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210화 (210/225)

곧 엄마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엄마가 나와 선녀보살님을 번갈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무속인임을 알아챌 수 있는 옷차림을 살피며 엄마가 물었다.

“혹시 저희 아들이 얘기했던···”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연스럽게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잽싸게 대문 앞으로 달려가 선녀보살님을 소개했다.

“맞아 엄마. 내가 말했던 선녀보살님이야. 내가 이렇게까지 잘될 수 있게 옆에서 항상 챙겨주시던 고마운 분.”

- 헉? 선녀보살?

- 뭐야? 연우 도와주러 온 건가?

- 이거 무슨 상황이야 도대체

- 세기의 대결인가

- 연우 어머니도 왜 이렇게 젊어 보이냐

- 말 안 하면 친척 누나인 줄 알겄네

- 힝. 여보. 어디 갔나 했더니 거기 간 거야?

- 말도 없이 집 나가지 말라고!

- 닥쳐! 정신 차려

아직도 엄마는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머리를 쓸어넘긴 엄마가 선녀보살님을 집 안으로 일단 안내했다.

“아이고, 그런 고마운 분이 어쩌다 여기까지··· 누추하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선녀보살님은 엄마의 안내에 따라 집안으로 발을 들였다.

곧이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그런 선녀보살님을 보며 엄마는 동작이 빨라졌다.

분명 충분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을까 염려한 것 같았다.

“집에 있는 게 마땅치 않아서, 혹시 과일 드시나요?”

“네. 그럼요.”

엄마가 과일을 깎는 사이, 나는 조심스럽게 선녀보살님에게 붙어 속삭이듯 물었다.

“선녀보살 님. 여긴 어떻게 찾아오신 거예요?”

정말이지,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을 땐 환청이라도 들은 듯, 놀라 뒤집어질 뻔했다.

어떻게 그렇게 다들 시골 촌 동네에 박혀있는 우리 집을 잘 찾는지 소름이 다 끼친다.

선녀보살님이 말했다.

“이 동네 예전에 굿하러 많이 왔었죠. 그나저나 얘기는 잘 하고 계신 거예요?”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만 이리저리 휘저었다.

“선녀보살 님이 안 오셨으면 아마 귀신 됐을 거예요···”

선녀보살님이 그런 나의 대답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

- 하. 진짜 살인 미소네

- 저 미소에 몇 명이 귀신이 됐을까

- 근데 진짜 왜 온 거임?

- 연우 귀신 될까 봐 구해주러 온 거지 뭐

- 캬. 내 여자는 진짜 마음씨도 기가 막히네

- 선녀보살 등장에 엄무룩. 어리둥절 중.

- ㅅㅂ 나 같아도 그렇겠다.

- 인정. 19살 아들이 5천만 원 통장 내밀고 새 집 계약 얘기에 앞엔 무당까지.

- 기절 안 하는 게 다행아님?ㅋㅋ

그때.

“이것 좀 드세요.”

엄마가 깎은 다색 과일들을 선녀보살님 앞에 건넸다.

“감사합니다.”

선녀보살님이 그 과일을 하나 집어 입에 넣자 엄마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긴 한데, 혹시 저희 아들이 무슨 사고라도 친 것 아니지요?”

그래. 선녀보살님이 와주셨으니까 분명 좋은 얘기를 해주시겠지.

나는 숨죽이고 선녀보살님을 빤히 바라봤다.

잠시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그런데··· 웬일인지 선녀보살님은 대답을 하지 않고 나만 빤히 바라봤다.

뭐야? 왜 그러시지?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는 그때.

선녀보살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주 큰 사고를 쳤지요.”

“······”

그 대답에 엄마와 내 두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아니, 지, 지금 무슨 소리를···

내가 큰 사고를 쳤다고?

나는 일단 반사적으로 다시 무릎을 살며시 꿇었다.

그리고 눈알을 재빨리 굴려가며 엄마의 눈치를 계속 살폈다.

- 헐. 반전.

- 연우 맥이러 왔네

- 귀신 만들기 큰 그림인가

- 어설프게 혼나게 둘 바엔 내가 가서 확실히 죽이겠단 마인드.

- 큰 사고를 쳤다는 건 뭐지?

- 글쎄?

- 저놈이 사고를?

- 너 우리 몰래 무슨 사고 쳤어 개색갸!

- 설마 여자 문제는 아니겠지?

- 임아린한테 손댔거나 했으면 내가 귀신 만든다!

엄마가 잔뜩 긴장하며 선녀보살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저희 아들이 무슨 큰 사고를···”

선녀보살님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 말에 대답했다.

“저희 신령님한테 저보다 더 예쁨을 받는 아주 큰 사고를 쳤지요···”

“······”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니, 선녀보살님 이 상황에 그런 장난을···

옆에서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엄마는 그제야 가슴을 부여잡고 뒤늦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난 또 뭐라고···”

그것도 잠시.

선녀보살님이 엄마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조상 분들 중에 저와 같은 분이 계셨죠?”

잠시 망설이는가 싶던 엄마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연우 할머니가 신내림을 받으셨다고 했었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입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뭐, 뭐라고···?

방금 신내림이라고 했어?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저 선녀보살님과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귀를 기울였다.

- 헐

- 뭔가 엄청난 사실을 들은 것 같은데

- 아니. 이 충격적인 사실을 방송으로 듣는 게 더 신기하다

- 연우 개 충격 먹음. 턱 빠지것다

- 그래서 선녀보살이 그렇게 연우를 예뻐했던 거구나

- 와. 이거 완전 레전드인데

- 괜히 나무꾼 보살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 그냥 진짜 보살을 했어야 하는 운명이었어.

- 아니, 근데 왜 저렇게 겁이 많은 건데 도대체

- 그건 나도 의문이네.

선녀보살님이 얘기했다.

“연우 씨를 보살펴주고 계시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에요. 그동안 정말 공을 많이 들이신 것 같은데요?”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는 적잖이 놀랐는지 입을 살며시 틀어막았다.

잠시 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얘가 어렸을 때부터 유독 몸이 약하고 많이 아팠거든요. 어떤 치료를 해보고 약을 먹여봐도 낫질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드리고 있던 기도를 더 늘려보기도 했죠. 하루에 두 번씩, 세 번씩···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얘 다리가 기적 같게도 멀쩡해졌어요. 몸도 예전과는 다르게 건강해졌죠. 이 모든 게 그럼··· 하느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 거라는 건가요···?”

선녀보살님이 흐뭇하게 엄마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연우 씨 건강이 회복된 건 조상님의 덕인 것 같아요.”

엄마는 아직 선녀보살님을 신뢰하지 못하겠는지, 경계하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조상 분들 중에 키가 160이 조금 안 되시는데다, 눈 옆에 작은 점이 있고··· 하얀 고무신을 즐겨신으시던 분···”

선녀보살님이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연우 씨 할머니라고 하시네요.”

엄마의 몸이 순간 흠칫거렸다.

선녀보살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옆에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키가 170 정도, 짧은 머리에 허리가 조금 굽으시고, 다리가 조금 불편하신 것 같은데··· 어머니 손목에 있는 팔찌를 가리키며 자기가 선물로 준거라고 하시네요.”

엄마의 눈이 번뜩였다.

“그걸 어떻게···”

- 헐. 연우 어머니 깜짝 놀라신 것 같은데

- ㅅㅂ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 생판 모르는 사람이 조상 얼굴이랑 과거사를 맞추는데 당연하지

- 근데 왜 나까지 소름이 돋냐

- 와··· 진짜 선녀보살의 저 능력은 명불허전이다

- 그 기를 이어받은 우리 연우

- 옘병. 쟤는 그 기운을 후원받는데 몽땅 쏟아부었자나

- 시벌. 반박을 못 하겠네

그런 엄마를 좀 더 신뢰할 수 있게 하려는 듯, 선녀보살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곧이어 몸이 순간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우리 아가. 잘 지냈니?”

“혼자 애 키우느라고 고생이 많지? 옆에서 도와주지 못해 참 미안 하이···”

놀랍게도 점잖은 할머니.

아니, 할아버지의 목소리까지 연달아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머님··· 아버님···”

선녀보살님은 그런 엄마의 손을 덥석 잡아 이리저리 살펴보다, 상처가 한가득인 위치에서 멈춰서 말을 이었다.

“이 상처만 보면 얼마나 내 억장이 무너지는지··· 통증은 이제 좀 괜찮니?”

엄마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담고 참는 듯했다.

“그 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누··· 내가 다 미안하구나.”

선녀보살님은 엄마의 손을 이리저리 감싸다, 이내 자신의 품에 안았다.

“앞으로 힘들고 무거운 짐이 생긴다면 언제라도 도우마. 우리 사랑하는 아가, 손주랑 꼭 행복하게 사는 걸 멀리서나마 지켜볼 테니 아프지 말고···”

영문도 모르는 나는 그저 벙찐 얼굴로 엄마와 선녀보살님을 살펴보았다.

시벌···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이야.

잠시 동안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던 선녀보살님은 이내 다시 몸을 움찔거렸다.

“안 보이는 곳에서 항상 연우와 어머니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엄마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러내릴 것처럼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꾹 참아내며 말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의 눈이 한결 편해졌다.

한참이 지났을까.

어느샌가 경계가 풀렸는지, 선녀보살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혹시··· 저희 아들이 한다는 방송은 놔둬도 되는 건가요? 그 방송이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진 않나요? 폐가 같은 곳에 드나들면 안 좋은 기운이 붙고 그런다던데.”

순간, 나는 선녀보살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드디어 나왔다.

오늘 해결해야 할 첫 번째 숙제. 폐가 방송.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반인이 그런 기운이 계속 노출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연우 씨는 예외예요.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기운이 있는 데다 저희 신령님이 너무 예뻐하셔서 제가 항상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오히려 반대로 더 좋은 기운과 영향이 연우 씨를 단단하게 만들 거예요.”

나는 눈썹을 실룩거리며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그런 내가 걱정되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 저놈 표정 봐. 왜캐 얄밉냐

- 선녀보살까지 나서서 우리 후원금 계속 뜯으라고 아예 못을 때려 박네

- 한 패인가?

- 내 여자가 그렇게 말해주는데 뭐 그래야지

- 여윽시 선녀보살이 도와주러 온 거였어

- 엄마한테 확실하게 허락도 받으면 오늘 방송시켜야 되는 거 아님?

- 3대 흉가 가자 ㅅㅂ

- 집값 갚어야지.

- 아 맞다. 집 계약도 다시 하러 가야 되잖아?

엄마가 얘기했다.

“그리고 갑자기 얘가 이렇게 큰돈을 저한테 보여줬는데, 이 돈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19살짜리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이렇게 큰돈을···”

“그 돈은 연우 씨가 방송을 통해 일을 하면서 꾸준히 모아온 금액입니다. 그렇죠 여러분들?”

선녀보살님이 켜져 있는 방송화면으로 신호를 주듯, 고개를 돌렸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연우 어머니. 참 아름다우십니다. 미스코리아 출신이신가요?

띵동.

[ 차린건많지만조금만드세요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연우 방송 덕분에 하루하루 웃으며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띵동.

[ 이렇게귀한곳에누추한분이 4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거 나쁜 돈 아닙니다. 제 일주일 용돈입니다. 안심하십쇼.

“워어어··· 크흠. 감사합니다. 형님들.”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리액션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나는 곧이어 선녀보살님과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주먹까지 쥐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스! 좋았어. 선녀보살님.

나는 꿇고 있던 무릎을 풀고 저린 몸을 위해 코에 침을 발라가며 얘기했다.

“거봐. 엄마. 나 나쁜 짓 하는 아들 아니라니까.”

엄마는 한참 날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선녀보살님이 엄마에게 무언가를 툭 내밀었다.

그건 평소와는 다른 크기의 큰 부적이었다.

“이건 뭔가요?”

“앞으로 생기게 될 식당에 붙일 부적입니다.”

그 말에 놀란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식당요?”

선녀보살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그마한 식당을 개업하는 걸 꿈꾸셨죠? 그것 때문에 그렇게 밤낮으로 일을 하고 계시는 거고요.”

뜬금없는 식당 소리에 나는 선녀보살님을 빤히 쳐다봤다.

식당?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귀신이라도 본 듯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건 또 어떻게···”

선녀보살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조상님들을 위해 조금만 더 정성을 쏟는다면 그 소원을 다음 해에 이루실 거예요. 연우 씨 방송이 다음 해에는 좀 더 빛을 발할 겁니다.”

- 뭐야 이거

- 오늘 뭐 인생 역전 드라마 찍는 거야?

- 연우가 다음 해에는 더 대박 난다는데?

- 그렇다는 말은 우리가 다음 해까지 후원해야 한단 소리잖아

- 돈 존나 열심히 벌어야겠네. 연우한테 뜯기려면

- 헐. 이게 내 내 운명인가?

- 후원만 하다 가는 인생?

- 시벌. 그러다 귀신 되면 천국 가긴 하는 거야?

- 천국 못 가면 연우한테 들러붙어야지. 옘병.

선녀보살님은 그 부적을 건네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봐야겠어요. 두 분 오늘 할 일이 있어 바쁘실 테니.”

엄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껌뻑거렸다.

하지만 나는 선녀보살님의 품에 폭삭 안기기까지 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선녀보살 님. 완전 사랑해요. 제가 곧 또 찾아뵐게요.”

“그래요. 항상 몸 조심히 하는 거 잊지 말고요.”

“네!”

옆에 있던 엄마도 연신 고개를 숙여대며 인사했다.

“우리 아들 잘 보살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과일 잘 먹고 갑니다.”

우리는 집 밖까지 나가 선녀보살님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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