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74화 (74/225)

여고괴담. 2

쏟아지는 채팅의 내용도 무시한 채 입구에 다가섰을 때였다.

ㅡ 동상 앞으로 ㄱㄱ

나는 언제나 늘 그렇듯 자동적으로 동상 앞에 섰다.

이순신 장군 동상, 사자 동상이 나란히 보이는 자리였다.

잠시나마 동상들을 살폈다.

이순신 장군 동상 한 팔은 옆구리를 짚은 채로, 한 팔은 칼을 세워 잡은 채로 근엄하게 서있다.

사자 동상은 그런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다.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두 동상은 살짝씩 군데군데 깨져 더 기괴하게 보였다.

“와··· 형님들. 이거 이순신 장군 맞죠? 대박 멋있··· 아니. 왜 이렇게 무섭지.”

ㅡ 크. 추억 돋네

ㅡ 연우야 너 혹시 그거 아냐?

ㅡ 저 두 동상이 밤 12시 지나면 서로 싸운다?

ㅡ ㅇㅇ 맞아. 사람 보면 다시 제 자리로 감

ㅡ 어제도 싸웠나 본데? 사자 얼굴 깨져있음

ㅡ 이순신 장군도 다리가 깨져있는데

ㅡ 레알? 숙명의 대결 ㄷㄷ

ㅡ 사자로부터 학교를 지켜야 되니까

나는 코 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아니. 형님들. 제가 초딩도 아니고 그런 말을 믿겠습니까!”

ㅡ 진짠데. 이순신 장군 동상에 EMF 갖다 대 봐

“풋. 잠시만요.”

나는 EMF 측정기를 잠깐 꺼내 건들거리며 동상 앞에 갖다 댔다.

타이밍 좋게 알람시계가 울렸고.

[ 12시입니다. ]

동시에 3단계가 요동쳤다.

“워어어어! 시벌! 뭐야!”

3단계?

뭐야 이거? 전자기장을 뿜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하나도 없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세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심각하게 이리저리 EMF 측정기를 갖다 대며 살폈다.

“뭐지? 형님들?”

ㅡ 뭐긴 리얼이지. 학교 지켜주는 영웅에게 절 두 번. 만 원.

내 무릎이 반사적으로 땅에 닿았다.

그리고 두 팔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내 입 역시 자동적으로 열렸다.

“하이고오오. 이순신 형님. 존경합니다아아. 끝까지 학교를 지켜주십쇼.”

[ 귀신빤스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좋아

그런 와중에도 내 눈은 이순신 동상에서 떠나질 않았다.

동시에 주위를 계속 살폈다.

ㅡ ㅋㅋ 미친 개 쫄았네

ㅡ 초딩이 아니라서 안 속는다매?

ㅡ 근데 대박 신기하네. 어떻게 그 타이밍에 4단계가 뜸?

ㅡ ㅋㅋ 미션을 준 나도 깜짝 놀람 ㅋㅋㅋ

ㅡ 그나저나 저넘 잔뜩 쫄아가지고 채팅창 보지도 않네

ㅡ 야 인마! 풀템 장착하고 10분 만에 쫄보 됐냐

도대체 뭐지?

나는 미션을 끝내고 EMF 측정기를 껐다.

그리고 다시 켠 후, 바라봤다.

0단계.

뭐야? 기계 오 작동이야?

나는 소녀 가슴을 추스르고 카메라에 대고 얘기했다.

“형님들. 그럼 이제 학교를 들어가 보겠습니다.”

ㅡ 고고싱

나는 얼른 학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20년.

관리가 되지 않는 땅에 자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작은 건 무릎부터, 큰 건 사람 키만큼 자란 풀 들.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가 숨어 풀썩풀썩 몰래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그 풀을 헤쳐가며 멀리서나마 학교 창문들을 살펴봤다.

일정한 크기의 하얀 창틀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와··· 형님들. 여긴 왜 창문들이 죄다 멀쩡한데요? 깨진 게 하나도 없네.”

그렇게 시멘트로 지어진 입구를 향해 학교로 들어가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복도 앞 난잡하게 떨어져 있는 유리 조각들.

창문이 죄다 멀쩡했던 것이 아니었다.

붙어있는 유리조각 하나까지 아주 깔끔하게 깨져 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내 눈앞에 보이는 이 복도···

“오우··· 시벌. 진짜 엄청 오래됐나 봐요···”

일자로 쭉 펼쳐진 복도 앞.

바닥에는 의자, 책상 할 것 없이 난잡하게 부러져 뒤엉켜 있었고.

창문 밖에서 들어온 풀들이 복도, 교실을 다 점령해버렸다.

마치 풀 줄기들이 거미줄처럼 온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천장에 매달린 목재들.

벽을 이루고 있는 목재들이 듬성듬성 썩어 뚫려 짐승의 아가리처럼 벌리고 있다.

ㅡ 오우, 살벌하다

ㅡ 이거 교실 맞냐? 밤에 봐서 그런가? 왜 이렇게 공포스럽냐

ㅡ 무슨 공포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네

ㅡ 아니. 돈을 들여서도 이런 연출은 힘들겠는데?

ㅡ 역시 자연이 제일 무섭다

그렇게 내가 1층 바닥에 천천히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끼익!

“오우 씨!”

내 몸무게가 실린 발이 목재로 이루어진 바닥에 닿자마자 바닥이 출렁댄다.

역시나 보이는 것 그대로 바닥이 낡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형님들. 여기 괜찮을까요? 너무 위험한데 여기.”

나는 반복적으로 발로 바닥을 밟아보며 움찔 움찔거렸다.

ㅡ 괜찮아. 바닥으로 꺼져도 많이 빠지지 않아. 그 밑에는 흙, 시멘트다

그렇구나.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 한 발을 더 얹었다.

그렇게 처음 보이는 교실.

3학년 4반에 들어섰다.

역시나 교실 안쪽도 자연에 의해 점령당했다.

모든 풀들이 교실을 덮어버린지 오래다.

[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엄마랑자야지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칠판 앞으로 가서 니 흔적을 남긴다 실시.

분필로 인한 낙서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칠판.

그곳엔 나보다 더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도 보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눈에 띄는 특징이 있었다.

[ 폐 여교 클리어. 성훈이가 이 ]

[ 여기 귀신 있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

모두 남긴 흔적의 글들이 마무리가 안 되어있다는 것.

“형님들. 이것 좀 보세요. 글이 끝까지 완성되지 않고 죄다 잘려있네요.”

ㅡ 귀찮았나 보지 뭐

ㅡ 손에 힘이 없었나 보지 뭐

ㅡ 일부러 그랬나 보지 뭐

ㅡ 귀신이 나타났나 보지 뭐

ㅡ ㄷㄷ 라임

“흠···”

거침없이 분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이템들을 장착한 후라 그런지 왠지 자신감이 늘었다.

나는 오래돼서인지 자꾸 부서지는 그 분필로 기어코 칠판에 흔적을 남겼다.

[ 최강 미남 연우 이곳에 다녀가다. ]

다행히 흔적을 남기는 동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아니 그때.

“워어어어! 시발! 누구야!”

교실 밖 복도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재빨리 뒤돌아 고개를 돌려 소리쳤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더 이상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복도 밖을 살피던 나는 조심스럽게.

아니.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목에 걸린 십자가를 들이밀며 뛰쳐나갔다.

“누구야!”

ㅡ 아무도 없잖아

ㅡ 오바 하지 마라

ㅡ 그냥 바닥이 낡아서 혼자 주저앉았나 보지

ㅡ 오. 아이템 장착했다고 많이 쎄졌다 너

ㅡ 근데 진짜 누가 밟은 소리 같긴 했다

ㅡ 인정 ㅅㅂ 울려서 더 소름 끼침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카메라에 대고 얘기했다.

“스읍 아닌데··· 분명 주저앉아서 나는 소리가 아닌데.”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빨리빨리 움직여라. 오늘 추억의 장소에 온 만큼 추억의 미션들이 많다

“추억의 미션이요?”

어우씨. 가뜩이나 이 학교에 오기 전.

괴담들을 연달아 읽은 터라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왠지 느낌이 안 좋다.

야생곰님이 갔던 장소 피하려다 괜한 곳을 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교실을 빠져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어진 교실들이 쭉 보였고, 조금 지나자 여자 화장실이 보였다.

“여긴 화장실이 있네요. 더 앞으로 가보겠···”

ㅡ 동작 그만. 어딜 그냥 지나쳐. 오래된 화장실 구경 좀 시켜줘봐.

이런 시바. 왜 화장실을···

지금 다니는 학교 화장실도 오후 저녁만 되면 그렇게 싸늘한 분위기가 맴돈다.

들어가기 싫은 곳 중 하나.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댔다.

“형님들. 여자 화장실이잖아요. 남자는 들어가면 안 되는 곳입니다.”

[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엄마랑자야지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드가

역시나 목재로 만들어져 겉껍질이 다 떨어져 나간 화장실 문.

나는 그 문을 두드리고.

똑똑.

“변태 아닙니다.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아?”

소름 끼치는 소리를 토해내는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순간, 내 코를 덮치는 쿰쿰하고 쾨쾨한 냄새.

곰팡이와 화장실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우··· 형님들. 역시 오래된 화장실이라 냄새가 엄청나요.”

나는 곧장 앞을 향했다.

얼른 이곳을 구경시켜주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칸칸이 나누어져 있는 화장실의 문이 모두 닫혀있다.

나는 첫 번째 칸을 넘어 두 번째 칸, 그리고 세 번째···

ㅡ 4번째 칸 열어봐 봐

”화장실 문을요?“

시벌. 이걸 왜 열으라는 거야.

폐가에서의 이런 닫힌 문, 닫힌 상자들은.

나에게 판도라의 상자와 같았다.

여는 동시에 무언가가 퍽!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4번째 칸의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덜컥.

“으으으읍!”

다행히도 오래된 변기가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ㅡ ㅋㅋ 꺅 오랜만

ㅡ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변기다

ㅡ 저 변기 앉으면 잘 나옴

ㅡ 아직도 저 변기 쓰는 학교들 많을걸?

ㅡ ㅇㅇ 우리 동네 저 변기 많음

ㅡ 사랑받는 변기구만 ㅋㅋ

휘이 이익-

깨져버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옴과 동시에.

입구의 문이 절로 닫혀버렸다.

쾅!

그와 동시에 세면대에 있는 무언가가 손전등에 반사되며 눈에 띄었다.

“어. 저건 뭐지···? 뭐야? 쇠. 아니. 카··· 칼! 칼! 형님들! 칼!”

그건 집에서나 있을법한 커다란 식칼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미간을 잔뜩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칼은 전혀 녹슬어 있지 않았다.

손잡이 부분도 색 변질이 전혀 돼있지 않았다.

심지어 칼 옆에 여학생들이 쓸 법한 작은 손거울은 또 뭐고.

시발. 뭐야? 자객이 있나?

아닌데··· 오늘 즉흥적으로 온 거라 이곳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ㅡ 웬 칼?

ㅡ 손거울?

ㅡ 뭐야? 누가 갖다 놨어?

ㅡ 살인이라도 한거 아님?

ㅡ 아. 이거 여고라고 또 누가 괴담 따라 했나 보네

ㅡ 설마 12시에 칼 물고 거울 보는 괴담?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물었다.

“그게 뭐예요 형님들?”

ㅡ 밤 12시 넘어서 화장실에서 입에 칼 물고 거울 보고 있으면 미래의 배우자가 보인대

ㅡ ㅇㅇ 맞아 저거임

ㅡ 너도 해 봐. 있는 김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어떤 미친놈이 궁금하다고 입에 칼을 물고 화장실에 있을까.

“미쳤어요 형님들. 12시 넘은 시간에 폐가 와서 무슨 그런 짓을···”

[ 부릅뜨니숲이었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4번째 칸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칼 문채로 손거울 보고 5분 버티면 십만 원.

“이 형님들이···”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니. 도대체 여기 식칼이 왜 있는 거냐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나는 일단 식칼의 상태부터 살폈다.

“이거 진짜 칼이 맞나···”

휘익! 휘익!

나는 허공에 몇 번 휘두르고 옆에 떨어져 있던 종잇조각도 그어봤다.

쓱.

진짜 칼이다.

그리고 입에 물어도 되는 건지 위생적으로 꼼꼼하게 살폈다.

“다행히 깨끗하네요 형님들. 그럼 형님들이 초 좀 후원창으로 띄워주세요. 잘 아시죠 형님들?”

ㅡ 근데 너 마장동 출신이냐

ㅡ ㅅㅂ 칼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네

ㅡ 레알 칼잡인데

나는 내 몸에 두른 아이템들을 체크하며 생각했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아이템을 이렇게나 장착했는데?

“형님들. 준비 좀 할게요!”

곧장 네 번째 칸에 들어갔다.

아까 보았던 변기와 구석 한편에는 빨간 양동이, 마포 자루, 플라스틱 빗자루가 보인다.

나는 삼각대를 고정시키고 나를 찍게 했다.

그리고 똥을 싸는 자세로 쭈그려 앉았다.

손전등은 다리에 끼워 아래에서 위를 향하게 했고.

칼은 입에 문채로 손거울로 내 모습을 지켜보며 눈을 부릅떴다.

“자. 혀니ㄷ. 시자하 %@$.”

그렇게 3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나자 후원창이 울렸다.

ㅡ 1분.

ㅡ 2분.

ㅡ 3분.

긴장했던 것만큼 무섭진 않았다.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ㅡ 5분.

그렇게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입에 문 칼을 뱉으며 시청자들에게 으쓱댔다.

“퉤! 휴우. 형님들. 이제 이런 미션쯤은 가뿐 하···”

순간, 내 두 눈이 부릅떠졌다.

동시에 내 몸이 몸이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화장실 입구 문이 스스로 열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잠긴 문밖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차박. 차박. 차박.

나는 급하게 숨을 멈췄다.

그리고 오로지 청각에 집중했다.

사방이 가로막힌 곳에서의 공포란 이런 것일까.

맨 발자국 소리는 점점 내가 있는 화장실 칸 앞으로 다가왔다.

시··· 시발 누구야? 사람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화장실 칸 밑, 뚫린 공간으로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와아아아악! 시바아아아아알!”

멈추고 있던 숨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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