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전원주택. 5
후원창이 알리는 욕설에 나는 엉겁결에 문을 닫아 버렸다.
“시벌!”
쾅!
나는 뒤로 주춤 물러나며 얼른 물었다.
“형님들? 뭔데요? 뭔데요?”
ㅡ 헐... 시... 시체인가?
ㅡ 시발... 엄마 귀신 같은데
ㅡ 딸도 있었던 거 같아
ㅡ 줄톱도 달려있었어..........
ㅡ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ㅡ 아무것도 없었다고! ㅅㅂ 빨리 열어
나는 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돼 물었다.
“난 앓아요 형님, 뭐 보셨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제발...”
모르고 들어가는 것보다 알고 들어가는 게 백배는 낫다.
대처도 그렇고.
띵동.
[ 난앓아요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무 코토 못 봤다. 구라 한 번 쳐 봄
아주 날 들었다 났다 한다.
ㅡ 깜빡속았쥬?
ㅡ ㅋㅋ 다시 빨리! 빨리!
ㅡ 열어 열어 열어 열어 열어!
“형님들, 진정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후 전처럼 문에 손을 가져가 댔다.
“에라이!”
벌컥!
“와아아악! 시발 뭐야!”
커다란 액자가 보였다.
아이들이 그렸을 법한, 크레파스로 그려 넣은 그림이었는데 가족이 분명해 보였다.
세월이 지나 종이가 누렇게 변색됐다.
딸 셋과 엄마 하나.
하나같이 까만 눈을 하고, 아니 벌레가 종이를 갉아먹은 듯 눈만 교묘하게 파여 있었다.
ㅡ 엥 그림이네?
ㅡ 이제는 그림이랑도 싸우냐
ㅡ ㅅㅂ 어두운 데서 보니까 사람 같긴 하네
ㅡ 나도... 첨에 손전등 비췄을 때 개 깜놀
ㅡ 하필이면 옷도 죄다 검정 원피스로 칠해 놨네.
그림 하나에 사람이 이렇게 위축될 수 있다는 걸 오늘 새삼 깨닫는다.
“가족 그림을 왜 이런 데다가...”
ㅡ 너 놀래키려고 ㅋㅋ
ㅡ 이 순간을 노린 거지
ㅡ 근데 존나 섬뜩하긴 하다. 왜 눈만 파놨대?
ㅡ 싸이코 엄마가 한 듯
ㅡ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해서 그럼
ㅡ 맞아. 누군가한테 감시를 많이 당했나?
나는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안방 문턱을 넘었다.
그런데.
코를 찌르는 심한 악취에 걸음을 멈췄다.
“웁... 냄새.”
본능적으로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을 비췄다.
온통 까맣게 얼룩져있는 침대.
썩은 나무의 습한 냄새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꿉꿉하고 쾨쾨한 썩은 내는 분명 ‘피비린내’였다.
냄새는 가까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내 코로 스며들었다.
“으... 시벌. 형님들. 침대에서 아직도 피 냄새가 엄청나는 것 같습니다.”
인상이 자동으로 잔뜩 찌푸려졌다.
그것도 모자라 엄청난 두통까지 유발했다.
마치 침대에 피를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침대 주변의 벽에 핏자국이 물방울처럼 찍혀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손바닥 자국까지.
ㅡ 와... 그 냄새가 아직도 난다고?
ㅡ 벽지에 저거 다 핏자국이야? 헐
ㅡ 물감이겠지
ㅡ ㄷㄷㄷ 손바닥 자국도 있는데...
ㅡ 침대에서 살해당했던 거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네 기둥에 묶여있는 밧줄을 비췄다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당시 현장이 상상되는 바람에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네 여기서 살인이 이루어졌다고...”
85년도.
그 당시 한국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아주 큰 사건.
살해를 할 때 일반적으로 쓰는 칼이 아닌, 줄톱을 사용했다는 것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더욱더 끔찍한 건.
그 어린 딸들을 죽이기 위해 밧줄로 구속까지 했다는 것.
ㅡ 시발.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ㅡ 하... 너무 화가 난다...
ㅡ 그 어린애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ㅡ 두 딸들도 아까처럼 꼭 기도라도 좀 해주자
ㅡ ㅇㅈ 꼭 해야 돼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고스트 박스를 꺼냈다.
꺼림칙한 기분에 주위는 계속 살폈다.
“형님들... 아까부터 뭔가 조용해지지 않았어요? 거실 등도 그렇고...”
신기하게도 아까부터 거실 등도 삐걱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른 초자연적인 현상도 없었다.
띵동.
[ 그레이색이야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까 그 영가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준 후부터 안 났는데?
그런가?
그래도 영 찝찝하다.
2층까지 발자국 소리를 내며 따라온 그 무엇이 머릿속에 맴돌아 자꾸 괴롭힌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럼. 형님들. 빠르게 대화 한 번 시도해 볼게요.”
나는 귀신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현재 시각 3시 40분.
탁!
[ 치지지지지익- 치지지지지익- ]
“혹시 이곳에 누구 계시나요?”
이왕이면 안타깝게 죽은 두 딸이랑 대화가 됐으면 좋겠는데...
말이라도 들어 줄 수 있게.
위로라도 좀 해줄 수 있게.
하지만 고스트 박스는 10분을 기다려도 주파수 맞지 않는 소리만을 흘릴 뿐이었다.
“형님들. 반응이 없는데요. 어쩌죠? 저, 저기요? 누구 안 계시나요? 계시면 대답 좀 부탁드려요.”
ㅡ 그럼 날 샐 때까지 있어야지
ㅡ 내일 또 와야지 뭐
ㅡ 이왕 대답하는 거면 엄마 귀신이 했으면 좋겠다
ㅡ ㅅㅂ 지릴 것 같은데 그럼
ㅡ 대신 레전드 각 나옴
띵동.
[ 항문의영광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대답 좀 해봐 귀신 색히야!
[ 닭큐멘터리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쫄? 대답도 못하고 있는 거 보니 귀신 쫄았쥬?
시끄러운 후원 창 소리에도 여전히 고스트 박스는 치직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귀신 형님! 귀신 누님! 안 계시나요?”
[ 치이이이익- ]
나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시청자들에게 얼른 얘기했다.
“형님들 집에서 나갔나 봐요. 안 되겠네요. 안타깝지만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를...”
나는 고스트 박스를 끄려 손을 가져갔다.
이때.
삐거거걱. 삐걱. 삐걱.
나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갑자기 2층에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뭔가가 계단을 밟아 내려오는 듯 계단이 신음을 흘려댔다.
삐거거걱. 삐걱. 삐걱.
그렇게 천천히 1층으로.
쿵. 쿵. 끼익. 쿵. 쿵.
본능적으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까 날 위협했던 그놈.
그놈이 천천히 내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다급하게 시청자들을 찾았다.
혹시나 아까처럼 수신이 끊겨버릴까. 아니 그보다는 혼자가 돼버려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앞섰다.
“워... 씨. 형님들. 형님들? 지금 제 말 잘 들리시죠! 후원 안 해도 되니까 계속 얘기만 좀 해주세요! 아시겠죠!”
ㅡ 갑자기 왜 호들갑이야 이놈?
ㅡ 카메라 렌즈에 묻은 거나 지워. 안 보여
ㅡ 근데 이건 뭔 소리지?
ㅡ 어. 다시 삐걱 소리 들린다.
ㅡ 가까워지는데?
거실을 쳐다보는 와중에도 흘깃 방송화면을 쳐다봤지만 다행히 방송은 꺼지지 않았다.
근데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읽을 틈이 없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소리가 들린다.
엄청난 압박감이 따로 없었다.
[ 치지지지익- 엄마 치지지지익- 살, 려주세요 치익- ]
“워어어! 시발? 형님들! 고박 대답했어요! 대답했다고요! 형님들! 제 말 들리죠!”
두 딸의 목소리 같았다.
앳된 목소리의 두 음성이 겹쳐 들려온다.
왜 그럴까.
소리가 가까지면 질수록 고스트 박스의 음성이 비명으로 바뀌어 간다.
솜털이 내 몸을 보호하라 경고하듯 쭈뼛쭈볏 서버리기 시작했고.
난 그저 멍하니 안방 안에서 거실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치이이익- 꺄아아악 치이익- 제발 제발 엄마 치직! ]
삐거덕. 삐거덕.
나는 목울대를 출렁이며 가까워지는 소리에 맞춰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손전등을 정확히 소리 나는 곳으로 비추며 소금을 한 움큼 쥐고 기다렸다.
“가... 가까이 오기만 해봐! 시바아아알! 천일염의 역사를 알게 해줄 테니까!”
내 괴성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비웃듯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뚝 하고 멈춰 버렸다.
“뭐, 뭐야...?”
그 순간.
쾅!
안방 문이 부서질 듯 닫혀버렸다.
나는 사방에 시선을 뿌리며 소리쳤다.
“와아아아악! 시바아아알! 우리 대화해요! 대화! 대화를 하자고요!”
때마침 갑자기 고스트 박스에서 둔탁한 중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치이익- 어, 엄마 말 안 듣고 치이익- 어디 ]
[ 치지익- 은정이가 데려왔니 치지지지익- ]
[ 치익- 은정이가 이 사람 치익- 데려왔니 치이이익- ]
반복되는 은정이라는 단어가 내 귀를 괴롭혔다.
귀 옆에 대고 얘기하듯 고스란히 고막을 타고 흘렀다.
나는 급하게 천일염을 입에 물었다.
철컥. 철컥.
안방의 모든 물건들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장롱부터 시작해서 액자, 침대.
사방의 가구들이 미세하게 덜덜 떨어댔다.
침대에서 나던 피 냄새가 굉장히 진해졌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와아아악! 왜 이래! 무슨 일이야! 핸드폰! 형님들! 이제 후원 창 좀 띄워주세요! 제발!”
소리를 내 질러도 후원창은 깜깜무소식이었다.
본능이 내게 속삭인다.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고.
나는 일단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벗어나기 문을 향해 자리를 박찼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밟아 짓누르는 듯 엄청난 중력감에 의해 나의 무릎이 털썩 접혔다.
내 엉덩이가 닿아 있는 곳은 바닥이 아니었다.
침대였다.
순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왔다.
“엄마! 엄마! 으아아앙! 엄마! 말 잘 들을게요!”
“살려주세요! 엄마! 엄마! 안 돼! 안 돼요! 엄마!”
“꺄아아악! 엄마!”
내 시야가 흐려지는가 싶더니 번쩍거렸다.
영상이 눈앞에 흐르는 듯했다.
흑백으로 보이는 그 장면은.
한 여성이 아이들을 침대에 묶고 있는 장면이었다.
머리를 축 늘어트린 빨간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손놀림은, 연약한 아이들의 손과 발을 묶는 데에 아주 빨랐다.
“엄마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지?”
“잘 못했어요. 잘 못했어요.”
“엄마 잘 못했어요.”
아이들은 밧줄에 묶이면서 그렁그렁한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엄마 말을 왜 이렇게 안 들어! 어! 안 되겠어! 오늘 다 끝내자! 다!”
“엄마아! 엄마아!”
아이들이 아무리 두 손을 싹싹 빌어 애원해도 엄마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아이들을 다 묶은 그녀는 거실로 나가버렸다.
동생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옆에 있는 언니를 쳐다봤다.
숨도 제대로 몰아쉬지 못하며 겁에 질린 딸꾹질 소리와 함께 입을 연다.
“끄흑! 흐흑! 언, 언니 끄흑! 우리 이제 죽어? 흐흑!”
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동생을 안정시킨다.
작은 아이가, 그보다 작은 아이를 위로한다.
“흐흑... 아니. 안 죽어. 엄마잖아. 우리 안 죽어. 안 죽어 연희야.”
“끄흑! 흐흑!”
터벅. 터벅.
거실로 사라졌던 엄마가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 든 것을 늘어트리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 * *
느낌이 이상했다.
난 자고 있는 건가.
문득 조금 전에 보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몸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꺼칠꺼칠한 그 무엇이 뱀처럼 내 손목을 감는...
밧줄?
띵동.
[ 지렸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큰손 형님들 이러다 다 손절하겠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곰팡이가 잔뜩 낀 천장이 보였다.
두 손과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침대에 눕혀져 밧줄에 죄여 있었으니까.
“와아아아악! 시발! 나한테 왜 이래! 살려주세요! 시발!”
ㅡ 이 새끼 설마 눕방 중?
ㅡ 카메라 좀 비춰봐 이 새꺄!
ㅡ 그림이 나 쳐다보는 것 같다.
ㅡ 시발 깜짝! 제자리에서 점프 뜀
ㅡ 가지가지로 놀래키네 진짴ㅋㅋㅋ
ㅡ 뭐 하냐 진짜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빨리 카메라 비춰.
ㅡ 저 액자만 보고 있었더니 이상하게 속이 안 좋네
나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세 딸들과 똑같이 나를 죽이려 하는 건가?
이런 시발 미친 여자...
나는 살기 위해 지랄발광했다.
들썩! 들썩!
침대가 흔들리고 나는 또다시 떠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악다구니를 쳤다.
“으아아악!”
밧줄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 같았지만.
다시 어느새 밧줄을 내 몸을 꽁꽁 묶어댔다.
그때 고스트 박스가 음성을 흘려댔다.
[치이익- 엄마 말 안 들으면 치이익- 이렇게... 치익익-]
“으아아아악! 좆까! 이 미친 사이코패스 시발 귀신 년아!”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오른손을 뽑아냈다.
퍼석!
밧줄을 고정하고 있었던 침대의 한쪽 지지대가 박살 나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한 손을 뺀 나는 이번엔 오른손에 악을 주며 힘을 실었다.
[치이이이이익- 엄마가 치이이익- 이렇게... 치이익-]
“내가 네 새끼냐! 이 개 같은 귀신 새끼! 애들이 뭔 죄냐! 시발! 으아아아악!”
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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