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구독 이벤트. 2
이벤트 진행 공지를 남긴지 고작 하루.
카톡으로 온 신청 메시지를 보고는 나는 눈만 껌뻑거렸다.
“이게 죄다 신청한 사람들이라고···?”
눈으로 읽기에도 벅찬 연락들.
[ 시간을달라는소녀 - 우리 집에 귀신이 사는 것 같아요. ]
[ 은하철도구로구 - 새벽만 되면 이상한 환청이 들려요. ]
[ 대추나무사람걸렸네 -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너무 자주 일어나요. 확인 좀. ]
[ 부릅뜨니숲이었어 - 구체 같은 게 떠다니는 게 너무 자주 보여요. 귀신 아님? ]
등등.
수백 개의 사연들이 쌓여있었다.
“허··· 이걸 언제 다 읽어?”
생각보다 넘치는 관심과 사랑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제 나도 유트브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건가?
동시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휴··· 일단, 선정 기준부터 정해볼까.
아무래도 이벤트가 기념 목적이긴 하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한 것이 메인이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은 뭐야?
[ 추적60인분 - 폐가 다녀온 이후, 귀신 때문에 생긴 땜빵 자리에서 머리가 안 자라요. 빙의 된 걸까요. ]
아차. 박필준의 땜빵을 내가 만들었었지.
미안하다. 네 젊은 인생에 크나큰 오점 하나를 만들어줬구나.
그래도 네가 나에게 했던 과거에 비하면 그건 새 발의··· 크흠.
나는 일단 평범한 사연들을 접어두고 눈에 띄는 다른 사연들을 살펴보았다.
[ 그곳이알고섯다 - 매일 새벽마다 처녀귀신이 절 찾아와서 자꾸 덮쳐요. ]
이건 뭐지?
귀신이 찾아와서 덮친다고?
미간이 찌푸려지는 희한한 제목에 나는 일단 그 사연을 펼쳐보았다.
[ 안녕하세요. 정연우 유트버님. 저는 그곳이알고섯다라는 닉네임을 가진 구독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새벽마다 귀접을 당하고 있습니다··· ]
내용을 훑어보니 적잖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귀접 현상.
귀신과 접한다는 의미로, 귀신이 신체적인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더 풀어 얘기하자면 귀신과 정말 사람처럼 몸 접촉이 일어나는 것을 얘기한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들었는데···
그 귀신은 대부분 엄청 매력적이라서 자의로 끊어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귀신이랑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의 기를 점점 빼앗긴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사람의 기가 모조리 다 빼앗겼을 경우에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사람이 굉장히 피폐해지고, 나중에는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이 귀접 현상의 정말 무서운 것은 당하는 사람 대부분이 귀신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을 만큼의 쾌락을 선사해 준다는 것.
당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얼굴. 몸매부터 시작해.
모든 촉감까지.
그로 인해 사람은 한번 쾌락에 빠져든 순간. 거부하지 못하는 굴레에 빠진다는 것이다.
나는 몇 가지 사연을 더 확인했다.
그렇게 눈을 부릅 뜬 채 모든 사연을 본 뒤 방송을 켰다.
[ 추적60인분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형님들 하이요오오! 연우가 왔습니다요!”
- 오. 동생 왔는가
- 연우야. 내 사연 읽어 봤어? 엄청 심각해 나. 20살도 안 됐는데 탈모라니.
- 이벤트 당첨자는 누구야?
- 나도 신청했는데 내건 읽었나?
- 사람들 얼마나 신청했니?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신청을 해주셔가지고 이 연우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냥 대충 본 게 300개는 넘던데요.”
- 우리 집부터 와줘. 우리 엄마 소리 지르는 거 보면 진짜 빙의된 것 같다니까
[ 서현아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저희 오빠 새끼 술만 먹으면 사족보행하는데 개가 빙의 된 건지 확인 좀
장난스러운 사연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 몇 개를 골라 시청자들에게 공개했다.
“형님들. 물론 정말 진심으로 보내주신 사연들이겠지만, 제 스스로 정말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는 사연 몇 개를 간추려보았습니다. 일단···”
나는 내가 선정한 사연 세 개 중 하나를 펼쳤다.
“일단 첫 번째로는 우럭아왜우럭 형님 사연인데요. 이 형님 같은 경우에는 한 집에서 오랫동안 지낸 형님이십니다. 약 20년 정도 살았다고 하고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집이라고 하네요. 집이 오래되다 보니 거의 귀신들과 동거하다시피 지냈다고 하는데요. 새벽마다 거실에서 물건 떨어지는 소리는 기본, 자신의 방 창문에서 새벽마다 누군가가 자꾸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날마다 가위에 눌리실 때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신다고···”
- 헐. 그럼 약 50년 이상을 그 집에서 살았단 거네?
- 커헉. 그런 경우가 있구나.
- 그럼 집이 엄청 옛날 집이겠네
- 문도 다 옛날 나무 문일 듯
- 폐가인가?
- 님. 사람 살고 있는데 폐가는 아니져 ㅋㅋ
오래된 집일수록 귀신들이 많이 꼬인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만큼 집 안에는 오랫동안 묵힌 가구들, 물건들이 많고 그 물건 하나하나가 음기를 빨아들인다는 얘기도···
그리고 이 집의 최고 문제점은.
“음··· 옛날 집이라 다락방도 있고, 지하실도 따로 있대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자꾸만 꺼림칙한 소리들이 들리신다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집의 광경.
그리고 지금 내 몸에 갑자기 소름이 돋아 오르는 걸 봐서는 저 집.
잡귀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이어 두 번째 사연을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요. 이세돌이세돌잔치 라는 닉네임으로 계시는 구독자 형님이신데요. 이 형님 같은 경우에는 자꾸만 환청이 들리신다고 해요. 집에 있을 때 자꾸 귓속으로 누군가가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신다고···”
- 잉? 엄마 잔소리 착각한 거 아님?
- 잘 때 엄마가 옆에서 자장가처럼 속삭이는 거 아니냐
- 엄마 귀신 취급함?
- 그럼 우리 집도 귀신 있는 건가
- 분명 악귀일 듯
- 아니. 많고 많은 소리 중에 공부하라는 귀신은 또 처음이네
- 선생님 귀신이냐
- 모범생 귀신일수도
다른 현상과는 달리 환청으로만 구독자를 괴롭힌다는 말에 선정해 봤다.
눈에 보이는 헛것 같은 경우에는 특정 장소에서의 단발성일 확률이 높은 반면에, 환청 같은 경우에는 장소에 구분 없이 매일 같이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자, 이제 두 번째 형님이셨고요. 마지막으로···”
나는 유독 미간이 찌푸려지는 마지막 사연을 펼쳤다.
귀접을 당하고 있다던 그곳이알고섯다 형님.
디테일한 사연 설명과 기를 많이 뺏긴 상태라 몸에 기력까지 없다는 하소연에 나 역시도 마음이 더 간다.
“형님들. 마지막 사연입니다. 그곳이알고섯다 라는 닉네임을 가진 형님이신데요. 이 형님 같은 경우에는 밤마다 매일 여자 귀신이 찾아와 형님의 몸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귀접이라는 걸 당하신다고 하는데요. 이 귀접을 당한 지가 벌써 1년이 넘으셨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던 여자가 이제는 하루에 한 번씩, 두 번씩도 찾아온다고 하여 일상생활에 너무 지장이 생긴다고 해요. 온몸이 몸살 걸린 것처럼 아프고 힘도 없고···”
- 닉네임 무엇
- 헐. 귀접? 근데 그 여자 예쁘던가요?
- 상대가 좋아하는 얼굴로 바꿔서 온대요
- 오. 나도 당해보고 싶···
- 님. 그거 빠지면 귀신 되는 거 시간문제임
- 귀신 되고 싶음?
- 기 다 뺏기면 그냥 염라대왕이랑 악수하러 가는 거임
- 위험한 소릴 하시네
“맞아요. 형님들. 공포나 위협을 하는 귀신이랑은 차원이 다르죠. 그런 식으로 사람의 기를 천천히 빨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정신이 피폐해지게 만들고 죽게 만드는 거죠.”
이 세 가지 사연을 모두 털어놓은 나는 고민했다.
어떤 사연이 좋을까.
누구에게 더 힘이 돼줄수 있을까.
물론 나는 특히나 더 마음이 가는 구독자가 있었지만, 결정권을 시청자에게로 돌리기로 했다.
케어를 해주는 방송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방송하는 사람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형님들 제가 재미있는 게임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연들 중 투표를 통해 당첨된 사연 하나를 뽑는 거예요. 어떠세요 형님들?”
- 웬 투표?
나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형님들. 시청자가 너무 많은 관계로 투표는 오래 걸릴 것 같고 색다른 게 생각나서 준비해 봤습니다. 재밌겠죠 형님들!”
- 옘병 너만 재밌겠지.
- ㅅㅂ 그냥 후원 유도하는 거 아니냐 이거
- 돈미새새끼 돈독 올랐나
- 누가 유도 금메달리스트 아니랄까 봐 개색갸
- 연우 집도 사야 되니까 이해해 주자
- ㅇㅇ 연우 목숨 걸고 방송하잖아
- 목숨 값이라고 치자
- 그럼 네가 후원해
- 난 그냥 이해만 해줄 건데
- 연우도 먹고살아야지 그치?
- 설마 큰 손 형님도 끼는 건 아니지? 반칙인데
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눈을 껌뻑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한 없습니다. 형님들! 1번 사연 우럭아왜우럭 형님. 2번 사연 이세돌이세돌잔치 형님. 3번 사연 그곳이알고섯다 형님입니다. 자 시작해 주세요!”
- ㅅㅂ 뭔가 속는 느낌인데. 일단 나는 1번
나는 물개박수까지 치며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소리쳤다.
“오 오! 귀신빤스 형님께서 1번 우럭 형님 사연에 천 원! 다른 분 없으신가요!”
[ 홈런왕편승엽 님이 2,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2번 갑니다
“우워어어어! 홈런왕편승엽 형님께서 2번 이세돌 형님 사연에 2천 원! 투표가 아주 흥미진진 합니다 형님들!”
- ㅅㅂ 너 혼자만 즐겁지 개색갸
- 잇몸 만개 개 얄밉네
- 이런 쪽으로는 우리 연우가 참 머리 잘 쓴단 말이지
- 후원 쪽으로는 아인슈타인보다 머리 좋음
- 근데 이 정도 금액이면 할만하겠다 ㄱㄱ
- 나도 해야지
[ 이웃집또털어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1번 사연 가즈아!!
“우어어어! 시버어어얼! 이웃집 형님께서 1번 사연에 3만 워어어어언! 1번 사연에 벌써 2표 째! 다들 1번 사연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아아아!”
[ 클레오빡돌아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난 2번 사연. 우리 엄마 생각나네
점점 더 올라가는 후원금액에 내 목소리는 몹시 흥분되었다.
“와우우우우! 클레오빡돌아 형님! 2번 사연에 5만 원을!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되는 걸까요오오오!”
- 3번 가라.
순간, 입이 떡 벌어지며 몸이 굳었다.
리액션을 할 타이밍도 놓쳤다.
시벌. 마라탕 형님이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 안 해
- ㅅㅂ 한순간에 의욕을 잃었다.
- 저 형님이랑 배틀 뜨려면 우리 집 팔아야 돼 시발
- 이건 반칙 아니냐
- 연우만 꿀 빠네. 엉엉. 내 후원금액···
- 저 새끼 침 흘린다
- 하··· 저걸 어떻게 이기냐. 걍 3번 사연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