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다. 1
응?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우리 큰손. 마라탕 형님 후원창에 나는 눈만 껌벅껌벅거리다 되물었다.
“네 형님? 제 방송을 하라고요?”
ㅡ 나 방송 들어온 지 30분밖에 안 됐다. 개미들 다 털어냈으니까 이제 네 방송 제대로 보여줘야지?
생각해 보니 그러네···
게다가 우리 마라탕 형님 덕분에 이렇게 멀쩡하게 있을 수 있던 거니까.
그래. 그럼 제대로 한번 시작해 볼까?
아냐 잠깐만. 여기 3대 흉가였지 시벌···
“잠시만요 형님. 그럼 여기는 조금 어수선하니까 빠르게 다른 곳을 한번 찾아보겠습···”
ㅡ 무슨 소리야. 좋은 명당을 찾아와놓고 어딜 가. 여기서 해
여, 여기서?
갑자기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니 그동안 안 들리던 잡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는 새소리.
살 떨리게 울어대는 짐승 소리.
그리고 숨넘어가는 듯한 여자의 웃음소리까지.
그 도망쳤던 여자가 건물 안에 아직도 있는 건가?
환청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내 귀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현재 시각 새벽 1시 30분.
“에이 형님. 원래 보고 있던 사람들은 지루하지 않을까요?”
ㅡ 아니 개쥬아
ㅡ 찝찝했던 기분이 아주 말끔하게 청소됐어
ㅡ 그래 이거지. 우리 큰손 형님 여윽시
ㅡ ㅅㅂ 야생곰 때문에 방송이 개 지루했어 진짜
ㅡ 3대 흉가가 아니라 3대 중량 방송인 줄
ㅡ ㅇㅈ 멧돼지 같은 넘들
ㅡ 자 연우야! 신나게 한번 가보즈아!
하···.
하필이면 소중한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부적 하나도 아까 써버렸는데···
ㅡ 너 보아하니 요즘 집 구한다며? 돈 열심히 벌어야지 그럼
잠시 식었던 내 의지가 불타오른다.
이런 식으로 동기부여까지.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카메라에 비추었다.
“스읍! 형님들. 오늘 이 연우가 형님들에게 꿀잼 한번 제대로 드려보겠습니다. 가시죠!”
그래. 선녀보살님이 말했던 예쁜 파란 지붕을 가진 그 단독주택을 사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더 열심히 해야 해!
나는 힘찬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ㅡ 야. 어디 가. 거기 출입구로 가는 계단이잖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해맑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새로운 마음으로 1층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했는데요 형님들···”
ㅡ 너 저기 수술실 무서워서 그런 거지? 마라탕 형님 얘 꼼수 부려요.
시벌. 자객 새끼.
야생곰이 있을 땐 내 편 들어줘서 정말 든든했는데.
잊고 있었다.
이놈들이 원조 악질이라는 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다.
“에이 아니에요 형님. 내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ㅡ 맨날 그랬지 ㅅㅂ
ㅡ 아주 습관이지 습관
ㅡ 눈만 뜨면 꼼수 부릴 생각하자나
ㅡ 너 장어도 꼼장어만 먹는다며
ㅡ 이름을 바꿔 정꼼수로
시벌. 꼼장어는 무슨.
비슷하게 생긴 미꾸라지도 못 먹어봤다 이 새꺄!
ㅡ 음. 연우야. 어디 좋은 곳 들어갈 데 없냐? 10분 안에 스스로 찾아 들어가면 오십만 원.
이 형님은 왜 이렇게 어딜 들어가는 걸 좋아해?
영안실 시체 냉장고 들어가기···
장례식장에서 삼베수의 입고 관짝 안에 들어가기···
생각해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 난이도 미션이었다.
이 정도면 큰손 형님이 내 자객 중 당연 보스겠구나.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가야 정상이지만.
“알겠습니다 형님! 오늘은 마라탕 형님의 진정한 아바타가 되겠습니다요! 잠시만 기다리십쇼!”
그리고 재빨리 시선을 뿌려 들어갈만한 곳을 찾았다.
시벌. 어딨을까?
1층? 1층은 아무것도 없었어.
2층? 아냐. 마찬가지야.
3층은 이곳 수술실이 전부인가?
나는 문득 떠오르는 의구심에 일단 수술실 안으로 다시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ㅡ 뭐 찾는 거냐
ㅡ 보물찾기 뭐 그런 거냐
ㅡ 위험 난이도 SS 급. 들어갈 장소 스스로 찾기인데 보물 찾기라니 ㅅㅂㅋㅋ
ㅡ 맞는 말이긴 하지. 오십만 원이 걸렸는데
ㅡ 그나저나 이곳에서 뭔 수술을 한 거냐
ㅡ 무슨 장기매매 같은 거라도 한 거 아닐까
ㅡ 설마··· 아깐 야생곰 때문에 제대로 못 봤는데 리얼일 수도?
나는 바닥 곳곳에 묻어있는 심상치 않은 검붉은 자국들을 비추며 중얼거렸다.
“네. 맞아요 형님들. 여긴 분명 정신병원이었는데, 이곳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벌. 제가 이 방을 들어오기가 굉장히 꺼려졌는데···”
ㅡ 그래서 뭐? 마라탕 형님. 얘 미션 하기 싫다는데요?
“전혀 아뇨? 무슨 소립니까! 저 지금 완전 행복하단 얘기하려고 한 건데요? 저 형님 귀신 빙의된 것 같아요! 환청 들리는 듯!”
나는 수술실 안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이코메트리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형님들. 제가 보기엔 이 방은 몸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반 수술실이 아닌 것 같아요. 아마도 불법 장기적출을 한 것 같은···”
ㅡ 에이 진짜?
ㅡ 장기매매라고? 난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인데
ㅡ ㅈㄹ.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ㅡ 고작 수술실 하나 있다고 그런 억측은 좀 오반데
ㅡ ㅇㅇ 정신병원에서 뭐 아픈 사람들 수술해 줄 수도 있자나
ㅡ 큰 손 형님 오셨다고 또 또 입에 바람 잔뜩 들어간다
“아니요. 정말이에요. 어떤 수술실에서 이렇게 핏 자국을 그대로 둘까요? 위생적이지 못하게.”
물론 시청자들은 오해할 수 있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볼 리 없었다.
TV나 인터넷 기사 속에서나 봐왔을 테니.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어디까지나 내 기억을 100% 믿지는 않지만, 신빙성이 높았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잠시만요. 형님들.”
불법 수술에 관해서는 지식이 하나도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이 드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장기를 보관하는 냉장고.
그리고 장기를 보관하는 곳은 분명히 수술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을 거라는 것.
나는 바로 수술실 곳곳에 다시 시선을 뿌렸다.
그리고 모든 벽면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아니 시벌···.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누구도 모른다.
내가 죽을 무덤을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분명히 여기 근처에 뭔가가 숨겨진 방이 또 있을 것 같은데···”
ㅡ 저넘. 무당집에서도 그렇고 비밀의 방을 넘 좋아하네
ㅡ 그게 곧 보물 찾기임 ㅋㅋ
ㅡ 그거 찾으면 미션도 성공 아님?
ㅡ 오오 그 정도면 인정이긴 하지. 근데 그게 말이 되나?
ㅡ 연우 요즘 탐정놀이 많이 하네. 사무실 차리려고 그러나
하지만···
벽이라면 벽, 수납장이라면 수납장.
열심히 뒤져봐도 도무지 비밀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야? 어딨는 거냐?
ㅡ 야. ㅋㅋ 고만해. 있지도 않은 걸 있는 척 연기하려니 힘들지?
“아니에요 형님. 진짜 있다니까요···”
분명히 숨겨진 공간이 있을 거다.
왠지 그런 확신이 든다.
눈으로 찾을 수 없다면 소리로 찾는다.
나는 오랜만에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고스트 박스를 꺼냈다.
그동안은 사이코메트리의 힘을 빌려왔다면 오늘은 영가의 힘을 빌려보자.
분명, 그런 끔찍한 짓을 벌임에도 불구하고 이 병원이 유지가 되어 왔다는 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을 유인했을 확률이 높다.
죽어도 사회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사람.
그리고 누구도 찾지 않을 사람.
노숙자.
[ 치지지익- 치지지지익- 치지지익- ]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 계신가요? 계시면 대답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ㅡ 워우. 오랜만에 필살기 쓰네
ㅡ 저번에 멋대로 켜져서 고장인 줄 알았는데 괜찮?
ㅡ 아마도 오작동인 듯
ㅡ 오늘 제대로 보여주나?
ㅡ 가즈아 가즈아!
[ 치지지익- 흐익 치지지익- 흐에 치지지익- 허으 ]
별다른 뚜렷한 대답 없이 이상한 말만 흘러나오는 고스트 박스.
이왕이면 빨리 대답 좀 해줘라.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고 미션도 얼른 끝내고···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
쿵. 쾅!쾅!
“워어어어! 어디서 나는 소리야 시발!”
정말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차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게 하는 소리.
1층인가? 2층인가?
고스트 박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해서 그런지.
미세한 소리조차 내 귀는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아니. 유독 이곳이 더 심하게 나는 것만 같다.
[ 치지지익- 꺄르르르 치지지익- 흐익 치지지익- 꺄르르르륵 ]
어? 이 목소리?
고스트 박스를 통해 나오는 소리라 음질이 깨지는 것 같아도.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대번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사이코메트리에서 봤던 그 여자.
강제로 수술을 당했던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시, 시벌! 형님들. 이 목소리는 분명···”
ㅡ 아니? 뭔 소린데?
ㅡ 방금 여자가 웃는 것 같은 소리?
ㅡ 어우. 시발. 갑자기 온몸에 닭살 돋았어
ㅡ 어떻게 웃는 소리가 저렇게 소름 끼칠 수가 있는 거지?
ㅡ 언제 들었다는 거야?
ㅡ 얘기해 봐. 무슨 소린데?
나 역시도 등줄기에 소름이 쭈욱 타고 흘렀다.
다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본 여자의 목소리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안 믿을 테지.
나는 말을 살짝 바꿔 대답했다.
“이 영가. 혹시 이곳에 갇혀 있었던 영가가 아닐까요? 왜 형님들··· 정신병원이니까 정신이 아픈 환자들이 많잖아요. TV에서 많이 들어봤어요. 정신없이 웃고 돌아다니고 그런···”
[ 치지지익- 헤헤헤헷 치지지익- 흐익 치지지익- 흐흐흣 ]
웃음소리가 딱 그런 느낌이긴 했다.
그나저나 만약 저 영가가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었다면 비밀공간에 대해서.
아니, 지금 이 정신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며 흘러갔는지를 알고 있지 않을까?
[ 한 마리, 두 마리 치지지익- 꺄르르륵! 치지지익- 비둘기! ]
ㅡ 그런 것 같기도? 보통 고스트 박스에서는 이런 음성이 흘러나오진 않았잖아? 계속 이상한 소리만 나오네
그 말이 맞다.
보통은 대답. 아니면 내가 폐가나 흉가에 온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음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뜩이나 지금 고스트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이 소리로 봐서는···
이 영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어디론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만큼 소리가 불규칙하게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 때문에 듣고 있는 나도 정신이 없을뿐더러, 머리까지 아파온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미션도 그렇고 이왕 해야 하는 거 한방에 굵고 짧게 끝내자.
“형님들.”
나는 마른침을 꿀꺽 한번 삼켰다.
그리고 카메라에 대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제가 이 귀신을 한번 불러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