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71화 (171/225)

귀신 마을. 8

투두두두둑.

엘보우 한방에 그 두꺼운 항아리가 아작이 나버렸다.

한쪽 면이 무너지면서 무거웠던 뚜껑도 함께 옆으로 쏟아졌는데.

뚜껑 위에 얹어놓았던 것이 뭔지 볼 수 있었다.

40kg 덤벨?

게다가 덤벨을 안고 있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잉? 할아버지 왜 쓰러져 계세···”

- 방금 할아버지 개새라고···

- 그 와중에 할아버지 운동하시나 보네

- 40kg 덤벨은 일반인이 들기 힘든데

- ㅅㅂ 그나저나 언제 봐도 놀랍다.

- 저놈. 갇혀서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여준 건 백퍼 연기였어

-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항아리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냐

- 항아리가 약한 건가?

- 옘병. 저놈이 센 거지.

- 그치. 역시 괴물이라니깐.

-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임.

- 인정.

설마 덤벨을 들고 그 위에 같이 앉아 있었던 거야?

나를 못 빠져나오게 하려고?

그게 될 리가 없잖아!

아니.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라지만.

나를 정말 죽이려 했다는 것에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는 괘씸함과 답답함이 가슴 깊이 치솟아 올랐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뱀 새끼를 잡아들고, 할아버지에게 역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일단, 어른 공경을 위해 미리 고개를 꾸벅 숙였고.

“할아버지! 죄송한데,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 정신 좀 차리세요! 뱀 신이라는 건 애초에 사람한테 이로운 신이 아닙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할아버지는 사고가 정지된 듯, 몸이 굳은 채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이 뱀 새끼들! 얘네들이 어떻게 사람을 먹습니까! 조그마한 강아지도 못 삼키겠구만!”

이렇게 자신 있게 주장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론 뜨끔했다.

물론, 아까 봤던 그 뱀 여자는 달랐을 거야···

“집 앞에 고라니 가져다 놓으신 건 할아버지가 하신거죠? 술병에 든 신선하다는 피도 그 고라니 사체에서 빼신 거잖아요?”

- 갑자기 코난 빙의?

- 그치? 맞지? 귀신은 뭔 귀신이여 이색갸

- 누군가가 갖다 놓은 거라고 말했잖아!

- 근데 저 할아버지 닌자 출신이냐?

- 소리 소문도 없이 그 고라니를 들쳐 업어서 치웠다는 거잖아

- 아니. 저 나이에 40kg 덤벨 드는거 보면 모르겠음?

- 괴물임. 물론, 연우에 비해서는 새 발의 피지만

- 근데 할아버지 항아리 깨져서 멘붕 온 거 같은데

시청자 말대로 할아버지는 정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일관했다.

깨진 항아리 앞에 무릎까지 꿇고서는 뱀 새끼들을 어루만지다,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빌기 시작했다.

“아이고오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상태가 아주 완벽하게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이미 도를 지나칠 만큼 멀어져 말로는 설득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 장비를 다 챙기고서는 그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할아버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곧장 서둘러 사당에서 빠져나왔다.

힐끗힐끗 뒤돌아 본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는 공포가 잔뜩 보였다.

뱀 동상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내가 마을 입구까지 멀어지자 통곡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악! 제발! 제발!”

분명 서둘러 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더 빠르게 내딛게 된다.

사람만 직접적으로 공격을 안 했을 뿐이지. 마치 할아버지의 상태가 빙의와 흡사했다.

더 있었으면 분명 격해진 상황이 생겼을 거야.

“어우. 여기는 다시는 못 오겠네요 형님들.”

그렇게 마을 입구를 지나 내가 걸어왔던 도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오늘 일을 되새기며 시청자들과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서운함에 시청자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나저나 형님들. 할아버지가 제물로써 저를 바친다는 데 어떻게 뱀이 득실대는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란 소리를 하실 수가 있습니까. 진짜 실망입니다.”

- 백만 원 후원받고 번개처럼 겨들어간 건 너 아님?

- 그래. 우린 선택권을 줬을 뿐이야

- 그리고 애초에 위험해 보이는 건 우리도 안 시킨다.

- 누구보다 너를 잘 알고 있는 게 우리라고

- 그런데 우리를 의심한다고?

- 우리야말로 실망이다. 우리를 나쁜 놈으로 몰아가다니

- 내 눈물 젖은 후원금···

“그래도 형님들. 두 번째 방문한 집에서는 뱀처럼 입이 찢어지는 귀신 보고 저 숨도 못 쉬었다니깐요!”

- ㅅㅂ 우리 눈에는 그게 보이질 않으니까 답답하다고! 남잔지 여잔지, 옷은 입었는지 벗었는지. 궁금하다니깐!

이렇게 말하니 납득이 간다.

하긴··· 남들보다 공포를 배로 느끼는 나니까 이 상황이 급박했지.

저 사람들에게는 그저 카메라 앞에서 혼자 생쇼 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래도 시벌. 진짜 귀신이 있었는데···

- 그리고 애초에 뱀을 무서워했으면 그 항아리에 들어가라고도 안 했지. 너 아까 도로에서 뱀 보고 어떻게 했어? 그냥 잡아서 던졌지?

- 그거 우리나라에서 제일 독이 강한 뱀이라고 ㅅㅂ···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네가 그런 말을?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카메라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근데 형님들. 뱀은 진짜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냥 귀여운 인형 같지 않아요?”

- 옘병. 이러니까 내가 빡도는거여!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얘기했다.

“흠··· 제가 잠깐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형님들 우리 화해할까요?”

- ㅅㅂ 나 삐쳤어 건들지 마

- 나도 옘병

- 우리 삐지면 오래간다.

- 너 이제부터 후원 없어. 손가락이나 빨어라

- 근데 우리 후원이 연우한테 영향이 있을까?

- 우리 한 달 후원하는 금액 큰 형님 하루면 되는데

- ㅇㅇ 큰 형님 한 명만 있어도 됨.

- 그럼 우리 필요 없겠네. 나쁜 놈에다가 후원도 덜 하니까

- 얘들아 짐 챙겨라. 딴 방송 가게

- 오랜만에 둘리 주작 방송이나 한번 찾아볼까

“에이··· 무슨 그런 말씀 하세요. 저는 여기 있는 모든 형님들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 미친 할아버지 때문에 고생했다야.

순간, 도로를 걷다 말고 카메라를 몸에서 떼내어 정면에 세웠다.

내가 잘 비치게끔 곧게 서서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하이고오오오. 우리 마라탕 형님께서 백만 원으으으으을! 역시 우리 마라탕 형님 밖에 없습니다아아아! 뱀 마을이고 곰 마을이고 미션만 주신다면 이 연우!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 시부랄놈. 1초 만에 구라 들통남

나는 잽싸게 다시 가슴에 카메라를 달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까치 살무사를 만나 숲에 던졌던 그곳에 도착했다.

아까 그 까치 살무사는 숲속으로 잘 돌아간 거겠지?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다른 생각에 나는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근데 형님들. 아무리 미신이라지만 뱀한테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 그냥 아주 옛날 어느 마을에서 정신 나간 사람들끼리 한 짓임. 애초에 우리나라 뱀은 사람을 삼킬만한 뱀이 없다.

- 인정. 여기가 무슨 아마존이냐

- 아마존의 아나콘다도 사람들 죽이는 일이 흔치 않다고 하든데 뭐

- 독 없는 애들은 의외로 겁이 많음

- 맞아. 사람 보면 지들이 알아서 피한다던데

- ㅇㅇ 독 있는 애들만 독 있다고 깝죽거리는 거지

- 우린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까 미션 준거야 연우야.

- 다시 한번 우리의 위대함을 되새겨라.

- 그리고 나 아직 삐진 거 안 풀었다.

입술을 깨문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좀 있다가 열심히 연습한 흑인소울 보여드릴게요.”

- 그건 하지 마.

내 입이 순간, 삐죽거렸다.

곧이어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 내가 중얼거렸다.

“스읍. 그럼 내가 봤던 그 뱀 여자도 환각이었던 건가···”

아주 한적하고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도로 끝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비친다.

처음엔 야생동물인 줄 알았는데,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또다시 내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으니까.

발목까지 오는 하얀 소복.

긴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채로 천천히 내 쪽으로 향해 오는 그것은 여자였다.

바로 두 번째 집에서 봤던 그 여자.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몸의 크기가 심상치 않다.

마치 큰 짐승이라도 잡아먹은 듯 배가 잔뜩 불러져 있었다.

“시벌··· 혀, 형님들. 저기··· 혹시 보이시···”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100kg는 더 돼보이는 기괴한 몸을 하고서도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짐승의 속도와 같았다.

상채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일절 움직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걸음은 뛰는 것과 같았다.

- 뭐? 어디? 제대로 비춰봐

나는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서버렸다.

스스스스슷···

걸을 때마다 마치 도로에 몸이 비벼지는 괴상한 소리가 난다.

100m의 거리에서 내 앞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4초 즈음.

내가 서있는 그곳에 도착한 여자는 그제야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내 옆을 아무 표정 없이 입을 닫은 채 다가온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난 여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이목구비가 정확하게 보인다.

눈은 실눈처럼 세로로 얇게 찢어져 있었고,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게다가 입 사이에는 도대체 뭘 먹은건지, 진물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뚝뚝 넘쳐 흘러내렸다.

아니. 낯익은 머리카락이 입에 물려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

나는 애써 몸에 소지한 부적을 매만지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가라··· 그냥 가라···

1분 1초가 십 년 같아지는 순간이다.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박수를 낮추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여자는 내 옆을 지나칠 때, 얼굴을 살며시 들어 내 눈을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 방금 사람 아니야?

- 미친! 흰 소복 입은 여자였어!

- 그 마을 냇가에서 홍두깨 두들기고 있던 여자 말야!

- 아니. 저 마을은 그냥 미친 사람만 살고 있는 거 아니냐

- 뱀 신을 맹신하는 늙은 백발 할아버지에 하얀 소복 입은 미친 여자

- 우리 눈에 보이는 거 보니까 사람이 맞긴 한 것 같은데

- 그치 연우야? 맞아 아니야! 얘기 좀 해봐 봐!

- 왜 이래? 얘 왜 또 돌하루방이 돼버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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