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60화 (60/225)

피 흘리는 전원주택. 9

“그래도 이놈이...”

선녀보살님의 중얼거림은 서늘했다.

나는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벽에 새까맣게 채운 벌레들의 더듬이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선녀보살님이 노려보고 있는 항아리에선 한기가 흘러나오는 듯 착각마저 인다.

[ 찍 찍찍 찍찍찍 ]

스스스스스슥.

이번엔 어디서 몰려오는지 쥐들이 안방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쥐들은 안방을 점령하려는 듯 수를 더 불려왔다.

“괜찮아요.”

선녀보살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안 괜찮다.

이런 광경은 듣고 들어 보지도 못했다.

벽엔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바닥은 온통 쥐들로 들썩인다.

[ 까아아아악 까아아악 ]

멀리선 까마귀 울음소리까지 들린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정말 CG로만 볼 수 있는 상황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시벌. 이것들 도대체 뭐야. 형님들...”

ㅡ 뭔 소리야 이거? 쥐인가?

ㅡ 음식 냄새 맡고 쥐들이 겁나 달려왔나 봄

ㅡ 컥... 창밖에 새카만 거 저거 설마 까마귀냐?

ㅡ 비제이 색기. 피날레 쇼 준비했나 본데

ㅡ 세스코 불러 ㅅㅂ

ㅡ 와... 벌레 풀고 쥐까지 풀은 건가? 주작이라도 이 정도면 ㅇㅈ해줘야 할 부분인데.

ㅡ 둘리야 보고 있냐? 주작하려면 이 정도 스케일은 돼야지.

ㅡ 헐 ㅅㅂ 개소름. 까마귀 왜 이렇게 많아

그 순간.

“선생님!”

피 냄새를 넘어선 심한 악취가 진동을 하더니.

온갖 벌레 떼들이 선녀보살님의 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벌레뿐만이 아니었다.

쥐도 흙더미처럼 선녀보살님 주위로 모여들었다.

[ 까아아악 까아악 ]

나는 다급하게 선녀보살님에게 다가가 쥐들을 발로 차고 벌레들을 쫓았다.

“시바! 미친 벌레 새끼들아!”

ㅡ 씨발 뭐야 저 벌레들

ㅡ 헐 몸에 다 달라붙었어...

ㅡ ㅅㅂ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냐

ㅡ 야 이 개색갸 어딜 만지는 거야

ㅡ 왜 그쪽만 털어내냐고!

그 순간.

선녀보살님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아리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고개를 천천히 저으신다.

“이렇게 기회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제 발로 걷어찼으니 평생 무저갱이 보다 더 어두운 곳에서 있어야 할 게다.”

곧이어 부적을 꺼내 두 손바닥 사이에 끼우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부적도 아까운 지고.”

그때부터였다.

온몸에 달라붙은 벌레들이 일제히 몸에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닥을 가득 채웠던 쥐들이 빠르게 안방을 빠져나갔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도.

썰물처럼 안방을 빠져나갔다.

ㅡ 시발 주작이라던 새끼 어딨냐?

ㅡ 벌레가 사람 말 듣는 거 봤냐?

ㅡ 개 신기하다 ㄷㄷㄷ

ㅡ 나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ㅡ 옆에 에프킬라 뿌리는 알바생 있는거 아님?

ㅡ 공포영화 저리 가라 ㄷㄷㄷ

ㅡ ㄹㅈㄷ 다 이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 선녀보살님. 혹시 끝난 건가요?”

선녀보살님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항아리를 집어 들었다.

“네. 이제 다 끝났으니 집에 갑시다.”

ㅡ 소 쿨

ㅡ 개 멋있어...

ㅡ 살인귀를 단번에 제압하는 여자

ㅡ 와... 온몸에 벌레 타고 오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ㅡ 나는 백퍼 소리 질렀을 거야

ㅡ 그래서 선녀보살님 이상형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선녀보살님의 손에 들린 항아리를 보며 물었다.

“그럼 그 항아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궁금했다.

항아리에 갇힌 저 살인귀가 다시 난동을 피운다면, 곁에 있는 누군가가 또 빙의가 된다거나 위험에 처할 수 있지 않을까?

선녀보살님이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얘기했다.

“이 녀석은 봉인하기 위해 제가 신당으로 가져갈 거예요. 여기선 이렇게 날뛰어도 신당에선 꼼짝도 못 할 테니까, 연우 씨는 걱정 마세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방금 전의 상황만 봐도 내공이 장난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벌레가 손에만 쥐여져도 기겁을 하는 나와는 천지차이였다.

나는 선녀보살님과 서둘러서 그 자리를 정리했다.

밖에 나와 주택을 잠시 뒤돌아 봤다.

기분이 묘했다.

여태껏 많은 폐가를 돌아다녔지만, 이번만큼 영가들의 정체들을 또렷하게 느낄 순 없었다.

사연까지 말이다.

혼자 다시 왔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정말 선녀보살님이 힘이 컸다.

나는 정말 감사하는 마음에 선녀보살님에게 조그마한 봉투를 내밀었다.

거기엔 내가 후원금으로 받은 100만 원이 들어있었다.

“선녀보살님. 제가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라도 좀 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선녀보살님은 날 흐뭇하게 쳐다보시며 거절했다.

오히려 내 주머니에 도로 넣어주었다.

“이런 거 안 받아도 돼요. 그러려고 온 거 아니니까.”

“아니. 그래도...”

ㅡ 저거 우리 돈 아니냐?

ㅡ 굳이 따지자면 큰손 형님 돈 일듯

ㅡ 아 그건 인정

ㅡ 그래도 저 옘병할 놈 우리 후원금으로 유료템 쓴 거네

ㅡ ㅇㅇ 야 시발놈아!

첫 거절은 예의겠지라는 생각에 몇 번을 다시 내밀었지만.

모두 거부 당했다.

거기에다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차까지 태워주신단다.

선녀보살님이 계신 덕분에 생각보다 방송도 일찍 끝나버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도움에 응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고 있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우리 집 방향이랑은 정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뭐야 시벌?

나도 저 항아리처럼 집에 가둬 놓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선녀보살님. 이게 저희 집 가는 길이 맞나요?”

“연우 씨한테 선물이 있어요.”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드디어 그 선녀보살님이 얘기하신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평범하게 보이는 개인주택이었다.

현관 앞에는 빨간 깃발과 하얀 깃발이 나란히 꽂혀있었다.

“아... 이곳이 신당이라는 곳이구나... 아차, 근데 선녀보살님 혹시 이게 방송에 나가도 되나요?”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선녀보살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우... 형님들. 이거 보이시나요... 대박.”

한 발을 들이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알록달록한 무구들과 장식들.

게다가 기다란 장칼을 들고 있는 저 동상들은 쳐다보기만 해도 지릴 것 같다.

하지만 옅게 맡아지는 향냄새는 기분을 묘하게 안정시켜 주었다.

신기하게 신당을 쳐다보던 나에게 선녀보살님이 말했다.

“여기 앉아 봐요.”

“어... 네네.”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선녀보살님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얼굴 뒤를 쳐다보는 듯했다.

마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온화하게 웃으시며 말한다.

“좋은 분이 함께 계시네. 체력적으로는 고생을 일절 안 하겠어. 근데 담력은 한결같아. 둘 다.”

“······?”

선녀보살님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서랍에서 부적 종이를 꺼내시더니 붓으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슥슥. 슥슥.

그리곤 내게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폐가 다니실 예정이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아니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먹방이나, 차라리 몸을 이용한 방송을 한다거나...

채팅창도 반강제적으로 내게 강요한다.

ㅡ 무조건 아니오라고 대답해라

ㅡ ㅅㅂ 방송 접음 다 환불 요청

ㅡ 컨텐츠도 바꿔도 다 환불 요청

ㅡ 그냥 네라고 대답하면 만 원.

“네.”

선녀보살님은 웃으며 내게 대답했다.

“그럼 내가 부적 몇 장 써줄 테니까 몸에 지니고 다녀요.”

“우와아아아아! 정말요!?”

“네.”

나는 선녀보살님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감사하다며 벌떡 일어나 큰절까지 올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절을 두 번을...”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재차 인사를 건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벌... 이제 저 부적만 있으면...

나는 들뜬 마음에 선녀보살님에게 물었다.

“선녀보살님. 그럼 아까 같은 살인귀를 저도 퇴치할 수 있는 건가요?”

선녀보살님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나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ㅡ 연무룩

ㅡ 그럼 재미없지

ㅡ 다음엔 더 센 애들 만나러 가야 되는데

ㅡ ㄹㅇ 저 새끼는 부적 있어도 질듯

ㅡ 그건 인정

“살인귀는 저희 같은 분들이나 상대할 수 있어요. 이 부적은... 몸 성히 잘 지내시라고 기도해 주는 부적이에요.”

“아······ 혹시 그··· 살인귀 같은 귀신 퇴치용 부적은···.”

선녀보살님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종류의 것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해요. 연우 씨는 피하시는 게 최우선이에요.”

“·········”

시청자들이 날 그렇게 둘까?

아마 손절 때린다고 난리를 치며 채팅창이 욕으로 도배가 되겠지.

난 그래도 환한 표정으로 부적을 받았다.

가뜩이나 이 몇 장도 받지 말라는 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는데.

내가 놀라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나... 시벌넘들.

선녀보살님은 그 부적을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꼭 안아주었다.

마지막 인사였다.

“항상 몸조심 하시고, 다음에 또 무슨 일 생기면 찾아줘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나는 허리를 굽혀 폴더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집을 나왔다.

아니. 다시 들어갔다.

우린 한참 서로를 말없이 멀뚱멀뚱 쳐다봤고.

결국 내가 입을 열었다.

“선녀보살님. 근데 집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너무 자연스럽게 나가셔서 택시 타고 가시는 줄. 가요. 바래다 드릴게요.”

***

그렇게 나는 선녀보살님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3시를 넘기고 있었다.

“형님들, 오늘 방송 꿀잼이였나요? 다음에는 흉가는 아니더라도 아주 좋은 장소를 찾아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ㅡ 내가 적당한 흉가 찾아놓을게

ㅡ 이제 폐가는 재미없을 것 같은데

ㅡ 벌레가 몸에 타고 올라야 볼 맛이 난다

ㅡ 확실하게 찾아놔!

ㅡ ㄹㅇ 레전드였다!

ㅡ 주작 준비하느라고 수고했다.

ㅡ 주작무새 좀 닥쳐 개 ㅂㅅ 새끼야!

“네! 알겠습니다. 형님들! 오늘 고생하셨고 다음에 뵐게요 뿅!”

나는 조용히 씻고 이불 위에 누웠다.

등이 바닥과 물아일체가 되며 몸이 녹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수마는 금방 나를 꿈속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세 딸과 어머니는 좋은 곳으로 갔을까?

***

분명 나는 잠에 들었는데.

불과 30분도 안 되어 눈을 떴다

온 바탕이 새하얗게 펼쳐진 곳이다.

저 멀리서 한 아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키가 작은 여자아이.

볼에 제법 살이 올라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내 앞에 다가와 해맑게 웃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뜬금없이 다가와 고맙다는 여자아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뭐가 고맙다는...”

순간, 나는 그 여자아이의 머리에 꼽힌 핀을 보고 누군지 알아챘다.

리본 모양의 머리핀.

막내딸이었다.

“어!? 너?”

막내딸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에 폭 안겼다.

나는 얼떨떨함에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멀리서 두 명의 딸들과 엄마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내게 안겨 있던 아이가 다시 말한다.

“고마워요. 아저씨.”

진심 어린 감사에 뿌듯함과 함께 콧잔등이 시큰 거린다.

“고맙긴...”

근데... 나 아저씨 아닌데.

“아저씨. 선물이 있어요.”

“선물?”

“네.”

“그게 뭔데?”

수줍은 표정을 짓던 막내딸이 빙그레 웃으며 두 손을 활짝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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