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으로 되갚아주기. 9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모두가 벙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멍해진다.
머리가 완전히 새하얘져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안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몸싸움의 소리에 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퍽! 탁! 퍽퍽!
“아아악! 저리 가! 뭐야 시발!”
나는 다급하게 문고리를 뽑듯이 돌려 당겼다.
덜컥. 덜컥덜컥.
뭐야? 이거 왜 잠겨있어?
잠기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야생곰님. 야생곰님!괜찮으세요? 이 문 좀 열어보세요! 문이 잠겼어요!”
하지만 야생곰은 사투를 벌이느라 정신없는 것 같았다.
“시, 시발! 귀, 귀신!? 아아악!!”
으드득.
“끄아아악! 시발! 어깨! 어깨 물렸어! 아아악! 뭐. 뭐야!”
ㅡ 갑분 어깨 먹방 무엇
ㅡ 지방이 많아서 통닭인 줄 알았나
ㅡ 뭐야? 방금 봤던 거 그거 사람이었어?
ㅡ 연우가 1층에서 봤다던 그 여자인가? 흰 소복에 풀어헤친 긴 머리?
ㅡ 헐··· ㅅㅂ 진짜였어··· 말도 안 돼
ㅡ 아니 이 새벽에 사람이 왜 저런 옷을 입고 여기에?
ㅡ 그나저나 야생곰 이 새끼. 꼬시다! 아주 그냥 계속 물어버려라!
ㅡ 멧돼지 먹방 가즈아
한시가 급한 상황.
카메라와 조명을 들고 있던 스텝들도 문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쿵! 쾅! 쾅!
하지만, 문이 어찌나 두꺼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ㅡ 연우야. 쟤 좀 어떻게 해봐라
나는 문을 발로 차고 있던 스텝들에게 외쳤다.
“다 비켜보세요! 문에서 멀리 떨어지세요!”
그리고 문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온 신경을 다리에 쏟았고 있는 힘껏 달려가 문을 걷어찼다.
잠겼던 문이 활짝 열리자 아직도 실랑이 중인 야생곰과 여자가 눈에 띄었다.
여자가 입고 있던 흰옷이 시뻘건 핏자국으로 물들어있다.
입가에서는 그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야생곰에게 미친 듯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사, 사람? 귀신이 아니라 정확하게 사람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 밤에 마주쳤다면 귀신이라고 게거품 물며 기절했을 것이다.
“시발! 살려줘! 이 여자 미쳤어!”
나는 재빨리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야생곰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몸을 잡았다.
뭐야? 이 여자?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잡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잔뜩 돋아 올랐다.
마치 귀신을 만지는듯한 느낌이다.
분명 사람인데?
“그, 그만하세요! 정신 차리세요!”
나는 여자에 힘에 한 번 더 놀랐다.
팔 다리가 뼈밖에 없어 굉장히 가늘은데도 불구하고 힘은 정말 장사 같았다.
운동으로 다져진 내 힘으로도 여자를 떼어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빙의?
그렇지 않으면 이런 괴물 같은 힘을 낼 수 없다.
곧이어 야생곰의 스텝 두 명도 붙어 낑낑대며 여자를 떼어놓는 데에 집중했다.
“아아아아악! 시발! 팔! 내 팔!”
ㅡ 헐. 여자분 취향 독특하시네
ㅡ 뭐야? 식인종이야 뭐야? 왜 물어 사람을?
ㅡ 게다가 맨발이네. 이 사람 도대체 뭐지?
ㅡ 시바. 귀신인 줄 알고 개 식겁했다
ㅡ 현장감 개 지리네
ㅡ 귀신한테 홀려서 미친 거 아니야?
ㅡ 저 여자 야생곰한테만 집착하는 것 같은데
ㅡ 그러네. 뭐지?
몸을 붙잡고 있던 우리 셋을 뿌리치고 그 여자가 다시 한번 야생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기어코 야생곰의 몸에서 무언가를 잡아 뜯어냈다.
찌이이익-
여자의 힘에 의해 야생곰의 허리에 감겨있던 조그마한 가방이 뜯겨져 나갔고.
동시에 가방 안의 수많은 물건들이 땅에 뿌려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물건들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어? 이게 다 뭐야?”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는 내용물들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수많은 부적들, 조그마한 짚신 인형, 그리고 저건 뭐지?
쌓여져있던 포장지가 벗겨지며 인상이 잔뜩 찌푸려지는 괴상한 무언가가 드러났다.
동물의 생식기인가?
자신의 가방에서 뭐가 쏟아져 나오는지도 모르고, 여자를 정신없이 경계하던 야생곰이 소리쳤다.
“야! 시발! 112에 신고해! 저 미친 여자 잡아가라고! 빨리!”
모두가 혼비백산하며 여자에게 집중해 있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짚신 인형을 들어 올렸다.
“시, 시발 이게 뭐야?”
짚신 인형 몸통 한가운데 꽂아져 있는 대못.
그 뒤로 낯익은 이름 하나가 쓰여 있었다.
[ 정연우 ]
내 이름이 왜?
순간, 선녀보살님이 그토록 말했던 그 비방이 떠올랐다.
직감적으로 그 내용물들이 무엇을 위한 재료들인지 깨달았다.
이런 시벌. 이게 설마···
ㅡ 어? 저거 뭐야?
ㅡ 생식기? 저걸 왜 가지고 다녀?
ㅡ 짚신 인형에는 연우 이름이 쓰여있는데?
ㅡ 헐. 나 저거 영상에서 본 적 있어. 저주 비방 아냐?
ㅡ 뭐야? 야생곰 저 새끼 연우 비방술 한 거야?
ㅡ 미친 새끼네. 저거. 헐 개 소름 돋아
ㅡ 또라이 싸이코 새끼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야생곰이 잔뜩 놀라 가방에서 떨어진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어? 뭐야 시발. 이게 왜 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짚신 인형을 빼앗아가며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아, 연우 씨. 이게··· 오늘 방송 재미를 위해서 이벤트로 하나 준비 한 건데요···”
야생곰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며 급하게 변명해댄다.
시발··· 이런 개 자식이 감히 이딴 짓을 해?
주먹으로 어설프게 떠들어대는 저 주둥이를 한 대 힘껏 쳐주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었다.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삭히고 일단 몸을 제압당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으으...아아..으! 아으아!”
이상한 소리만 내뱉는 여자.
그 와중에도 야생곰만 죽일 듯이 쳐다보며 몸부림쳤다.
저 부적들 때문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가방에 있던 팥과 소금들을 꺼냈다.
그리고 여자에 몸에 사정없이 뿌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
눈이 하얗게 까뒤집힌 채로 괴성을 질러대는 여자.
나는 곧이어 부적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여자를 잡고 있는 스텝 둘에게 크게 소리쳤다.
“꽉 잡으세요! 이제 놓치면 큰일 납니다!”
여자의 이마에 부적을 갖다 대자 괴로운 듯 소리를 질러댔다.
“하아아악··· 끄으으으아아아.”
선녀보살님이 혹시나 빙의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내게 써준 부적이었다.
값어치로 친다면 이 부적 역시도 굉장히 비싼 부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심하게 빙의되어버린 여자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어느 순간 여자의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종이 인형처럼 푹 쓰러져 버렸다.
ㅡ 와. 시벌 정연우 뭐냐?
ㅡ 선녀보살한테서 무슨 수련을 받고 온 거야?
ㅡ 설마 너 신내림 받거나 그런 거 아니지
ㅡ 너 지금 굉장히 무당 같았어
ㅡ 무당 꿈나무 같은 거. 뭐 그런 거 하는 거야?
구하기도 힘든 흰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
이 한적한 곳에 맨발로 들어와있다는 사실.
살아있는 고양이를 뜯어 먹었다는 사실.
한참 동안 자르지 않은 손톱은 정말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귀신의 손톱 같았다.
그런 손톱으로 사람에게 공격까지.
이 여자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그 외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투성이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나는 일단 인상을 찌푸리며 야생곰을 쳐다보았다.
“야생곰 님. 해명 좀 하시죠.”
“무슨 해명요?”
“그 가방에 든 것들. 저를 저주하기 위한 비방술이잖아요.”
야생곰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이 부적들은 귀신 쫓기 위한 부적들이고, 이거 여우 생식기 같은 경우에는 귀신 빙의되지 말라고 저희 선생님께서 직접 구해주신 거예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럼 짚신 인형에 내 이름이 박혀있던 건 뭔데?
나는 급한 나머지 아까 카메라에 채 담지 못한 야생곰의 가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러분들. 야생곰님이 저를 저주하기 위해서 무당분까지 섭외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싸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야생곰이 반박했다.
“연우 씨. 그런 거 한 적 없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야생곰의 말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당당하다면 지금 그 가방에 들어있는 재료들과 물건들을 꺼내서 시청자들 앞에서 확인시켜주시죠.”
야생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코웃음을 쳤다.
야생곰의 방송에서 후원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ㅡ 해명하시죠
ㅡ 해명하시라고요
[ 그곳이알고섯다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곰탱아 얼른 그 가방을 사람들에게 보여라
[ 모르는개산책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안 그럼 오늘 한라산 멧돼지 파티한다
궁지에 몰린 쥐꼴이 된 야생곰이 하는 수없이 가방에 있던 무언가를 꺼냈다.
그냥 부적이었다.
“이거요?”
“다른 것도 있잖아요. 아까 보니 제 이름이 적힌 짚신 인형도 있던데요.”
야생곰이 눈썹을 치켜들며 입을 삐죽댔다.
그리고 무시하듯 말을 내뱉었다.
“없는데요?”
얄미워죽겠다.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함부로 장난질을 하는지.
순간, 이를 꽉 깨물 만큼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옆에 서있는 스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스텝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비방이라는 건 원래 혼자 몰래 하는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알려선 안 된다.
“얼른 보여주시죠. 아니면 제가 직접 시청자들한테 보여드릴까요?”
나는 야생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생곰이 잔뜩 경계하며 가방을 사수했지만,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기어코 그 가방을 빼앗았다.
곧장 야생곰 가방에 있는 짚신 인형을 꺼내어 카메라에 비춘 내가 소리쳤다.
“형님들. 여기 보이시죠. 짚신 인형에 꼽아놓은 대 못. 그리고 정연우라고 이름이 버젓이 쓰여있는데 이게 아니라고요?”
ㅡ 헐 실화냐 이거
ㅡ 짚신 인형 만들어서 저주했던 거야?
ㅡ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ㅡ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재앙이 닥쳐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하는 거
ㅡ 심지어 독하게 주술을 걸면 사망할 수도 있대
ㅡ ㅅㅂ 미친놈이네 저거
ㅡ 야. 경찰에 신고했어? 여자가 아니라 저 새끼를 잡아가야 된다
야생곰이 정색하며 소리쳤다.
“아니라고 시발, 안 내놔?”
나는 야생곰이 보는 그 자리에서 인형에 박힌 대못과 이름표를 빼내어버렸다.
그리고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라이터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야생곰.
내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짐작한 것 같았다.
“야! 시발! 뭐 하는 짓이야! 그게 얼마 짜린데.”
나는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가며 차분하게 야생곰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주머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냈다.
닭피로 쓰인 새빨간 부적이었는데.
선녀보살님이 정성스럽게 써주시며 내게 단단히 당부했던 부적이었다.
[ 저주를 받은 인형이 있을 거예요. 그 인형과 꼭 같이 태우셔야 합니다. ]
나는 선녀보살님의 말대로 그 자리에서 인형과 부적에 붙을 붙여 함께 태워버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야생곰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부적의 의미가 뭔지 아세요? 자신을 저주한 상대에게 역으로 살을 날리는 부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