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으로 되갚아주기. 4
ㅡ ㅇㅋ 그럴 줄 알았다. 넌 후원이면 뭐든 다 하잖아
“에이 형님! 섭섭합니다! 저는 후원도 후원이지만 형님들에게 꿀잼을 드리려고 이 방송하는 거라는 걸 꼭 잊지 마십쇼 형님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정신병원의 전체적인 느낌을 살펴보기 위해 지하부터 탐색하기 시작했다.
“습한 냄새가 엄청 심하게 나요 형님들. 이 정도면 아무래도 지하는 물에 잠겼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
곧장 지하 계단을 밟고 카메라를 비춰보지만 내 말 그대로 반쯤 물이 잠겨있다.
“역시··· 형님들 이것 보세요.”
정말 3대 흉가답게 귀신들이 좋아할 만한 조건은 모두 갖추고 있다.
완벽한 음지.
커다란 숲 속 나무들이 건물을 비추는 달빛마저 가리고 있다.
습기.
오랜 폐업 기간에 의해 지하를 꽉 채운 물.
마지막으로 더러운 쓰레기들.
버리고 간 가구들은 기본.
유명해진 탓인지 전국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술과 온갖 음식들을 가져와 먹고 그대로 버리고 갔다.
ㅡ 어휴. 3대 흉가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놨네
ㅡ 이러니까 귀신이 더 모여들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냐
ㅡ 3대 흉가는 무슨 3대 쓰레기장이 돼버렸네
ㅡ 저렇게 어질러놓고 간 놈들은 과연 지금 멀쩡할까?
ㅡ 귀신도 저런 미친놈들을 건드리진 않더라
ㅡ 그나저나 대단하네. 흉가에서 술이라니
ㅡ 내 친구의 친구는 흉가에서 술 먹고 잠까지 자던데
ㅡ 그 친구 뭐 함?
ㅡ 죽음
ㅡ 구라
나는 다시 1층으로 올라와 주위를 살폈다.
특이하게도 내가 들어온 곳이 입출구다.
“오우. 여기는 입출구가 하나네요. 형님들. 일부러 이렇게 설계를 한 걸까요?”
그리고 호실마다 붙어있는 이름.
간호사실. 면담실. 치료실. 화장실.
곳곳에는 인상이 잔뜩 찌푸려질 만큼 괴상한 낙서들이 존재했다.
또 모든 문은 철저히 잠겨 있었다.
[ 이 안에 누가 살고 있음 ]
[ 이 문을 절대 열지 마 ]
[ 문을 여는 순간 넌 저주를 받을 것이다 ]
쿵.쿵.쿵.쿵.
“워어어어! 시벌! 뭐야? 형님들 소리 들으셨죠?”
잔뜩 낙서가 되어있는 방 중 하나에서 이유 모를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인가?
아니야. 확실해.
다급하게 두드리는 듯한 느낌의 소리.
ㅡ 나도 들은 것 같은데
ㅡ 사람이 있나? 아니 문이 잠겨 있는데 그럴 리가 없지?
ㅡ 어디 방에서 들린 건데?
“모, 모르겠어요. 근데 여기 있는 방들 중 하나이긴 한데···”
소리가 굉장히 흐릿했다.
모든 문이 닫혀있는 상태라 어느 방에서 울린 건지 알 수 없다.
그것보다 사람이라면 문 두드리는 소리가 이렇게 흐릿하게 나지는 않을 텐데.
나는 본능적으로 EMF 측정기를 바라봤다.
“시, 시벌. 설마 귀신 장난인가?”
정신병원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소문으로 들어서 그런 걸까.
괜한 소리 하나도 의미 부여를 하게 만든다.
소문에 의하면 비명소리는 기본,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영가들.
철창살을 흔드는 소리들. 문 두드리는 소리들. 등등이 들린다고 했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는 곳에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일단 여기는 형님들. 이런 현상들이 너무 잦다고 하니까 신경 안 쓸게요.”
“와아아악! 시벌! 어디야 도대체!”
말을 내뱉자마자 기겁하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ㅡ 신경 안 쓴다고 말 꺼낸 지 겨우 3초 지났다 ㅅㅂ
ㅡ 근데 방금 건 나도 들었음
ㅡ 너 일부러 미션 때문에 괜히 오바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ㅡ 농담이 아니라 난 진짜 못 들었는데? 들렸다고 님들?
ㅡ 문 두드리는 소리 말고 그냥 뭐 떨어지는 소리는 들렸는데
ㅡ 너 선녀보살한테 특훈 받은 거 맞음?
ㅡ 더 놀라는 특훈?
ㅡ 3대 흉가잖아. 시벌. 방송으로 봐도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 때문인가?
흉한 기운이 맴도는 이 정신병원에 오니 사방에서 환청이 들려온다.
그 소문이라던 소리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도 않는 철창살 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내가 놀라 소리를 지른 그 뒤에는 마치 그 상황이 재밌다는 듯 웃는 소리까지.
[ 꺄르르르 ]
시벌! 이 소리가 다들 안 들린다고?
3대 흉가는 원래 이런 거야?
ㅡ 야? 어디서 들렸다는 거야? 거기 한번 문 열어 봐 그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닫혀있는 문들을 살폈다.
그중 3호실이라고 쓰여있는 방에 용기 내어 성큼성큼 다가갔다.
닫힌 문 위 부분에는 안을 확인하기 위한 건지 조그마한 구멍이 만들어져 있었다.
“여, 여기 같은데···”
나는 조심스럽게 그 구멍 속으로 손전등을 한번 비추었다.
특별하게 보이는 건 없었다.
그저 낡은 천장에 붙어있던 갈기갈기 찢어진 벽지만이 보였다.
“한 번 열어볼게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나는 문을 열어젖혔다.
“누구 있으신가요? 장난치는 거 도대체 누구~~?”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동시에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뭐야 이 방···
온 사방이 막혀있는 건 당연했지만, 그 흔한 창문조차 없다.
ㅡ 이 방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ㅡ 근데 뭔가 싸하다. 방이 왜캐 썰렁해?
ㅡ 원래 정신병원 병실에는 침대랑 서랍장 밖에 없음
ㅡ 레알? 왜?
ㅡ 말 그대로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오니까 위험한 물건 다 치움
ㅡ 심지어 정수기에서는 뜨거운 물 안 나옴
ㅡ 맞아. 찬물도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런 방에서 지내게 하는 건가?
“형님들. 진짜 멀쩡한 사람들도 이런 병실에 갇히면 미쳐 버리겠는데요?”
ㅡ 거긴 약과야. 그 병원 2층이랑 3층 가면 깜짝 놀란다.
시벌. 그걸 왜 미리 말해주는 거야?
아니. 미리 말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가, 감사합니다 형님. 2층, 3층은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이 방만해도 손바닥 자국부터 손톱자국까지.
병실을 쓰던 사람들이 정신이 온전치 않아 그런 건지 몰라도.
벽 사방에 긁힌 자국들이 보였다.
아니. 그럼 2층, 3층은 얼마나 더 끔찍하다는 거야?
“와아아악! 시발!”
내가 들어온 병실의 문이 닫혀버렸다.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지난 기억들이 떠올라 다급하게 병실 문을 쫓아가 열었는데.
다행히도 쉽게 열려버렸다.
“하··· 시벌. 깜짝이야. 형님들. 바람 때문에 닫혔나 봐요···”
순간 내가 내 입으로 얘기하고도 이상하다 싶어 병실 문을 쳐다봤다.
바람? 창문이 없어서 바람이 불 수가 없는데?
그리고 가뜩이나 입출구는 하나잖아.
이곳까지 바람이 닿는다 해도 각도상 문이 닫힐 만큼의 센 바람이 불기가 힘들 텐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입김을 불어보았다.
아주 미세하게 입김이 서리긴 하지만, 카메라에 비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곧장 병실 복도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입김을 불었다.
“시, 시벌. 형님들···”
마치 한 겨울을 연상케하듯 새하얀 입김이 노골적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ㅡ 미쳤다. 뭐야?
ㅡ 나도 방금 해봤는데 전혀 입김이 안 나오는데
ㅡ 나도 나도
ㅡ ㅅㅂ 3대 흉가는 역시 지리네
ㅡ 완전히 냉동창고가 따로 없어
ㅡ 왜 복도 쪽만 그러냐?
ㅡ 복도에 뭐 있는거 아니냐
나 역시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러게. 복도에 뭐가 있나···
나는 무심결에 복도로 얼굴을 내밀어 양쪽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와악! 웁!"
복도 끝.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 무언가를 보고 화들짝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다급하게 병실 안으로 몸을 집어넣고 잽싸게 벽에 붙었다.
ㅡ 왁! 뭔데! 시발
ㅡ 뭐야? 뭔데? 뭘 봤는데?
ㅡ ㅅㅂ 카메라까지 같이 내밀어 줘야지. 지 고개만 내밀면 우리가 어케 알아
ㅡ 뭘 보긴 했나 본데? 얼굴이 금방 새하얗게 질렸네
ㅡ 뭐냐? 귀신 본 거야?
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눈을 껌뻑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 시벌. 기, 긴 머리! 흰옷 여자! 근데···”
ㅡ 근데 뭐?
ㅡ 빨리 말해 ㅅㅂ 답답해
내 얼굴이 아주 자연스럽게 잔뜩 찌그러졌다.
“배, 배에···”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병실 밖 복도를 가리키는 손만 덜덜 떨어댔다.
ㅡ 뭐라도 봤냐? 배에 뭐?
방금 내가 본 그것.
그것은 분명히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 창문으로 봤던 그 하얀 형체였다.
아까는 2층이었는데···
이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는 건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영혼들 사이에서도 자기들만의 구역이 정해져 있다고 들었는데.
이 넓은 건물을 마음껏 돌아다닐 만큼 자유로운 건···
잡귀가 아닌 원귀인 걸까?
그나저나 그 영가가 손에 들고 있었던 건 뭐지···
나는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카메라를 향해 중얼거렸다.
“재난 형님. 이곳에 원귀가 셋 있다고 하셨죠? 그 원귀들 중 하얀 소복을 입은 영가가 있나요?”
ㅡ 시발. 진짜 봤어? 나도 그냥 전해 들은 건데··· 진짠가 보네
전해 들었다고? 누구한테?
설마 야생곰?
그 사람이 정말 영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럼 혹시 다른 말은 없었나요? 그 소복 입은 귀신이 이곳에 실질적인 터주라든지···”
ㅡ 그건 나도 모르지. 난 귀신 볼 줄 몰라
ㅡ 터주? 여길 지키는 대장 같은 건가?
ㅡ ㅇㅇ 흉가나 폐가에 있는 잡귀들 사이에서도 기운이 제일 센 영가
ㅡ 들어보니 사람 사는 거랑 똑같다고 하던데
ㅡ 터주 귀신 무서워서 피해 다니는 잡귀들도 많다고
그 형체를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형체가 너무 뚜렷했다.
마치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분명한 건 느껴지는 기운.
다만, 그 형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사람이 아니란 걸 확실하게 증명했다.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손에 들고 있었던 건 분명···
ㅡ 야 시벌. 뭔데 도대체. 말을 하다가 말아
나는 자세를 고쳐잡고 숨을 죽인 채 EMF 측정기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복도 쪽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 확인했다.
3단계 반. 4단계.
“와아아악!”
다시 병실 벽 쪽으로 재빨리 다가가 몸을 붙인 후 나는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2층 계단 앞에서 한 여자가 앉아서 뭘 먹고 있어요!”
ㅡ 잉? 갑자기 먹방?
ㅡ 여자가 뭘 먹고 있다고?
ㅡ 내 쫓아 그럼. 먹방 집에 가서 하라 해
ㅡ 아니면 구경 좀 해보자. 뭐 맛있는 거 먹방 하고 있나
ㅡ 족발이야? 아님 찜닭이야?
ㅡ 소주는 있대?
나는 겁에 잔뜩 질린 채로 숨을 헐떡였다.
도저히 말을 잇지 못할 만큼의 충격적인 모습에 한참을 멍 때렸다.
그리고 다행히 호흡이 가라앉았을 때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시, 시발! 고양이··· 고양이를 씹어 먹고 있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