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77화 (77/225)

여고괴담. 5

훤히 드러낸 이마가 돋보이는 얼굴.

2:8가르마로 곱게 빗은 머리에 검정 한복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급하게 십자가를 손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아니. 이내 다시 손전등으로 확인 후 눈살을 찌푸렸다.

“어우! 시발! 깜짝이야! 왜 문 정면에다 저런 액자를···”

눈앞에 보였던 그 얼굴은 액자 속에 있는 인물.

바로 이 학교를 설립한 교장 선생님이었다.

설립자. 김홍수.

ㅡ 왁! 시발! 개 깜짝 놀랐네.

ㅡ 야 이 시발놈아 손전등을 비춰도 하필이면 액자 정면에···

ㅡ 저 새끼가 문제야 시발!

ㅡ 와··· 심장 터지겠네 개색갸!

ㅡ 그냥 사진인데 왜 이렇게 섬뜩하냐

ㅡ 인정

나는 카메라에 대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후우. 후우. 형님들 죄송합니다. 저런 액자가 있을 줄 몰랐어요.”

사과를 끝낸 나는 교무실 안으로 발을 들여 넣었다.

와. 이곳···

이곳 역시 모든 폐 책상들이 그대로 배치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곳보다 유난히 상태가 심각했다.

천장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흘러내려져 있었다.

게다가 바닥에는 부서진 목재로 인해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빠지게 되면 마치 블랙홀처럼 나를 영원히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혀··· 형님들. 이것 좀 보세요.”

나는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입구에서 봤던 교장선생님의 액자.

그 옆으로 벽에 걸린 액자들이 수두룩했다.

교장 선생님들을 비롯해, 근무했던 선생님들까지 나란히 있었다.

싸늘한 적막함이 흐른다.

폐 가구가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소름 끼쳤다.

마치 사방에 걸려있는 액자의 얼굴들이.

나를 째려보고 있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시벌. 액자을 왜 죄다 이렇게 벽에 걸어 둔거야?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일단 다급하게 EMF 측정기부터 확인했다.

“스읍 혀··· 형님들. 측정기는 반응하는데 고스트 박스가 또···”

EMF 측정기가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이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또 한 번 고스트 박스의 음성이 멈췄다.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옛날 추억 돋는다. 일단 액자들 좀 비추면서 소개 좀 해봐 봐

하··· 이 현장감 얼마나 오싹한지 알기나 하고 얘기하는 건가?

그럼에도 나는 반사적으로 액자를 하나씩 살폈다.

하지만 얼굴을 하나씩 살펴볼 때마다 내 몸이 움찔움찔 거렸다.

“형님들··· 아니. 액자 속 이분들 표정이 너무 삭막한 거 아니에요···?”

사진 속 인물 들은 일동 모두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그 시절 엄숙한 기준의 분위기를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액자들을 비춰가고 있을 때였다.

“3학년 4반 김춘삼 형님이 계셨고요, 3학년 2반 이형국 형님이 계셨네요. 그리고···”

순간, 액자들을 지나치다 한곳에서 멈칫거렸다.

그리고 미간을 한참 찌푸리며 액자를 살폈다.

“어··· 김영수 이 형님 어디서 많이··· 아?”

귀신이 찾아대던 문제의 선생님이었다.

동시에 아까 잠깐 읽었던 기억에서 허은정에게 남으라고 지시했던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다.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타고 올랐다.

이 사람이었구나.

3학년 1반 김영수.

기사에는 직접적인 이름의 언급은 없었지만, 그 당시 학교 상황을 알고 있었던 네티즌들의 댓글에 많이 호명되던 이름이기도 했다.

ㅡ 왜?

ㅡ 이 사람 누군데?

ㅡ 설마 그 사건의 여 학생 가르치던 교사인가?

ㅡ 어? 반응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ㅡ 근데 사고를 쳤다기에는 너무 모범생같이 깔끔하게 생겼는데

ㅡ 이래서 사람을 얼굴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임

나는 심각하게 그 액자를 계속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형님들. 이 선생님이 그 죽은 여학생. 허은정을 가르치던 남교사 같아요.”

[ 치지지익- 영수 치지지익 선생님 치지익- 어디 ]

“워어어! 깜짝이야!”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고스트 박스에서 다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고스트 박스를 살피다 다시 중얼거렸다.

“뭐야? 귀신 누님? 여기 오셨나요?”

EMF 측정기가 3단계 반까지 올랐다.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서는 느낌이 근처에 다가왔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질문할 거리는 떠올렸다.

“어. 음··· 자. 보자. 귀신 누님? 호··· 혹시 왜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시게 된 건가요? 김영수 선생님과 무슨 일이 있었나요?

[ 치지지익- 흑흑 치지익- 영, 영수, 치지익- 나쁘다 ]

고스트 박스에서는 또다시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선생님의 이름을 얘기했다.

기사에 댓글들로 봐서는 분명 남교사가 문제였다고 했다.

게다가 수시로 여학생들에게 찝쩍거렸다고···

[ 치지익- 선생님 치지지익- 나를 치지익- 죽였다 ]

“허··· 형님들! 방금 선생님이 자신을 죽였다고··· 말한 거 맞죠?”

ㅡ 시발. 개 소름

ㅡ 실화냐? 아니 기사에는 자살이라며?

ㅡ 역시 기레기들 믿을 게 못된다니까!

ㅡ 그럼 조작이었다는 건가?

ㅡ 우와··· 이게 진짜면 대박인데

ㅡ 개 레전드다

인상이 잔뜩 찌푸려진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기억에서 잠깐 봤을 땐 나쁜 짓을 할만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정말 사람 얼굴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게 진짜 맞는 말인가.

“형님들··· 선생님이 무슨 일을 벌였던 걸까요?”

[ 치지지익- 교무 치지익- 실 치지지익- 남아 ]

“교무··· 실··· 남아···?”

순간, 그 짧은 기억에서의 남교사가 허은정에게 남으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책상 하나하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형님들. 혹시 모르니까 그 선생님 책상 한 번 찾아볼게요.”

몇 걸음 채 옮기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남교사와 여학생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었는데, 소풍이라도 간 듯 다들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이 있는데요 형님들. 잠시만요···”

사진 속의 분위기는 굉장히 화목해 보였다.

두 팔을 늘어 트려 놓은 채로 서있는 남교사는 활짝 웃고 있었고.

그 와중에 양 팔을 서로 차지하고 있는 여 학생 둘···

허은정. 그리고···

어? 이 사람.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남은 한 팔을 차지하고 있는 여학생도 그 기억 속에서 봤던 그 사람이다.

“이 사람···”

ㅡ 아는 사람이냐?

ㅡ ㅋㅋ 미친 어떻게 암?

ㅡ 지금쯤 50대 아니냐?

ㅡ 아니. 설마 그 두 번째 자살한 여 학생 아닐까?

ㅡ 헐 ㅅㅂ 그걸 생각 못 했네

ㅡ 야. 저 사람 이름 좀 물어봐

[ 치지익- 박현 치지익- 숙 치지지익- 죽였다 ]

“워어! 뭐야? 박현숙? 이 사람 이름이 박현숙이라고요···?”

아니. 그것보다. 죽였다고?

누굴 박현숙을? 설마 남교사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음성이 고스트 박스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나는 보조 폰을 통해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

한을 풀어주기 위해선 확실한 이해관계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 오천동 여고 자살 ]

역시나 수많은 댓글이 범인으로서 남교사를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는 이러한 댓글이 내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ㅡ 허은정이랑 박현숙 친구이면서 앙숙관계였대요.

ㅡ 박현숙이 뒤늦게 자살한 것도 허은정 때문이라는 말이

ㅡ 남교사와 그렇고 그런 소문을 퍼트려서 왕따를 당했다나

ㅡ 남교사는 잘못 없을걸요?

ㅡ ㅇㅇ 그분 지금도 살아계시고 어려운 분들 도우면서 사심

ㅡ 이미지 세탁 아님?

그 와중에도 고스트 박스에서는 계속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 치지지익- 영수 치지익- 죽였다 치지이익- 현숙 ]

나는 고스트 박스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관심을 갖고 나니 새로운 사실들이 눈에 띈다.

생각보다 사건이 많이 꼬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대충 느낌은 왔다.

기사의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가 채팅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형님들. 기사에는 자살이라고 나왔다던데 사건의 댓글들은 말들이 많고 이상한데요?”

ㅡ 나도 검색해 봤는데 남교사 맞는 것 같은데?

ㅡ 여 학생한테 상습적으로 찝쩍댔다며

ㅡ 그건 그냥 찌라시아님? 뇌피셜이겠지

ㅡ 찝쩍댄 거 보니 성 쪽으로 범죄 저지른 거 맞을 듯

ㅡ 여러분들 그리고 남교사 거기 교장 아들임

ㅡ 헐? 맞다. 교장 인맥 엄청나다며. 기사 위장한 거 아님?

ㅡ 그나저나 네가 어떻게 알아?

선뜻 대답하진 못 했다.

내가 눈앞에서 직접 본 일이 아니니까.

아니. 잠깐.

나는 내 눈앞에 있는 단체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른침을 꿀꺽 한번 삼켰다.

될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고 난 살며시 눈을 감았다.

놀랍게도 내 몸은 움찔움찔 거렸다.

내 앞의 화면이 다시 흑백으로 물 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여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럿의 여학생이 한 여학생을 둘러싸 괴롭히고 있다.

주먹으로 머리를 미는 것은 기본, 옷을 잡아당기고, 심지어 가위를 가져다가 머리카락까지 잘랐다.

싹둑.

하지만, 당하는 여 학생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몸을 벌벌 떠는 것을 보니 한두 번 당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괴롭힘당하는 여 학생의 이름을 살폈다.

박현숙?

박현숙의 뒷머리를 부여잡은 한 학생이 조용히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야. 너 김영수한테 찝쩍대지 마. 또 한 번 걸리면 진짜 죽여버린다.”

“알았어.”

박현숙을 둘러쌓았던 여 학생들이 자리에서 멀어졌다.

아니. 멀어지기 전 박현숙을 바라보며 한 마디 더 중얼거렸다.

“야, 씨발년아. 이번엔 내가 1등 좀 하자?”

욕지거리를 한 학생의 명찰 표가 보인다.

[ 허은정 ]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었다.

가정집이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부잣집처럼 보였다.

소파, 고급 목재의자, 도자기 등등.

수준이 높은 고급 인테리어와 엔틱한 가구, 조명 덕분에 화려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바로 김영수 선생님.

김영수 선생님은 처음 오는 집인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얘기했다.

“은정이네 집이 참 예쁘다. 그런데 부모님은?”

“지금 들어오고 계신대요. 조금 기다리시면 될 것 같아요.”

“응. 그래.”

“선생님.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그래. 아무거나 따뜻한 걸로 부탁할게.”

그렇게 5분이 지나자.

허은정이 차를 가져와 김영수 선생님에게 건넸다.

“고마워. 잘 먹을게.”

허은정이 김영수 선생님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화들짝 놀란 김영수 선생님은 몸을 움찔대며 허은정을 빤히 쳐다봤다.

“선생님. 학교에서 박현숙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에요?”

선생님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허은정에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누가 그런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니?”

그 대답에 허은정이 씩 웃었다.

그리고 김영수 선생님을 한참 빤히 바라보더니 당돌하게 얘기했다.

“선생님. 저 선생님 좋아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