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속의 폐 기도원. 3
동시에 들고 있던 휴대폰과 손전등을 임아린에게 건넸다.
“아린 씨. 이것 좀 잠깐만···”
“아. 네네.”
나는 임아린이 들고 있는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들어 큰절을 올렸다.
“하이고고오오오! 재난 형님 피 같은 지원금을 모아 주신 후원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요오오오! 제가 형사 꿈나무는 아니지만 이 기도원에서 일어난 일들도 파헤쳐 형님들에게 꿀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재난지원금받고삽니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ㅇㅋ 자그마치 3년 동안 모은 지원금이다
연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덕분에 나를 지켜보던 임아린도 카메라를 든 채로 덩달아 고개를 꾸벅 숙여댔다.
“가··· 감사합니당. 재난님!”
뭐야 저 형님.
들어오자마자 백만 원을 투척해?
난생처음 보는 시청자였다.
“재난 형님 처음 오신 형님 맞으시죠?”
ㅡ 어 시바. 이 사람 야생곰 방 큰손 형님 아닌가?
ㅡ 헐? 진짜 레알?
ㅡ 야생곰 큰손 형님이 왜 연우 방에?
ㅡ 시벌. 설마 갈아탔나? 대박!
ㅡ 야생곰 개 빡쳤겠는데 지금쯤
ㅡ ㅇㅇ 소문 듣고 왔다. 꿀잼 부탁한다! 자 고고
시벌. 야생곰 방 큰손 형님이라고?
나는 주먹까지 들어 카메라에 비추었다.
“재난 형님! 영혼을 바쳐 꿀잼 드려보겠습니다!”
그렇게 임아린에게 다시 휴대폰과 손전등을 건네받고 조심스럽게 폐 기도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정면에 펼쳐진 방으로.
낡아 떨어진 목재 천장들을 살짝 치우며 걸음을 옮겼다.
“자, 가보겠습니다.”
내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임아린은 새끼 강아지처럼 뒤에 바짝 붙어 졸졸 쫓아왔다.
“가, 같이 가요 사장님!”
총총걸음으로 나에게 붙은 임아린이 검지와 엄지로 내 옷깃을 잡는다.
이윽고 첫 번째 방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쭈욱 훑어보는데.
“어 형님들. 여기 왜 이렇게 병풍이···”
“제··· 제사를 지내는 곳일까요 사장님?”
방 안 가득 병풍이 잔뜩 세워져있다.
주위에는 수많은 의자도 함께 보였다.
임아린 말대로 제사를 지낼 때 많이 세워놓는 병풍이 여긴 왜 있는 걸까?
“어. 형님들. 이거 제사할 때 세워 놓는 거 아닌가요?”
ㅡ 그냥 바람막이용으로도 많이 쓴다
ㅡ 무엇을 가리거나 할 때도
ㅡ 장식용으로도 많이 쓰지
ㅡ 그래요? 나도 그냥 제사 지낼 때 쓰는 건 줄
ㅡ 근데 병풍이 뭔 네 방향으로 깔려 있냐?
ㅡ 기도를 올렸던 곳인가?
ㅡ 어! 그럴 수도 있겠다. 의자랑 같이 있는 것 보니
ㅡ 글씨에 뭐라고 쓰여있는 거냐?
임아린과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은 리액션을 뱉었다.
“아~ 그렇구나.”
우린 동시에 눈을 마주치고 당황해 딴청을 피웠다.
잠시 후. 헛기침을 한번 한 내가 말을 이었다.
“크흠. 잠시 만요. 글씨 보여드릴게요.”
나는 카메라를 병풍 가까이에 대었다.
붓글씨로 적은 내용은 이러했다.
[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
[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행위를 소홀히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
[ 기도는 모든 것의 열쇠이다. ]
[ 기도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요청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
[ 성경적인 죄의 근본적인 개념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생각과 행위가 죄다. ]
시청자의 말이 맞았다. 기도하는 곳.
내용을 하나씩 읽어보지만, 뭔가 꺼림칙하다.
엄마 따라 교회를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교회에서 읽었던 기도문이랑은 느낌,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병풍을 쳐다보다.
임아린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아린 씨. 혹시 종교 있어요?”
임아린은 순간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내게 대답했다.
“아, 아니요!”
“그럼 이런 거 본 적 있나요?”
“그것도 아니요!”
뭐랄까.
목소리가 로봇처럼 나오는 것 같은데, 그 사이사이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도 같이 느껴진다.
추운 건가?
그러고 보니 옷을 얇게 입고 온 것 같네.
몸매가 드러나는 얇은 티셔츠 하나에 위에 베이지색 가디건.
필라테스 하다 온 건가.
“아린 씨. 혹시 추우세요?”
“아, 아니. 괜찮아요.”
처음 나를 만나 이 폐 기도원에 오기 전까지는 굉장히 표정이 해맑았는데···
어느샌가부터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져있었다.
그래. 추워서 그런 게 확실한 것 같다.
나야 이제 흉가 탐험 짬밥도 어느 정도 찬 지라, 이런 장소가 날씨 변동이 심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임아린은···
어. 아닌데? 임아린도 흉가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자주 와봤다는 소리가 아닌가?
ㅡ 야 인마. 눈치가 없누. 겉옷 벗어서 임아린에게 걸쳐 준다 실시.
나는 반사적으로 점퍼를 벗었다.
“자. 아린 씨.”
임아린이 손을 휘저었다.
“어 사장님. 저 괘··· 괜찮은데.”
하지만 나는 기꺼이 임아린의 몸에 점퍼를 둘러주었다.
임아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걸쳐진 옷의 자크까지 손수 올렸다.
지이이익.
두 손으로 코까지 가린 입아린이 말했다.
“감사합니당.”
제법 쌀쌀함이 느껴졌지만 참을만했다.
난 남자니까.
나는 옷을 벗어준 김에 가방에서 EMF 측정기를 꺼냈다.
무서운 걸 좋아한다는 임아린을 위해 직접 손에 쥐여주며 얘기했다.
“아린 씨. 이거 알죠? EMF 측정기예요. 무서운 거 좋아한다고 하셨으니까 이거 한 번 써보세요. 그리고··· 그럴 일 없겠지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혹시나 5단계 나오면 미리 얘기 좀.”
임아린이 EMF 측정기를 빤히 쳐다보며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다시 병풍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려진 병풍 뒤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천천히 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살펴본 병풍 뒤에는 이유 모를 막대기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걸레가 없는 마포 자루부터, 대나무, 가시가 잔뜩 달린 나무줄기.
뭐야 이것들은? 설마···
“형님들. 여기 막대기들이 잔뜩 있는데 이걸 대체 무슨 용도로 쓴 걸까요?”
매도 맞아본 놈이 안다고.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누굴 때리던 용도 같은데?
입을 열어 말하려는데.
“사장님. 제가 보기엔 이거 사람 때리는 용도 같은 데요···?”
임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ㅡ 그걸 어떻게 암?
ㅡ 임아린 학교에서 많이 맞는 거 아니지?
ㅡ 그냥 감금이 있었으니 분명 폭행도 있었다고 생각 들지
ㅡ 막대기 끝에 보면 많이 해졌네. 때려서 닳은 거 같은데
ㅡ 뭐 묻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ㅡ ㅅㅂ 미친놈들이 도대체 기도원에서 뭔 짓거리를 한 겨?
ㅡ 여긴 아픈 사람들 치료해 주는 게 목적 아니었냐
내가 기억하기로도 그런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모든 막대기 끝부분에는 무언가가 묻었던 것처럼 까맣게 변색되어 있다.
쿵. 쿵. 쿵. 쿵.
순간 복도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동시에 임아린이 나를 갑자기 끌어안으며 경기를 일으키듯 소리를 질러댔다.
뭐야 시벌. 무슨 소리야 이거?
나는 순간 깜짝 놀라 복도로 고개를 다급하게 돌렸다.
아니. 금세 다시 내 품에 안겨있는 임아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공포물을 즐겨본다고 임아린이 나를 끌어안고 있다.
일부러 방송 띄워주려고 리액션 하는 건가?
어찌나 세게 껴안았는지 임아린의 심장박동 수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내 심장소리인 건가?
달달한 샴푸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드니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비명소리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임아린이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폐가를 많이 다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하게 임아린의
어깨를 잡아 살며시 떼며 물었다.
“괜찮아요?”
ㅡ 아니. 기분이 안 좋다. 시발
ㅡ ㅅㅂ 너네 뭐 하냐
ㅡ 개색갸 너 방금 표정이 존나 헤벌쭉했어. 기분 나빠
ㅡ 레알 침 흘리는 줄
ㅡ 우리 아린이한테서 당장 손 안 떼냐. 시벌
ㅡ 지금 뭐 멜로 영화 찍으러 온 거 아니지
ㅡ 괜히 존나 열받네
ㅡ 이러려고 데려왔어 저 새끼 저거
순간, 임아린도 급하게 몇 걸음 물러나더니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크흠! 여기 공기가 왜 이렇게···”
ㅡ 흉가 방송 아니냐. 로맨스 방송을 하고 앉았네 너희들. 정신 차려라
“아니 무슨 형님! 제가 언제 로맨스를 했다고 그러십니까!”
“사장님 말이 백 번 맞아요!”
나는 다시 복도로 시선을 돌려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들. 방금 문 열리는 소리가 복도 끝쯤이었던 것 같은데···”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한 번 가보도록 할게요.”
나는 복도로 나가기 앞서 임아린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몸에 지니고 있던 필살기들을 임아린의 몸에 하나씩 차례대로 둘러주었다.
염주부터 시작해 목주, 초필살기 십자가 목걸이까지.
웬일인지 눈도 못 마주치고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던 임아린이 물었다.
“사장님, 이걸 왜···”
“이거 제가 아끼는 필살기···. 아니 이거 혹시 모르니까 차고 계세요.”
나는 여유 있게 웃어 보이기까지 하며 말을 이었다.
“아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는 남자잖아요.”
시벌. 존나 카리스마 있어.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나는 곧장 복도로 나갔다.
그렇게 복도로 나가 왼쪽 일렬로 나열된 방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손전등에 비친 방문과 안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키기기기긱-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손전등을 전방으로 돌렸다.
“형님들? 들으셨어요?”
임아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사슴 같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ㅡ뭔 소리야 이거?
ㅡ뭐 긁는 소리 아니냐?
ㅡ풀벌레 소리 아님?
“사장님······.”
어떠한 위험에 아이가 아빠에게 붙듯, 임아린도 무의식적으로 내 옆에 붙었다.
또한 시청자도 들은 듯했다.
분명 뭔가를 긁어대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으면 이런 소리가 날까.
[ 데들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기회다! 너의 남자다움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입가를 가로막고 있는 임아린을 슬쩍 쳐다본 뒤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형님들, 제가 언제 이런 거 무서운 거 하는 거 보셨습니까? 저 앞 칸 방에서 소리 나는 것 같은데. 바로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 소리가 들리는 방문 앞에 섰다.
문은 닫혀 있었다.
[ 백마타고온환자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와 이 새끼... 오늘 왜 이러냐?
ㅡ ㄹㅇㅋㅋㅋ 여자 있다고 남자다운 척 보소
ㅡ 위에 닥쳐 진행 빠르고 좋으니까
ㅡ ㅇㅇ 연우 원래 상남자임
ㅡ 이 새끼 여자 있다고 ㅋㅋㅋ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들! 연우 시원시원하게 빠꾸 없는 거 다들 잘 아시잖아요! 열어 보겠습니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손이 달달달 떨렸지만 힘주어 잡았다.
임아린이 지켜보고 있다.
그래도 잠깐만.
“아린 씨, 잠깐 측정기 좀.”
임아린에게 EMF 측정기를 건네받은 나는 닫힌 문 앞에 대보았다.
시벌 열지도 않았는데···.
내 옷깃을 누군가 툭툭 뒤로 끌었다.
돌아보니 임아린이 고개를 저으며 입모양으로 뻐끔거린다.
‘사장님, 위험한 거 아니에요? 우리 다른 곳으로 가요.’
나는 입꼬리가 마구 올라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흉가와 폐가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걱정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 데들리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절 어떻게 보시고! 아린 씨, 조금만 떨어져 계세요.”
임아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뻐끔거린다.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다시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열려라 시벌 참깨!”
내 힘에 열린 문이 벽을 때리며 쾅! 소리를 냈다.
임아린이 눈을 질끈 감았고, 나는 손전등이 비치어주는 독방 같은 안의 풍경에 눈을 부릅떴다.
“시벌··· 이게 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