요!”
ㅡ 뭐? 진짜?
ㅡ 씨발 애기라고? 잘 안 보여
ㅡ 미친 머리카락이 저렇게 긴데 뭔 애기야
ㅡ 애기 발육상태가 탈 인간급일 수도 있잖아
ㅡ 하긴 나도 야한 생각 맨날 해서 짐승에 가깝긴 한데
띵동.
[ 귀신빤스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일단 미션금. 야 자세히 좀 비춰봐 봐.
가만히 그것을 쳐다보던 나는 반대로 카메라를 돌려 버렸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처참하게 죽어버린 사체를 굳이 카메라에 노골적으로 비출 필요는 없었다.
사람이 아니다.
다 자라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은 강아지 사체였다.
ㅡ ㅅㅂ 뭔데 뭔데? 진짜 사람 애기야?
ㅡ 사람이면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
ㅡ 반응 보니까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야생동물 아닐까?
ㅡ 으... 시바. 그건 보여주지 마
나는 속상함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강아지예요...”
ㅡ 애기라고 말해서 사람인 줄 알았자나 휴.
ㅡ 아... 강아지. 말을 제대로 해야지. 시벌
ㅡ 아이고. 어쩌다가... 쯧쯧 불쌍해라.
ㅡ 그나저나 웬 저수지 한복판에 강아지가 있어?
강아지는 해봐야 3개월 정도 자란 듯 보였다.
나는 안쓰럽게 감긴 강아지 눈을 쳐다보며 안도와 속상함이 뒤섞인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
그리고 본능적으로 가방에서 재빨리 장갑을 꺼내 강아지를 살폈다.
강아지의 목에는 귀여운 목줄까지 있었다.
초롱이.
이 예쁜 애기를...
그 순간.
내 눈에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어. 애기 다리가...”
강아지 두 다리가 반대 방향으로 휘어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도 없는 이 차가운 저수지 속에...
화가 치솟는다.
설마 낚싯줄에 일부러 걸어 놓은 건가?
아니. 떠다니다가 걸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둘 중 무엇이라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내 몸에 감싸는 스산함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눈빛도 지금만큼은 만만치 않았다.
“미친 새끼...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귀신이고 사람이고 잡히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라. 알아들었냐! 이 씹새끼야!”
내 목소리는 그 산 중턱에 메아리치며 몇 번씩이나 똑같이 울려댔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워워. 진정해. 깜짝 놀랐네
ㅡ 워. 허세가 아니다. 진짜 잡히면 죽을 듯하다.
ㅡ 범죄자 때려잡는 걸 봐서 그런가. 존나 섬뜩하네
ㅡ 야. 근데 너 귀신한텐 맨날 지잖아.
ㅡ ㄴㄴ 후원 있음 무조건 이김.
ㅡ 그나저나 강아지 불쌍해서 어떡해
나는 한참을 강아지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온몸이 떨리는 게 멈추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분노로 쥐어진 주먹도 잘 펴지질 않는다.
그 자리에서 잠시 고민하던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하게 강아지를 조심히 감싸 안았고 저수지 밖으로.
땅이 좋아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땅을 팠고...
조심스럽게 묻어 주었다.
“형님들, 잠시 만요.”
나는 가방에서 포 하나까지 찢어 강아지 무덤 앞에 두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많이 무서웠지? 다음 세상에서는 착한 주인 만나서 꼭 행복하게 살아.”
ㅡ 좋은 일 하네.
ㅡ 어이구. 우리 연우 궁디 팡팡.
ㅡ 역시 네가 쥐포를 키워서 정이 많구나.
ㅡ 야. 근데 너 기독교 아니자나?
나는 눈을 뜨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금 먼 거리에서 낚싯대를 바라보았다.
주인이 없는 게 확실해 보인다.
가만히 그 주변을 노려보다가,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표정을 밝게 바꿨다.
내 기분이 이렇다 한들 죽은 강아지가 살아 돌아오진 않을 테니까.
“형님들. 이쪽 말고. 저 위 중류 쪽에 방갈로라고 하는 방이 있는데 그거 구경시켜드릴게요.”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ㅇㅋ 좋아
그렇게 중류 쪽으로 나는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이곳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저수지의 물 넓이가 커진다.
은은한 달빛만 스민 새까만 저수지 물은.
마치 빨려 들어갈 것처럼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도 들게 한다.
“저 배는 아직도 저 자리에 그대로 있네요.”
나는 단조롭게 파란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돛단배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저수지 제일 수위가 높은 지점이 4미터에서 5미터 정도라고 했던가.
몇 주 전 장마를 거쳐서 그런지 훨씬 더 물이 많이 불었으니.
음... 대충 6~7미터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빠지면...? 무조건 익사다.
그 순간.
“어? 형님들? 소리?”
ㅡ 뭔 소리가 들렸다는 겨. 맨 날 혼자 듣고 지랄이여
ㅡ 야 인마. 천천히 좀 가. 카메라 흔들려서 어지러워 색갸
ㅡ 쉬발. 도대체 또 뭔 주작을 해놓은 겨
ㅡ 스케일이 점점 할리우드급이 되는 느낌?
잘못 들었나?
아니. 소리가 들리긴 들렸다.
퐁당? 퐁당?
내가 도착한 곳엔, 큰 저수지에 작은방 몇 개가 물에 둥둥 뜬 곳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변한 것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방갈로라는 공간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금액을 주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나 역시도 안 공간이 궁금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역시 영업을 한지 오래됐는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만의 착각일까?
물 위에 떠 있는 방들 중, 하나가 이상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금방 고개를 다시 절레절레 흔들고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들? 그냥 보시기에도 살벌하죠? 이제 구경시켜 드립니다!”
그렇게 천천히 방갈로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저수지 주인이 만들어놓은 어설픈 철 다리가 쭉 연결돼있다.
방갈로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다리였다.
철 다리 밑에는 다리를 부유시키기 위해 파란색 큰 원통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음... 잠깐만 스톱.”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망설였다.
막상 건너려니 쫄보 정신이 투철하게 튀어나온다.
시벌. 무너지진 않겠지?
나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
잠시 후.
결국, 용기 내어 살짝 발 한쪽을 올려보았는데.
삐거거걱. 삐거거걱.
“워어어! 시벌...”
구름다리처럼 위아래로, 좌우로 요동치며 듣기 싫은 소리를 잔뜩 토해낸다.
나는 잽싸게 다시 다리를 떼어놓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시바... 괜히 온다고 그랬나.
그 순간.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뭐 하냐? 이런 식으로 시간 때울 생각은 아니지?
현재 시각 12시 40분.
나는 시간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우... 절대 아닙니다. 형님. 근데 이거 원래 이렇게 흔들려요?”
ㅡ 야. 당연하지. 물 위에 띄워 놓은 건데
ㅡ 인마. 물침대에서 안 자봤냐? 출렁출렁 같은 느낌이여
ㅡ 그거 안전해. 성인 남자가 다 붙어서 흔들어도 안 뒤집어질걸
ㅡ 아니 이 와중에 또 귀신이 흔든다고 지랄하면 뒤진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리를 다시 밟아 보았다.
삐거거걱.
그리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려보았다.
“설마 귀신이 잡고 흔드는 건... 아니겠지요?”
ㅡ 저 지랄이네?
ㅡ 와. 개 소름. 연우 박사 님이시네.
ㅡ ㅇㅇ 저분 저번에 독심술사 그분 인가 봄
ㅡ 야 닥치고 빨리 안 건너?
ㅡ 여러분 저 돈미새 새끼 일부러 시간 끄는 겁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몇 번 저어댔다.
그럼 일단 안전 확인부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위험에 빠졌었는가.
냉동고에 갇히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도 있었던지라 난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일단 입구에서 깔짝거리듯 한두 번 다시 밟으면서 자신감을 찾고.
쿵. 쿵. 삐거거덕.
제 자리에서 뛰어도 봤다.
쾅! 쾅! 삐거덕.
“음...”
그렇게 용기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삐끄끄끄끅.
방방이라도 올라탄 듯 위아래로 요동치는 반응.
나는 그 중심을 최대한 잡은 채로 움직였다.
그리고 눈은 중간중간 아주 꼼꼼하게 박혀있는 나사 볼트를 바라봤다.
잠시 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에 대고 엄지를 내밀었다.
“아이고 형님들. 이거 굉장히 튼튼해요. 일부러 무서운 척 연기해 본 건데. 깜빡 속으셨죠?”
ㅡ 아무 말 안 했는데
ㅡ 어이. 쫄보. 자연스러웠다. 넘어가자
ㅡ 신장개업 풍선 인형인 줄 알았다 이 미친놈앜ㅋㅋㅋ
ㅡ 다리 건너는 데만 10분을 까먹네 이 개색갸
ㅡ 너 미션 추가한다?
내가 물에 빠져 죽어도 꿀잼이라고 할 시벌넘들이네.
띵동.
[ 씨발라먹는수박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무리 그래도 확실하게 안전 확보해야지. 거기 보이는 다리 지지대에 발차기 10번
이런 시벌놈이.
어쩐지 왜 가만히 있나 했다.
근데 그건 안전 확보가 아니라 그냥 황천길 확보 아니냐?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다리 한가운데다.
아예 나를 꼼짝 못 하게 할 생각으로 선입금까지 해버린다.
하지만.
퍽! 퍽! 퍽! 퍽! 퍽!
반사적으로 나는 벌써 다리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손가락만 한 두툼한 나사가 꼼꼼하게 박혀있는 걸 벌써 확인했지 않았는가.
그렇게 나머지 5대까지.
퍽! 퍽! 퍽! 퍽! 퍽!
역시나 꿈쩍도 안 한다.
이 정도면 이곳의 주인이었던 사장님이 확실한 나사 장인이다.
사체 냉장고 문도 박살 내는 발차기를 견뎠으니까.
“아이고오오! 수박형님. 역시 저 생각해 주는 건 형님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튼튼한 다리를 인정하고.
두 걸음 옮겨 갔을 때였다.
띵동.
[ 시간을달라는소녀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해. 이번엔 점프 10번
“아이고오오! 소녀형님. 비제이 오랫동안 만수무강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ㅡ 흠... 생각보다 다리가 넘 튼튼한데
ㅡ 잇몸 만개가 나오는 이유가 있었어 시벌
ㅡ 아주 개꿀 빤다. 5분도 안 돼서 4만 원을 벌어가네
ㅡ 오... 하느님. 제발 다리가 부서졌으면 좋겠어요
ㅡ ㅋㅋ 반전 일어나면 사고임. 쟤 수영 못함
ㅡ 휴... 진짜 아직도 이런 흑우가 있나. 후원 주면 아크로바틱도 함
내 점프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다리는.
마치 띵몬스 침대. 그 자체였다.
주인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몇 번씩이나 냈음에도 불구하고 방갈로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역시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다행인가?
이 새벽에 혼자 다리에서 미친놈처럼 뛰고 있는 날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순간.
첨벙! 첨벙!
“어?”
이상하다 싶어 내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데.
첨벙! 첨벙!
뒤에서 물살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고기가 튀어 오른 건가?
아니다. 잡은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 것치고는 소리가 너무 컸다.
마치 사람이 허우적대는 것처럼.
그 말이 무섭게.
[ 살려주... ]
첨벙!
[ 려주세... ]
첨벙! 첨벙!
[ 요... ]
“뭐, 뭐야!”
나는 뒤를 돌아 볼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앞뒤 가리지 않고 방갈로로 뛰었다.
쾅! 쾅! 삐거거걱! 쾅!
그리고 방갈로에 도착하자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강시가 물에 빠지면 저럴까.
여자로 추정되는.
이마밖에 보이지 않는 머리가 물속에서 쑥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점점 다가온다.
‘사람?’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리면서도 그렇게 생각됐다.
지금 이 광경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듯, 확실하게 내 동공에 맺혔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첨벙! 첨벙!
[ 사람살려주세요 ]
머릿속으로 벼락같은 생각이 스친다.
나는 잠시 멈춰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연우야.
입이 물에 잠겼는데 어떻게 저리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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