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15화 (115/225)

역으로 되갚아주기. 7

생각지도 못한 내기 제안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백만 원이면···

삼겹살 약 60근 또는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이 천 개 이상···

엄마 옷을 10벌 이상 살 수 있거나 쥐포 1년 치 사료를 살 수 있는 금액···

달콤한 상상에 나도 모르게 내 입꼬리는 계속해서 승천하고 있었다.

ㅡ 야 이 미친놈아 그만 히죽대. 내기 시작도 안 했는데 표정은 벌써 이겼어

후원창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나는 야생곰을 바라봤다.

“아. 죄송합니다 형님. 음··· 백만 원 내기요?”

백만 원이 아니라 이백만 원.

삼백만 원도 상관없다.

절대 내 눈을 의심하지 않는다.

난 헛것을 본 게 절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ㅡ 야. 도박이다. 하지 마라

ㅡ 귀신 인증도 못하는 놈이 고양이 뜯어먹는 사람을 어떻게 인증해

ㅡ 야생곰 말대로 진짜 삵 일 수도 있겠다

ㅡ ㅇㅇ 사람이라고 하기엔 발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어

ㅡ 맞아. 여긴 발자국 소리도 건물 전체에 울리는 흉가라고

ㅡ 하지 마.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시청자의 채팅을 보는 순간, 며칠 전 TV를 보며 나에게 중얼거리던 엄마의 모습도 떠올랐다.

[ 우리 아들. 저기 TV에 나오는 사람처럼 도박 같은 건 절대 하면 안 된다. ]

나는 금세 마음이 흔들렸다.

시벌. 지금 내가 하는 게 도박인 걸까?

결국,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야생곰에게 얘기했다.

“죄송합니다. 야생곰 님. 저희 엄마가 도박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이라고···”

야생곰이 피식 웃더니 내 말을 반박했다.

“이게 무슨 도박이에요. 그냥 컨텐츠죠.”

그 말에 내 표정이 활짝 피었다.

“그쵸!? 컨텐츠죠!?그럼 무조건 해야죠! 컨텐츠니까.”

내 대답에 한층 더 눈꼬리가 가늘어진 야생곰이 얘기했다.

“OK. 그런데 내기 지고 나서 뭐 돈 없다. 나중에 주겠다. 이런 소리 하면 안 돼요. 아시죠? 지금 천 명이 넘게 보고 있습니다. 좋은 이미지 나락 갈 수 있어요.”

“그럼요. 저 정연우. 약속은 지키는 남자입니다. 형님들.”

야생곰 시청자 수. 1200명.

정연우 시청자 수. 954명.

그렇게 시청자들 앞에서 성사된 내기에 신난 둘.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3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야생곰. 그리고 나. 남은 스텝 둘까지.

모두 숨죽이며 3층으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꿰에에애액! 꿰애액!

동물의 비명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우리 모두가 발걸음을 일제히 멈춰 세웠다.

숨넘어가는 듯한 동물 소리가 어찌나 소름이 끼치는지.

등골에 잔뜩 돋아 오른 닭살 때문에 침 조차 삼키지 못한 채 꼼짝도 못 하고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잠시 뒤.

꿱!

결국 동물의 숨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워어어! 시벌!”

“뭐야? 뭐지?”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한숨과 욕들.

3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어디서 많이 듣던 동물의 소린데?

야생곰이 먼저 이를 꽉 깨물고 3층을 손짓하며 중얼거렸다.

“이거 봐! 삵이 맞다니까. 지금 까마귀를 잡아먹은 것 같은데?”

동시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여기 3층 건물인데 까마귀를 어떻게 잡아먹어요. 닭이라면 모를까.”

상황마다 의견이 나뉘는 우리 둘.

ㅡ 미친. 3층 흉가 건물에서 뭘 잡아먹든 이상해 미친놈아.

ㅡ 그래도 방금 소리 까마귀 아냐?

ㅡ 그래. 시벌. 닭은 좀 아니지.

ㅡ ㅇㅇ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ㅡ 아냐 근데 연우가 말하니까 뭔가 믿음이 가는데?

ㅡ 저 새끼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놈이잖아

ㅡ 연우 너는 어떻게 닭이라고 확신하는데?

ㅡ 지금 건물 안이라 너무 울려서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데

야생곰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날 위아래로 훑어본다.

“연우 씨. 지금 여기 흉가에요. 상식적으로 닭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시청자들도 지금 다 까마귀라고 확신하는데···”

계속되는 의견 차이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던 야생곰이 성큼성큼 3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보면 알겠지.”

그렇게 3층에 도착하자 넓은 복도가 쭉 펼쳐졌다.

2층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환경이었다.

병실, 그리고 화장실. 간호사실···

하지만 눈에 띄는 한 병실이 보인다.

나는 그 병실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멀리서나마 훑어보았다.

위치가 아까 야생곰이 2층에서 숨어있던 그 방, 그 위치랑 똑같았다.

그 병실 바로 위 층.

병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저 병실···”

“아. 거긴 원래 전에 왔을 때부터 막혀 있었어요.”

“왜요?”

“모르죠.”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조심스럽게 EMF 측정기를 갖다 댔다.

EMF 측정기의 반응이 거침없이 요동치더니, 또다시 4단계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어? 어! 시, 시벌. EMF 측정기가 요동치는데?”

왠지 소리도 이 병실에서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병실 말고는 죄다 활짝 열려있으니까.

어느새 내 뒤에 서있던 야생곰이 코웃음치는 소리를 냈다.

“그거 측정기 고장 난 거 아니에요? 나는 아무 느낌도 안 오는데? 오늘 죄다 어디 간 거야 도대체.”

병실 앞에 다가가자 빨간 글씨로 쓰여 있는 문구가 보인다.

[ 출입금지 ]

출입금지?

나는 내 카메라에 대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이 방에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열기가 무서워요.”

ㅡ 출입금지 라잖아. 건들지 마

ㅡ 근데 웬 뜬금포 출입금지?

ㅡ 그러게. 그런 방은 숨겨져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ㅡ 왜 복도 한 편에 방 하나를 저렇게 봉쇄 시켜놨지?

ㅡ 혹시 특수 환자 가둬 놓은 방 같은 거 아닐까?

ㅡ 오.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방?

ㅡ 딱 봐도 독방 같네

ㅡ 열어보자

비릿한 냄새도 살짝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내가 용기 내어 문고리를 살짝 잡으려 들자 뒤에 있던 야생곰이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그리고 내 옆으로 재빨리 다가와 문 고리를 쳐다봤다.

“뭐야? 여기 잠가져 있던 자물쇠 어디 갔어요!?”

나는 야생곰이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껌뻑거렸다.

“왁! 씨 깜짝이야. 저야 모, 모르죠.”

야생곰이 이리저리 시선을 뿌리며 자물쇠의 흔적을 찾는 듯했다.

“어? 아까까지만 해도··· 아니. 전에 왔을 때도 분명 잠가져 있었는데, 이거 누가 풀었지?”

혼비백산하며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자물쇠가 잠가져 있었다고요?”

자물쇠는커녕 자물쇠로 잠가져 있는 문 고리조차도 안 보이는데?

“혹시 야생곰님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아니. 저를 뭘로 보시고 그런 소리를··· 이 정신병원 온 사람들은 다 알아요. 출입금지라고 쓰여있는 병실은 잠겨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비밀의 방이라고 불린다고요.”

아니. 근데 왜 내가 오니까 이렇게 들어오라는 듯이 자물쇠가 없어졌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정말.

옆에서 잔뜩 놀란 표정을 지어대니 더더욱 문고리를 잡기가 꺼려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나는 그냥 혹시나 해서 열어보려고 한 건데··· 아, 안되겠다.”

자신만만해 하던 야생곰이 호들갑을 떠니 괜스레 더 무섭다.

ㅡ 저 출입금지 방 문 열면 십만 원.

평소라면 번개처럼 달려들어 방문을 열어젖혔겠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은 몸이 사려진다.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야생곰이 먼저 다가와 내 등을 떠밀었다.

“원래 이런 건 선배가 후배한테 양보하는 법. 미션 양보해 드릴게요. 얼른 열어보세요.”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야생곰님. 나이. 아니. 경력 많으신 야생곰님이 먼저 하셔야죠.”

ㅡ 인정. 나이 많은 놈이 해야지

ㅡ 야. 절대 먼저 하지 마라

ㅡ 왠지 저기는 나도 꺼려지네

ㅡ 출입금지라고 써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ㅡ 아니. 근데 애초에 여기 자물쇠로 잠가져 있었다는데 사람 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

ㅡ 그것도 그렇네

우린 서로에게 양보하다 결국.

그 자리에서 멍하니 다시 출입금지라고 쓰여있는 방만 쳐다봤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던 우리에게 갑작스레 후원창이 터졌다.

ㅡ 그럼 가위바위보로 결정해

“콜?”

“네. 완전 콜요.”

우린 서로의 눈을 뚫어질 듯 쳐다봤다.

알게 모르게 기싸움을 펼쳤다.

뭘 낼까?

심리전이라고도 할 건 없었다.

내가 먼저 솔직한 마음을 꺼내 말했다.

“저는 남자답게 주먹 내겠습니다. 야생곰 님.”

야생곰은 비릿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 손을 내밀고 동시에 외쳤다.

“가위, 바위, 보!”

시벌. 내가 졌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이기에 이 정도는 배려해 줄 줄 알았더니···

아주 당당하게 보자기를 꺼낸다.

“연우 씨.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예요. 자. 얼른 가서 문 여세요. 하하.”

순간, 주둥이에 소금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 그래. 내가 문 열고 십만 원 벌지.

십만 원이면 내 일주일 용돈인데.

나는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후···”

그리고 문 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자 그럼 열겠습니다. 형님들. 하나, 둘, 셋!”

순간, 문고리를 잡으며 내 시야가 흐려졌다.

어? 뭐야? 하필 이때?

내 앞이 점점 흑백으로 물들어가더니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우웁! 으읍! 웁!”

무슨 일인지 한 여자의 입에 재갈이 물려있다.

여자의 눈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다급해 보이기도 했고, 당황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간호사 남자 둘은 아무런 감정 없이 여자의 양팔과 다리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곧이어 여자의 몸은 벨트로 고정시켜졌다.

그리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침대에 눕혀졌다.

뭐야? 여기 지금 이곳.

정신병원 아니야?

눈매가 쭉 찢어져 보기만 해도 섬뜩하게 생긴 남자 한 명이 등장했다.

여자를 감시하고 있던 간호사 둘은 그 남자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준비해.”

그 짧은 한 마디에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자를 어디론가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놀랍게도 정신병원 안 병실이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도구들이 의심스러웠다.

산소호흡기, 무영등, 메스, 석션, 수술용 침대··· 등등.

정신병원에 이런 게 왜 있어?

말도 안 되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까 보았던 그 섬뜩한 인상의 남자가 수술복 차림을 하고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여자의 앞에 다가가 물린 재갈을 빼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미친 사람이 아니에요. 저 정말 정신 멀쩡해요!”

감정 없는 얼굴로 한참을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여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눈 할 것 없어. 네 몸으로 여러 생명을 살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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