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58화 (158/225)

해외 첫 고스트헌팅. 10

나는 겨우 간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길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난잡한 땅 밑.

그곳엔 눈에 익숙한 물건들이 한 곳에 밀집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상의, 하의, 신발, 가방··· 심지어는 휴대폰까지.

뭐가 이렇게 많은 거야?

나는 그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내가 내려온 위 땅으로 시선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죄다 사람들이 저 위에서 떨어트린 물건들이라고?

‘아니면··· 어제 그 영가의 장난에 구덩이 속으로 빠질 뻔한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

괜스레 기분 나쁜 냄새도 흐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염세환을 다급하게 불렀다.

“염세환 님. 염세환 님!”

그제야 염세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정을 보니 안심이 된다.

“네. 저 괜찮아요. 그런데 이 물건들··· 다 뭘까요?”

길이 험한 이 깊은 밑 동굴까지 내려올 엄두도 못 했을걸 생각하면···

“유실물들 같아요.”

“그냥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아니고요?”

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생각도 들었다.

왠지··· 아니. 분명히 어제 봤던 그 영가가 계속해서 신경 쓰인다.

땅 밑에 가지런하게 박혀있는 물건들을 보아하니.

만약 어제 염세환님을 내가 붙잡지 않았다면, 분명 이곳에 정확하게 떨어졌을 것이다.

어딘가가 부러져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면 여기서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고.

- 헐. 뭐야? 쓰레기장이여?

- 별의별 게 다 있네

- 사람들이 여기다가 가져다 버린 것들인가?

- 에이. 굳이 산속까지 찾아와서 여기다가 쓰레기를 버린다고?

- 쓰레기가 한곳에 모여있는데?

- 애초에 땅이 무너지기 전에는 이런 공간이 있는지도 몰랐어

- 그러네. 그럼 뭐지 도대체?

- 연우야. 그거 뭐냐? 쓰레기 아니지? 확인 좀 시켜줘 봐.

찝찝함이 잔뜩 몰려온다.

시벌. 굳이 저걸 확인해야 해?

이곳은 사망한 채 발견되는 시신이 1년에 365구.

즉, 하루에 한 번꼴로 사람이 죽는 곳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저걸 들추면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심각하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형님들··· 저거 절대 일반 쓰레기가 아닌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어제 그 영가에게 홀려서 사고 당하신 분들의 유실물 일수도···”

내 말이 우스웠는지, 염세환이 돌발행동이 시작되었다.

그 물건들을 일일이 다 들춰보기 시작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귀신같은 건 없다니까요. 보세요. 그냥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일 거라고요.”

“아니. 그런 거 함부로 건드리면 안···”

하지만, 이미 염세환은 물건들이 묻힌 그 땅을 일일이 파헤치고 있었다.

시벌. 저러다가 오늘 또 일내겠네···

하여튼간 오늘은 사고 치면 절대 그냥 안 넘어갈 거다.

조금만 더 오버하면 머리끄덩이를 잡고서라도 끌고 올라갈 거라고.

바스슥. 바스스슥.

그렇게 낙엽이 밟히는 소리와 함께 묻혀있던 물건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내 말이 씨가 되었을까.

“으아아악! 뭐야 이게!”

단 1분도 되지 않아, 무언가를 들추던 염세환이 기겁하며 손을 뗐다.

비닐 재질로 보이는 것이었는데, 아직 땅에서 채 꺼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 이 사람은 쓸데없이 의욕만 넘치는구나.

- 오늘 사고 치면 백퍼 나락이여.

- 근데 저게 뭐지?

- 판초우의 인가?

- 아닌데. 더 큰 것 같은데

- 뭐야 근데 왜 쓸데없이 놀람?

- 뭐 다른 거라도 본 거 같은데? 뭐야?

- 연우야. ㅅㅂ 카메라 제대로 비춰 봐!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카메라를 비추었다.

그제야 염세환이 소리를 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들추다 만 그 비닐 재질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인상을 팍 찡그리며 내가 소리쳤다.

“으으으으! 시벌! 뭐야 이 벌레들!”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벌레들.

설마 저 밑에 뭐 있는 거 아니지···?

나는 예상되는 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염세환을 보고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여, 염세환님. 그만하고 올라가서 고스트 박스로 대화나 시도해 보죠. 여긴 좀 아닌 것 같아요.”

비닐에서 잠시 물러섰던 염세환이 다시 다가와 얘기했다.

“잠깐만요. 이게 귀신 짓이 아니라는 건 확인 시켜드려야죠.”

그리고 다시 그 물건을 줄다리기하듯 끌어냈다.

그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텐트였다.

“어? 이거 텐트 같은데요?”

“···텐트요?”

묻혀있던 비닐을 모두 꺼내자 1인용으로 보이는 작은 텐트가 드러났다.

꺼내자마자 머금고 있던 축축한 물들을 뚝뚝 흘려대는 텐트.

미간이 잔뜩 찌푸려짐과 동시에 궁금증이 생겼다.

“텐트가 왜 여기 있지? 이 바닥에?”

곧이어 텐트 안까지 거침없이 확인하려는 염세환.

나는 다급하게 그를 뜯어말렸다.

“자, 잠깐! 그렇게 함부로 만지지 마요! 좀!”

그런 나를 비웃듯, 손바닥까지 내밀며 괜찮다고 사인을 준다.

아니. 내가 안 괜찮다고 시벌!

-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30분당 십만 원.

순간, 내 입이 바늘로 꿰맨 듯 조용해졌다.

이런 시벌···

- 역시 돈미새는 돈으로 봉쇄.

- ㅋㅋ 반응속도가 금빛 섬광 그 자체.

- 말하고 싶어 죽겠나 봐. 입 오물오물거리는 거 봐

- ㅅㅂ 열받지. ㅋㅋ 자꾸 하지 말라는 거 하는데

- 그 덕분에 우리는 꿀잼임

- 우리 큰 손 형님 화이띵!

- ㅋㅋ 연우는 백업할 준비나 해라

결국, 염세환은 날 보며 씩 웃더니, 텐트 지퍼를 열어젖혔다.

지이이이익-

으··· 시벌!

염세환은 텐트 지퍼를 열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이게?”

뒤에 바짝 붙어있던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잽싸게 EMF 측정기를 꺼내들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1단계와 2단계를 왔다 갔다 거리는 수치.

“왜, 왜요? 뭐가 있어요?”

염세환이 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엥? 뭐야? 웬 봉투가 있는데요?”

뭐야? 봉투?

순간, 머리가 빠르게 회전되었다.

세계에서 유명한 자살의 숲, 옷가지들, 휴대폰, 게다가 텐트 안에는 봉투?

저거 설마 유서 아냐?

- 봉투···?

- 아우. 왜 갑자기 소름이 끼치지?

- 여기 왠지 사람 죽은 곳 같아

- 이 옷들이랑 물건들 그냥 버린 게 아닌 것 같다고

- 나도 그 생각 했음. 애초에 사람이 내려오기 힘든 곳이야

- 저 봉투에 유서 들어있으면 백퍼네

- 아 시벌. 존나 무서워서 방에 불 켰다

- 난 기저귀 차고 옴

“그거 안에 확인 가능해요?”

염세환은 내 말을 듣자마자 봉투 안을 들여다보았고.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쳤다.

[ 空さえ私を捨てた。 誰も私の言うことを聞き入れない。僕忠義。死んでも君たちを許さない。絶対に。 私が幽霊になってあなたたちに会いに行くつもりだ。]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염세환이 나에게 다가와 편지를 들이밀었다.

일본 말이라 눈으로는 바로 해석할 수 없었지만, 방법은 있었다.

“잠깐만요. 이 번역어플. 카메라 기능도 있어요. 찍으면 무슨 말인지 해석될 거예요.”

일일이 글자 한 부분씩을 조심스럽게 번역해 갖다 붙인 다음.

천천히 나열해 읽기 시작했다.

“하늘마저 날 버렸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나 타다요시. 죽어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절대로. 내가 귀신이 되어 너희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번역한 편지를 다 읽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누군가가 내 등골에 얼음 물이라도 끼얹은 듯, 잔뜩 몸이 굳어 염세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다급하게 염세환에게 얘기했다.

“여, 염세환 님. 일단 여, 여기를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요.”

이 편지의 주인공이 누군지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어제 염세환의 다리를 붙잡고 죽자 살자 매달렸던 그 귀신.

분명 그놈일 것 같았다.

- 시발. 미쳤네. 편지 내용 무엇?

- 자살한 사람 유서 맞음?

- 정신이상자 같은데

- 아니면 저번에 그 악마 숭배자 같은 사람이던가

- 뭔 유서에 저런 내용을 쓰냐. 괜히 소름 끼치네

- 으··· 시발.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존나 무섭네

- ㅅㅂ 나도 조마조마하다.

이곳에 내려오느라 잠시 넣어뒀던 고스트 박스가 또 멋대로 켜졌다.

그것도 모자라 음성까지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 치지지이익- また来た 치지지익- 今日は 치지지이익-

絶対殺す。 ]

“워어어어! 시벌! 뭐야?”

곧이어 어제와 같이 보조폰의 번역기도 멋대로 켜졌다.

[ 또 왔네. 오늘은. 무조건죽인다. ]

음성을 들은 우리 둘의 몸은 얼음이 돼버렸다.

땅에 발이 박힌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 오빠아아아! 정신 차려요!

임아린의 후원창에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을 번쩍 차린 내가 염세환의 팔을 잡아끌었다.

“워어어! 시벌! 빨리. 빨리 가요. 염세환 님!”

염세환이 팔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떨쳐냈다.

아니. 질퍽질퍽한 땅바닥에 미끄러져 자빠져 버렸다.

그런 염세환이 빠진 발을 손으로 빼내려 애쓴다.

“아이씨! 땅바닥이 갑자기 왜 이렇게 미끄러워!”

- 하여튼 간 이 사람 이거 굉장히 진상이네

- 어휴. 여기 블랙리스트 추가요

- 아니. 그 발 조금 빠진 것 그걸 못 나오나?

- 얼굴은 잘생겼는데 운동신경은 완전히 제로구만

- 여자한테 인기 없을 스타일이라니까

- 빨리 겨 나와! 고스트 박스로 헌팅이나 좀 하게!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 정도로 깊숙이 빠진 것 같지 않은데, 왜 저걸 못 빼는 거야?

마치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내 기억에 어제 상황이 스쳤다.

곧이어 살며시 주머니에 있는 무구 방울을 쥐었다.

내 온몸에는 두드러기처럼 닭살이 순식간에 돋아 올랐다.

충격적인 장면이 내 눈앞에 포착된 것이다.

“시, 시발··· 도대체 이게 뭐야···”

질퍽질퍽한 땅 위에 덮혀져 있던 낙엽 사이로 수많은 손이 꼼지락거린다.

새하얗게 질려 핏기 없는 싸늘한 손들.

그 손들이 염세환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연우 씨.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줘요!”

하지만, 나는 벙찐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곳··· 사람들이 죽어나간 곳이었던 거야···?

그런 곳에 우리가 지금···

안간힘을 다해 다리를 빼내려 애쓰던 염세환이 그런 내 표정을 읽었다.

그리고 눈치챘는지, 중얼거렸다.

“뭐, 뭐예요 또? 장난치지 마세요. 그, 그런 거 안 속으니까.”

마른 침만 절로 넘어가는 상황.

이 순간만큼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의미 있었다.

나는 그런 염세환의 손에 무구 방울을 건네 쥐게 만들었다.

“와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넋이 나간 표정을 한 염세환이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 시발! 연우 씨! 이거 이거 도대체 뭐예요!”

가쁜 숨을 내쉬는 염세환의 입에선 경악스럽게도 하얀 입김이 서려 나오고 있었다.

- 뭐야? 뭘 보고 놀란 거야?

- 연우는 왜 갑자기 벙찐 표정이야

- 어라. 이거 귀신 봤을 때 표정인데

- 뭐라도 본 건가? 설마 어제 봤다던 그 귀신?

- 어? ㅅㅂ 염세환 입에서 입김 나온다

- 와. 시벌 뭐야? 아깐 안 나왔잖아

- 염세환 또 상태가 안 좋은데

- 어제 꼴 나는 거 아니냐 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다간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나는 곧장 촉수처럼 깔린 나무뿌리들과 빽빽한 우릴 감싸고 있는 나무들을 살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염세환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사방에 팔을 휘젓고 있느라 도저히 팔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염세환의 등 뒤로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무언가가 천천히 시야에 들어왔다.

매달린 다리가 기이하게 찢어져 엿가락처럼 늘어난다.

곧 염세환의 머리를 땅 밑으로 짓누르기 위해 천천히 몸을 포개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머릿카락을 붙잡고 사정없이 당겨버렸다.

“으아아아악! 씹! 연우 씨! 머리는 안 돼! 머리는 안 된다고!”

자칫하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나는 괴성을 질러대며 더욱더 힘을 가했다.

“이런 시벌! 죽으냐 사냐 하는 마당에 머릿카락 몇가닥이 대숩니까아아아아!”

찌걱.

염세환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분리되었다.

놀란 마음에 내 손이 잡힌 그 무언가를 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우아아악! 시벌 이게 뭐야!”

나는 내 손이 잡힌 그 무언가를 보며 정신을 잃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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