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으로 되갚아주기. 2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나는 도망치듯 그 중개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후원창에 다시 등을 돌려 중개사를 바라보며 외쳤다.
ㅡ 중개사 사장한테 마지막으로 한 마디
“에라이이이 사기꾼 아저씨! 얼른 망해라아아아!”
하마터면 그동안 힘들게 모은 돈으로 귀신 집을 살뻔했다는 사실에 분한 나머지.
나는 가방에 준비해왔던 A4 용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중개사 입구에 잘 보이게 붙여놓았다.
텅! 텅! 텅!
A4용지에는 사기꾼의 관상의 표본인 얼굴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1. 삼백안의 소유자.
눈을 약간 치켜 올린 듯한 눈빛을 띠고 있어 상대방을 노려보는 느낌을 주는 얼굴.
2. 코끝이 붉은 사람. 빈곤한 노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3. 눈썹이 잡초처럼 거칠면 마음도 거칠고, 산만하면 마음도 산만하다고 한다.
사기꾼은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눈썹을 가진 사람이 많다.
4. 인중 부분에 수염이 없으면 의리가 없고 간사하며 남을 이용하는 사기꾼 기질이 있다고 한다.
사기꾼 관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정말 그림이지만, 중개사 사장과 싱크로율 99% 일치하는 얼굴이었다.
뒤늦게 나와 종이를 확인한 중개사 사장이 눈알이 뒤집힌 채로 옆에 있던 빗자루를 들고 쫓아왔다.
하지만 나를 잡을 순 없었다.
“시바! 하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형님들 감사합니다!”
ㅡ 대박 저 그림 네선생 치면 나오는 그림이지?
ㅡ 아니 그냥 저 아저씨 얼굴을 그린 것 같은데
ㅡ 겉으로 보기엔 푸근해 보였는데 진짜 모를 일이다
ㅡ 난 무슨 공개수배서 인 줄
ㅡ 몽타주 싱크로율 오졌다
ㅡ 아마 저 집 중개사 사장 집일 수도 있다에 한 표
ㅡ 그럴 수도. 집이 너무 싸. 중개 수수료도 얼마 안 될 거야 저거
그렇게 다시 한가로운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꿈에 그리던 집을 아직은 살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한가득이었지만.
선녀보살님의 말을 위로 삼아 떠올렸다.
바다가 보이고 햇볕이 잘 드는 예쁜 파란 지붕을 가진 단독주택···
그래. 아직 끝이 아니다.
분명 그 집을 살 수 있을 테니 그동안 열심히 돈이나 벌어보는 거야!
나는 곧이어 시청자 목록을 살폈다.
그리고 카메라를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혹시 재난 형님 계신가요?”
ㅡ 처음부터 없었는데? 왜? 우리만으로는 후원이 딸리냐?
“아이~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십니까요 형님! 후원이 백 원이든 백만 원이든 저는 한결같이 형님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ㅡ ㅅㅂ 구라 치고 있네
ㅡ 돈미새 새끼. 후원 백 원만 하는 놈들은 쳐다도 안 봄
ㅡ 님. 백 원은 나도 안 쳐다볼 듯
ㅡ 그래도 심성이 착해서 강퇴 안 하니 다행
ㅡ 무슨 소리? 주작무새충 강퇴 사건 기억 안 남?
ㅡ 그건 양아치처럼 혼자 도망가서 그런 거 아님? ㅋㅋ
ㅡ 그나저나 그놈 뭐 하려나?
ㅡ 그놈 요즘 야생곰 방에서 놀고 있던데. 주작주작 거리면서
ㅡ 헐 레알?
나는 채팅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얘기했다.
“아 그래요? 근데 그놈은 강퇴 당해도 싸요. 다신 안 왔으면 좋겠어요.”
장례식장에서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떠올리기만 해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ㅡ 야 지금 야생곰도 방송하네? 주작무새충도 보이네
후원창에 잠깐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뗐다.
“관심 없어요 저희는 뭐 할까요 형님들? 파란 지붕 집이나 찾으러 다녀볼까요! 냐햐햐!”
ㅡ 어? 재난 형님도 거기 있는데?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재난 형님이 그 방에 있다고?
하기야 원래 야생곰 찐 애청자였으니까 이해는 가는데, 나한테 미션을 줘놓고 거긴 또 왜 가있대?
“오잉. 재난 형님은 거기서 뭐 하시나요 지금?”
ㅡ 미션 주고 있던데
ㅡ 야생곰 민심이 안 좋아져서 열심히 도와주는 중 가틈
ㅡ 그래도 낮 방인데 시청자가 연우보다 많네
ㅡ 몇 명인데요?
ㅡ 지금 500명 정도
워··· 낮 방인데도 그렇게 많이 본다고?
나는 내 시청자 수에 시선을 돌렸다.
384명.
물론 나는 흉가 방송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그래도 좀 아쉬운 숫자였다.
그나저나 재난 형님도 있다는 데, 보조 폰으로 몰래 탐방 한번 해볼까?
선녀보살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이 신경도 쓰이긴 하니까···
[ 연우 씨 주변으로 미래에 흐릿하게 한 사람이 보여요. 안경을 쓰고··· ]
[ 그 사람이 연우 씨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어요. ]
[ 영적인 기운을 가진 사람이 지금 연우 씨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죠. ]
[ 연우 씨가 최근에 새로 안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보며 얘기했다.
“그럼 저희 뭐 할 것도 없는데 보조 폰으로 야생곰님 탐방이나 좀 해볼까요?”
합방 거절도 했었고 괜히 얼굴만 봐도 내 마음이 찝찝해질 것만 같은 사람.
무엇보다 그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 중에 하나다.
하지만 컨텐츠 면에서는 영원한 라이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야생곰 방송을 살펴보면 뭐 좋은 시너지 효과라도 생기지 않으려나···?
그렇게 보조 폰으로 야생곰의 방송을 검색했다.
닉네임도 나라는 게 티 나지 않게 살짝 바꾸어 방송에 입장했다.
[ 구촌동꽃미남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그리고 방송 화면이 뜨자마자 본 휴대폰에 대고 시청자들에게 주의를 시키려는데.
“형님들. 저 왔다는 거 티 내지 마세···”
순간, 화면에 뜨는 야생곰의 얼굴을 보고 내 두 눈이 부릅떠졌다.
뭐야 시벌.
야생곰 안경 썼었어?
[ 알이 큰 검은색 안경 같아요. ]
때마침, 방송에서는 야생곰이 알이 큰 검은색 안경을 쓰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나이를 해명하고 있었다.
[ 여러분들, 비록 40대 후반처럼 보여도 아직 저 30대 초반입니다. ]
순간, 인상이 잔뜩 찌푸려짐과 동시에 온몸에 닭살이 돋아 올랐다.
시벌··· 선녀보살님이 보셨던 그 남자가 혹시···
설마 야생곰!?
그렇게 되면 이거···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에 나는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탐방에 집중했다.
아니야. 아닐 수도 있어.
성급하게 확신하지 말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는 거잖아?
ㅡ 야생곰님 그럼 오늘 저녁 흉가는 어디 가실 건가요?
ㅡ 이제 뭐 다 돌아다녀 봐서 딱히 갈 데도 없을 듯
ㅡ 그럼 이왕이면 스펙터클한 곳으로 다시 재방문 해요
ㅡ 어디가 좋을까나? 3대 흉가나 다시?
ㅡ 오오 그거 괜찮다. 확실히 3대 흉가가 다른 곳보다 섬뜩한 게 있어
ㅡ 윤덕흉가 어때요?
ㅡ 늘여름가든도 괜찮은데
ㅡ 그 두 장소가 제일 오래되지 않았나요?
야생곰은 웃으며 카메라에 대고 얘기했다.
[ 여러분들. 오랜만에 선지곤 정신병원은 어때요? 거기도 안 간지 오래된 것 같은데. ]
시벌. 시청자들이 꺼내지도 않은 장소인데 거길 왜 간다는 건데!
게다가 거긴 내가 이번에 가기로 한 곳이라고.
이제 며칠 남지 않은 그 장소에서 야생곰과 마주치는 건 딱 질색이다.
왠지 모르게 둘리와의 합방이 오버랩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다급한 나머지 보조 폰으로 채팅에 가세했다.
[ 구촌동꽃미남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거긴 별로인 것 같아요. 차라리 윤덕 흉가 추천! 완전 추천! 두 번, 세 번, 열 번 추천요!
야생곰이 후원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아이고. 구촌동꽃미남님 후원 감사합니다. 윤덕 흉가요? 음··· 거기도 괜찮긴 한데··· ]
간다고 해! 간다고 하라고!
대답만 듣는다면 나는 며칠 뒤 선지곤 정신병원을 갈 계획을 앞당길 생각이었다.
선녀보살님에게 받은 부적들도 있겠다.
준비는 돼 있었으니까.
야생곰이 고민하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들 말대로 윤덕흉가를 먼저 갈게요. 됐죠? ]
그렇지! 그래야지!
너는 윤덕흉가를 가라. 나는 선지곤 정신병원을 갈 테니!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보조 폰으로 켰던 방송을 종료했다.
그리고 본 방송으로 돌아와 시청자들에게 급하게 얘기했다.
“형님들. 안 되겠네요. 라이벌인 야생곰님이 3대 흉가를 가신다니까 저 역시도 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 저녁. 약속했던 선지곤 정신병원에서 방송을 켜도록 하겠습니다.”
ㅡ 우워어어어어!진짜냐 이거!
ㅡ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 기다려야 돼서 진짜 얼마나 지루했는데 대박!
ㅡ 좋아 좋아! 기분 좋으니까 내가 후원금도 많이 충전 해놓겠어
ㅡ 진정한 돈미새를 볼 수 있겠군
ㅡ 이거 방송 이례 최초지? 유명한 흉가 방문하는 건?
ㅡ ㅇㅇ 개 레전드 나오려나?
ㅡ 근데 괜찮을까? 폐가에서도 겔겔 되는데
ㅡ 인정. 재미도 재미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함
“제 방송 최초이죠. 3대 흉가. 어차피 한 번은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재난 형님이랑 약속한 미션도 있고 하니까요.”
말은 자신 있게 내뱉었어도 벌써부터 긴장된다.
3대 흉가.
그중에서도 제일 광범위한 장소.
어떠한 기운이 나를 반겨줄까?
아마 내가 갔었던 전원주택의 기운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ㅡ 오 갑작스럽게 계획 변경됐는데 큰손 형님한테 안 알려도 되냐?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오실 것 같은데요? 게다가 안 오신다 하여도 방송은 녹화본이 남으니까요. 미션 해결도 되고요.”
분명히 올 것 같았다.
왠지 모를 이 꺼림칙한 감각이 내게 그리 얘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일단 나는.
“형님들! 그럼 지금 방송은 마무리하고 좀 있다 저녁에 다시 뵐게요! 다들 뿅!”
방송을 종료하고 최대한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검사했다.
10시 30분.
선지곤 정신병원에 도착하기 불과 5분 전이다.
이미 폐업을 한지도 한참 지난 곳.
교통을 이용하기에도 굉장히 불편해진 장소가 돼버렸다.
나는 택시 아저씨에게 겨우겨우 부탁을 해 가고 있다.
“학생.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이 헛것 보는 건 기본이고, 정신 이상해진 사람들 많아. 심지어는 원인 모를 사고로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런데 도대체 여길 왜 가려는 건지 참···”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사람들이랑 약속을 한 게 있어서요.”
“하여튼 간 분명히 말하지만 난 절대 책임 안 져. 이곳에 데려다줬다고 혹시나 나 원망하지 마.”
위험하다고 소문난 3대 흉가를 가려는 나를 끝까지 설득해 보려는 택시 기사 아저씨.
결국은 포기하고 한숨을 푹 쉬더니 얘기했다.
“어휴··· 이 길 하나만 더 넘으면 도착이야.”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과 동시에 마침내 정신병원 건물이 살짝 보였다.
3층으로 설계되어 지어진 건물.
화재가 일어났던 건지 건물 자체가 온통 새카맣게 그을려있는 듯했다.
200m는 더 멀어 보이지만 느껴진다.
위압감이 엄청나다.
저게 말로만 듣던 3대 흉가. 선지곤 정신병원인가.
150m··· 100m··· 50m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내 심장 소리는 더욱더 크게 요동쳤다.
사방에 서있는 큰 나무 사이로 우뚝 서있는 건물 앞.
그 앞에 택시를 세워준 기사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내게 얘기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만 돌아가는 게 좋아.”
나는 애써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절로 막혀오는 건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아니. 움직일 수 없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까아아악! 까아악! 까아아악!
쿵. 퍽!
끼이이이.
들어가기도 전에 건물 안, 밖에서 울려 퍼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선녀보살님이 건네주신 부적을 매만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들었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