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전원주택. 6
손에 피가 이제야 통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저린 손이 나을 때까지 기다려줄 여유는 없다.
나는 곧장 다리에 있는 매듭을 손으로 풀었고.
침대에서 내려와 벌떡 일어섰다.
“으아아악. 시발!”
몸이 휘청거렸다.
얼마나 피가 안 통했는지.
찌릿찌릿한 전기라도 느껴질 판이다.
[ 엄마 치익- 말 듣고 가만히 치이이익- 얌전히 치이이익- ]
“가만히? 얌전히? 시바알!”
나는 눈앞에 보이는 가족 그림에 소금을 모두 뿌렸다.
저 그림에서 이상한 기운이.
한기가 계속해서 줄줄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곧장 고스트 박스에서는 쇠를 깎는 듯한 목소리도 튀어나왔다.
[ 치이이익- 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
“워어어어! 형님들!”
나는 고스트 박스를 꺼 버리고 물건들을 다 챙겨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보이지 않는 끈적한 무언가가 나를 거미줄처럼 감아대는 것 같다.
뛰쳐나온 어두운 안방에서 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낚아챌 것 같았다.
다람쥐보다 빠르게 현관에 도착한 나는 출입문을 힘껏 잡아당겼다.
덜컥! 덜컥!
“어?”
문이 잠겨 있지 않은데 열리지가 않는다.
“열려라아아악!”
덜컥!
몇 번의 실랑임 끝에 나는 출입문을 뜯어내듯 열 수 있었다.
그렇게 총알처럼 밖으로 튀어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아니 달리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뒤를 보게 됐다.
“······.”
2층에서, 희미하지만 빨간 원피스를 차려입은 여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입을 벌리지도 못 한 채 다시 달렸다.
“허억! 허억! 시벌. 내 다리...”
그렇게 한참 멀어졌을까.
어느샌가 흉가는 내 눈에서 멀어졌다.
하늘은 어둠이 걷고 날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저 멀리 개미처럼 보이는 흉가 방향으로 침을 뱉었다.
“캭 퉤! 엄마는 무슨. 다신 엄마로 태어나지 말아라! 진짜 죽을 뻔했다. 슈바. 휴. 형님들. 아직 계시나요?”
띵동.
[ 그곳이알고섯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너 인마 귀신이랑 침대에서 뭐 했어!
ㅡ 6하 원칙으로 얘기해
ㅡ 쿠션 움직이는 소리 요란하게 나드만!
ㅡ 느낌 전달 좀
ㅡ 그나저나 귀신 퇴치는 한 거야? 두 딸 성불은?
ㅡ 우린 하나도 제대로 못 봤어
“형님들. 제가 정신이 없었어요. 오늘 레전드였습니다. 인정하시죠? 허억. 허억.”
ㅡ 뭔 개소리야
ㅡ 안방 문 닫히고 그림만 구경함
ㅡ ㄹㅇ 미술 전시관 온 줄
ㅡ 마지막 소금 던지고 빤스런하는 건 봤다.
ㅡ 보여준 게 있어야 뭘 얘기라도...
ㅡ 인정 ㅅㅂ 개노잼.
ㅡ 침대에서 뭐 했냐고 새꺄 ㅋㅋㅋㅋ
시벌.
저승행 열차를 탈 뻔했는데 그게 방송으로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확인하며 얘기했다.
“정말요? 형님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마지막은 카메라 제대로 비추질 못했어요. 아우. 이거 보세요. 여기 아까 다친 건데.”
나는 핑계가 아니란 걸 증명하려 상처도 보여주었다.
핏자국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팔목, 톡 건드리면 피가 줄줄 흐를 것만 같았다.
발목은 아직 시뻘겋게 부어올라 있다.
나는 죄송함에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들. 오늘 도저히 더 방송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다음 방송에서 꼭 꿀잼 드리도록 하겠...”
그 순간.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아니. 저기 다시 가서 두 딸 성불 시키고 와
후원창이 들리자마자 내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 양반아 당신이 가봐... 여기 주소 적어 줄게.
그나마 안정되었던 심장이 급격하게 멎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형님. 안 돼요. 형님 한 번만 살려 주십쇼! 이 연우!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저긴 진짜 위험한 곳 같습니다. 연우 한 번 살려 주세요!”
ㅡ 야. 그럼 저기 남은 두 딸은?
ㅡ 맞아. 막내딸은 성불 시켜줬다 해도 남은 두 딸 불쌍해
ㅡ 엄마 무서워서 소리 지르는 것도 고박 통해 들었잖아
ㅡ ㅅㅂ 쫄보 새끼
ㅡ 흉가 비제이라는 놈이 그런 것도 못 하면 방송 끝까지 이어가겠냐
ㅡ 좀 많이 서운하고 찝찝하네
ㅡ 먹튀 하냐 지금?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뛰어오면서 생각을 끝마쳤다.
막내딸이 내 기도로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지만 내 기도로, 내가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니. 형님들 먹튀라뇨. 그런 놈 아닙니다. 저도 정말 성불시켜 주고 싶긴 한데 저긴 도저히... 일단 죄송합니다.”
5시가 넘었는데도 400명이나 보고 있다.
정말 엄청난 파급력.
분명 나를 처음 보러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문을 타고 나를 구경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띵동.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진짜 이대로 끝이냐? 두 딸 성불 시켜준다며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띵동.
[ 귀신집에히터틀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 그럼 오늘은 말고 다음에 다시 여기 와라.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들. 차라리 다른 곳을...”
나는 시청자들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그때.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200만 원. 미션 제한 없다. 일주일 안에 저기 다시 가서 두 딸 성불 시켜라
띵동.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ㅡ 반 먼저 선입금 한다. 먹튀하면 알지? 바로 손절이다.
털썩!
나는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스트 박스를 꺼내 애인처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갈 생각을 하겠습니까. 형님들. 제가 두 딸의 그 목소리가 귓속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성불 시켜주지 않고서는 잠이나 자겠습니까! 흑흑. 왜 이렇게 마음씨 좋으신 분들만 모이셔가지고...”
ㅡ ?
ㅡ 무릎 부서지는 소리 들리지 않음?
ㅡ 주온보다 소름 끼치네
ㅡ 정말 성불 때문에 맞지?
ㅡ 야. 눈 비춰봐 눈물 나나 보게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훌쩍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형님들의 그 뜻을 받들어, 만반의 준비로 돌아오겠습니다!”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ㅇㅇ
ㅡ 오늘도 돈미새가 이겼다
ㅡ 큰손 형님 또 낚임
ㅡ 쯧쯧 흉가 귀신도 후원한테 밀림
ㅡ 님들 감동파괴 하지마셈
ㅡ 약속 지켜라 꼭!
ㅡ 나도 그날 충전하고 기다린다
나는 고마운(?) 시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꺼내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형님들... 오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일단 저는 이만 방송을 끄고 첫차 타고 집으로 가서 쉴게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뿅!”
[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나는 멀리 보이는 흉가를 다시 돌아봤다.
그리고 흉수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거기서 딱 기다려라.”
준비는 됐다.
***
이틀 뒤.
저승행 열차. 3일만을 남겨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장난감으로 쥐포랑 놀아주던 중.
뜬금없이 임아린에게 연락이 왔다.
“어?”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를 단정하고.
다급하게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크흠!”
낮게 목소리를 깔아 멋지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장니임! 저 임아린이요.
청아한 목소리와 하이톤의 애교 섞인 말투.
언제 들어도 웃음을 짓게 만든다.
“하하. 네. 무슨 일이에요?”
-다름이 아니고 첫 폐건물 가셨던 영상 편집해서 업로드했어요. 확인해 주세요!
“아. 진짜요?”
-넹. 열심히 했으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저는 필라테스 때문에 이만.
“감사합니다. 모니터링하고 연락...”
뚝.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끊어졌다.
필라테스가 이렇게 바쁜 취미였던가?
그래도 이틀 만에 웃었다.
금방 끊어져서 아쉬웠지만...
나는 그 아쉬움을 곧장 유트브 검색창에 내 이름 석 자를 적으며 해소했다.
정연우.
그러자 내가 화들짝 놀란 표정이 섞인 섬네일의 동영상 하나가 떡하니 떴다.
[ 공포의 폐 첫 건물에서 기절과 빙의를? ]
약간의 어그로성을 섞은 제목도 함께 섞이니 조화가 좋아 보였다.
클릭을 하려는데, 순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하...”
내가 찍힌 영상이 유트브에 업로드되어 있다는 것이 왠지 신기했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랄까.
나는 아주 흐뭇한 마음으로 영상을 재생 시켰다.
그리고 그새 달린 댓글을 훑었다.
ㅡ 1빠
ㅡ 2빠. 워... 이걸 어떻게 혼자 갔지?
ㅡ 이분이 그 전과자 때려잡았다던 그 유트버에요?
ㅡ ㅇㅇ 칼 든 범죄자 맨손으로 후 드려 팸
ㅡ 얼굴도 잘생겼네
“내가 좀 생기긴 했지.”
그중에는, 날 보고 웃거나 욕하는 댓글들도 있었다.
ㅡ 그냥 과자 아니고 전과자 때려잡은 거 맞져?
ㅡ 컹.. 운동신경 1도 없게 생겼는데. 개멸치
ㅡ 한 손가락으로 상대 가능. 연락 주셈 010-1234-3214
ㅡ 딱 봐도 주작이네 ㅅㅂ
"이런 시벌넘이."
그래도 그 모든 게 흐뭇하게만 느껴졌다.
영상을 올린 지 몇 시간 채 되지도 않았는데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조회 수도 이미 2천을 넘어가고 있는 중.
나는 다시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닉네임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녀보살.
요즘에는 통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쥐포를 내게 선물해 준 장본인.
언제나 위험한 상황 속에서 나를 염려해 준 은인이었다.
게다가 후원금까지.
‘선녀보살님... 지금 어디서 뭐하고 계실까? 많이 바쁘신가 보네.’
***
나는 지옥행 열차로 인도할 미션을 더욱 앞당겼다.
벌써 목요일 오후.
평소보다 1시간씩 운동량을 늘리며 체력훈련을 해왔지만.
역시나 담력은 그대로였다.
당연히 평소처럼 벌벌 떨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송을 맞이해야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나는 저번에 갔던 흉가를 앞에 두고도 덜덜 떨지 않았다.
안정된 모습으로 카메라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형님들 연이루!”
ㅡ 어? 뭐여? 벌써 흉가 갔어?
ㅡ 근데 어째 표정이 좋아 보인다
ㅡ 무서웠다는 거 다 뻥 아니여?
ㅡ 후원도 받았는데 저승사자도 안 무섭겠지
ㅡ 방송 시작했음 얼른 들어가자
“형님들...”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왜 안 들어가. 들어가
“잠시만요. 형님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손님 한 분이 같이 오셨거든요.”
나는 내 얼굴을 찍고 있던 카메라를 돌렸다.
ㅡ 뭐야? 박필준이냐?
ㅡ 설마... 둘리는 아니겠지?
ㅡ 임아린?
ㅡ 쥐포?
수많은 채팅창을 지켜봤다.
그리고 흐뭇하게 옆에 있는 사람을 소개하며 카메라를 비췄다.
“안녕하세요. 선녀보살 선생님! 인사 좀 부탁드릴게요.”
160을 조금 넘어 보이는 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만 고운 여성상이다.
피부는 하얗다 못해 투명했고 길고 얇은 눈썹을 가졌다.
선녀보살님이 웃자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ㅡ 존예 ㄷㄷㄷㄷ
ㅡ 그냥 선녀인데?
ㅡ 여보!
ㅡ 거기 어디냐? 당장 달려간다!
ㅡ 비제이 새끼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ㅅㅂㅠㅠ
ㅡ 요즘 비제이가 왜캐 부럽지 옘병
ㅡ 눈나 나 죽어~~
카메라를 보며 씽긋 웃었던 선녀보살님이 뒤돌아 흉가를 바라봤다.
흉가에 시선을 고정한 그 두 눈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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