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207화 (207/225)

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15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벙찐 얼굴로 그를 한참 바라봤다.

뭐, 뭐야··· 지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 거야···?

그때.

고요한 적막을 깨고 그가 날 보며 중얼거렸다.

“아~ 덕분에 오늘 기분 좋게 잘 먹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그 말과 함께 선녀보살님의 몸이 순간 부르르 떨렸다.

잠시 후.

털썩!

선녀보살님이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원래의 자아로 돌아온 것 같았는데,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머리야···”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선녀보살님을 살폈다.

선녀보살님이 이마를 슥슥 문지른다.

아까보다 더 심하게 얼굴이 달아올라 있다.

정말 홍당무처럼.

나는 몹시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

“괘, 괜찮으세요. 선녀보살 님?”

자세히 살펴보니 살짝씩 몸도 흔들거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제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녀보살님의 몸을 빌려, 얘기하는 도중에 홀짝홀짝 마신 것만 해도 3병.

20.1도수의 술을 30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싹 비워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 ?

- 취한 것 같은데

- 근데 원래 선녀보살로 돌아온 거임?

- 헐. 얼굴 봐. 곧 터지는 거 아니냐

- 오리지널 3병을 30분만에 먹고 저 상태라고?

- 진정한 주당이 나타났다.

- ㅅㅂ 술 개쎄네 이 누나. 딱 내 스타일이야.

- 임자있음. 다들 흑심 걷어치우셈.

- 닥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선녀보살님은 호흡을 몇 번 내쉬더니,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어? 무리하지 마세요. 천천히 일어나세요.”

내게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불안해 보이는 그 와중에서도 나를 안심시키려 든다.

나는 그런 선녀보살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반사적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짜··· 짱이예요 진짜. 완전 세.”

잠시나마 남자와 내 얼굴을 번갈아 살피던 선녀보살님이 이마를 붙잡으며 얘기했다.

“그나저나 둘이 예전에 마주친 사이인 줄은 몰랐네요.그것 때문에 신령님이 연우 씨를 보내셨구나.”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저희 집 뒷산에 귀목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방송을 갔다가 새벽에 마주쳤거든요. 그때 마주쳤을 땐 정말 귀신인 줄 알았는데··· 아, 귀신은 맞구나. 빙의가 된 상태니까···”

남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그저 뒷머리만 긁적거렸다.

선녀보살님이 남자를 보며 물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남재신이요.”

“삼촌 성함은요?”

“남영신인가···”

이름을 들은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깊은 원한이 있는 만큼 간단하게 보내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요. 준비할 게 많아요. 어서 내려갈까요?”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른 가시죠!”

그렇게 계단 앞에 섰을 때였다.

뒤에 쫓아오던 선녀보살님이 나를 붙잡았다.

“연우 씨. 잠시만요.”

“······??”

“조금만 천천히 가요.”

“아, 네.”

- 선녀보살 괜찮음?

- 저 상태로 계단 못 내려갈 것 같은데.

- 개 센척해도 천상 여자라고!

- 인정. 계단에서 넘어져서 귀신 될 것 같다.

- ㅅㅂ 내가 업어 주러 가야 되나?

- 닥쳐. 누구도 내 여자를 함부로 만지지 못한다.

- 보고 있기 너무 안 쓰러운데?

- 닥치고 연우한테 맡겨.

- 옆에 남자 놈도 쓰러질 것 같은데

- 남자 몸은 자기가 알아서 간수해야지.

현재 시청자 수. 2314명.

현재 시각 4시 20분.

선녀보살님을 양쪽 팔을 한 명씩 붙잡고, 계단 하나씩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모두가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려가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렇게 내려온 지 벌써 20분째인데, 눈 앞의 계단은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띵동.

[ 돈들어손내놔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거 뭐 계단 방송이냐? 방송 내내 계단만 비추네 ㅅㅂ

“아, 죄송합니다 형님. 여기 계단이 너무 긴 데다, 어두워서···”

나는 애써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듯, 떠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선녀보살님이 괜히 내게 미안해했다.

“아이고, 미안해요 연우 씨. 저 때문에··· 제가 술을 못 해요.”

나는 선녀보살님에게로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세차게 흔들어댔다.

“술 고래. 아니. 술 드시면 그럴 수 있죠.”

순간, 선녀보살님이 나를 빤히 쳐다봤지만.

이내 힘든 그 와중에도 애써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오늘 신세 좀 질게요.”

띵동.

[ 백마타고온환자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인마. 계단에서 날 샐 거냐? 남자답게 선녀보살님을 업어 드려!

저런 시벌···

이 지옥의 계단을 오늘 3번을 넘었다.

지금은 무려 4번째.

체력도 다 떨어졌다.

거품을 물 지경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누굴 업어서 내려가라고?

저 시청자는 날 귀신 만들 셈인가?

“형님들. 아무리 그래도 여성분을 어떻게 함부로 막 업고 그럽니까. 저는 그런 무례한 사람 아닙니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선녀보살 업고 내려가면 10만 원.

쿵!

이미 내 한 쪽 무릎은 땅에 닿아있었다.

물론 양팔도 함께 선녀보살님을 향해 벌려놓았다.

“VVIP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선녀보살 님.”

- 미친

- 너 무슨 로봇 같은 거냐?

- 네 체력은 후원이면 채워지는 거냐고

- 방금 무릎 부서지는 소리 들리지 않음?

- 괜찮. 후원해 주면 뼈도 다시 자랄 듯

- ㅋㅋ 그 와중에 선녀보살 연우 쳐다보는 거 개 웃기네

- 사고 정지됨?

- 누구든 저런 후원 괴물 만나면 그렇게 볼 듯.

선녀보살님은 처음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결국 내 등에 몸을 얹었다.

점점 더 비틀거리는 몸을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괜찮은데··· 미안해요. 연우 씨.”

나는 선녀보살님을 업고 벌떡 일어섰다.

놀란 선녀보살님이 내게 걱정하듯 물었다.

“괜찮으세요?”

난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럼요! 완전 깃털 같으신데요? 하하!”

- ?

- 깃털 맞음?

- 너 지금 다리 후들거리는데

- 전격 충격기 맞으면 저렇게 되지 않음?

- 업힌 선녀보살이 뭐가 되냐 ㅅㅂ 표정 안 펴?

- 레알 갓 태어난 기린 같네

- 쟤 지금 얼굴에 흐르는 거 저거 피 아니지?

- 계단 내려가다 귀신 될 듯.

- 염라대왕한테 미리 얘기는 해둘게

“자, 그럼 형님들. 본격적으로 가보겠습니다!”

이후, 말 못 할 지옥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내일 다시 이곳에서 방송을 켤 것을 약속하고 시청자들의 소통을 일찍이 종료했다.

***

수많은 촛불들이 대웅전 안에 켜져 있다.

TV영상에서나 볼법한 잔칫상도 준비되어 있었다.

배, 사과, 바나나, 파인애플, 떡, 나물, 과자···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어제 만났던 그 영가를 위한 음식이었다.

챙! 챙! 챙! 챙! 챙!

하얀 무복을 차려 입고 계신 선녀보살님이 손에 든 무구 부채를 펼쳤다.

촤라락!

남은 손에 들려있던 무구 방울도 천천히 흔들어댔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선녀보살님의 연락을 받고 수많은 제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징, 장구, 북 등을 손에 쥐고 열심히 쳐댔다.

지이잉! 쿵. 쿵. 딱!딱!

“그 젊은 나이에 가족을 살리겠다고 고생했을 터인데, 인사 한번 오지 못한 가족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 꼬. 늦게나마 이렇게 너를 위해 이 진수성찬을 준비했으니 맛있게 먹고 성불하거라! 어허이!”

선녀보살님이 제 자리에서 뛰기 시작하자 등 뒤에 날개처럼 달려있는 빨간 리본이 이리저리 휘날린다.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중얼댔을까.

어느 순간이 되자 선녀보살님이 자리에 멈춰 섰다.

그것도 잠시,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이후, 대웅전 안엔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고.

그 누구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 순간.

“누나. 오랜만이야.”

선녀보살님의 입에선 어제와 같은 중년 남성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 반가운 음성에 눈을 감고 두 손을 간절하게 빌고 있던 여성이 반응했다.

그녀는 남재신의 어머니.

즉, 죽은 영가의 친 누나 되는 사람이었다.

“여, 영신이?”

시퍼렇게 해가 떠있는 대낮에 보는 광경인데도 불구하고.

지켜보는 내 머리카락은 한 올도 빠짐없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시벌 형님들··· 모, 목소리 들으셨어요? 어제 그 아저씨 또 빙의해서 대화중이에요!”

- 워··· 다시 들어도 소름이네

- ㅅㅂ 도저히 매칭이 안 된다고

- 저 이쁜 얼굴로 아저씨 목소리를 내다니

- 와. 그나저나 이런 장면은 보기 힘든데 대박이다

- 연우 방송 클라스 지린다 진짜.

- 야. 미친 역대급 아니냐? 시청자도 3천 명 넘었어

- 후원이 안 터져서 그렇지. 역대급은 맞음.

역시 핏줄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목소리를 들은 친누나는 대번 자신의 남동생인 걸 알아챘다.

경계와 의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눈물이 뺨으로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흑흑흑흑··· 미안해··· 누나가 미안해···”

한동안 서러운 그 울음소리가 대웅전 안에 깊게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온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은 나는 시청자들과 그 모습을 진지하게 지켜보았다.

잠시 후.

선녀보살님의 몸에 빙의한 그가 친 누나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곧 두 손을 살며시 잡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그새 많이 늙었네 우리 누나. 잘 있었어?”

“흑흑···”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내는 친누나.

그런 친 누나를 보며 가까스로 터지려는 울음을 참으며 그가 얘기했다.

“그만 울어··· 이렇게 어렵게 만났는데 울기만 하다 보낼 거야···?”

우리와 첫 대면을 했을 때와는 정말 상반되는 분위기였다.

친누나는 어렵사리 눈물을 그치고 말을 꺼냈다.

“보고 싶었다. 진짜 보고 싶었다 재신아. 너 보고 싶어서 밤에 잠도 못 자고 지냈던 세월이 얼만 줄 아니···”

“미안해.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내 입술이 계속 움찔거렸다.

- 야. 우냐?

- 도대체 너는 왜 우는 건데?

- ㄴㄴ 이 새끼. 방금 손가락에 침 발라서 묻힌 거 같은데

- 레알? ㅅㅂ 빨라서 못 봤다.

- 도박을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놈이야

- 타짜로?

- ㅇㅇ ㅋㅋㅋㅋ

- 하여튼 간 꼼수는

- 님들 괜한 생 사람 잡지 마셈. 눈물이 절로 나오는 구만.

안타까운 가족의 대화는 한참 이어졌다.

하고 싶은 얘기, 듣고 싶은 얘기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1시간 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는지, 선녀보살님의 몸에 빙의된 그가 갑자기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진짜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누나를 만나지도 못 하고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옆에 가만히 듣고 있던 큰 누나도 내게 다가와 거들었다.

“우리 아들 병까지 고쳐주신 분이 이분이라고?”

“어. 맞아.”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괜한 감사 인사에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쭈뼛쭈뼛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가야겠다.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이 무속인분한테도 몸에 지장이 갈 테니까.”

곧이어 모두에게 일일이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누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누나. 그거 있잖아. 구촌동 바다 앞에 있는 그거.”

순간, 내 귀가 움찔거렸다.

나와 나눴던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아직 거기 그대로 있지?”

“그럼.”

“이 친구한테 선물로 넘기고 싶은데.”

그 말을 들은 내 몸엔 전율이 흘렀다.

흥분되는 그 마음을 주채할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그 집.

그리고 선녀보살님이 신령님을 통해 내게 예견해 주었던 파란 지붕의 단독주택.

그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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