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다. 3
사고가 정지된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아마 이 순간, 어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고스트 박스 음성이 아니었다.
내 등 뒤에서 귓가에 속삭이던 그 음성은 분명 사람의 음성이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멈춰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카메라를 내 등 뒤가 보이게 천천히 돌리며 말이다.
“혀, 혀, 형님드을.”
너무 놀라 입술을 본드로 붙인 것처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 ?
- 뭐야?
- 사람 목소리?
- 어 잠깐만 머리카락 보인다
- ????????????
- 어?
- 시발! 사람 같은데?
- 헉 연우야 네 등 뒤에 사람 있어!
- 씨발 뭔데
나는 카메라에 비친 긴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발작하며 벗어났다.
“와아아아아악! 시바아알! 누구야!”
순식간에 자리에서 튀어 오른 나는 벽을 등지며 그 형체를 빠르게 살폈다.
또 한 번 숨이 틀어막혔다.
사람··· 아니 그 여자다.
1층 계단 앞에서 고양이를 뜯어 먹고 있던···
이 방에 갇혀 야생곰을 덮쳤던 그 여자였다.
온몸에 참을 수 없는 진동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뭐야? 언제 내 등 뒤로 온 거야?
아니. 그것보다 지금 분명 남자 목소리를···
- 오우 ㅅㅂ 식겁했네. 귀신 부른다 드니 사람을 부르면 어떡하냐?
시벌. 일부러 그랬겠냐.
아니. 잘 생각해 보면 귀신을 부른 게 맞긴 했다.
다만, 빙의된 사람까지 불러낸 것은 내 예상의 오차 범위였지만.
순간, 우리 둘 사이에는 표현할 수 없는 적막이 흘렀다.
나는 여자가 야생곰에게 한 것처럼 나를 덮쳐올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했다.
“누, 누구세요?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여자는 이곳저곳을 기괴하게 목을 꺾어가며 살폈다.
그리고 고개는 옆으로 꺾은 상태로 눈은 치켜들어 나를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는 내 흉부를 쳐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 1억 [email protected]#··· %%!$ 2억 [email protected]#···”
- 뭐냐 이 상황은?
- 귀신 헌팅이 아니라 노숙자 헌팅?
- 야 저 사람 이상한 것 같아
- 난 저 사람 쳐다보는 게 더 소름 끼친다야
- 흰 소복을 왜 입고 있어
- 아까는 옷에 피 엄청 많이 묻지 않았어?
- 근데 그 핏자국들 다 어디 갔대?
-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 연우야 뭐라고 그러는 거냐?
나 역시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꺾어 눈만 나를 향한 채로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그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섬뜩한 모습으로 처음에는 내 눈을 마주치는가 싶더니, 그다음은 흉부, 복부···
천천히 고개를 내려갔다.
도대체 뭘 쳐다보는 거야? 내 몸?
순간, 나는 기억 속의 남자의 음성을 떠올렸다.
시벌··· 설마?
“혀, 형님들. 저 여자 아무래도 빙의 된 것 같아요. 근데 아까와는 다른 귀신에게 빙의가 된 것 같은···”
말하기가 무섭게 여자가 입가가 양옆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더 살기 넘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심장은 1억 4천만 원··· 신장은 2억 9천 5백만 원··· 간은 1억 7천만 원···”
- 뭐라는 거야 심장? 간? 금이빨은 '얼마' 냐고 물어봐라
너는 뭐라는거야!
저 여자.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 다른 귀신이 씌여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알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이유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원장.
나는 앞에 있든 여자에게는 보이지 않게 방송화면을 가까이 대고 눈짓했다.
경찰서에 신고 좀 해달라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혀, 형님들··· 형님드을···”
내가 방송화면에 대고 얘기할 때마다 여자는 아주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홱 째려봤다.
마른침이 절로 넘어가며 숨은 계속해서 내 목을 조여왔다.
나는 고민했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까 남자 세 명이서 겨우 붙어 떨어트렸던 여자다.
빙의가 되었다는 걸 아는 지금 역시도 같은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 쟤 지금 눈 사인 보낸 것 같은데?
- 뭐라는 거야?
- 후원 해달라는 건가?
- ㅅㅂ 후원받으려면 뭐라도 좀 해 봐
- 그 여자 빙의 된 거 맞아? 얘기 좀 해봐
이 미친놈들아.
누가 봐도 빙의된 거잖아.
이 새벽에 하얀 소복 입고 폐 정신병원에서 고양이 뜯어먹는 여자가 지극히 정상이겠냐!
나는 앞에 있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이 새벽에 그런 옷 입고 여기 계시는 거 보면 무,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있으신 가 봐요··· 그쵸···?”
여자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소름 끼치게 씩 웃었다.
곧이어 내 오른쪽 가슴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담배 피워?”
아니. 순간 멈춰서 고민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설마 방금 중얼거린 그 가격이랑 연관이 있는 거야?
난 왠지 모르게 반대로 대답해야 할 것만 같았다.
최대한 내 몸이 재생되지 않는 쓰레기인 것처럼.
“네! 어, 엄청 많이 펴요! 하루에 세 갑! 아니 시벌 네 갑!”
여자의 입가의 미소가 살짝 줄어들었다.
잠시 후.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이번엔 오른쪽 가슴 밑.
즉, 명치 쪽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술 마셔?”
“바, 밥 대신 술 먹어요! 주식이 술이에요! 그냥 맨날 먹어서 간이 아주 썩어 문드러졌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요!”
- 뭐야? 양심고백 시간이야?
- 야 이 미친놈아 너 19살이잖아
- 옘병 담배 하루 네 갑이면 여기 오기 전에 뒤졌어야 정상인데
- 밥 대신 술을 먹는다고?
- 그럼 너 손 떠는 거 술 때문에 그런 거였어?
- 이 영상을 같은 학교 누군가가 보게 된다면 큰 파장이···
-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이야?
- ㅅㅂ 정연우 방송 끄기 전에 해명해라
시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금방이라도 덮쳐질 것 같아서 더 심한 대답은 못 하겠다.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알아 들었겠지?
여자의 입가에 미소가 모두 사라졌다.
아니. 다시 살며시 찢어지기 시작하더니 겁 먹은 내게로 조금씩 다가왔다.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왜, 왜요! 정말이에요! 저 몸이 진짜 쓰레기라 이제 곧 죽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여자는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나에게 속삭였다.
“거짓말인 거 다 알아.”
하필이면 잔뜩 긴장해서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려주고 말았다.
어떻게 알았지?
내 표정에서 티가 난 걸까?
여자가 중얼거렸다.
“네 심박수··· 아주 싱싱해. 기다려. 그 심장 내가 예쁘게 꺼내줄게.”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여자를 밀치고 반대편 벽으로 잽싸게 붙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등을 돌렸을 땐 이미 그 여자도 내 바로 앞에 와있었다.
“와아아악! 시바아아아알!”
- 와아아악! 시발! 나도 깜짝이야
- 방금 뭐야?
- 공포영화 한 장면 보는 줄 알았네
- 얼굴을 카메라에 왜 들이미는 건데
- 그나저나 연우 스피드를 따라왔어?
- 속도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 저 여자랑 달리기 시합해서 이기면 십만 원
“이런 시벌! 형님들. 이 사람 귀신 들렸다고요! 이 상황에 장난을!”
농담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내 앞에 이 여자는 아무런 감정 없이 돈을 위해서 사람을 죽여 장기를 내 팔던 원장 귀신이 씌여있다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문 쪽에 등을 붙여 열중쉬어 상태로 문고리를 몰래 돌려보지만.
역시나 문은 잠겨있다.
동시에 여자가 아주 해맑게 입을 찢으며 웃는다.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다, 당연하지. 산전수전 다 겪어본 몸이지만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니야!”
여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간다.
이 순간, 그 살기만큼은 어느 폐가보다도 남달랐다.
그저 공포스러운 것만이 아니라 그냥 미친 사람을 보는 것과 같았다.
집안에 강도가 들면 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몸이 굳는지 알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지? 내 모든 아이템과 부적은 옆방에 있는데.
저것만 손에 들어온다면 객기라도 부려볼 텐데.
“아니야. 넌 오늘 여기서 죽어.”
“시, 시발! 형님들! 겨, 경찰에 신고 좀!”
여자가 온통 수술 도구로 난잡하게 어질러진 방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급하게 찾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무엇이든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 방을 빠져나가야 된다.
열리지 않는 문을 잡아 뽑듯 계속 잡아당겼다.
“열려라. 열려라 참깨! 시바아아아아알!”
무언가가 급하게 내게 달려드는 느낌이 들어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휘익!
메스?
어디서 찾았는지 여자의 손에는 수술용 메스가 들려있었다.
“야 이 미친년! 아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시발!”
- 야 이거 상황극 아니지?
- 저 여자 미쳤다니까!
- 레알?저거 손에 든 거 뭔데? 칼? 메스인가?
- 어? 야 위험해! 그냥 정신 나간 게 아니라 완전 미쳤네 저거!
- 어디야? 저기 장소 어디냐고!
- 선지곤 정신병원!
여자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나는 살짝이라도 몸에 데었다간 생 살이 두부처럼 갈라질 그 위험천만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핸드폰도 집어던졌다.
그리고 이리저리 여자를 피해 도망 다니며 크게 소리쳤다.
“시발! 시발! 시발! 형님들! 살려주세요!”
이 순간을 게임을 즐기듯 메스를 휘둘러대는 여자가 날 보며 얘기했다.
“우리 예쁜 장기들 다치면 안 돼.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나 만들어질 끔찍한 상황이 눈앞에 다가오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 야 정신차려! 차라리 여자를 제압해! 뭐 하는 거야? 피하기만 하고
[ 귀신빤스 님이 4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아니 전과범 때려잡던 그 실력 어디다 갖다 버린 거야? 미친놈아!
[ 귀신이고칼로리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시벌! 정당방위. 흉기를 들고 있어 저 미친!
난데없이 벌어진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내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압?
남자 셋이서도 버거웠던 저 빙의된 몸을 제압을 어떻게 해?
게다가 저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단 한 번도 제압이라는 걸 생각해 보지 않은 내가.
순간, 자리에 멈춰 격투 자세로 고쳐 잡았다.
뭐 때문이었을까.
아마 지금 내 귀에 울리는 후원창 덕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 미친년은 매가 약이다. 때려잡으면 추가 백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