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으로 되갚아주기. 10
야생곰의 눈썹이 움찔거린다.
가벼운 농담 따위가 아니었다.
나름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굴렀던 야생곰이라면 내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대번 알아챘을 것이다.
살을 되돌려 준다는 건 자신이 내린 그 저주를 배로 돌려받는다는 거니까.
“이게 장난이고 몰카라면 야생곰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ㅡ 야생곰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라는데!?
ㅡ 야 야생곰. 이거 살인미수 아니냐? 네가 무슨 짓을 한지 아는 거냐? 해명해
[ 꼼짝마움직이면서쏜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생곰 님 해명해 주세요. 저도 지금 보고 왔더니 저주술 맞다는데요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이번에도 해명 안 하시고 넘어가면 구독 취소합니다. 진심입니다 야생곰님.
연달아 터지는 후원창.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야생곰의 고개가 땅으로 뚝! 하고 떨어졌다.
!?
야생곰이 맨바닥에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허벅지에 가지런하게 올리더니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오늘 여러분들한테 좋은 재미 좀 드리려고 몰카 계획을 많이 가져왔는데, 뜻하지 않게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야생곰은 입까지 삐죽대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까지 짓더니 방송에 대고 얘기했다.
“이게 다 제 잘못입니다. 연우 씨도 제 몰카 계획에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연기를 하고 있는 거야?
표정하나 안 바뀌고 바로 튀어나오는 저 반사 속도에 소름이 끼친다.
ㅡ 뭐야? 진짜인가?
ㅡ 연기하는 거 아니야?
ㅡ 헐. 저 새끼 지금 우는 것 같은데?
ㅡ 나 지금 혼란스럽다. 뭐가 진짜야?
ㅡ 옘병. 악어의 눈물이여
ㅡ 연우야 네가 좀 얘기 좀 해봐
시청자의 말대로 야생곰은 서글픈 목소리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야말로 벙찌는 상황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렇게 상황을 뒤집어 보겠다는 거야?
어느샌가 깨어난 여자가 내 옆을 지나쳐 출입구가 연결된 복도 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잡을 수 없었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지 마치 짐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여자를 보며 야생곰이 입을 삐죽대며 중얼거렸다.
“그냥 두세요. 저런 노숙자들 엄청 많아요.”
그리고 옆에 있던 스텝들에게 슬쩍 눈짓하며 얘기했다.
“오늘 괜히 제 장난에 분위기가 다 망가진 것 같아서, 진심으로 연우 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서서히 일어난 야생곰이 고개를 푹 숙여 방송에 대고 인사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악수를 권했다.
뭐야 이 시추에이션은?
나는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았지만, 잡은 순간 느꼈다.
이 새끼. 이거 연기다.
야생곰은 얼굴은 불쌍한 척 우는 표정을 짓고는 내 손을 부셔 트릴 듯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단련된 몸이 아니었다면 바로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을 정도의 악력이었다.
이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ㅡ 야. 연우 표정 보니까 딱 알겠네
ㅡ 이 새끼. 지금 손에 힘 엄청 들어가 있는 거지?
ㅡ 저거 다 연기였네. 시벌 곰탱이 놈
ㅡ 왜 저런 인상들은 항상 저렇게 뒤통수만 치는 거냐?
ㅡ 관상은 과학이다
야생곰이 내 뒤에 무언가를 보고 흠칫거렸다.
순간, 싸늘한 살기가 맴돌았다.
하지만 재빨리 뒤돌아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희한하게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야생곰은 겁에 질린 듯, 두 눈을 껌뻑거리며 중얼거렸다.
“뭐야? 저거 뭐야?”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린다.
곧 바닥에 주저앉더니 허겁지겁 뒷걸음질까지 치는 모습을 보였다.
뭐야? 왜 그래 이 미친놈?
생뚱맞은 그 모습에 나와 스텝들은 어리둥절해 할뿐이었다.
야생곰은 결국, 스텝이 서있던 자리까지 다가가서야 멈춰 세워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대며 내 뒤를 가리키고 소리쳤다.
“귀, 귀신! 시발! 귀신!”
뭐라는 거야. 귀신?
무슨 귀신이 보인다는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EMF 측정기를 꺼내 확인했다.
놀랍게도 EMF 반응은 4단계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벌. 뭐야? 진짜인가?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믿기 힘든 그 상황에 꼼짝도 못 하고 그저 야생곰의 반응만 살펴보고 있었는데.
야생곰의 반응이 이상하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영가들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저렇게 공포에 떠는 걸까.
게다가 영적인 기운까지 가지고 있다면서.
혹시 나에게 벌이려 했던 사건을 무마하려는 속셈인가?
아님 시청자의 시선을 돌리려고?
생각하기 무섭게 야생곰이 발작하듯 소리치며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시발! 오지 마! 오지 마! 미친 귀신새꺄!”
ㅡ 쇼하고 있네
ㅡ 어디서 자작나무 타는 냄새 안 나냐?
ㅡ 일부러 미안하니까 시선 돌리려고 혼자 쇼하는 거냐?
ㅡ 그런 뻔한 연기에 안 속아 넘어간다
ㅡ 연말 대상 후보 연우 정도는 돼야 헷가닥 할만하지
ㅡ ㅇㅇ 연우가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귀신이 없다는 거여
ㅡ 근데 3대 흉가인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네
ㅡ 너무 스펙터클한 야생곰의 허튼짓거리에 시선이 쏠려서 그런 거임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야생곰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 한 연기였다.
아니? 진짜 인가?
“시, 시발! 몸이 안 움직여! 으어억! 야! 진호야. 성훈아! 내 몸에서 부적 좀 꺼내 줘! 빨리!”
무언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기겁하는 야생곰.
결국 옆에 있던 스텝이 급하게 야생곰의 몸을 뒤져 부적을 꺼냈다.
스텝이 부적을 꺼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닥에 떨쳐버리듯 내팽개쳤다.
나 역시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빨갛게 쓰여있던 부적이 온통 새카맣게 말라버렸다.
마치 불에 태워진 것처럼.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야생곰의 눈이 터져 나올 듯 커졌다.
결국 그 자리에 옴짝달싹 못하게 누군가에 의해 묶인 것처럼 멈춰버린 야생곰.
“으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건물이 떠나갈 만큼 크게 소리치던 야생곰이 무언가를 피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몸을 한번 움찔거렸다.
눈을 살며시 뜬 야생곰이 이리저리 주위를 급하게 살폈다.
그리고 안심하듯 가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웁! 커헉!”
그저 멍하니 야생곰을 지켜보던 나와 스텝들이 화들짝 놀라 한걸음 물러섰다.
야생곰이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새빨간 피를.
순간, 나는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시벌··· 설마 지금 살을 되돌려받아 이렇게···
내 온몸에 닭살이 터져 오를 듯 바짝 서버렸다.
ㅡ 뭐야? 피 토한 거야 지금?
ㅡ 어? 연기가 아닌 것 같은데
ㅡ 야. 설마 연우한테 저주한 거 돌려받아서 그런 거 아니야?
ㅡ ㅅㅂ 진짜다. 그거다.
ㅡ 존나 소름 끼친다. 시발. 이런 저주를 연우한테···
ㅡ 와. 이거 역대급 아니냐? 이 정도면 진짜 살인미수라고
ㅡ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어. 어? 형! 형!”
놀란 스텝들이 조명도 내팽개치고 야생곰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야생곰의 눈이 하얗게 까뒤집혔다.
그것도 모자라 입에서는 믿기 힘든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둔탁하고 쇠가 갈리는 듯한 남자의 음성이었는데.
듣기만해도 솜털이 바짝 설 정도로 살기가 넘쳤다.
“%$#%^@$^%&@.”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힘없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야생곰.
마치 귀신이 들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옆에서 부축이는 스텝들을 굉장한 괴력으로 뿌리치며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는 야생곰.
이제는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쳐다보며 얘기했다.
"내 거다. 이제 내 거."
그 광경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타고 나갔다.
기괴스러운 광경 때문인지 순식간에 시청자 수가 2천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방송 인생 사상 처음 겪는 일이라 나 역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기 바빴다.
ㅡ 야. 연우야 경찰에 신고하든 뭐 하든 너도 얼른 그 자리 벗어나라
ㅡ 야생곰 저거 귀신 빙의 같은 거 아니냐
[ 클레오빡돌아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ㅡ 야생곰 방송 다 챙겨 봤는데 이런 적 처음인 거 같은데
ㅡ 저 새끼 연우 골탕 먹이려다 이제 연기까지 하네
저건 연기가 아니다.
본능적인 감각이 내게 얘기해 주고 있다.
야생곰에게 집중된 나머지 이곳이 어딘지를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3대 흉가 중 방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정신병원.
바로 선지곤 정신병원이라는 것을.
“형! 형! 정신 차리세요! 저, 저 보이세요!? 이걸 어떻게 하지?”
스텝 둘이 붙어 야생곰의 방송을 종료하고, 몸을 흔들어 깨워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미 야생곰은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꿰애애액! 꿰애액!
이 정신병원에서 들었던 정체 모를 새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목이 비틀어지는 것 같은 괴상한 신음 소리.
순간, 눈이 하얗게 까뒤집힌 야생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 자리에서 갑자기 번쩍 일어나더니 뛰기 시작했다.
“형! 어디 가요! 안 돼! 정신 차려요!”
사람이라고 보기엔 정말 기괴한 속도로 미친 듯이 계단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스텝들은 그런 야생곰의 뒤를 쫓았다.
시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 거냐···
아니. 그것보다 야생곰 저거 괜찮은 거야?
이게 저주비방술의 위험성인가.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저주를 만약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받았더라면 난 지금쯤···
시벌 야생곰 새끼.
역으로 살 맞은 기분이 어떠냐?
ㅡ 괜찮냐? 너도 갑자기 빙의 같은 거 돼서 눈 까뒤집고 그러는 거 아니지?
ㅡ 얜 후원만 해주면 빙의도 뚫고 나올 텐데 뭘
ㅡ 어떻게 빙의 따위가 우리 돈미새를 제압하겠냐
ㅡ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냐?
ㅡ 방송 끝인가? 뭔가 찝찝하네
나 역시도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아 어리둥절하다.
상황이 정리가 되질 않는다.
그래도 시청자들 덕분에 나는 멀쩡하게 여기 서있으니까 감사의 인사부터···
“전 완전 괜찮습니다.아 그리고 절 위해서 싸워주신 마라탕형님, 오늘은하나도안무서워 형님, 귀신빤스 형님 등등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진짜 시벌··· 뭔가 너무 무섭네요···”
한참을 숨을 골랐다.
그리고 멍하니 채팅창만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형님들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이제 어떡하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방송 흐름도 깨진 것 같고..."
ㅡ 그래. 그럼 그냥 들어가. 고생했다.
ㅡ 오늘 뭔가 스펙터클했다. 이만 가서 쉬어
ㅡ 집에 갈 때 빙의 조심해라
잠시 조용하던 채팅창을 뚫고 후원창 하나가 울렸다.
ㅡ 가긴 어딜 가? 이제 네 방송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