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4
버려진 폐 사찰.
흐릿한 안갯속 시야 사이로 자잘한 크기의 건물이 여럿 보인다.
그중 유독 덩그러니 놓인 정면의 건물 한 채가 내 시야를 사로잡았다.
건축물 지붕 밑 중간 부분에는 커다란 한자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저긴가?
부처님을 모셨던 곳이.
“하··· 선녀보살님. 하필이면 폐 사찰을···”
- 헐. 폐 사찰이네.
- 사찰이면 이해가 되지.
- 여기도 한 기운 하는 사람들이 기운을 다스리는 곳이잖냐.
- 와. 분위기 끝장 난다
- 폐 사찰이라고 해서 그런가. 왠지 공포스럽다···
- 방송으로 봐도 그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
- 근데 여기는 왜 버려진 거지?
그런데 말해놓고도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든다.
왜일까.
기분 탓인지 몰라도 좋지 않은 기운으로 가득한 것만 같다.
선녀보살님의 신당처럼 웅장하고 무거운 느낌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서늘한 한기만 서려있는 느낌이랄까.
그 건물 하나에서 전해지는 분위기만 봐도 실로 어마어마했다.
어찌나 찝찝한 공기와 냄새가 풍겨져 오는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온몸에 돋아 오르는 소름을 쓸어내리며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근데 형님들··· 여기 냄새도 그렇고 뭔가 좀 이상해요.”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왜? 뭐가 이상한데?
띵동.
[ 모르는개산책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근데 순돌이는 어디 갔냐?
순간, 나는 멈칫거렸다.
폐 사찰에 시선을 뺏겨 깜빡 잊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며 순돌이를 찾았다.
“아 맞다! 순돌아. 순돌아?”
하지만, 고요한 정적만 흐를 뿐.
돌아오는 짖음이나 발자국 소리는 없었다.
“뭐야? 얘는 어디 간거야? 아까 분명 여기 있던 남자가 불러서 튀어 올라온 것 같은데.”
바닥에는 그 흔한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질 않았다.
나는 감쪽같이 사라진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진짜 사람을 봤다고? 농담 아니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정말이라니깐요.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보셨어요 형님들?”
- 응. 매일
- 거짓말이 뭐 습관이지 이젠
- 근데 진짜 나도 안갯속으로 희미하게 뭔가 보이는 것 같았는데
- 아니야. 나는 진짜 사람 서있는 거 봤어
- 남자인데, 키가 좀 작았던 것 같아
- 아니. 그럼 그 남자가 어디 갔냐고.
- 땅굴 파서 드간 것도 아니고, 하늘로 날았을 리도 없고.
- 달리기로 도망쳤으면 연우보다 더 빠르다는 건데
- 그게 사람임?
- 귀신일 가능성 99%
- 1%는 우사인볼트가 한국방문했을 가능성을 생각.
근데, 아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 남자의 얼굴.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이상하게 찝찝한 마음만 한구석에 남는다.
나는 일단 서둘러 순돌이와 그 남자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찾으면 답이 나오겠지.
“순돌아. 순돌아! 저기요? 아까 여기 계셨던 분 어디 가셨나요! 벌써 귀신 된 거 아니죠?”
나와 눈이 마주친지 불과 3분도 안 지났다.
게다가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보인 건 텅텅 비어있는 폐 사찰과 조그만 크기의 창고들.
어디론가 숨었다고 보기에도 분명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개라도 흔적을 보여야 정상인데.
그럼에도 폐 사찰 주위에는 그 누구의 인기척도 없었다.
그저 스산한 분위기만 잔뜩 뿜어낼 뿐이었다.
“도대체 뭐지? 진짜 사람이었는데···”
그때.
띵동.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냥 제쳐! 때 되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일단 우리 방송하자.
한참을 미간을 찌푸리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형님들. EMF 측정부터 한번 해볼게요.”
여느 때와 같이 나는 EMF 측정기부터 꺼내들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살이 살며시 떨려온다.
그런데 과연 EMF 측정기는 얼마나 반응할까.
탁!
“제발··· 오늘만큼은 제발···”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내 기도와는 다르게, 기대 이상. 아니 정 반대의 반응을 보여준다.
가던 걸음까지 멈춘 나는 EMF 측정기의 반응을 보며 반사적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하··· 시벌. 이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센데···”
법당은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3단계를 반응하고 있다.
- 와. 이거 뭔가 느낌이 좋은데
- 대박이네. 법당이랑 거진 20m는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 아니, 이거 주위에 영가가 있는 거 아니냐
- 선녀보살이 여기 수많은 영가가 있다고 그랬잖아.
- 귀신이 살기 좋은 환경이긴 하네
- 버려진 데다 기운 자체가 음기가 많아서 그런가?
- 뭔가가 순간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 어우. 오늘도 이불 뒤집어쓰고 봐야겠다.
안 그래도 수많은 망자가 머무르는 곳.
물론 이상할 만한 반응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한 결과였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괜찮아. 넌 1등 흉가 유트버 잖아. 이 정도는 껌 아니냐?
“형님. 이놈의 껌들이 붙으면 잘 안 떨어진다고요.”
띵동.
[ 옥수수콧수염차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그래도 안 하겠다는 소린 안 했습니다 형님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큰 건축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나는 다시 중간 지붕 부분에 한자로 걸려있는 간판을 보고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근데 형님들. 저게 무슨 뜻인가요?”
- 대음전?
- 아니네. 대웅전이네.
- 불교의 선종 계통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당우. 대웅보전이라고도 하지.
- 여기가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자너.
- 근데 가까이 오니까 인테리어가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네.
- 우리 동네에도 사찰이 있긴 한데 좀 다른 느낌이다.
- 난 처음 봐서 잘 모르겠네
- 연우도 처음이냐 이거?
“저는 동네에서 몇 번 보긴 했는데, 겉으로 봤을 땐 잘 모르겠어요. 일단 안을 살펴봐야···”
여기저기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창호지와 그 창호지로 덮혀져 있는 낡은 목재 문.
나는 갑자기 의문점이 든 시청자들을 위해 낡은 창호지 문에 노크를 해댔다.
똑. 똑.
“혹시 안에 누구 계시나요? 계시면 대답 좀.”
아무런 대답이 없는걸 확인한 나는 천천히 그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이-
그런데.
“허···”
처참한 광경이 내 시야를 사로잡았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찰 안에서 화재가 있었는지, 온통 까만 그을림으로 가득했다.
“뭐야? 겉은 멀쩡한데, 안은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런데···
이곳저곳을 둘러보자마자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여기··· 정식 사찰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집을 개조해 엇비슷하게 흉내를 낸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카메라를 비춰주며 시청자들에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여기 사찰이 아닌 것 같아요. 사찰이 아니고 그냥 사찰을 따라 만들어놓은 집 같은데요.”
- 아 그래?
- 넌 쬐깐한 놈이 왜 이렇게 잘 알아
- 허구한 날 귀신 보고 귀신 집 찾아다니느라 공부 많이 한다잖아.
- 기특한 놈.
- 그럼 그냥 스님도 아닌 일반인이 사찰을 만들었다는 거네?
- 왜?
- 뭐, 부처님을 모시고 싶었나 보지.
- 그럼 된 거 아냐? 뭐가 문제야?
- 글쎄.
집이 버티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안 그래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계속 들었는데, 결국 이것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은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입을 열었다.
“형님들. 일반인들이 굉장히 오해를 많이 하고 계시는 부분인데요. 일반 사람들이 그냥 어디 불교상에서 판매하는 물품을 사 와서 부처님을 이렇게 모셔 놓으면 부처님의 기운이 깃들까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절대 아니에요. 사찰은 향냄새를 기본으로 스님의 목탁소리와 불경소리가 맴돌아야 해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뭐?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
“잡스러운 귀신들이 이곳을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리저리 인터넷에서 지식을 캐내다 얻은 사실이었다.
나는 곧이어 허공에다 코를 들이밀고 개처럼 킁킁대며 얘기했다.
“이거 보세요. 향냄새가 1도 안 나잖아요. 여긴 원인 모를 찝찝한 냄새만 가득해요.”
- ㅅㅂ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잘도 아~ 그렇구나 하겠다.
- 방송으로 그 냄새까지 전달되겠냐고.
- 도대체 그 찝찝한 냄새가 뭔데?
- 네 몸에서 나는 냄새 착각하는 거 아니냐
- 내 몸에선 라벤다 향 나는데
- 홀아비 향이랑 착각한 듯.
- 그냥 폐가에서 나는 흔한 냄새 아닐까?
- ㅇㅇ 그런 듯.
“아니에요. 그런 냄새는 항상 맡아봐서 저도 잘 알지만, 이 냄새는 뭐랄까··· 쿱쿱하고 쾨쾨한 게··· 약간 시체 썩는 냄새랄까.”
띵동.
[ 쟤시켜알바니깐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뭐? 너 시체 썩는 냄새 맡아 봤냐?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아, 아니요?”
띵동.
[ 천안호구과자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장난 지금 나랑 하냐?
나는 괜스레 멋쩍은 표정과 함께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죠 형님들. 그러고 보니까··· 불행 중 다행히도 시체 썩는 냄새를 한 번도 안 맡아봤네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았다.
어떠한 흉가 유트버는 방송을 하다 싸늘하게 죽어버린 시체와 마주한 적이 있다던데.
기분이 어땠을까.
나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정말 오금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나는 괜한 생각에 몸서리를 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으으··· 근데 나한테는 제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잘 생각해 봐라. 너도 자주 맡아 봤잖아?
나는 뜬금없는 마라탕 형님의 후원창에 고개를 돌렸다.
한참을 눈을 껌뻑이며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런 적이 없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제가요? 언제요?”
내가 입술을 쭉 내밀고 있을 때.
후원 창 하나가 더 울렸다.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폐 공장도 그렇고 무당집도. 그리고 너네 집 뒷산도 있잖아 인마.
순간,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어? 그렇긴 하네요··· 근데 그래도 이런 냄새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순간, 머릿속에 어떤 장소가 스쳐 떠올랐다.
어? 아니다.
귀목산의 무덤.
그곳은 달랐어.
미션을 받고 무덤 안에 들어가게 됐을 때, 분명히 이와 같은 냄새를 맡았었다.
“자, 잠깐만···”
나는 문득 내가 맡고 있는 이 냄새의 정체가 두려워졌다.
곧이어 벙찐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시, 시벌. 그럼 이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