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다해 무구 방울을 흔들었다.
가자. 태성아. 엄마랑 함께 좋은 곳으로.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언제까지 흔드는 거야? 얼굴에 식은땀 봐.
후원창이 울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한참을 더 열중했을까.
나는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그 후, 살며시 눈을 뜨고 우물을 빤히 바라봤다.
“어? 형님들. 태성이가 붙은 것 같아요.”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 태성이가 붙었다고?
- 그 유기그릇 안에 담겼다는 건가?
- 설마 아까 얘기했던 그 머리카락 뭐시기?- ㅅㅂ 저런 말 하니까 왠지 진짜 들어있을 것 같잖아
- ㅋㅋㅋ ㅈㄹ 영화를 넘 많이들 보셨어
- 정신 차리세요 님들아. 이건 영화가 아님. 현실입니다.
-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내가 바로 십만 원 쏜다.
- 난 이십만 원.
- 오호. 연우 때부자 되것네
유기그릇을 우물에서 건져냈다.
아까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나는 확신했다.
방금 내 귓속으로 태성이가 소리치는 그 한 마디를 들었으니까.
[ 제발 꺼내주세요. ]
유기그릇에 쌓여져 있는 천을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이게 뭐라고 손에 땀이 한가득 맺혔다.
선녀보살님을 통해 배운 의식이긴 하지만, 내 스스로는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있어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순간.
“어? 시, 시벌··· 형님들. 이, 이거 보세요.”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한 채로 손을 벌벌 떨며 유기그릇을 카메라에 비추었다.
놀랍게도 유기그릇 안에는 머리카락이 세 가닥, 손톱, 그리고 아이의 치아 하나가 쌀에 묻혀 있었다.
띵동.
[ 이렇게귀한곳에누추한분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헐. 시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레알 너 마술 같은 거 한 거 아니지?
놀란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참을 벙찐 얼굴로 유기그릇을 바라보다 카메라로 시선을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술이라뇨 형님들··· 그런 거 저 할 줄 모릅니다.”
- 헐. 이게 말이 되나?
- 보자마자 개 소름 돋았네
- 아니. 너는 네가 해놓고 놀라면 어떡해?
- 연우 저놈 손에만 닿으면 마술처럼 모든 게 이뤄지네
- 와. 넋걸이라는 게 진짜 되긴 하는구나
- 무당 방송에서 나오는 거 편집해서 조작하는 건 줄 알았는데
- 실시간으로 확인하니까 이거 뭐 할 말이 없다
- 연우 쟤는 진짜 물건인가 봄
- 그래서 너 신당은 언제 차릴 거냐. 나도 가게
나는 다음 절차를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낡은 밧줄 옆에 유기그릇을 살며시 내려두고 입을 열었다.
“다행입니다. 태성이가 말을 잘 들어준 덕분에 우물에서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둘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릴 게요.”
놀랍게도 고스트 박스에서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나는 그 음성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이내 뒤로 물러나 천천히 절을 두 번 올렸다.
“그럼 마지막 의식 시작하겠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그 힘겨운 세월을 이겨내고 둘이 붙어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낡은 밧줄과 유기그릇을 함께 두고 낙엽을 모아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무구 방울을 흔들며 조심스럽게 기도했다.
“다음 생애에서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기를 빕니다.”
잘 마른 낙엽에 붙은 불이 낡은 밧줄과 유기그릇에 있던 익사자의 체조직을 훨훨 태워버렸다.
모든 것을 태운 불은 어느새 서서히 작아져갔다.
그와 동시에 EMF 측정기에 있는 반응도 점차 줄어들었다.
마치 태성이와 태성이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진심 어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행복하세요.”
- 신기함 그 자체구나
- 진짜 밧줄이랑 쌀, 머리카락 다 타버리는 동시에 EMF 측정기 반응 줄어드는 거 실화냐
- 이게 되는구나.
-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
- 연우의 진심이 특별한 의식이나 굿 없이도 귀신을 성불시켰다.
- 워. 진짜 대박이다.
- 물귀신은 성불시키기 겁나 어렵다고 하던데 그걸 해낸 너는···
- 나무꾼 보살 UP! UP! UP!
마지막 불이 꺼질 듯 말 듯 버티고 있을 때.
고스트 박스에서는 마지막 음성이 흘러 터졌다.
뜻밖의 인물
[ 치지지지익- 치지지지익- %[email protected]#$ 치지지지지익- [email protected]#$ ]
고스트 박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내 귀가 움찔거렸다.
이건 무슨 소리지?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 건가?
살짝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고스트 박스에 귀 기울였다.
그런데···
[ 치지지지익- 치지지지익- 고마워 치지지지익- ]
그 음성을 듣자마자 나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후우··· 형님들. 끝난 것 같습니다.”
- 뭐가?
- 너 혼자 중얼거리는 거?
-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친놈인 줄 알 거야
- 혼자 자빠지고 소리 지르고 허공에 소금 뿌려대고?
- 정신이상자 수준이지 ㅋㅋ
- 그래도 겁 많은 놈이 많이 발전했다.
- 그건 인정. 맨날 뜀박질하기 바빴는데 ㅋㅋ
- 진짜 우리가 잘 키웠다. 그치?
- 무슨 소리? 선녀보살이랑 큰형님이 키운 거지
- 맞아. 그냥 돈이 다했다.
뭔가 속이 후련한 느낌이 든다.
마음 속 깊은 응어리가 풀린 느낌이랄까.
귀신만 보면 도망 다니던 내가 어느샌가 이렇게 귀신의 사연을 듣고 위로해 주고···
선녀보살님처럼 좋은 곳으로 안내까지 해주는 의식을 하고 있다.
이젠 정말 이 직업에 완벽하게 적응이 된 건가.
이러다가 나 진짜 무당이라도 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채팅창을 살펴보다 시청자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형님들. 오늘 방송 어땠나요?”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좋았다. 평소랑은 다르게 오늘은 제법 무당 냄새가 난다?
“진짜요?”
설사 지금 이대로 내 운명이 그렇게 굳혀진다 해도 불만은 없었다.
가끔 느끼는 단점보다 당장에 몸으로 다가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결정적으론 모두가 걱정거리 없이 지낼 수 있게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을 나눠주는 직업.
무당의 역할이 정감 넘쳤다.
띵동.
[ 중년식탐김정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근데 진짜 귀신 보내준 거야? 좋은 곳으로?
나는 EMF 측정기를 들어 비추며 대답했다.
0단계.
“네. 형님들. 태성이랑 태성이 어머니는 좋은 곳으로 간 것 같습니다.”
- 대박쓰
- 진짜 EMF 측정기에 0단계가 찍혔네?
- 아까까지만 해도 무조건 2단계 이상은 항상 유지했는데
- 개 신기하다. 진짜.
- 우리 눈에도 보였다면 더 소름 끼쳤을 건데 아쉽다
- 그랬으면 해외토픽에 나왔겠지ㅋㅋ
- 그래도 연우는 다른 애들이랑은 다르게 진짜 해명을 해주잖아
- 인정. 그림도 그렇고,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를 만들어주지
- 여자 스케치한 거 보여줬을 때도 개깜놀
- 아맞다. 이참에 그 여자 아기도 좀 그려주면 안 되냐?
뜬금없는 시청자의 부탁이지만,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봤던 아이의 기억과는 다르게, 때마침 내 머릿속으로 어떤 표정이 슬쩍 스쳐 지나가듯 떠올랐다.
“그럴까요? 잠시만요.”
나는 가방에서 곧장 종이와 펜을 꺼내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슥. 스스슥. 스스스슥.
학교 수업 시간 빼고는 펜을 잡을 일도 없었던 내가 마치 피카소를 빙의한 것처럼 숨도 안 쉬고 스케치를 해간다.
그렇게, 단 20분도 되지 않아 완성한 그림.
나는 그 그림을 카메라에 비추며 얘기했다.
“자, 형님들. 이런 얼굴이었습니다. 귀엽게 생겼죠?”
소심함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이었지만, 어린아이답게 귀엽고 순수한 매력이 잔뜩 풍기는 얼굴이었다.
엄마를 닮아 참 예쁘게 생기기도 했던 아이.
띵동.
[ 로블로피카소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와. 진짜 너 그림 잘 그린다. 거짓말 안 보태고 그림이 아니라 사진 같다. 사진.
띵동.
[ 신장동피카소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림 실력 인정. 진짜 아까 그 여자 아들 같네. 똑 닮았어.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이 형님도 참··· 근데 보통 그런 칭찬은 다른 것을 보태 말씀해 주시던데···”
띵동.
[ 로블로피카소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망할 놈이···
띵동.
[ 신장동피카소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네가 해주면 나도 해야 되잖아. ㅅㅂ
나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뜨고 두 팔을 번쩍 올렸다.
“우워어어어어어! 로블로피카소, 신장동피카소 형님께서 오만 원씩으으으을!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 칭찬이라면 언제든지 그려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만 해주십셔!”
- 그림 한 장 그릴 때마다 5만 원씩 달란 소리지?
- 그런 듯.
- 돈미새 같은 놈. 이젠 후원도 직접 뜯어내고···
- 하··· 옛날엔 안 그랬는데
- ㅅㅂ 3만 원, 5만 원에 무덤 들어갈 때가 그립네
- ㅋㅋ 그럴 때가 있었구나.
- ㅇㅇ 10만 원 받고 사체 냉장고에도 들어 갔지.
- 이젠 10만 원 주면 거들떠도 안 보겠지?
- 뒤에 공 하나는 더 붙여야 할 듯.
대답이 끝나자마자 나는 뒷정리를 시작했다.
상차림에 썼던 과일들을 봉지 하나에 모두 담았고, 텐트도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근데 요즘 과일 값이 금값이던데, 그거 다음에 재탕하는 거냐?
나는 봉지에 담고 있던 과일을 슥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아니요. 의식에 썼던 과일들은 절대 재탕하지 않습니다. 죽은 영혼들이 입에 댄 것들이기 때문이죠. 이유가 어쨌든 간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들의 선은 명확하게 지켜야 해요.”
그게 이 현실 세계에서 꼭 지켜야 할 룰이라고 들었다.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글쿠만. 그럼 그거 다 버리는 거야? 좀 아깝긴 하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동네 유기견이랑 유기묘들한테 잘 깎아서 나눠줘요. 사람과 동물은 다르니까.”
[ 모르는개산책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착하네. 역시 너는 내가 진짜 리스펙한다! 이건 과일 사는 데 보태 써라!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띵동.
[ 통조림과젤리 님이 2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여윽시 우리 연우! 옜다 나는 저 넘보다 두 배 더 지원한다!
추가로 내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워어어 미쳤··· 모르는개 형님! 통조림 형님! 이 연우 오늘 행복해서 귀신될 것 같습니다요오오오! 이 힘을 빌려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상차림을!”
- 돈미새 입 찢어지네
- 근데 쟤넨 큰형님도 아니고 왜 저렇게 많이 쏘는 거여?
- 아까 연우 하는 짓 못 믿겠다고 내기하던 놈들임.
- 아, 유기그릇에 체조직이 담는 의식?
- ㅇㅇ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람서 십만 원, 이십만 원 쏜다던 그 두 놈임.
- ㅋㅋ 못 믿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리스펙한단다.
- 게다가 통 크게 쏘는척함.
- 연우는 알고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 ㄴㄴ 걍 후원이면 다 좋아하는 거지.
- 저 입 좀 봐라 저거. 곧 침 흐르겠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 보니 모든 정리가 끝이 났다.
나는 창문을 통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혼자 움직이는 의자를 보고 흠칫 거렸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입구 문 쪽으로 슬슬 걸음을 옮겼다.
그때.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어? 귀신 좋은 곳으로 보냈다고 하지 않았냐? 저건 왜 자꾸 움직이는 거야?
시청자의 의문에도 나는 말을 아끼며 씩 웃어 보였다.
무시하고 입구 문을 향해 걸었고.
덜컥.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기에 나는 서둘러서 집 밖으로 나왔다.
미련 없는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아니, 뛰기 시작했다.
후다다다다다닥.
***
한참을 숨도 참고 뛰고 있었다.
갑자기 울리는 후원창에 나는 뭄을 움찔거렸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갑자기 뛰는 건데? 너 뭐라도 봤냐?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얼굴도 하얗게 떠가지고 이거 뭐 본 거 확실하네
나는 그제야 자리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다.
내가 나왔던 집이 이제는 작은 점처럼 보였다.
온몸에 힘을 주고 있던 내가 그제야 긴장을 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허억. 헉! 헉! 시, 시벌 뭐지? 도대체?”
- ?
- 뭐가?
- 얼굴이 왜 또 쭈그렁탱이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