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첫 고스트헌팅. 12
그 험한 길을 성인 남자를 업은 채로 겨우겨우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체력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꾸 나를 붙잡는 것 같았다.
“시, 시벌! 놔! 이거 놔! 이 미친 귀신 색갸아아아아!”
미션금도 받았다.
염세환이 귀신을 보고 놀라는 장면도 카메라에 담았다.
올라만 가면 돼.
그럼 달려서라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어!
쏴아아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벌. 하필 이럴 때···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나 세게 내리는지 미끄러워서 제대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염세환 님! 좀 일어 놔봐요! 미치겠네 정말···”
경악스러운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 저게 뭐야 시벌!”
방금 전까지 밟고 있었던 맨 밑 땅.
상의, 하의, 옷가지들 사이로 드러난 그것은 분명 해골이었다.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앙상한 뼈말이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장대비가 계속 이어지자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한곳을 주시했다.
- ㅅㅂ 뭐야 저거?
- 헉! 시체 아니냐 저거?
- 레알인데···? 죽은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 옆에 뼈 같은 것도 보인다
- 왁! 시발! 존나 소름 돋네 뭔데!
- 여태까지 연우랑 염세환이 시체 위 땅을 밟고 있었던 거야···
- 그럼 둘이 진짜 귀신을 봤다는 거네
- 그러니까 저렇게 기겁을 하면서 도망을 치지!
- 야 저거 신고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냐
- 일본인데 어떻게 신고를?
우연이었을까.
흙 속에 단단히 묻혀있던 시체가 목이 꺾인 채로 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시벌··· 그래. 염세환 뒤에 매달려있던 그 귀신, 그 귀신이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렀다.
여긴 산 무덤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 사람 여럿이 죽어나간 곳인 것 같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른 소름을 느끼며, 나는 괴성을 질러댔다.
“와아아아아아악! 시버어어얼! 사람 살려어어어어!”
그리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땅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벅! 처벅!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내 등 뒤 염세환은 이런 상황을 인지 못한 채.
흰자를 뒤집고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를 내뱉는다.
“끄윽. 끄으으으··· 자, 잘못했습니다아아. 제가 잘못했습니다아아.”
제대로 걸쳐지지 않은 가발이 장대비를 모두 머금었다.
가발은 점점 흘러내려 괴상한 몰골이 되었다.
나는 맨 밑 땅에 있는 시체를 경계하듯 힐끗 쳐다보다 등 뒤 염세환의 몰골을 마주했다.
“와아악! 이제 좀 일어나세요! 염세환 님 시벌!”
- ㅋㅋ ㅅㅂ 낙지 귀신?
- 연우 얼굴보고 찐으로 놀란 것 같은데
- 그런데 갑자기 비 무엇?
- 와. 진짜 살벌하게 내린다.
- 근데 신기하게도 카메라는 하나도 안 젖네
- 연우가 그 와중에도 몸으로 카메라 안 맞게 가리고 있음
- 장대비를 가린다고? 미쳤다
- 천재적인 감을 타고난 방송인이다
무언가에 쫓길 때는 항상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나는 올라가는 동안 뒤 한번 쳐다보지 않고, 집중했다.
이것도 속옷에 숨겨둔 부적의 효과 때문이었을까.
염세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해도 무의식에 자석처럼 내 몸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 도중.
손이 몇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다시 잽싸게 손을 짚어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 미쳤다. 너 등반했었냐? ㅅㅂ 성인 남자 업고 올라가는 속도 무엇
후원창이 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나는 전속력을 다해 위 땅으로 올라갔다.
결국, 나는 위 땅을 밟았다.
낭떠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염세환을 내려놓고.
두 무릎에 손을 기댄 다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커헉! 헉··· 헉··· 시벌. 힘들어서 내가 귀신 되겠네···”
- 와 미친 색기 진짜···
- 70킬로는 돼 보이는 데 그걸 진짜 업고 올라온 거야?
- 커헉! 혼자 내려갈 때 10분. 사람 업고 올라올 때는 7분···?
- 시벌. 뭔가 한참 거꾸로 된 느낌 아니냐
- 저거 사람 맞아?
- 아냐. 쟤가 귀신같아 시벌
- ㅅㅂ 등산 에이스
- 앞으로 놀랄 일이 얼마나 남은 걸까.
- 진짜 나 온몸에 소름이 안 내려간다.
- 야 근데 앞에 뭐야?
허리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내 시야에 사람의 다리가 눈에 띄었다.
흙이 잔뜩 묻은 남성의 다리 같았는데, 비이상적이게도 한 쪽 다리가 심하게 꺾여있었다.
사고가 정지된 듯, 천천히 굽혔던 허리를 펴는데···
“와아아아아악! 시바아아알!”
내 앞엔 저 밑에서 장대비를 맞아 드러났던 시체가 버젓이 서있었다.
나는 기겁하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질렀다.
“시, 시발! 너 누구야! 도대체 우리한테 왜 그래!”
곧이어 얼굴을 마주했다.
뼈가 부러진 듯, 기이하게 꺾여있는 얼굴.
여기에 올라오기 전, 땅에 묻혀있던 그 얼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사람이 아니야.
분명 귀신이다.
[ 殺すぞ. 殺すぞ. 殺すぞ. ]
[ 죽일거야. 죽일거야. 죽일거야. ]
빠드드득. 빠드드득.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그 남자를 보며 기겁하듯, 손사래를 쳤다.
“도대체 나를 왜 죽이냐고! 아니. 한국말이라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
나는 다급한 마음에 아는 일본 단어를 막 내뱉었다.
“야, 야메떼! 야메떼 시벌!”
- 이 새끼 왜 이래?
- 갑자기 야메떼 타령?
- 뭘 보고 그러는 거야?
- 앞에 귀신이라도 보인 건가?
- 아니. 님들 방금 앞에 다리 보이지 않았음?
- 나도 봤던 것 같은데 잘못 봤나?
- ㅇㅇ 잘못 본 거임
장대비가 의해 내 눈앞은 자꾸 가려졌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내 앞에 그 시체에는 단, 물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악! 씨발! 뭐야 내 눈이! 내 눈이 안 보인다! 살려주세요 연우 씨!”
괴성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가발이 물을 잔뜩 머금어 이미 염세환의 눈을 덮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크게 소리쳤다.
“가발! 가발을 뒤집어요 시벌!”
그 소리를 들은 염세환이 재빨리 가발을 뒤집어 머리에 제대로 부착시켰다.
똑딱.
- ㅅㅂ 똑딱 소리 미치겠넼ㅋㅋㅋㅋ
- 가발은 저렇게 부착 시키는 거임?
- 아. 심각한 상황인데 얼굴 땜에 웃음이 나오네 자꾸
- 채널명 바꿔야 할 듯. 낙지 연구가로
- 악마 그만 연구하셈 이제. 남은 머리 보존합시다
- 아마 이 계기로 연우를 찬양하지 않을까 싶은데
- ㅇㅈ. 지금 소녀스럽게 연우 팔 잡고 있는 것만 봐도 답 나옴
다시 앞을 돌아봤을 땐.
그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어디 갔어?”
여유를 느낄새가 없었다.
나는 염세환과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빠, 빨리! 빨리 이곳을 나갑시다. 얼른요!”
“네, 네 형! 아니. 연우 씨.”
귀신을 목격하더니 행동이 달라진 염세환이 번개같이 일어나 나를 따르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췄다.
나는 일단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흰 천을 찾기 시작했다.
“흰 천, 흰 천. 어딨냐아아아! 시벌!”
이곳을 오기 전,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해 묶어두었던 흰 천.
하지만, 어쩐일 인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묶어두었던 그 흰 천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있어야 할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 야 뭐야?
- 흰 천 묶어 놓은 것들 다 어디 갔어?
- 헐? 그러네. 다 없어졌네. 뭐지?
- 비 때문에 묶어놓은 게 풀렸나?
- ㄴㄴ 밑바닥에도 아예 안 보이잖아.
- 비 뭐야 오늘 진짜
- 진짜 개 레전드네
- 이거 사고 아니야? 경찰이라도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
우린 분명 단순하게 거의 직선으로만 길을 걸어왔다.
절대 기억하기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촉수처럼 뻗은 나무뿌리들은 이상하게도 점점 더 우리를 옥죄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옆에 있던 염세환은 겁에 질려 내게 중얼거렸다.
“여, 연우 씨. 여기 이상해요. 우린 분명 길을 나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더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 같은데···”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곳을 주시했다.
그 말이 맞았다.
귀신한테 홀리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 끝에는 아까 봤던 그 시체가 버젓이 서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이제는 미친 듯이 입을 찢어 웃으면서 말이다.
“염세환 님. 아무래도 저희가 귀신한테 홀린 것 같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여기서 무너지면 정말 죽습니다.”
그 말에 평소라면 귀신이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을 염세환이 날 빤히 바라봤다.
곧이어 나보다 나이가 한참 더 많은 염세환은 아이처럼 울먹이며 내게 얘기했다.
“지, 집에 혼자 저를 기다리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저는 꼭 살아야 해요. 제발 저만이라도 살려주세요.”
이런 시벌놈이···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그럼 나는 집에 아무도 없냐고!
- 가지가지 하네.
- 악마 연구한다는 그 사람 맞음?
- ㄴㄴ 아까 낙지 연구가로 갈아탐
- 조회 수 백만 넘게 나오는 유트버도 연우 만나니까 저렇게 변하네
- 이제 앞으로 악마 연구 안 하고 가발 홍보할 듯.
- 빙의된 거 끌어올려놨더니 자기만이라도 살려달라는 거 실화?
- ㅅㅂ 그 부적 선녀보살님이 한 달 고생해서 연우 준거라고!
- 연우야. 걍 버리고 너 혼자 런해라.
- 쓰레기네 저거.
- 낙지 인생 여기서 끝이다.
내가 낮은 목소리로 앞에 있던 그 시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둘 다 삽니다. 조금만 버텨봐요 우리! 만약을 대비해서 제가 어제 미리 조치를 취해뒀으니 금방 해결될 겁니다.”
- 오빠! 거기 경찰 도착했대요! 경찰이 찾을 수 있게 소리 좀 질러달래요! 빨리! 엉엉!
나는 울리는 후원창에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요오오오오! 여기 사람 있습니다아아아! 아 시벌. 일본말로 해야되나!”
나는 다급한 마음에 번역기를 쓸 생각도 못하고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일단 아는 단어로만.
“스미마세에에엥! 야메떼!!! 스고이! 기모찌이이이!”
[ 전이만갑오개혁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ㅡ..ㅡ;;;;;;;
- 저 미친놈이···
- 한국 망신 다 시키고 앉았네
- 이 영상을 계기로 연우의 취향을 잘 알았다
- 그냥 일본 자체를 사랑했었네
정말 놀랍게도 저 멀리서는 우리 눈에 반사되는 하얀 빛의 랜턴과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そこに誰かいますか! 返事してください!”
[ 거기 누구 있나요! 대답 좀 해주세요! ]
염세환과 나는 남은 힘을 다해 그곳으로 소리쳤다.
“헤이이이이! 여기 여기! 여기 사람 있어요! 스미마세에에에엥!”
“스미마셍! 스미마셍! 살려주세에에에엥!”
- ㅅㅂ 그놈의 스미마셍은
- ㅋㅋ 미친 염세환 살려주셍 뭔데
- 아니. 낙지 저 양반은 일본에 그래도 좀 있었던 거 아니냐
- 그런데 일본 말을 왜캐 못해
- 악마 연구에 몰두해서 그럼
그렇게 우린 극적인 상황에 일본 현지 경찰들과 만났다.
“大丈夫ですか?”
[ 괜찮으십니까? ]
안도의 한숨이 절로나온다.
곧이어 우리를 차로 안내하려는 데.
내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경찰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번역기를 내밀었다.
“ちょっと待ってください。私たちが驚くべきことを発見しました。 どうやらあの下に死体があるようです。”
[ 잠깐만요. 저희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밑에 시체들이 있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