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28화 (12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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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보던 섯다 형님이 대답했다.

“아, 알겠어요. 그럼 할머니 좀 모시고 나올게요.”

그리고 곧장 할머니가 계신다는 방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문이 열리며 무거운 공기가 나를 덮친다.

동시에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신다.

“아이고, 고마워요이. 이 캄캄한 밤에 우리 손자 도와주겠다고 와줘서··· 내가 이제 다 됐나 봐. 우리 손자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연신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할머니. 섯다 형님. 아니. 기훈이 형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거든요. 제가 항상 도움을 받았던지라 이번에 그 도움을 돌려줄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나는 섯다 형님과 할머니를 집 입구 문쪽까지 안내해 드렸다.

그리고 말을 이어붙이며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하루 맛있는 것 좀 드시고, 푹 쉬다 오세요. 제가 이 집에 있는 불순한 기운들 싹 다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고, 고마워요. 연우 씨.”

- 와. 개 소름 돋았어

- 너 왜 그러냐고 도대체

- 약 먹었냐 혹시

-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면 죽는다던데

- 그냥 장례식장 미리 예약할게!

- 개 멋있어 오빠아아아아앙!

- 님 여자인 척 좀 하지 말라고요

섯다 형님과 할머니가 집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며 중얼거렸다.

“시바··· 존나 카리스마 있어.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 다 들려 이 새꺄. 그리고 도대체 뻑이 간 여자가 어딨는데? 모쏠녀석주제에

나는 고개를 있는 힘껏 쳐들고 후원창을 바라보며 반박했다.

“형님! 한 명 있거든요!”

- 뭐? 누구? 임아린?

나는 헛기침을 하며, 눈썹을 씰룩씰룩댔다.

요즘 임아린이랑 자기 전까지 연락한다고!

그나저나. 섯다 형님의 친 할머니신건가?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박힌 할머니의 인상이 다시 떠올랐다.

70대. 주름이 많으신 얼굴에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시다.

무엇보다···

저 할머니. 일반인이 아닌 것 같으신데.

나는 찝찝한 마음에 곧장 할머니가 계셨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허··· 이게 다 뭐야?”

온 사방에 널려있는 동상들.

수많은 연꽃등, 양초··· 그리고 벽지에는 온통 무서운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붙어있다.

역시··· 할머니가 신을 모시는 사람이었구나.

어쩐지 방문을 열자마자 무거운 기운이 나를 덮칠 때 알아챘다.

- 헉. 이게 다 뭐야?

- 오우··· 문 열자마자 나 소름 돋았어

- 할머니도 무당이셨어?

- 와··· 연우 너 이거 알고 있었던 거야?

- 이 방부터 열어본 이유가 있는 거지?

- ㅅㅂ 박수무당. 뭐 꽃도령 그런 신내림 받았지 너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아까 방문을 열었는데 느껴지는 기운이 조금 이상했어요.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이렇게 된다면 섯다 형님에게 붙은 귀신이 여럿이라는 게 더 확실해진다.

처음엔 밖에서 붙어온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래 귀신은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키는 습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귀신들이 이 집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할머니가 그 귀신들을 직접 불러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그 귀신을 신이라 생각하고 모시고 있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귀신의 농간에 속으신 거다.

아니면 잡귀신을 할머니에게 내린 돌팔이 무당이 있을지도 모른다.

“형님들. 제가 보기엔 섯다 형님의 할머니 분이 전에 무당이셨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연세가 있으신 터라 그만두신 것 같은데··· 문제는 신이 아니라 잡귀를 모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무당을 그만둔 이후로 들러붙은 귀신들.

흔한 잡귀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돼버린 것 같았다.

나는 EMF 측정기를 들어 내밀었다.

2단계부터 3단계 반까지.

EMF 측정기가 요동을 친다.

그럼 그렇지.

이 조그마한 집에 들어와있는 귀신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잡귀들.

이 잡귀들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이미 이곳에서 모신지도 꽤나 된 것 같은데, 뿌리가 깊이 박혀 쉽게 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일단 제가 섯다 형님의 방을 보여드릴게요. 방금 설명해 드린 제 말이 맞는지 확인 시켜드리겠습니다 형님들.”

나는 할머니가 계신 방을 나와 바로 옆방으로 몸을 옮겼다.

할머니방과 딱 붙어있는 섯다 형님의 방.

침대 하나가 바로 눈에 띈다.

그런데, 침대 머리의 방향이 할머니의 방 안 동상이 서있는 방과 맞닿아 있었다.

“보이시죠. 형님들. 이러니 섯다 형님에게 귀신이 붙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할머니가 모시던 신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셈인 거죠.”

- ㅅㅂ 그렇구나

- 와. 연우가 내뱉는 말 족족 소름이 돋는다

- 너 얼마나 공부한 거야

- 선녀보살님이 가르쳐 준거야?

- 이제 너 뭐 나무꾼보살 이런 거 하는 거냐

- 그럼 할머니한테는 그동안 영향이 없었겠네?

- 그런가? 그래서 그렇게 평온해 보이셨나

“맞아요 형님들. 누가 뭐래도 할머니는 무당을 하실 정도로 기가 세셨던 분이에요. 귀신들이 무당인 할머니에게 붙었다가 안 되니까 기가 약한 섯다 형님에게로 붙는 겁니다.”

이 환경이 계속 유지된다면 정말 섯다 형님이 무슨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심각한 건 분명했다.

아니야 이 정도라면···

왠지 이미 그런 시도를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짧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 그럼 얼른 필살기를 꺼내 줘!

나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저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귀신의 수가 너무 많네요.”

다른 방은 몰라도 할머니가 신을 모시는 방은 점점 더 기운이 세지는 것 같았다.

흐르는 공기 자체가 따갑고 무겁다.

할 수 있을까?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내가 카메라에 대고 조용히 얘기했다.

“형님들. 이 연우의 기가 세질 수 있게 좀 도와주십시오.”

- 후원 해달라는 거잖아? 옛다 인마!

[ 다이겨우즈 님이 4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ㅅㅂ 뭔 놈의 기가 후원으로 세지는데? 일단 준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앞에 있는 양초들에 모두 불을 붙였고, 귀신을 불러내기 위해 모든 전등을 껐다.

곧이어 고스트 박스를 꺼내 전원을 켜고 힘차게 소리 질렀다.

“나와라 나쁜 귀신들아! 모습을 드러내고 나랑 대화를 좀 나누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음성이 고스트 박스를 통해 터져 나왔다.

아주 얇은 목소리였는데, 마치 그 톤이 송곳과 같았다.

고스트 박스를 통해 나오는데도 아주 뚜렷하게 꽂혔다.

[ 치지지익- 당장꺼져 치지지지익- 네까짓게 치지지지익- 날퇴마? ]

흠칫 놀란 내가 반사적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분명 고스트 박스에서 음성이 흘러나오는데, 동시에 모든 양초에 불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바람이 들어올 공간도 없었다.

심박수가 미친 듯이 치솟았지만, 나는 침착하게 고스트 박스를 쳐다봤다.

기에서 밀린다면 이 퇴치가 물거품이 돼버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름 정말 많은 준비를 해온 몸이다.

나는 아주 굵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를 해하려 온 건 아니다. 단지, 이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고 싶어서 내가 왔다.”

- 협상하는 건가?

- 협상보다는 합의에 가깝지 않을까

- 워··· 분위기 뭐야?

- 너 누구 영상 보면서 연습했어?

- ㅅㅂ 목소리 톤 뭔데

- 난 또 누구 성대모사하는 줄 알았어

- 눈빛은 또 뭐야?

- 개 강렬해. 개 멋있어!

- 근데 나는 왜 자꾸 웃참 되는 거지?

[ 치지지익- 닥쳐 치지지이익- 내남자 치지지지익- 데려와 ]

다시 한번 송곳 같은 음성이 고스트 박스에 꽂혔다.

일반 가정집이라 그런지 폐가와 흉가만큼 살기가 넘치진 않았지만, 뭔가 색다른 공포였다.

이런 귀신이 우리 집에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그 남자는 너 때문에 하루하루를 괴로워하고 있어. 그리고 네 남자가 아니잖아!”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온몸에 수많은 닭살이 잠깐 돋아 올랐다.

허벅지부터 등, 그리고 목덜미까지.

한기를 느낀 것과는 달랐다.

누군가가 내 몸을 쓰다듬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나는 꺼림칙한 그 기분을 느끼자마자 이를 꽉 깨물고 얘기했다.

“다시 한번만 내 몸에 손 대면···”

[ 치지지익- 으힉 치지지익- 히히힉 치지지익- 뭐? ]

“시, 시벌! 화, 화낸다!”

점점 더 언성을 높이는 그 와중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는 또 한 번의 소름이 돋아 올랐다.

누군가가 내 뒤에 스르르 날 껴안는다.

내 귓불에 부드럽고 축축한 그 무언가가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오우야···”

- 표정 뭐야?

- 너 왜 갑자기 귀를 잡고?

- 방금 흰 자가 보인 것 같은데

- 맞지? 극락 가는 표정이지?

- 귀신이 네 귀에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 ㅅㅂ 육하원칙에 의해 자세하게 얘기해달라고!

- 어? 내가 저 표정을 많이 봐서 잘 알아!

- 무조건 천국 갔을 때 표정이야!

- 귀신 보고 노골적으로 정체 좀 드러내달라고 해줘

- 후원해 준다고 시바

나는 얼굴을 괴상하게 찌푸리며, 소리쳤다.

“어우 형님!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천국이라뇨!”

[ 치지지지익- 좋지? 치지지익- 나랑할까? 치지지익- 황홀할거야 ]

찝찝한 기분이 잔뜩 몰려온다.

더럽다는 표현이 자동적으로 입 밖으로 나올만한 느낌이다.

이 귀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예쁜 얼굴의 귀신이 주는 쾌감일지 몰라도 나는 달랐다.

귀접 당시 맞닥뜨리는 그 얼굴은 말 그대로 환각.

몸을 허락하는 순간 빙의가 되어 착각하게 되는 것이니까.

나는 몸서리를 치며 소리쳤다.

“다, 닥쳐! 이 미친 할망구 귀신아!”

지켜보는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이 잔뜩 풍길만한 행동일지 몰라도.

지금 이 귀신이 내 몸에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은 나 역시도 언제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문턱에 서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 찝찝한 기분을 버텼다.

동시에 기에서 밀리지 않게 심호흡을 해가며 중얼거렸다.

“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오우··· 마, 마르고 닳도록··· 예쓰···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 너 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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