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도 더 된 폐 광산. 5
심박수가 빨라진다.
팔에 있는 솜털이 바늘처럼 바짝 서버렸다.
괜한 상상력에 공포감이 두 배가 돼버렸다.
시벌. 미치겠네 정말.
[ 으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연우 학생! ]
나는 잠시 뒤돌아서서 발을 동동 구르다 다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도저히 그 비명소리를 모른 채 할 수가 없었다.
“시벌! 시벌! 시벌! 제발 나를 이런 시험에 빠트리지 말라고 좀!”
투다다다닥.
울퉁불퉁한 수많은 돌들을 밟고 조금 더 깊숙한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디예요! 계속! 계속 말 좀 해주세요! 제가 구하러 갈게요!”
[ 연우 학생! 더! 조금만 더! ]
[ 그래! 거기! 조금만 더 오면 돼! ]
[ 아주 잘하고 있어! ]
- 어? 수신 끊긴다.
- 버퍼 나만 생긴 게 아니구나
- 야! 연우야 버퍼 생긴다. 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 방송 자체가 송출이 안 돼
- 폐광산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아까까지는 잘 나왔는데
- 뭐라고 말이 들리는 것 같은데
- 근데 끊겨서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림
- 그만 들어가라고 색갸!
급히 뛰어 들어가던 내가 걸음을 멈췄다.
“뭐, 뭐야 이건 또···”
귀신같이 소리가 또 멈춰버렸다.
그 대신 새로운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에 걸려 있는 낡은 줄들과 나무로 만든 의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게다가 놀이공원에서나 보던 레일이 길 끝에 매달려 있다.
그 레일 위에는 무언가를 실어 나르던 수레까지.
이제 이 앞으로는 저걸 타고 가야 되는 건가?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혀, 형님들··· 여기 아저씨들이 쉬던 마지막 휴게실 같은 곳인가 봐요.”
곧이어 수신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방송 화면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조금 깊숙이 들어온 것 같은데?
수신이 끊기는 것 보니.
“제 말 아직 잘 들리시죠 형님들? 아직은 안테나 수신이 괜찮긴 한데···”
다행인 건 안테나 수신은 살아있다.
버퍼링은 조금 생기지만, 간간이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 깔끔하게 보이진 않는데 괜찮아.
- 근데 더 들어가면 아예 꺼질 것 같은 느낌. 조심해
- 헐? 근데 여기 뭐야?
- 여긴 연우 말대로 그냥 휴게실 같은 느낌인데?
- 그럼 아까 그 소리는 더 들어가야 한단 거네
- 산 넘어 산 이네
- 괜찮은 거냐?
- 걱정 마셈. 위험한 곳이었으면 애초에 입구부터 출입은 막아놨겠지
- 아 그렇게 말하니 그러네
“그나저나 이건 무슨 용도지?”
군데군데 매달려있는 줄.
아까 쇠사슬도 그렇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들이 많다.
- 중요한 물건이나 도시락 같은 거 매달아 놓는 용도일걸? 아무래도 위치상 지하라 쥐 같은 것들이 많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아··· 정말요? 여기 따지고 보면 몇 백 미터는 지상에서 깎아내려 만든 폐 광산이라던데, 이런 지하에도 쥐 같은 게 있어요?”
[ 백년묶은광산쥐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ㅇㅇ 당연. 천 미터 이상 내려가도 쥐 많음. 도시락 까먹으러 따라옴.
[ 으아아악! 내 다리! 연우 학생! 여기! 여기라고! ]
나는 다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레일 위에 가만히 서있는 수레를 비추었다.
“어? 잠시만요 소리! 다시 들린다! 저기 수레 안쪽인데.”
사람이 대 여섯 명이나 들어갈 정도의 큰 크기.
수레 앞 부분에는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놓은 낡은 잠금장치가 있었다.
경사가 살짝 져있는 걸로 보아 잠금장치를 해제하면 앞으로 내려가게끔 되어있는 것 같았다.
[ 은하철도구로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구루마 타고 가면 10만 원 줌.
뭘 타? 이 시벌넘이?
실수로 멈춰지지 않기라도 하면 바로 지옥행 열차가 되는 건데?
나는 카메라에 대고 버럭 소리쳤다.
“은하철도 형님! 구루마가 뭡니까 구루마가! 그건 외래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우리 한국말 ‘수레’를 놔두고 구루마라뇨! 증말 너무 하시네염. 세종대왕 형님한테 이릅니다.”
- 일러라 일러라 일본놈~
- 아이고 그래요. 연우 선생니임
- 그래. 근데 맞는 말이긴 하다. 일본 말 쓰면 안 되지
- 사과 하셈
- 연우 표정 찐으로 빡쳤는데
- 괜히 미션 하나 줄려다가 후드려 맞네
- ㅋㅋ 개 웃김
- 자, 잘못했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바로 인정하시는 모습 간지 작살이십니다 형님! 우리 말을 사랑해야 합니다 형님들. 다들 아시죠?”
- 미친 새끼야 간지도 일본 말임
나는 후원창을 보고 눈을 껌뻑거리다 레일 위에 서있는 수레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중얼거렸다.
“크흠 형님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50년도 더 된 이 폐 광산에 있는 수레가 움직이기나 할까요. 또,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몰라서 제동 안 되면 지구 끝까지 가야 되는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 맞다. 어차피 이거 전력이 있어야 움직이는 거지···?”
- 네가 실수한 건 그냥 넘어가는 거냐?
- 이런 개새
- 그나저나 수레 탈 생각이 있나 본데
- 왠지 쟤가 타면 움직일 것 같기도 하다
- 없는 전기도 만들어내는 인간 뱀장어
- 레알. 이거 움직이면 너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돼
- 역시 돈미새. 결국 타는 건가? ㅋㅋ
- 근데 저거 위험하진 않아. 속도도 거의 걷는 수준이야
- ㅇㅇ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를걸
- 그런 말 해주고 후원해 주면 백 프로 탄다 저놈
- 어라? 그럼 설마 또···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모두가 내가 수레를 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 빨리! 빨리 좀! 으아아아악! 내 다리! ]
나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다급한 저 목소리에 자꾸만 휩쓸린다.
어차피 미션도 그렇고 곧 죽어도 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나 자신을 알기에.
나는 방송 화면에 시청자 수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현재 시청자 수 1237명.
“형님들. 일단 그럼 이 수레 그냥 안에 살짝 타기만 해볼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수레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경사가 없고 평평한 지형이라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였다.
나는 수레에 올라타기 전, 카메라에 대고 배를 까 뒤집었다.
거기엔 택배 박스에서 깐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실버 버튼이 둘러져 있었다.
“아 맞다 형님들. 저 방패 하나 생겼어요. 유트브 회사에서 보내준 건데요···”
- 이런 미친놈. 그거 혹시 10만 구독자 달성하면 주는 실버 버튼 아니냐?
“네 형님. 방패로 아주 기가 막히죠! 칼이 들어와도 다 튕겨낼 수 있슴다. 슈퍼 실드!”
- 도라인가?
- 10만 구독자 기념 실버 버튼을 이렇게 쓴다고?
- 너 방송하기 전에 뭐 약 맞고 그러는 거 아니지?
- 방송 전 약을 빨고 시작하는 거냐? 아니면 약 먹을 시간이 지난 거냐
- 그냥 빙의 된 거 아님?
- 남들은 실버 버튼 받고 감사하다고 눈물 질질 짜는데 이게 무엇?
- 실버는 아무것도 아니다?
- 이런 미친놈. 소중하게 보관해야 할 기념품을···
“아~?”
나는 카메라를 보며 눈만 껌뻑거리다, 잽싸게 배에서 다시 실버 버튼을 꺼내 쓰다듬은 후 고이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장 수레에 잽싸게 올라타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봤다.
하지만 역시나 전력이 없어 움직이진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고 그저 까만 먼지만 휘날렸다.
“어우. 퉤퉤! 형님들. 역시 이거 전기가 안 들어와서 안 움직이는···”
“어? 움직여!?”
전력이 들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천천히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라움 반, 신기함 반.
감정이 섞인 상태로 나는 잔뜩 긴장하며 앞을 주시했다.
정말 사람이 걷는 속도.
아니. 차라리 걷는 게 빠를 정도의 속도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 컥! 시벌. 이게 움직인다고?
- 오. 오. 재밌겠다!
- 재밌기는 ㅅㅂ 전력이 안 들어오는데 움직이고 있다고 저거!
- 상황 파악들이 안 됨 지금!?
- 야. 그거 타고 더 들어가면 진짜 수신 끊겨. 간당간당해 지금
- 미친. 저 새끼 진짜 인간문화재 등록해야 되는 거 아니냐
- 인간 뱀장어로? ㅋㅋ
- 전기를 어떻게 생성해 내는데?
- 시벌. 후원이 주 원료지 뭐
- 헐. 개 레전드네
- 그나저나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것다
나는 혹여나 사고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앞 좌석에 붙어 레일과 주변 환경을 계속 살폈다.
점점 더 좁아지는 길들.
만약 걸어서 왔다면 키가 큰 나는 한참을 허리를 숙여 이동해야 했을 길들이었다.
“와. 형님들. 은근히 스릴이 넘치긴 한데, 이거 언제까지 타야 되는 걸까요?”
헤드랜턴으로 비춰보지만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버렸다.
“뭐야? 이거 왜 또 길이 나누어져 있는 거야?”
눈앞에 길이 이번엔 네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시벌. 이 광산 도대체 얼마나 길게 만들어진 거야?
당황해서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려보지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
- 괜찮. 거기까지는 마을 사람들도 들어가 본 사람이 수두룩함. 다만···
다만?
그다음에 왜 갑자기 끊어지는데?
“부릅 형님. 부릅 형님···?”
어? 이러다 진짜 수신 끊기겠는데?
아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다.
한참을 멈춰 있다가 풀리고, 한참을 멈춰 있다가 다시 풀리고를 반복한다.
그리고 수레는 마치 정해진 길이 있다는 듯 스스로 나를 안내하고 있다.
닫혀 있던 레일이 변경되며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그렇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의 방향에 맞춰 자동으로 움직였다.
[ 여기야. 여기. 이쪽으로 ]
나는 마치 놀이기구 타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소리와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결국, 폐광산의 끝자락에 도착하게 되었다.
콰쾅!
수레는 안전하게 멈췄지만, 오랜 세월 머금고 있던 모든 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나는 조심스럽게 먼지를 뱉어내고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웁. 퉤퉤!”
일단, 문제가 하나 생겼다.
간당간당하던 수신이 끊겨 방송이 꺼져버렸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저씨들은커녕 역시나 불빛 하나 없는 암흑만 존재했다.
“······여기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지?”
그 생각을 하자마자 놀랍게도 내 옆에선 귀가 찢어질 듯,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아아악! 살려줘어어어! ]
나는 화들짝 놀라 그곳으로 헤드랜턴을 비추었다.
동시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한 남자가 다리를 붙잡고 정말 새빨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괴로운 듯 잔뜩 얼굴까지 푹 처박고 말이다.
상황 판단을 할 여유도 없이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아저씨에게 일단 다가갔다.
가방에 있는 윗옷을 꺼내 피가 덜 흐르게 심장에서부터 낮은 위치로 이동시켰고, 적당한 힘을 주어 묶었다.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리시고 저를···”
아저씨의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나는 잡고 있던 다리를 놓았다.
곧이어 말문이 틀어 막힌 채로 뒷걸음질 쳤다.
아까 사라졌던 그 아저씨였다.
정해수.
[ 결국 왔네? ]
괴로워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기쁜 표정으로 바뀌었다.
눈은 미동도 없이 나를 째려봤고, 입가는 한없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돋아 오르는 소름이 내 몸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가져온 부적을 매만지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꺼내기 위해 자세를 취했다.
물론 무서웠다.
그래도 나는 나도 모르게 꺼낸 복숭아 나뭇가지를 꽉 잡으며 맞대응하듯 버럭 소리쳤다.
"그, 그래 와, 왔다! 내가 왔다! 어쩔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