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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1화 (1/119)

S급 자영업자

1화

“안녕하세요.”

햇살에 물든 갈색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옅게 빛난다.

인사와 함께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에 손님이든 알바생이든 너나 할 것 없이 몽롱한 눈으로 계산대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일제히 쏠린 좌중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그 시선들에 부담을 느낀 것은 나였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누나, 오늘은 언제 퇴근해요?”

“손님, ‘언제 퇴근해요’라는 메뉴는 저희 가게에 없는데요.”

“다음 주 클리어 기념일 때도 가게 열어요? 안 열면 저랑 놀아요.”

“손님, 아직 정하지 못하셨다면 뒤에 분 먼저 주문 도와드려도 될까요?”

내 시선을 따라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명화라도 감상하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손님이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아뇨, 아뇨! 저 오늘 시간 많아요. 주문이 오래 걸릴 수도 있죠. 편하게! 천천히! 주문하세요.”

계산대에서 시간을 끄는 이가 짜증 날 법도 하건만 손님은 과분한 대접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손을 힘껏 내저었다.

그에 남자가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다시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으시대요.”

“……손님, 혹시 주문하실 의향이 없으시다면 비켜 주시겠습니까.”

“……왜, 자꾸 저를 손님이라고 불러요? 우리 사이에 그러지 말아요……. 거리감 느껴져서 싫어요. 예전처럼 이름으로 불러 줘요.”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요.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응시하자 그가 서럽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곳곳에서 안타깝다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마치 내가 천하의 몹쓸 악당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사방에서 책망 어린 눈빛들이 쏟아지자 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익숙한 이름을 입에 담았다.

“주연우 씨.”

“연우요.”

“……네, 연우 씨. 주문하시겠어요?”

“네.”

그의 얼굴이 봄날의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카페 안이 정적으로 메워졌다.

고요 속에서 누군가가 숨을 크게 들이켜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이런 반응들은 이제 너무나 익숙해서 놀랍지도 않다.

주문을 마친 그가 자리로 돌아간 뒤 나는 뒤에 선 손님들 것까지 마저 주문을 받고는 커피 머신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내 쪽을 힐끔거리던 알바생 강민지가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작게 속닥였다.

“사장님, 존잘님이랑 진짜 무슨 사이세요?”

강민지는 남자, 그러니까, 주연우를 저렇게 불렀다.

하나뿐인 알바생이 그렇게 부르니 자연히 그의 이름을 모르는 몇몇 카페 단골들 또한 그녀를 따라 그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더라.

한때는 그게 뭐냐고 질색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뭐라 지칭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요컨대 해탈했다.

“카페 사장과 단골손님의 사이.”

“에이, 거짓말이죠?”

담담한 대꾸에 강민지가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웃었다.

어차피 내가 뭐라 말하든 그녀의 안에 답이 정해져 있는 이상 믿지 않을 거란 걸 안다.

관심 끄고 일이나 하라며 손을 휘젓자, 더 이상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을 눈치챈 강민지가 툴툴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먼저 주문받았던 아메리카노를 내보낸 뒤 다른 음료를 제조하려는 때였다.

강민지가 존잘님의 음료가 완성되었다며 나를 불렀다. 그냥 내놓으면 되지 왜 나를 부르냐고 물으니 당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야 사장님이 드려야 존잘님이 좋아하시니까요!”

“……내 카페가 언제부터 지명제 업소가 되었지?”

“사장님, 빨리요! 주문 밀렸어요.”

얼떨결에 음료를 받아 들었다. 자몽 허니 블랙 티. 그가 최근 시키기 시작한 음료였다.

저번에 일했던 카페에서는 주구장창 아메리카노만 시키더니 최근 입맛이 변한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주연우는 가게 운영에 크게 보탬이 되는 편이었다.

그가 방문하기 시작한 뒤로 손님도 대폭 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도 VIP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길게 머무는 만큼 주문량이 많은 것은 물론이며, 때때로 남은 쿠키나 케이크를 몽땅 사 가기까지 했다. 더구나 그를 따라 카페를 찾은 손님들도 하나같이 씀씀이가 컸으니.

잘 팔리든 말든 정해진 월급만 받는 알바생이라면 모를까, 수익이 전부인 사장에겐 몹시 귀한 손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자몽 허니-.”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마침 이쪽을 보고 있었는지 픽업 역시 빨랐다.

음료를 건네고 다시 일하러 가려는데 주연우가 다급히 나를 붙잡았다.

“누나, 오늘 정말 시간 안 돼요?”

“주연우 씨-.”

“저 많이 아파요…… 하급 에스퍼는 가이드를 마음대로 부르기가 힘들잖아요. 달리 도와줄 가이드도 없고, 저는 매칭률도 낮고…….”

긴 속눈썹을 살짝 내리깔며 그가 애원한다. 애처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으나, 나는 기가 차서 헛숨만 내뱉었다.

뭐? 하급 에스퍼? 도와줄 가이드가 없어?

내게 있어 이 남자가 달갑지 않은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그는 겨우 되찾은 내 평화로운 일상을 무너뜨릴 폭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가짜 이름. 가짜 신분.

그는 하급 에스퍼도, 나 말고 도와줄 인맥이 없는 것도, 이름이 주연우인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에 다섯밖에 존재하지 않는 S급 에스퍼이자, 다중 능력자. 대한민국 1위, 세계 랭킹 2위 길드 ‘메시아’의 젊은 길드 마스터.

그에게는 눈길만 줘도 가이딩 하겠다고 나설 유능한 가이드들이 주변에 넘쳐날 것이다.

그동안 속아 왔던 것들을 떠올리니 절로 입매가 삐딱해졌다. 나는 픽업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봐요, 주연우 씨.”

순식간에 가까워진 얼굴에 그의 두 눈이 커졌다.

혹시 다른 이에게 들리기라도 할까 나는 짓씹듯 낮게 속삭였다.

“아, 아니지. 그 이름이 아니었죠? 그럼…… 이렇게 불러야 하나?”

잘게 흔들리는 동공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평소에도 사나운 편인 내 얼굴은 지금 차갑다 못해 살벌해 보이리라.

“메시아 길드 마스터 연우진.”

연우진.

긴 시간 나를 속인 놈이자, 내게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

내 집을 무려 세 번이나 부순 빌어먹을 놈의 이름이었다.

* * *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내 인생은 정도를 넘어섰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나는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집에 돌아가곤 했다.

문제의 그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가 사라져 어둑어둑해진 밤, 퇴근 시간에 비해 인적이 드물어진 역사 안에서 지하철이 오기만을 기다린 그 순간.

삐이이익-.

돌연 기괴한 기계음이 귓속을 파고들더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손발까지 차가워지자, 순식간에 공포가 뇌리를 잠식했다.

나…… 이대로 죽는 건가?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주변에서 눈치챈 듯,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그러나 이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고, 끝내 시야가 점멸하며 까무룩 정신을 잃은 찰나.

거짓말 같이 소음도 멎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제원 고등학교 1학년 ‘김유정’이 아니라, 헤르만 제국의 ‘아멜리아 캠벨’이 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멜리아 캠벨은 백작가의 사생아로서 집안의 모든 이들에게 냉대받는 처지에, 황태자와의 애정 한 줌 없는 결혼이 멋대로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나는 흔한 로판의 전형적인 가정 환경을 지닌 인물에 빙의된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하나…… 이대로 도망 여주가 되어 이 망할 집구석에서 탈출하면 되는 건가?

황태자는 후회 남주가 되는 거고?

제정신 아닌 상태로 거듭 생각해 봤지만 역시나 답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좁았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고르게 된 것은 바로 외국어 공부였다.

의사소통부터 되어야 뭘 하든지 말든지 하지.

그렇게 수험생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간신히 외국어를 익히고 나니 이번에는 전쟁이 터지더라.

헤르만 제국에서는 큰 결함이 없는 이상 반드시 가문의 일원 중 한 명 이상은 전쟁에 참전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문을 이어받을 장남 대신 징병당한 것은 나였다.

……어, 혹시 이거 로판이 아닌가?

장르가 잘못된 것 같다는 가설에 처음으로 힘이 실린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아멜리아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나는 그 능력을 살려서 전쟁터에서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5년.

동료들과 함께 무사히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환했다.

화려한 불꽃. 사람들의 들뜬 웃음소리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

그것들을 안주 삼아 나를 전쟁터로 내몬 백작가를 향해 복수의 집념을 불태우던 찰나였다.

불현듯 7년 전 역사 안에서 들었던 그 이명이 또다시 내게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멜리아 캠벨로서의 기억도 끊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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